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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김다윗 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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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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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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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Atla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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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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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
귀한 목자님의 이멜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를 따뜻하게 반겨주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섬겨주셔셔 감사합니다. 저는 퍼듀수양회를 통해서 쉼을 갖게되었습니다. 힘들게 외워야하는 병의 이름이나, 들리지 않는 학교수업을 따라가야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사랑하는 동역자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 그리고 삭개오 말씀을 통해서 깊은 쉼을 얻게 되었습니다. 명옥목자님과 아브라함 정 목자님 가정을 이곳에 보내시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 또 GT심방을 가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했니다. 아브라함 목자님께서 저와 미셀 자매님이 함께 일대일 하고있는 책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실때 저는 너무나 감동이 되었습니다. 섬세하게 저희를 섬겨주시고, 기도하시고 계심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사무엘과 에스더가 명옥목자님의 사랑을 받아 행복해하였습니다. 헤어질때,공항에서는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옥 목자님의 선교비젼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선교지에 나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수양회 이후로 나이지리아 선교사님 가정이 비행기 연착으로인해 저희 집에 머물게 되시므로 같이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 아프리카 검은양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을통해서 우리 선교사님들의 삶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제 여름학기 기말고사가 끝났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마쳤습니다, 제가 학과 공부로 인하여 어려움이 있으나, 이것은 제게 꼭 필요한 훈련임을 영접합니다. 고난에 약하고 부정적인 저자신이 변화 되어서 주님의 양들과 역사를 잘 담는 그릇으로 빚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박스테디 목자님의 회복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 , 상황이 어찌하든 믿음을 지키고, 주안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새 방향과 새 마음을 그에게 불어넣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양표목자님의 목자의 심정과 사랑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깨어서 양들을 위해서 기도해야함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목자님께서 양들을 잘 감당해 주시고, 말씀과 기도로 섬겨주셔셔 깊이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목자님가정의 헌신과 기도를 넘치도록 축복해주시길 기도합니다. 관악 5부 가운데 새 양들을 허락하시며, 정아브라함 목자님께 권세있는 말씀주시길 기도합니다. 저희가 기도한대로 이곳에 소명있는 선교사님들이 오시며, 한명의 아브라함과 사라가 서길 기도합니다. 웨슬리 선교사님께서 잔 웨슬리와 같이 POWERFUL 한 메신저가 되시길 기도합니다.메시지를 다 외워서 섬기시도록 기도합합니다. MICHELLE, JEFF, BRICE 형제 자매님들과 꾸준한 일대일 위해서 기도하며, 미셀과 제프가 예배로 인도함받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와 사랑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주님안에서 늘 행복한 종 에스더 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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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기스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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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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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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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센다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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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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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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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듀수양회/시카고 투어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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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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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
2008년 8월 3일(주일) 김영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이번 퍼듀국제수양회는 세계 각국에서 약 3,400명이 참석하였고 한국에서만 약 400명이 참석한 역대 최대규모의 국제수양회였습니다. 관악5부에서도 역대 최다인 18명이 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관악5부 Journey팀은 7월 23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Nonstop으로 약 13시간을 비행하여 미국 시카고 O’Hare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비행기 창 밖으로 본 미국 땅은 광활한 대지 위에 사각형으로 잘 정돈된 논과 밭 그리고 시원하게 쭉쭉 뻗은 도로, 게다가 끝없이 펼쳐진 땅과 파란 하늘이 만나는 지평선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비행기는 현지시각 오후 6시 시카고 O’Hare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입국심사과정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최우석 목자님은 심사관이 퍼듀에 가려는 목적이 뭐냐고 묻자 Sightseeing(관광) 이라고 대답했다가 퍼듀가 관광지도 아닌데 무슨 관광을 한다는 것인지 의심한 심사관이 계속 추궁을 하여 곤혹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인금철 목자님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심사관이 계속 붙잡고 늘어져, 다른 장소로 불려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줄만 알고 걱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30분 정도 후에야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나왔습니다. 이때 금철 목자님은 절로 기도가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상보다 조금 늦게 공항 문을 빠져 나오자 한 베드로 선교사님이 우리를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사라 베리 선교사님도 공항에 나와서 방문객들을 일일이 환영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한 베드로 선교사님과 시카고 센터의 리차드 최, 피터 김 선교사님들의 차에 각각 나누어 타고 공항인근의 호텔로 이동하였습니다. 시카고 날씨는 섭씨 25도로 서울보다 시원했습니다. 하늘도 참 맑고 공기도 신선했습니다. 수양회 직전까지도 폭염이 지속되어 주의 종들이 날씨를 위해 기도를 참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연일 계속되던 폭염이 수양회 직전 딱 멈추고 수양회 내내 맑고 청명한 날씨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날씨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얼마나 UBF 역사를 축복하기 원하시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약 10분 후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일단 풀어놓고 우리는 한 베드로 선교사님 댁으로 다시 차에 나누어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호텔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떨어진 한 베드로 선교사님의 집은 주변에 푸른 나무와 잔디로 둘러싸여 있고 밤이면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정말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 수지 선교사님은 이미 밥, 잡채, 통닭, 갈비, 김치, 과일 등을 뷔페로 차려놓았습니다. 주성이와 주영이 두 자녀들은 한국에서 보다 더 밝고 환하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특히, 주영이는 베드로 선교사님보다 영어발음이 더 좋아서 아빠를 가르쳐 준다고 하여 모두 웃었습니다. 베드로 선교사님은 안요셉 선교사님의 요회에서 North Eastern 대학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 동안 만났던 양들과 관계성이 멀어져서 월화수요일 마다 캠퍼스에 나가서 새롭게 양을 만나고자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임지연 자매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저 북방얼음산과 오대양 산호섬” 이라는 찬송을 다 함께 부르며 기도하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시차 때문에 잠이 잘 오진 않았지만 미국에서의 첫날을 이렇게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히 빵과 주스로 요기를 한 후 인디아나주에 있는 퍼듀대학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버스는 약 4시간 정도 달려 드디어 퍼듀대학에 도착하여 국제본부이자 우리가 묵을 숙소인 Hillenbrand Residence Hall 앞에서 우리를 내려주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우리는 먼저 도착해 있던 강호영 선교사와 부르나이의 정앤드류 선교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짐을 푼 후 곧 바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당은 숙소에서 가까운 Earhart Residence Hall 에 있었는데 마치 베니건스 같은 family 레스토랑 분위기에 뷔페식이라 개인 취향에 따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총 9끼를 먹었는데 점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흰 쌀밥에 새콤한 김치를 얹어서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왕faith 목자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수양회 첫째 날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수양회의 시작을 알리는 Opening 메시지가 오후 7시에 대강당인 Elliott Hall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숙소에서 Elliott 대강당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걸렸는데 하루에 최소 두 번 왕복하니까 최소 40분 이상 걷기 운동을 했습니다. 대강당인 Elliott Hall은 수용인원이 4000명은 족히 될만한 계단식 대형 강당이었습니다. 좌석이 앞사람의 어깨 사이로 앞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앞사람 머리 때문에 보이지 않아서 답답할 일은 없었습니다. 강당 앞쪽에는 정면에 초대형 스크린이 있었고 좌우 각각 두 개의 대형 스크린에 4개국어가 각각 디스플레이 되었습니다. 음향과 프로젝션은 퍼펙트하여 어디에 앉더라도 소리와 영상이 완벽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첫날 개회식은 워싱턴 UBF의 찬양인도로 시작되어 전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믿음의 영웅들에 대한 사진들이 파노라마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양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이 각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를 하였습니다. 한국 대표로 올라간 민혜란 자매님은 고운 한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보름달처럼 밝은 얼굴로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한국과 관악5부를 알렸습니다.
이번 수양회의 주제 타이틀은 요한복음 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였습니다. 개회 메시지에 앞서서 주제요절에 기초한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Passage Presentation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매 말씀마다 항상 말씀에 기초한 Passage Presentation 이 있어서 말씀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개회 메시지는 요한복음 3:16절 말씀에 기초하여 사무엘 H. Lee 목자님께서 영어로 은혜롭게 전해 주셨습니다. 개회 메시지가 끝나고 곧바로 저녁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각 대륙을 대표하는 네 분의 목자님들이 나와 대표기도를 해주셨고 그 후 Toledo UBF에서 준비한 합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Dr. Jim Rabchuk 목자님의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를 영접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Jim 목자님은 재산을 탕진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는 탕자를 변함없는 사랑으로 영접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여러 가지 모션을 섞어(특히, Jim 목자님의 Kiss Scene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서 그리고 자신의 라이프 소감을 곁들여 말씀을 실감나고 감동적으로 전해주었습니다. 모든 참석자들은 첫날부터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녁 강의가 끝나고 곧바로 “세계선교의 밤”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한국의 태권무로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고 나서 세계선교역사에 대한 전체적인 Overview를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첫날은 유럽지역 세계선교의 밤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유럽지역을 대표하여 불가리아의 Georgi Kumanichliev 이방목자가 라이프소감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피터 샘프라스 같은 테니스 선수를 꿈꾸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대학에서 엉뚱하게도 아랍어를 전공하였습니다. 그는 꿈을 잃고 방황하다가 선교사님을 만나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변화되어 이제는 아랍어전공을 기초로 이슬람 권에 선교사로 나가고자 한다고 결단했습니다. 인생소감이 끝나고 화려한 유럽 Dance가 이어졌고 이렇게 유럽 세계선교의 밤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매일 저녁에는 메시지가 끝나고 나면 지역별 “세계선교의 밤” 프로그램이 준비되었습니다. 첫날 저녁은 유럽지역 선교의 밤이었다면, 둘째 날 저녁은 라틴아메리카와 CIS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 저녁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중동지역 세계선교의 밤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숙소에 와보니 정종현 형제님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불과 일주일정도 후에 미국땅에서 다시 만난 종현 형제님의 얼굴은 비교적 밝았습니다.
수양회 둘째 날
수양회 둘째 날 금요일부터는 매일 오전 6시 15분부터 Daily Bread Meeting 이 있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는 1시간 반 동안 그룹공부를 하고 곧바로 Elliott Hall로 옮겨 10시 반부터 오전 주제 강의를 들었습니다. 둘째 날 오전 주제 강의는 Dr. Joe Schafer 목자님이 누가복음 19장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말씀을 은혜롭게 전해주셨습니다. 그는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잃어버린 캠퍼스 영혼들을 애타게 찾고 계시며 또 얼마나 우리와 인격적으로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 원하시는지 전하였습니다.
둘째 날 저녁 강의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터키 이스탄불의 선교사이신 블라드미르 포인트 목자님이 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은혜롭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과거 전자기타를 사기 위해 목자님께 돈을 빌린 후 갚지 않고 도망쳤다고 했습니다. 그 후 사마리아 여자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정욕과 보드카에 빠져 지내며 눈병으로 고생하다 절망하여 다시 예수님께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터키 선교사로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날 밤은 라틴아메리카와 CIS 세계선교의 밤이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여 멕시코 출신으로 엘살바도르의 선교사로 살고 있는 Isidro 선교사가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과거 축구를 너무 좋아하여 주일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가 변화되어 축구를 포기하고 대신 주일예배를 드리는 자로 변화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CIS를 대표하여 우크라이나의 Olena Choo 자매님이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녀는 올림피아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하였고 최고의 대학에도 들어왔지만 형제와 사귀게 되면서 자살 충동을 느끼는 등 죄로 방황하다가 목자님을 만나 변화되어 이제는 우크라이나 캠퍼스 양들의 목자가 되었다고 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수양회 셋째 날
셋째 날은 수양회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오전 주제 강의는 누가복음 23장 십자가 말씀이었습니다. 강의 시작 전에 보여준 Passage Presentation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현장감 넘치게 재연해 주었습니다. 또 David Kim 목자님께서 “거기 너 있었는가” 라는 찬송을 은혜롭게 섬겨주셨습니다. 이어서 Kevin Albright 목자님께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감동적으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이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로 얼마나 이 세상 영혼들을 사랑하시는지 전했습니다. 또 우리도 이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으로 어떤 원수 같은 자라도 용서하고 사랑하자고 하였습니다.
셋째 날 저녁은 UBF 국제 합창단의 아름다운 합창을 시작으로 피터 슈바이쳐 목자님이 마가복음 13:1~37 기독교 역사관에 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 말세에 최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은 만국 복음 전파라는 점과 우리들은 모두 History maker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과거 컴퓨터라는 거짓 메시야를 섬기며 매우 이기적인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목자로 살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날 저녁은 아프리카, 아시아/오세아니아, 중동 세계선교의 밤이었습니다. 먼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온 패트릭 목자가 인생소감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는 과거 모든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렇듯이 많은 아내와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는 선교사님들의 헌신적인 섬김과 기도로 변화되어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지만 7년간 자녀가 없어 친척들로부터 재혼하라는 심한 박해를 받았지만 믿음으로 결혼서약을 끝까지 지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육신의 자녀 대신에 6명의 영적인 자녀들을 허락하셨다고 고백하여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대표로 일본의 Naomi choi 목자님이 인생소감을 발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동 대표로 레바논의 Roser 목자가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폭격이 쏟아지는 전쟁 중에서도 레바논 양들을 떠나지 않는 조스터드 선교사를 보고 감동을 받아 그를 진정한 목자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Roser의 소감을 들으며 생명을 걸고 양들을 지키신 선교사님에게 큰 은혜를 받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중동 세계선교의 밤이 끝나고 나서 마지막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Pastor Ron Ward 목자님이 나오셔서 모두 눈을 감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양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신 분들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곧이어 이번 수양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분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목자님은 이번 수양회를 통해서 세계선교사명을 영접한 분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목자님은 세계선교사명을 영접하여 손을 들었던 분들은 단상 앞으로 나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는데 단상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저는 손을 들었기 때문에 나가려고 막 일어나려고 하는 찰나에 놀랍게도 제 왼쪽에 앉아 있던 정종현형제님도 동시에 일어나 앞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곧 단상 앞에는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습니다. 그래서 단상 위에 설 자리가 모자라 아래 서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라 베리 선교사님은 이 선교 지원자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번 수양회를 크게 축복하시고 우리 안에 세계선교의 Vision을 심어주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은 수양회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에 Hillenbrand 숙소 8층 Room에 종로1부 출신과 관악5부 출신 선교사님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반가와 허깅을 하며 인사를 하였고 또 선물을 교환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퍼듀에서 박사과정을 곧 마치는 정아브라함 주니어 선교사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이렇게 국제적인 수양회를 개최하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선교 동역자를 애타게 기다리시던 애틀란타의 윤웨슬레 선교사님은 오늘 저녁에 손들고 단상 앞으로 나갔던 사람들의 이름을 다 적어놓았다며 주저말고 애틀란타로 오라고 강력 추천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선교사님들과 밤 12시가 넘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수양회 넷째날
수양회 마지막 날 오전 프로그램은 주일예배로 드려졌습니다. 예배에 앞서서 관악3~5부 찬양 팀이 힘차고 역동적인 찬양과 댄싱으로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예배 말씀은 요한복음 21장 1~17절 말씀으로 멕시코의 세르지오 레무스 목자님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이번 수양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깊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르지오 목자님의 메시지를 통해서 그러면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하고 되물으시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또 만일 나를 사랑한다면 양을 먹이라는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그 동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로만 고백한 것을 회개하고 새롭게 양들을 먹임으로 주님을 사랑하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메시지가 끝나고 수양회의 마지막 기도제목 및 광고는 전요한 박사님께서 직접 나오셔서 영어로 전해 주셨습니다. 수양회 준비로 힘드셨을 텐데 박사님의 얼굴은 매우 밝고 환하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Closing Ceremony
광고가 끝나고 시카고 합창단의 Joy to the World 와 각국에서 온 2nd generation HBF 형제자매들의 God of Grace 합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 함께 일어나 주기도문 합창을 부르며 3박4일의 수양회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PU House Church 심방
우리는 빽빽한 수양회 일정 때문에 PU를 떠나기 30분 전에야 비로서 정아브라함 주니어 선교사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집이 좁고 humble 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이 좁은 곳에서 두 부부와 두 아이가 함께 지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우리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마델린 자매님도 그 자리에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출발시간 때문에 많은 대화는 나누지 못하여 아쉬워하며 새벽기도승리와 Post Doctor 과정을 인도해주시도록 기도하고 PU를 떠나 시카고 행 버스에 탑승하였습니다.
시카고 센터 탐방
수양회가 끝난 후 관악5부 Journey팀은 정아브라함 목자님 가족 Group과 시카고 행 Group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정종현 형제님은 UIUC 팀으로 합류하였고 동부 버지니아로 가야 하는 강호영 선교사와 UCLA로 가야 하는 민혜란 자매님만 시카고 행 Group에 합류했습니다. 버스는 곧 우리를 시카고 Down Town으로 안내하였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시카고의 명물인 밀레니엄 파크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시어즈 타워 그리고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모여서 솜씨를 겨루며 지었다는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 숲을 거닐면서 마치 시골에서 올라온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놀란 듯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또 우리는 한반도가 쏙 빠진다는 거대한 미시간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에 또 한번 감탄하였습니다. 버스는 곧 다운타운을 지나 UBF의 세계 본부인 시카고 센터로 향했습니다. 시카고 센터는 다운타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심과는 달리 한적하고 아늑한 환경이었습니다. 주변에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푸른 잔디 위에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작고 아담한 건물이 바로 세계본부 센터였습니다. 옛날 종로 본부센터와 비슷한 이미지였습니다. 우리는 예배당을 비롯하여 마더 사라 베리, 전요한 박사님, Ron Ward 목자님들의 방을 하나 씩 돌아보았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나는 삐걱 소리와 나무로 된 문과 창틀은 마치 시골 고향집에 온 것 같은 포근함과 친근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의 머리에는 방금 전에 보고 왔던 시카고 다운타운의 대리석 건물들과 말구유 같은 시카고 센터가 서로 대비가 되면서 계속 마가복음 13장 말씀이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시카고 센터 방문을 마치고 저녁 8시경에 호텔로 돌아와 하루를 자고 다음날은 시카고 지부 심방 및 투어를 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우리는 버지니아로 돌아가야 하는 강호영 선교사를 위해 파송기도를 하고 또다시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먼저 DuPage College 투어를 하였고 DuPage 센터를 방문하여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관악3부 출신이신 David Kim 선교사님 가정과 그 외 두 가정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온 바 있는 Jeremy 형제님은 이곳 센터의 청지기 역할을 하는 충성된 종으로서 우리를 위해 5분 메시지를 섬겨주었습니다. 그는 김기중 목자님과 출생연도가 같은 동갑내기였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국식으로 차려주신 맛있는 점심식사를 먹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Wheaten College 대학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미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빌리 그래햄 목사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빌리 그래헴 목사님의 설교 말씀들 중에서 한 말씀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지구상에 복음을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크리스찬은 누구도 그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또,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작가 C.S. Luise 기념관에도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거기서 민혜란 자매님이 C.S. Luise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는 DuPage에서 자랑하는 Morton 수목원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이곳은 세계의 거목들을 옮겨다 심어놓은 아름다운 거대 정원이었습니다. 푸른 잎으로 우거진 거목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언젠가 우리도 이 거목처럼 영적으로 크게 자라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키울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시카고 Down Town가에 있는 UIC 대학이었습니다. 이 대학은 시카고 센터에서 두 세 개 요회가 연합하여 개척 나온 West Loop라는 센터에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West Loop센터에서 준비한 맛있는 저녁 식사를 먹으면서 그들이 준비한 영상을 감상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든 UIC 동역자들과 함께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기념촬영을 한 뒤에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시카고에서의 공식적인 모든 일정은 끝났습니다. 우리는 호텔에 모여 그 동안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때 전요한 박사님께서 호텔을 방문하셔서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고 박사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제 한국으로 먼저 돌아가기로 예정된 저희 가정과 김기중 목자가정, 그리고 서사랑 사모님 이렇게 다섯 명은 짐을 챙겨서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한 베드로 선교사님과 한 수지 선교사님은 한국으로 먼저 돌아가는 다섯 명을 공항까지 친절하게 픽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공항에서 짐을 붙이고 한 베드로 선교사님과 함께 기도하고 아쉽지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탑승시간이 되어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긴장이 풀려서 인지 비행기 안에서 오랫동안 푹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떠보니 10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우리 다섯 명은 한국시간으로 수요일 새벽 4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곧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론
이번 PU수양회 참석과 시카고 Tour는 지금까지 제 생애에 가장 Wonderful하고 Fantastic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구촌에서 모인 3,400명의 이방목자들과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만 아니라 온 세상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너무나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동안 잊고 지내던 세계선교비전을 새롭게 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선교사님들과 보고 싶었던 동역자들을 만나서 그들과 함께 교제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저는 출발당일 수양회 리포트를 준비하라는 목자님의 방향을 받았을 때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와서 리포트를 작성하다 보니 이번 수양회를 일회성 여행이 아닌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시간 제게 PU수양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한마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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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듀 선교사 수양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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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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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
시카고 안요셉 선교사님의 선교사 수양회 보고입니다. 앞으로 UBF가 나아갈 세계선교 방향을 잘 나타나 있습니다. -----------------------------------------------------------------------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 (민수기 14: 8,9) 이번 수양회는 여러모로 역사적이고 의미 깊었습니다: 전세계 모든 동역자들의 3000번 이상 기도, 첫 번 시도한 온 라인 등록 제도인데도 수양회 3주전인 6.30 이미 3,000명이상의 등록마감, 총 3,350여명등록중 77 개국1,100 여명참석, 의미깊은 환영 개회식, UBF, HBF 및 MBF각 모임의 빼어난 말씀들, 현대감각에 맞는 세계선교의 밤 비데오 presentation및 한 대륙 한명의 빼어난 인생소감 및 특색있는 댄스들, 토요일밤의 500여명의 새 선교사 서약자들,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각종 음악프로 그램: 이모두를 위해 뒤에서 기도하며 수고한 모든 노고를 받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심을 나타내시고 주를 믿는 모든자에게 영생을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제 전체 수양회를 끝낸 지금 연희센터의 김 다윗 목자님을 통햐여 그간 미국에서의 선교사 생활을 돌아보고 또 새 방향을 찾는 좋은 계기를 허락하신 하 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본문에는 가나안을 정탐한뒤 두종류의 엇갈리는 보고자들을 보게 됩니다. 저는 가나안을 정탐한 12 두령 중 10명에 속해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은 무서운 거인들이 사는 곳, 정복 불가능한 땅, 죽기위해서나 들어갈 땅이라고 보고합니다. 이 소식에 대부분이 백성들이 실망하고, 하나님이 어찌 우리를 죽이려고 이땅으로 인도하여 오는가 하고 불평 원망합니다. 1990년 미국에 오기전 이미24여년간 목자생활, 중남미 및 한국 종로3부개척등 가는 곳곳마다에서 많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마침내 그간의 모든 목자생활, 선교사 생활을 기초로 미국 목자생활을 시작케 되었습니다. 그간 외교관 평신도 선교사를 그만두고, 풀타임 스텝으로 뛰게 되고, 또 그간 혼자서 많이 뛰었는데 이제 마리아목자, 아이들과 같이 함께뛰게 되어 역사가 하루아침에 크게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생활은 하나도 생각대로 되는게 없었습니다. 10여년이 되어가는데 앞길은 계속 캄캄한 동굴속의 미로를 헤메는 목자생활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평신도로 돌아가서 살아야 하는 현실을 맞이하여 정글같은 분위기의 시카고 국민학교 이중언어 선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전혀 낯선 아마존 정글에 비행기 사고로 추락한 자였지 타잔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10년 이상 도운 학생들이 전혀 Commitment가 없이 언제까지 이렇게 끝없이 투자하는 생활을 해야할까 두려웠습니다. 미국과 미국양들은 저의밥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메뚜기 같고 저들은 골리앗 같았습니다. 그위에 목자님은 하루같이 훈련만 주었습니다. 이런때 저는 “울려고 내가 왔던가?” 어쩌자고 이 고약한 땅에 오게 되었던가하며 10 두령같고, 이에 한숨짓던 불평의 이스라엘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미국목자생활 19년이 되어 갑니다. 이제 돌아보면, 나에게 갈렙과 여호수아 같은 믿음이 생기게 까지 하나님이 저를 훈련시키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많은 세월동안 저는 선배선교사로서 제자양성의 많은 열매를맺고 존경받는 목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열매보다, 제 자신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 믿음이, 제 마음이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으로 기뻐하게 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양 우리에 양이 없어도, 밭에 곡식이 없어도, 곳간에 먹을것이 없어도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노라”하는 그런 마음을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미국사람, 미국역사, 그 아무것도 두려워 않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미국백성을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만드시고자 나를, 나의 가정을, UBF 를 반드시 쓰실 것임을 믿는 변함없는 마음이었습니다. 10년이 넘을무렵, 저는 하나님만 바라보자, 숫자에 구애됨이없이 한사람과 일대일을 깊이 끝까지 하자, 하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일대일을 한사람, 두사람, 세사람 10사람 주신 양들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10년정도 일대일을 하는 양들중에 하나님께서 서서히 변화의역사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주일 30여명의 정규 멤버들이 꾸준히 오는 것을 봅니다. Coordinator로 맡겨주신 NEIU (노스이스턴) 5개 요회역사도 주일 70 여명, 퍼듀 수양회 90 여명 가량이 오는 전혀 기대치 않는 역사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과연 미국은 젖과 땅이 흐르는 땅이요, 미국에 사는 백인뿐아니라 150 여개국에서 온 수많은 자들은 과연 우리의 밥이요, 세계선교의 좋은 밭임을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561개 미국 대학을 개척케 하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또 미국을 통해 전세계로 나가게 될 비전을 다시 보게 됨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UBF 전체의 역사를 볼때 아직도 제게 해결 되지 않은 문제를 이번에 해결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민수기의 정탐군들을 살펴볼때 그들이 정탐한 이유부터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1:21하반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시고자 한땅을 보라. 너희 하나님 너희 열조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너희들은 올라가 그땅을 취하라. 두려워 말라. 낙담치 말라. “ 그러나 이들은 어느길로 가며, 어디부터 쳐야할지 알지 못하니 스파이를 보내어 먼저 정탐을 해보자”고 제의 했습니다. 이제껏 하나님 하라는 대로 했지만 이제는 우리도 적을 알아야 하겠고, 더이상 전략없이 무턱대고 쳐들어갈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의 생각이 좋게 보여 12 두령들을 택해서 보내었습니다. 그결과 이들중 10 여명 두령의 부정적 보고가 있었고, 이를 인해 하나님은 모세까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전략과 하나님의 말씀 순종과의 관계를 분명히 규정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60년대 저희가 이 말씀을 들었을때 한국과 한국 대학생들의 형편은 400 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한 이스라엘보다 훨씬 열악했습니다. 저희들은 5000 여년 동안 1000 여번의 외침을 받고, 선교는 미국이나 서구 선교사들이나 하는 것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이 사무엘 목자님, 배사라 목자님의 믿음을 따라 저희들은 담대히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함께 있으리라.” 이때까지 종래의 선교사란 개념은 100% 물질지원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식 신학교 졸업장을 받고 선교사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식으로 해서는 예수님의 세계선교명령을 UBF 에서는 순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5병이어를 배웠습니다. 말씀에 의거, 우리는 가진것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독일의 간호원, 광부, 미국의 의사, 유학생, 또 스페인, 라틴에 외교관, 대사관 직원등으로 UBF평신도 멤버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리하여 지난 40 여년간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89개국에 2600 여명의 선교사가 파송된 것입니다. 그중 현재 1350 정도가 현직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면 저희는 정탐이란걸 모르고 개척지로 나아갔습니다. 오직 한가지 저희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주의 말씀뿐이었습니다.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이렇게 세계선교의 절대말씀과 또 주의 종들을 지켜주실 약속을 믿는 저희 선교사님들을 주님은 약속대로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한국에서 단일 선교기관으로 모든 선교단체 및 단일교단을 앞서서 대학생성경읽기 선교회가 단연 두각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에 의한 현지 대학생선교란 새 패러다임의 장을 열어놓았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21세기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전체의 선교역사에 큰 영향을 끼칠것을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 모세 같던 이 사무엘 선교사께서 소천 하셨습니다. 그리고 21세기를 맞이했습니다. 외골수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에 의한 현지인 대학생선교기관에 대한 인식도가 높아진 가운데 저희들도 문을 열고 타 단체, 타 교회, 한국 교회연합모임, 미국선교회단체, 독일교계지도자 모임, 세계 교회와의 유대관계 구축으로 문호를 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희들은 타 선교 단체, 교회선교부등에서 지난 수세기, 수십년 동안 체계적이고, 또 계획적이며, 구체적인 선교 전략을 가지고 선교에 임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희들의 지난 반세기 선교역사는 이들과 비교해 볼때 주먹구구식, 구멍가게식이었다는 자성과 비판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선교전략을 구상하자. 우리도 선교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입수, 공유, 나눔을 갖자. 그리고 선교지에 들어가기 전 필요한 언어, 기후, 풍속, 습관, 경제, 정치, 사회의 여러 여건에 걸 맞는 정책을 갖고 들어가자. 필요없는 희생을 최대한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위기 관리도 필요하다. 안식년제도는 어떠한가? 선교사 재교육, 2세 교육, silver mission 제도 도입, 등 우리도 이런 것들로 체제를 구비하자. 앞으로는 정보시대에 걸맞게 체계화된 선교를 하자. 그리고 이제껏 해온 모든 좋은 것들을 정리 종합하고, 재 정리, 재 평가하여 백년대계를 위한 준비를 하자. 우리에게 주신, 핏싱, 일대일, 소감, 제자양성, 캠퍼스 성경공부, 수양회, 메시지 훈련, 일용할 양식 훈련, 믿음의 결혼, 목자생활, 선교사 생활, 현지 목자 선교사 양성등, 이 모든 것에 대한 상세한 정보정리 및 수록을 통해 후배, 후세, 타 선교단체, 전세계 기독교 교계에 좋은 지침과 자료를 제공하자. 이같이 하나님께서 이시대에 맞는 선교방법을 우리를 통해 열어 놓으셨는데 이를 타 선교단체, 타교회들도 서로 지식을 공유하여 100 만 선교사 양성하고, 전세계 모든 족속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며 제자삼는 역사가 있어야 되겠다 하고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그럴듯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략을 짜서 한다는 것과 믿음으로 캠퍼스 개척을 한다는 것이 상호 보완 상승 작용을 하여야지 전략이 앞서서 하나님의 말씀순종에 반대되고 이에 거리끼는 관계로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들이 전략을 짜기위해 스파이를 보내서 정탐해 보니 이만 저만 문제가 큰게 아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저도 우리 UBF 동역자도 이와 유사한 처지에 도달하고 있음을 봅니다. 특별히 이제까지 개척해온 89개국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개척해야 할 나라 즉 150 개국정도 남은나라는 한마디로 개척 불가능하게 보이는 땅이란 말입니다. 이들대부분은 10/40 창이라 불리는 선교사 입국불가 또는 입국조차 어려운 지역들에 삽니다. 라틴만 보아도 미개척13개국을 살펴보면 기가막힌 결론만 나옵니다. 인구가 100만도 안되는 소국들이 많습니다. 자연풍광하나 빼놓고 모든것이 열악합니다. 선교사 입국이 불가능한 쿠바를 비롯,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가난한 하이티가 있습니다. 이제껏 스페니쉬 권, 포루투갈어권 브라질이 모다 다 개척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이들국가들은 불어도 하고 영어도 하는 나라들입니다. 또 외국인이 들어가서 살아남기 힘든 지역들입니다. 더구나 평신도 자비량선교사가 현재처럼 적당한 직장을 구해서 일할 수 있는 데가 아닙니다. 아프리카도 54개국중14개국을 개척했는데 남은나라들은 북쪽의 모스렘, 또 불어권이어서 우리 선교사가 서뿔리 들어가기 두려운데도 있는 지역들입니다. 아시아의 불교권도 만만치 않습니다. 중동의 모슬렘권, 중공, 북한등이 남은 150 개국의 대부분입니다. 이들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보면 소위 “선교사의 무덤”이라는 나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들국가에 대해 타 선교단체들의 전략을 보면 중동에서는 “전략적 후퇴”를 할때다 하고 있던 선교사도 빼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회작전, 여리고 작전”등의 이름으로 단기 선교사를 보냅니다. 영구 선교사로 가서 뼈를 묻는 무모한 짓을 하기보다, 현지에 들어가 좋은 현지인을 만나. 이를 데리고 나와 신학교육 및 재파송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또 주변국가에서하는 ‘비거주 선교사로 침투하기” 등 다양한 선교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아주 곱 씹어 보고 우리도 채택할 전략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라틴 선교사들이 전략을 생각하다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 남은 13개국을 개척해야겠는데 어찌 하면 좋은가? 모두에게 들려오는 정탐소식이 하나같이 이들 나라들은 개척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는데… 그들의 진은 견고한 산성이요, 그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그땅 정부와, 정책 및 거민은 아낙자손같이 선교사들에 대해 적대적인데 이를 어찌 할꼬? 우리가 이정도 선에서 그쳐야 하는가? 비교적 선교하기 쉬운나라부터 골라서 해보자! 등등 생각이 오갑니다. 이때 “우리가 올라가자! (We should go up!) 우리가 능히 취하리라! We can certainly take possession of the land!)” 하고 말하기가 쉽지않습니다. 저자신 카리브선교, 모슬렘선교등 233 개국을 우리가 이세대에 개척하자는데 절대 동의하고 기도합니다. 또 10 만 선교사들을 이들 233 개국 모든 족속에게 파송하여야함을 믿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현실이 눈앞에 닥치자 잠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이시간 이런 나의 태도가 바로 10두령의 태도요, 이를 듣고 두려워한 이스라엘의 태도였음을 발견하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제껏 이루어오신 놀라운 세계선교역사를 돌아봅니다. 주님께서는 불가능한 가운데 한 가정이, 한나라, 한 캠프스에 나아가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즉 one family, one campus, one nation 개척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가정이, 모든 캠프스, 모든 나라에 나아가야 된다고 하고 계십니다. 즉 all family members, to all campuses in all nations! 이제 내 가정의 장막터를 더 넓히고, 내 캠프스를 통해 주변 캠프스 및 전국 캠프스로 퍼져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2세및 현지목자들이 모두 한나라 전 캠프스개척, 남은 143개국 개척위해 나아가라 하십니다. 이렇게 모두가 선교사로 나아가는 방향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이때 정탐을 통한 전략적 방법만 의존하려 한다면 우리에게 상당한 문제점이 있지않나 발견합니다. 정탐으로 얻은 전략적 정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 말씀을 순종하기 위한 보조자료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쳐 놓고 이 정탐에 근거하 전략적 어려움에만 구애된다면 차라리 무 전략이 더 낳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정탐결과 우리앞에 있는 현지 사정들이 심히 어렵지만 이들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추수할 황금 밭입니다. 이제껏 40년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간 우리 선교사가 헐벗고 굶주렸다는 보고가 거의 전무한 것을 볼때 하나님께서는 분명 살아계시고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라고 마다 하지 않으시고 안드레의 5병2어로 받아 이렇게 5000 이 넘는 세계 양무리들을 먹이게 하셨음을 볼수 있습니다. 이제 이번 선교사 수양회에서 방향을 새롭게 받게 된 것을 주께 감사합니다. 즉 우리가 정보시대에 정보를 빨리 받아 개척해야할 땅에 대한 모든 자료를 갖고 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보고에만 의지하여 가기힘든 지역을 피하고 피해, 개척 가능하게 보이는 땅만 찾다가는 자칫 10두령 꼴이 나고 말게 됨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껏 지난 40 여년간을 인도하시고 승리주신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함께하심을 믿는 믿음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또 이세들에 대한 우리의 보는 눈을 바꾸어야 됨을 깨닫습니다. 이번 세계선교의 밤 비데오 프레젠테이션은 5분짜리를 만드는데 500 시간이 들어가는 엄청난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12 명 2세목자들이 2주만에 6대주의 비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하나님안에서 그들은 일세가 못할일들을 능히할 자들입니다. 우리 이세들이 우리 일세만큼 경험도 믿음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경험없이 보이는 이세들로 우리도 가기 두려워하는 곳을 개척케 하실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이제 내가, 우리 일세선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상세한 정탐소식에 의존, 인간의 전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방식보다 하나님말씀에 단순히 주먹구구식으로 보일만큼 용감하게, 말씀순종이 가장 최선의 전략임을 믿는 믿음이 더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날개로 업어서 우리를 데려가시면 광야도 황무지도 옥토와 장미밭으로 변화케 하실 주님을 믿는 믿음만이 최선의전략이 아닌가 합니다. 또 전략이란 우리눈으로 본자료의 분석중심보다, 어떤 형편가운데도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로 부터 오는 성령의 방향을 기도로 찾아 이를 의지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전략임을 오늘 발견합니다. 사람눈에 좀 우둔하게 보일지라도 우리 UBF 가 계속 말씀으로 돌아가기 기도합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같은 동기위에 또 어떠한 열악한 곳이라도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시리란 약속에 바탕한 개척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233개국중 89개를 뺀 144개국 남은나라에 우리와 우리 2세들이 담대히 나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 이제 힘들게 보이는 나라들을 보고 벌벌떨고 있으면, 밥상앞에서 벌벌떠는 자와 같음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보다 제가 이렇게 말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큰 밥상에 처음보는 진귀한 음식들로 가득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져의 식욕도 왕성하게 해 주셔서 마음껏 먹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하옵소서”라고. 한마디: 세계 233개국은 우리의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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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이번 퍼듀 국제수양회관련 소식(마더베리,수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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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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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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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기스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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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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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8 |
정아브라함 목자님께 무더운 여름, 수양회 준비를 위해 온 힘을 다하시는 목자님이 절로 생각납니다. 올 해도 관악5부 가운데 큰 성령의 역사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희는 목자님들의 기도로 잘 정착하고 타지키스탄에 많이 적응 된 것 같습니다. 조만간 지난 5개월 동안 살던 아파트에서 1층 단독주택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두샨베 곳곳에 대학이 있지만 구소련 때 있던 케이지비, 비밀경찰 등이 활동하고 있어 일반인으로 대학생을 만나기는 힘들고 동역자가 타직슬라비안스키대학 등에 입학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누가형제에게서 온 이메일과 소감입니다. 보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퍼듀에서 뵙겠습니다. 두샨베에서 제임스 올림 “I am the gate; whoever enters through Me will be saved” John 10:9 My name is (N), and my spiritual name is Luke. I was born in the capital, but grew up in a small town in the central mountains of Afghanistan. My father worked for the military and my mother is a graduate from elementary school and a housewife. I started school when I was 6 years old. At that time the Mujahadeen captured Afghanistan. My father wasn’t close to the religion but tried to send me to study Islamic subjects in the Mosque. I studied a lot but didn’t catch anything. Every day was violence and battles; it seemed that everyone understood how to kill and how to rob. After seven years everything again changed and the Taliban arrived and started a new form of Islam. They came to school and said: “Dear students, you don’t need to study Geography, Biology, etc., because these all belong to the Americans and Russians. You are Muslims and you need to study Islamic books and that’s all.” Everything was dark, and I was seeking light in the midst of darkness. I thought that drinking and luxury would be enough, and that was the only dream left for me. The Taliban left and I graduated from high school in 2002. In 2003 I started Medical College in Kabul. During this time a few more liberties were allowed to people, and everyone was talking about freedom, etc. My joy was drinks and my decision to be free from religion. During September while I was at the hospital for practice, I talked with a foreign women named (M) who helped change my ideas and my everything. I was supposed to teach her family Dari, and during my time with them I saw that they were praying before meals. I had thought that they were believing in idols, but they prayed to God for the Afghan people and for myself. My friend told me that I should be careful because they are encouraging people to turn to Christianity. One night I had a dream in which (M) appeared to me in white and said: “If you want to be saved, follow Jesus. He only can help you and is the only way for people to be saved.” I woke up afraid and thought: “Why had (M) been sent to me?” I remember that in middle of that night I heard a sound that said and repeated: “COME, COME……..” During those days I was visiting my Brother (J), the husband of (M), on Fridays. The next Friday, I shared with him about my dream and my change in heart. Everything suddenly changed, and I started studying the Bible with them. John was the first book of my studies. It was in Dari, but difficult to understand. That time was close to Thanksgiving Day. The following spring I came for my vocations to my hometown and kept one English version Bible with myself to study and think about. I was searching about Jesus and actually I was scared a little. I thought that if the people found out, they would kill me. During Easter on satellite TV, there was a program about Jesus and I saw John 10-10: “The thief comes only to steal and kill and destroy; I have come that they may have life, and have it to the full.” I understood the meaning of this verse. I took it in my heart and started to understand that the only way to be saved is to obey and follow Jesus. He only can save me; not my father, my job, or my money. When I returned to the Capital, God sent Brother (J) to help me. Thanks, God, for sending him for my support! We were studying the Bible once a week. I faced many problems during my stay in Kabul while I was a student. One of those was my room mates, who pressured me to pray five times a day with them. I was just silent, as I understood the truth of Romans 8:32: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how will He not also, along with Him graciously give us all things?” I understood that for sure he will give me what I need if I ask him from my mind and heart. I felt a change in my life, like blind eyes being opened. In 2005 I graduated from college and returned to my town in the mountains with another concern. The answer I received from God to my prayers was Matt. 28:19-20: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nd teaching them to obey everything I have commanded you. And sur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end of the age.” When I came to my town at that time I was the only Christian and had no connection with anyone out of my town because there wasn’t telephone or internet. I prayed: “Lord, your name is Holy. Please give me wisdom that I could follow you and witness to your holy Name. Lord, these people need to know you created all nations and sent your Son to save those who believe in His Name and accept You as Lord.” Thanks, God, for answering my prayers and for sending two brothers to my town. Though them I met other brothers and sisters who encouraged me and provided much support. Thanks, God, for listening to the prayers of my brothers and sisters and myself that my wife did not reject you, but she accepted You as Lord. Thanks, God, for saving me and my spiritual brothers and sisters who are serving you there. Thanks, God, for answering the prayers of my brothers and sisters. I am the witness of this answer and I know you are listening to our speech. I have experienced Your love, Lord. I can feel it because I never received love and encouragement like this from humans. Human love is not anything like Your love. I have experienced, Lord, that You take care of Your children… this is possible in the name of Jesus. I received peace and joy… I do not need it from anyone more than You. I can trust in Your Name which was impossible for me a while ago. I heard some stories from my brothers that really encouraged me. I met a brother whose story encouraged me to forgive people and even how to love people who would even want to kill me. I want to share these things I received in my Christian life: Love Peace Forgiveness Kindness Joy Eternal life I am concerned about people who haven’t accepted the Lord yet and ask all of my brothers to just let them know about the light. Thanks for your patience,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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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issionary Grac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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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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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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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위해 기도해주신 은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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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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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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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on James Park from Washington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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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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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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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긴급기도지원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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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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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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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센다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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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69 |
2008-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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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패스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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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82 |
2008-0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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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과 초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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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임스 |
91 |
2008-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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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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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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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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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F 기록을 세운 선교사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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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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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7 |
지지난 주 스탭 모임 때 광주 1부 학사회장이신 임이삭 목자님 가정이 선교사 파송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올 해로 60세이신 것 같은데, 아마 UBF 선교사 파송 역사 최고령 선교사 파송 기록이라고 들었습니다. 특히 선교사로 가기 위해 자녀들을 본국에 놔두고, 직장도 명예퇴직 하시고 떠나시는 두 분을 보면서, 참석했던 스탭 목자님들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선배들의 스피릿을 잘 계승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광주쎈타 봄 수양회 때 전하신 메시지 중에 라이프가 있어서 올립니다. ------------------------------------------------------------------------------------------------------------- 하나님께서는 저의 60년의 삶 속에서 참 목자요 참 아버지가 되셔서 부족한 기도도 다 받으시고 삶 가운데 이루어 주셨습니다. 저는 1949년 해남의 시골 마을에서 1남3녀의 가정에서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조부모님과 어머니와 누나들 속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시골 마을 에 복음을 전하러 오신 분들에 의해서 믿음을 갖게 된 마을의 몇 분 안 되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믿음의 영향을 받고 자라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교회 부흥회를 통해 어릴때 부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게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거듭나고 하나님 앞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가까운 친척도 없는 외로운 가정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고 크신 능력과 사랑으로 참 아버지가 되시고 그 자녀들과 영원히 함께 해 주신다는 말씀은 저에게 가장 귀하고 축복된 말씀이 되었습니다. 60년대 초 가정적 국가적 형편에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80-90% 학생들은 학교를 마치면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에 나가 기술을 배우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린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중학교 뿐만 아나라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는 것은 태산처럼 힘들어 보였습니다. 당시 저의 마을에서 외아들을 서울 동국대학에 보낸 동네 부자가 있었는데 4년 대학을 보내면서 40여마지기의 논과 집과 소까지 다 팔고 거지가 되다시피 하여 서울로 가는 것을 보며 대학에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홀어머니와 여동생만 있는 가정 형편과 시골 고등학교 출신의 실력으로는 대학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머슴에게 줄 세경으로 대학 등록금으로 마련하고자 머슴을 내 보내고 농사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를 몰아 쟁기로 논과 밭을 갈았습니다. 낮에는 일 하고 밤에는 책을 들었습니다. 한번 밖에 없는 삶을 가장 보람 있는 일을 위해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시고 합당한 대학에 꼭 갈 수 있게 해 주시길 새벽을 깨어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오직 기도하며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68년 11월경 대학에 가려면 고등학교 전 과목을 평가하는 예비고사 시험에 합격해야만 대학 본 시험을 볼 자격이 있다는 새로운 제도가 발표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하지 못했던 몇 과목들이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해 둘 것을 하며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남은 1개월간 하루 4-5시간만 자며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비고사는 본 고사 입학정원의 1.5배수만 뽑았다고 하는데 떨어진 줄만 생각했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크신 은혜를 베푸사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가정 형편과 기도했던 방향과 저의 적성에도 초등교사가 되는 것이 좋아 광주교육대학에 원서를 냈습니다. 교대에 가려면 실력도 좋아야 했지만 미술과 음악 실기시험도 있었습니다. 저는 준비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광주교대 입학시험은 해마다 3-4대 1의 높은 경쟁률이었는데 갑자기 생긴 예비고사로 말미암아 경쟁률은 1:1이 되어 버렸습니다. 간단한 신체 검사만 하고 무시험 합격되었습니다. 이것은 광주 교대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의 법과 제도까지도 그의 뜻 가운데서 바꾸시거나 만드셔서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 수 있도록 기도한 저의 기도를 하나님은 기억하셨습니다. 대학에 오고자 광주로 올라 올 무렵 고향 교회의 전도사님은 광주에 가면 대인동에 있는 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를 찾아가서 이 여호수아 목자님을 꼭 만나보라고 약도까지 자세히 그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분은 이 여호수아 목자님의 고향 친구이고 믿음의 선배였으며 대인동 UBF 센타에 와 본적이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이 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인 섭리 가운데 저를 UBF로 보내주셔서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를 위한 역사에 오늘까지 쓰임 받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불같은 열정과 사랑으로 교사의 축복과 사명을 감사하며 학생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뛰놀며 시간 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23세부터 교사가 된 저에게 중마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 눈에도 아름다와 보이는 자매들이 있었습니다. 만약 저의 감정과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좇아 결혼하였다면 오늘의 저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 가운데 결혼 하기로 마음 먹고 하나님께서 비젼과 방향을 주시도록 1개월간 작정 기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소중한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결단과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 역사를 위해 UBF에서 목자의 가정을 이루는 비젼과 소원을 마음가운데 일어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리브가 동역자를 가장 합당한 동역자로 허락해 주셔서 75년 10월에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 주셨던 비젼과 소원대로 지난 33년동안 광주 시온성 조상의 가정으로서 수 많은 선교사님들을 파송하며 목자 가정들을 세우는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게 해 주셨습니다. 80년대 초 산수동 센타에서 부터 학생회 역사가 부흥하기 시작하여 83년 중흥동 센타를 , 93년에는 조대 백악센타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와 목포와 순천과 광주 2,3,4,5,부까지 개척하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 평생 광주 역사가 400명대까지 부흥하는 것과 센타 하나만 건축하고 죽더라도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80,90년대에 이런 역사를 다 이뤄주셨습니다. 한 번의 센타가 아닌 세 번의 센타를 짓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용봉동 센타에서 예배드리는 놀라운 축복까지 받게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저의 성격에 가장 합당한 직장의 축복을 주셨고 가장 귀한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 역사를 위한 역사에 불러주셔서 평생을 행복과 보람 속에 살아올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또한 가정 가운데에도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기 까지 길고 긴 인내의 연단이 있었고 요셉과 다윗도 연단과 인내의 시련이 있었듯이 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시련과 인내의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를 불러본 적이 없었던 저는 자녀들에게는 다정한 최고의 아버지가 되어야겠다고 항상 생각하였습니다. 70년대 후반에 광주에는 학사가정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을 이룬 분들이 대부분 선교사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동역자는 광주에 학생회 역사를 여호수아 목자님과 동역하여 섬길 학사 목자 가정이 꼭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먼 해남에서 근무하고 있어 언젠가 광주로 발령이 나면 그때 자연스럽게 동역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동역자는 이 일이 시급함으로 저의 인사 이동과 상관없이 우리 가정이 광주로 갈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동역자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문제는 저 혼자 해남에서 언제 이동될지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귀엽게 자라는 이숙이와 이삭이를 보지 못하고 동역자와 떨어져 살아야하는 결단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여러 날을 번민하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썪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는 결단 할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80년 2월 광주 산수동에 집을 사서 이사하였고 이 때부터 광주 역사의 그루터기 목자 가정으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8년간의 외지생활은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처음 3-4년까지는 견딜 만 했지만 5년 6년이 지나자 너무도 힘들고 지쳐갔습니다. 해마다 2-3월이 되면 마치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물은 제자들처럼 힘든 외지 생활의 끝은 언제냐고 눈물을 흘리며 물었습니다. 하루가 천년처럼 길고 지루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도서 벽지에서 근무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과 함께 안정된 생활도 하며 자녀들 교육도 시킬 수 있는 경기도와 인천 등으로 옮겨 갔습니다. 외지 생활에 지친 저는 동역자에게 우리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 가정이 아니더라도 광주에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가진 학사 가정들이 생겼으니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동역자는 이삭이 흉년의 때에 애굽으로 가지 않고 약속의 땅 그랄을 떠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듯이 믿고 인내하자고 하였습니다. 동역자마저도 저의 외로움과 고통을 모른것 같아 야속했습니다. 외지 생활은 자녀들 교육에 무슨 역할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느껴야 했습니다. 동역자도 자녀들도 내가 어찌할 수 없고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가난해도 가족들이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외지에서 자녀들을 위해 실제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오직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참 아버지가 되사 가르쳐 주시고 지키시고 인도해 주셔서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다니엘서 말씀인 “ 하나님이 이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더하시니라” 라는 말씀을 액자에 써서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숙이는 중학생 때부터 주일 예배 피아노 반주를 섬기고 최근까지 찬양역사를 섬기었고 사위 대연 목자까지도 드럼으로 찬양 예배 역사를 섬기게 해 주셨습니다. 큰 아들 이삭이는 화학공부와 컴퓨터를 잘하는 은사를 살려 센타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으며 며느리 성경 목자도 주일 찬양 인도와 관현악 연주를 하며 자매 팀들을 말씀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막내 아들 베드로는 장차 세계적인 JBF 목자가 되는 비젼 가운데 미국 어학연수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온 가족이 하나님 역사를 함께 동역하는 귀한 동역자가 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 마다 한없이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 문제를 통해서도 연단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83년 중흥동 센타 건축역사 때 약정한 건축 헌금을 감당하기 위해 집을 판 후 10여년 동안 오르는 전세금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했기에 물질적 어려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힘이 들어 양봉을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년간 해 보았지만 벌침만 많이 맞고 꿀맛만 조금 맛보다 팔아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물질 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와 주셨습니다. 자녀들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게 해 주심으로 학비를 적게 들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숙이가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직장을 갖게 해 주셨고 이삭이는 BK21이 생겨서 석박사 공부를 하면서도 오히려 용돈까지 받으며 공부하게 해 주셨으며, 베드로는 학사장교로 가서 돈을 벌어오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명예퇴직을 하면서 받은 물질로 그동안 지고 있던 물질의 모든 빚을 하룻 만에 다 갚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일하지 않아도 평생 연금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나의 힘과 노력으로 물질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할 때는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축복해 주심으로 해결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한때 선교사로 살고자했던 소원이 있어 해외파견 교사 시험에 응시도 해 보았지만 떨어져 포기하였고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키르키스탄 김갈렙 선교사님을 광주에 보내주시고 선교보고를 듣는 중에 저를 그곳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며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비젼과 꿈을 가슴속에 가득 부어 주셨습니다. 자신이 선교사가 될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신기하고 놀랍기만 했습니다. 키르키스탄이란 나라는 이름조차도 생소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였습니다. 정년까지는 6년이나 남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고 빨리 가고 싶어 2-3년만 더 근무하며 자녀들 결혼도 시킨 후 가고자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탁구를 한 후 성대에 부종이 생겨 병가를 얻어 누워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목만 치료되면 바로 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감 며칠 전에 신청한 명예퇴직은 순적히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2-3년 걸릴 줄 알았던 자녀들의 결혼도 10개월 동안에 이숙이와 이삭이가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셨습니다. 10년이나 동역자들이었던 목자들을 사위와 며느리가 되니 피차 부담이 없고 너무나 편했습니다. 지난 4월21일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요셉이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은혜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선교사로 가면 갈렙 선교사님과 동역하여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하모니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지난 2월 오쉬의 공과대학에서 그동안 선교사님들이 5년 동안이나 한국어과 개설을 건의했지만 무반응이었던 학장님이 갑자기 한국어과를 개설하려고 하니 좋은 한국어 교수님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해 왔고 제가 그곳에 올 것을 알고 있었던 선교사님은 저를 추천하여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외국 대학에서 오는 9월부터 우리의 한글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는 축복도 해 주셨습니다. 키르키즈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지난해 키르키스탄에 다녀 올 때 가져온 책을 하루5-6시간씩 공부하면서 도전하였을 때 차츰 입과 귀와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1월 키르키스탄 오쉬에서 찌모르,에밀란, 딜샤트 세 형제를 광주에 보내주셔서 이들을 매주 예배에 인도하며 더불어 원어민 발음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키르키스탄은 이슬람의 국가로서 드러내어 마음대로 전도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우리나라 50-60년대 정도의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기가 부족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전기가 나가고 겨울에는 영하 20-30도의 추운 날씨 때문에 수도가 얼면 겨우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추위를 잘 타는 제가 길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기에는 살기가 힘든 곳입니다. 심심찮게 교민들의 안전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이 모든 힘든 조건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친히 필요한 것을 앞서 예비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고 캠퍼스에 아름다운 선교의 열매를 넘치게 맺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한 참 귀엽게 자라는 요셉이를 보는 즐거움을 부인하고 또한 세 자녀들 모두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쁨으로 그곳에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값지고 보람되게 살려는 결심과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였을 때 응답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 행하시며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저의 남은 삶도 부족함이 없이 인도해 주실것을 믿습니다.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논 밭을 경작하며 살고 있었을 자를 36년 6개월 동안 초등교사로서 수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축복과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 역사를 섬기는 UBF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불러주시고 부족한 가운데 쓰임 받게 해 주시고 이제는 선교사로 까지 쓰임 받도록 인도해 주신모든 은혜를 할렐루야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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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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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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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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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tings from Penn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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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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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8 |
안녕하세요. 제임스 유입니다. 추운 겨울도 지나가고 이제 봄이 되었군요. 이제 후덥지근한 것을 보니 여름도 다 된 것같습니다. 그 동안 소식을 올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저는 학기를 마무리 하고 이제 5월 30일과 6월 4일에 걸쳐서 있을 미시 경제, 계량 경제학 종합 시험을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한 한국인 선배님이 미시 경제학에서 두 번 다 떨어져서 한국으로 귀국 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4시간에 걸쳐 4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과거 문제를 보니 정말 어렵더군요. 제가 두려워 하지 않고 믿음으로 준비하여 패스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잠깐 소식을 전하자면, 지난 부활절 수양회에 엘리 형제님이 풀로 참석하였습니다. opening 메시지를 제 아내가 전하였고, 주제 일강은 Dan Lee, 2강은 Josh 목자님, 마지막날은 Dr. Moses Noah 목자님이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80 명이 참석한 가운데, "The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개최되었습니다.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쉬펜스부르크 등과 연합 수양회를 가졌고, 정말 은혜로웠습니다. 이 수양회를 통해 제가 받은 한 말씀은 요한 복음 15:5,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a man remains in me and I in him, he will bear much frui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이 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제가 예수님 안에서 맺어야 할 열매가, 첫째, 제 자신의 거룩한 내면의 열매, 둘째,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제자 양성의 열매(Dr. Joe 는 이 부분을 Let's bear the fruit of leading other people to be touched by Jesus.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임을 심령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엘리 형제님은 수양회 이후 바이블 스터디가 오히려 뜸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시 영적으로 추스리고 내일 바이블 스터디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 형제님이 국제 수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현실적으로 이 형제님은 참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90%). 수양회비가 문제인데, 저희가 기도로 또 실질적으로 돕고자 합니다. 저는 요즘 sharon 목자님(Dr.Joe 의 wife) 과 매주 피싱을 하며 실제적인 신입생을 섬기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학과 공부로 인해 자기 정당화를 하며, 주체 의식을 갖지 못하고 봄학기를 보내왔는데, 거기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제자 양성의 열매를 맺고자 공격적인 피싱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 동안 Jason, Chris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형제들을 만났는데, 이분들과 장기적인 관계성을 맺으며, 가을 학기 일대일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참, 백인 형제, 자매님 제자 양성 역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요즘은 몸소 실감하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 인간적인 생각의 한계를 오직 기도와 믿음으로 넘어설 수 있기를 기도하니다. 그리고 기도해 주신 덕분에, 제 아내가, Accuweather 라고 하는 기상 방송국에 기상 캐스터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방송은 시카고와 보스턴 등에 방송이 되며 인터넷을 통해도 시청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기상 용어등을 훈련 받고 있는 중이며, 한 달 내에 인터넷에서 메리 목자님이 일기 예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아, 그리고 엘리 형제님 이번주 주일 예배 대표 소감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인생이 하도 파란 만장한 형제라서 참 가끔 제가 어떻게 도와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분별이 안됩니다. 본인이 나름 영접하고 한 말씀의 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럼,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역자님들,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여름 수양회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험 후에, 개인적인 양들 상황을 종종 올리겠습니다. 주안에서 빚진 제임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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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A. Lee 선교사님의 지난 한국 심방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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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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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3 |
김모세 목자님의 장례식 차 지난 번 한국에 오셨던 Grace 선교사님께서 모세 목자님의 사모님이신 김경례 사모님께 보내신 편지입니다. 은혜가 되어 올립니다. --------------------------------------------------------------------------------------------------- 주안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며 사모하는 김경례 사모님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지난 4월 6일 새벽에 본국 김모세 목자님께서 소천하신 소식을 듣고 Mother Barry 선교사님과 저는 아주 급한 마음으로 서울에 갔습니다. 화요일 아침 5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8시에 종로 센터에서 갖는 장례식에 늦지 않게 참석하였습니다. Dr. Sam.Zun, Isaac & Rebekah Kim , Sarah Kim ( Kiev) 선교사님들을 장례식장에서 만나니 반가왔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국 각 센타 목자님들과 형제자매들이 종로센터에 가득 모여 이사무엘 목자님 인도로 딤후 4: 7,8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말씀으로 장례예배를 은혜롭게 드렸습니다. 이사무엘 목자님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에게 새롭게 부활신앙을 덧입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곧 바로 김모세 목자님의 고향인 전남 담양으로 가서 이여호수아 목자님 ( 대전 ) 인도로 하관 예배를 또 드렸습니다. 많은 목자님들과 학사님들이 버스 , 자가용을 이용하여 하관예배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하여서 김경례 사모님과 모세 , 모란, 모니카 자녀들과 유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 땅을 떠나신 김모세 목자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마지막 하루만 이라도 고인을 사모하며 그의 일생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되여서 참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김모세 목자님은 1961년도 UBF 광주 개척 때 자진하여 센터에 찾아 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UBF 첫 양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조선대학 법대 수석으로 졸업하시고 곧 바로 인턴훈련을 받고 광주역사를 섬기다가 서울에 와서는 중앙대를 23년간 섬기시면서 본부역사 사무처장으로 충성하셨습니다. Dr. Samuel Lee 선교사님은 UBF 설립자로 40년을 하나님 역사를 감당하셨지만, 김모세 목자님은 47년동안 하나님역사를 섬기셨습니다. 그는 70평생 한 마음과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시다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르심을 받고 4월 6일 이른 새벽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김모세 목자님의 별명은 “ 바위 “ 입니다. 요동함이 없는 바위처럼 조금도 변함없는 믿음과 성실과 충성됨은 어느 누구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의 믿음과 아름다운 생애는 UBF 역사 가운데 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스런 말을 잘하여 주위 사람들게 늘 웃음을 터트리게 하였고, 또 “모란이 피기까지“ 노래를 일류 가수실력으로 잘 부르시면서 모란꽃과 같은 향기를 남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시기하는 사단의 장난이 있을 때마다 그는 더욱 담대한 믿음과 용기로 사단의 세력과 대적하여, 많은 욕을 먹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일선에서 싸우고 양떼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지키는 방패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내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조금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많은 일들을 자신의 일처럼 해결하여서 UBF 해결사 목자가 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고인의 귀한 믿음을 유산으로 간직하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Campus 복음역사와 세계선교 역사를 끝까지 감당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늘나라 백성들이 편만하길 기도합니다. 저는 김모세 목자님 일생을 기억하며 “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 하신 말씀이 다시금 새롭게 기억됩니다. 우리가운데 믿음이 있고 충성스런 종 2세, 3세 김모세 목자가 탄생되길 기도합니다 2008년 봄학기 목자 수양회를 ( 4/14-16 ) 수원 근교 벚꽃이 활짝 핀 계곡 아름다운 산속 수양관에서 가졌습니다. 마태 6 : 1-6, 6 : 7-15 으로 두 강의 말씀을 분반으로 공부를 하였고, 광주 김바나바 목자님께서 느헤미야 1장 “ 눈물로 기도하는 느혜미야 “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김바나바목자님을 능력있는 말씀의 종으로 쓰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목자들 체육대회를 가졌는데 등산, 족구, 축구,소프트볼, 배구 등 운동으로 모든 목자들이 하루 동안 체력을 단련하면서 모두 땀 흘리며 동역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77년도에 미국에 갔기 때문에 31년만에 본국 목자 수양회에 참석하니 감회가 세로웠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목자들이 너무나 많아서 열심히 이름을 물어 보았습니다. 특별히 수양회에는 시니어 사모님들 (이옥희,김사라, 김경레,서경희,이미소) 께서 초청을 받아 참석하였는데 사모님들이 너무나 기뻐하였고 함께 기도시간을 갖고, 아름다운 벚꽃 길을 산책하며 사진사가 원하는 대로 모델이 되어 많은 사진도 찍었습니다. 저는 이번 목자 수양회를 통해 마 6: 9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죄인의 아버지가 되시고 목자가 되심을 감사드립니다. 쓸모 없던 이 죄인까지도 이 시대를 섬기는 기도의 어미로 삼아 주시고, 땅 끝까지 복음역사의 귀한 사명에 동역자로 세우시고 쓰시니 그 은혜와 축복으로 나의 잔이 넘칩니다. 오늘도 선교일선에 계신 선교사님들을 복음의 용사들로 쓰셔서, 우리 백성을 통해서 북한 , 중국 , 모슬렘 뿐만 아니라 온 세계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지혜롭고 능력이 많은 젊은 목자님들이 다음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 주인들이 되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갈릴리 어부와 같은 우리 백성을 이렇게 귀한 역사에 쓰시는 하나님께 뜨거운 눈물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1) 봄학기 마태복음역사 2) Purdue 국제 여름수양회 3) 2041년까지 10만 선교사 파송 , 2010년까지 배가역사 등 기도제목을 가지고 6명씩 무릎을 꿇고 간절히 합심기도 시간을 갖고 수양관을 내려왔습니다 본국에 있는 동안 종로, 광주, 전주, 대전 , 경성 ,연희, 한양, 대학로, 한남, 경기, 신촌센타 등 여러 센터를 심방하였습니다. 특별히 대학로, 한남, 신촌 센터는 이제 막 입당예배를 드린 새 센터들 입니다. 새 센터 건축역사 상황 보고를 들으니 건축을 시작할 때 아무것도 없는 빈손 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모든 것을 예비하여 주시고 지혜를 허락하여서 아주 현대적이고 좋은 새 센터를 허락하여 주신 것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센터를 구경하며 새 센터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고 세계선교 센터가 되길 기도하었습니다 . 각 센터마다 선교사 숙소가 호텔처럼 마련되어 있고 현재 센터마다 인도, 프랑스, 몽골, 아프리카, 미국 , 캐나다 , 중국 등 해외 선교사님 ( CBF 아이들도 함께 ) 영육간에 말씀공부를 하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본국 이엘리야 (동교) 목자님은 선교사업부장으로 여러 선교후보들 선교훈련을 맡아 섬기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자기는 어느나라 선교후보라고 기도부탁을 하였는데 다 기억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금년에도 선교후보들이 말씀훈련을 잘 받고 이방인의 성경선생들로 선교일선으로 파송 되길 기도합니다. 또 각 센터마다 열심히 08학번 양들 Fishing 역사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한남센타는 40명의 08 학번 양들의 이름을 붙여놓고 열심히 기도하고, 학사 사모님들은 양들 도시락을 준비하여 곁에다 놓고 공부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광주 센터는 “ 눈물로 한양을 감당하게 하소서“ 라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새벽마다 많은 분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울부짓는 기도를 감당하며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금년 본국 봄학기 마태복음역사와 1:1역사를 축복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John & Maria Lee ( Paragury) 선교사님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John Lee 선교사님은 아직도 치료중 입니다. 계속 기도지원이 필요합니다. Lydia Park ( Costa-Rica ) 선교사님은 아들 바울이 자폐증 치료를 위해 경성센타에 와서 계십니다. 아기바울 위해 부모님들께 인내심을 허락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왔습니다. Peter Kim ( 연희 김다윗목자 아들 )은 며칠전에 홍콩 Angel Sarah 자매와 결혼식을 가졌는데 신랑신부를 만나게 되어서 참으로 기뻤습니다. 믿음이 좋은 홍콩 며느리를 맞이하신 김다윗 & 김사라 목자님들이 기쁨이 충만하신 모습을 보고 감사하였습니다. Moses & Sarah Kim ( Beijing ) 선교사님은 지난해 강제 출국을 당해 5년 동안은 중국에 다시 갈 수 없지만, 현재 한양센타 학생역사를 섬기고 계시고 , 매달마다 학사 목자님들이 중국에 가서 말씀으로 양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목자는 떠났지만 양들이 더욱 열심히 말씀공부하여 자립신앙을 갖게 되고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계승되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박옥희 목사님 70회 생일잔치 참석하였습니다. 이 분은 1970년도 독일 개척때 우리 선교사님과 함께 동역하시던 분이고 Dr. Lee선교사님께서 처음으로 혼자 독일 간호원 선교사님들을 만나러 갔을 때 동행하여 주었고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독일 목사님과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사역하신 분인데 작년도 서울에 와서 2년동안 독일인 교회를 맡아 섬기고 계셨습니다 박무디 목자님께서 Mother Barry 선교사님께서 오신 줄 알고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초청함을 받아 반갑게 만났습니다. 이분은 독일에서 한국 유학생들을 많이 교회에 초청하고 여려 어려운 일들을 친히 잘 도와주어서 이번에도 생일 잔치 때 유학시절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박목사님 때문에 크리스찬이 되었다고 감사소감을 눈물로 발표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 성악가, 피아니스트, 대학교수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축하 프로그램을 만들고 훌륭한 생일파티를 마련하여 섬긴 것을 보았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박목사님의 인생을 썩은 밀알로 세우시고 백배 천배의 열매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일예배는 Mother Barry 선교사님과 함께 한양센타에 가서 보았습니다. 4명의 목자들이 돌아가면서 말씀을 전한다고 합니다 이번 주일은 평신도 정베드로 목자님께서 마태 4:1-12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 메시지를 능력있게 전하였습니다. 한양센타는 30년 역사가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Campus 를 개척하여 개척목자들을 파송하고 세계선교역사를 가장 모범적으로 강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100명의 선교사들이 세계 각나라에 파송되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의 이름, 전화번호 , E-mail 까지 준비하여 손에들고 1:1을 하면서 양들과 함께 선교사님들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에 뜨거운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게 세계선교 역사와 선교사님들을 위해 본국에서 열심히 기도지원을 감당하시니 우리 선교사님들이 힘든 이방 땅에서 어려운 Campus역사와 이방양 역사를 감당하고 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작년 여름 방학때 이여호수아 목자님 인도로 21명의 형제자매들이 선교지 탐방으로 Chicago Center 잠시 왔었는데, 그때 만났던 분들이 이제는 의젓한 목자들이 된 모습을 보고 반갑고 감사하였습니다. 이사무엘 목자님을 본국역사와 세계선교 역사에 충성스런 종으로 세우사 귀하게 쓰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수요일 오후 종로센타에서 전국 사모님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들 모습을 뵈니 내가 많이 늙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난했던 신혼생활 때부터 UBF 개척역사, 30년간 선교사생활에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배로써 한마디를 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저의 입에 꼭 필요한 말을 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창 2장 “ 돕는 배필 “ 말씀을 기억하고 아내로써 지난 42년간 Dr. Lee선교사님과 함께 생활했던 일들을 조금 이야기 하였습니다. 저는 아내로서 평생 감당 해야 할 가장 큰 기도제목은 남편이 집에서는 평안한 마음으로 충분한 쉼을 얻고 , 밖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하나님 일을 하도록 돕는 것임을 믿고 그런 자가 되길 소원하였습니다. 저는 가난하였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이 받고 자라서 고아처럼 자란 목자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점이 가장 후회되고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목자님을 만나면 첫번째로 용서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형편없고 이기적인 자를 목자님은 일생 “꽃부인“으로 행복한 여인으로 살도록 섬겨 주셨습니다. 본국의 사모님들이 지혜롭고 현명한 여인들이 되어 목자님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녀들로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들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저는 김모세 목자님 소천소식을 듣고 늘 사용하던 안경을 챙기지 못할 정도로 아주 바쁘게 여행을 떠났지만, 저의 마음에 슬픈생각은 잠깐이고 감사와 기쁨과 행복한 시간을 많이 맛보았습니다. Mother Barry 목자님께서는 아주 바쁜 스케줄 중에도 젊은이 같은 spirit 으로 오히려 저보다 더 강건하시고 여러 센터를 심방하실 때마다 짧은 메시지 말씀을 주시고 만나는 양들과도 기쁜 대화를 나누시며 격려하여 주셨습니다. 이사무엘 목자님, 이옥희 사모님 그리고 많은 사모님들께서 온 마음으로 부족함이 없이 저를 섬겨 주셨습니다. Helen Kim 목자님께서 Mother Barry 선교사님을 잘 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은혜와 사랑에 빚을 진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평안함을 맞보고 이제 사명의 땅으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금년에 저의 요절말씀 대로 ( 눅 2: 37 b ) 안나 선지자와 같이 열심히 하나님역사를 위해 주야로 기도하는 사명을 감당하길 소원합니다. 부족한 자를 위해 계속 기도하여 주십시오. 주안에서 사랑하는 김경례사모님! 제가 이 시간 사모님께 드릴 말씀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이번에 사모님의 훌륭한 믿음을 다시금 보고 배우게 되었고 믿음없는 자신으로 인해 심히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바쁜 시간 이었지만 어찌하든지 사모님의 집을 심방해야 했는데 그냥 와서 너무나 죄송하여 지금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저는 Dr. Lee 선교사님 소천으로 살아갈 힘을 잃고 오래동안 눈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손녀 딸 Sarah 가 자기 엄마에게 “ 할머니가 밤낮으로 울고만 있으니 함께 방을 사용하기 싫다 “ 하는 대화를 듣게 되였습니다. 그 말에 제가 정신이 들었습니다. 어린 손녀딸 에게 까지도 악영향을 끼치는 할머니가 되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의 권능으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지만 무덤속에 계신 예수님만 생각하며 울고 있던 마리아처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 저를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 여자여 어찌하여 울고 누구를 찾느냐 ? “ 저는 이 말씀을 붙잡고 또 다시 내 눈에 눈물을 거두어 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방에서 울다가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택시를 타고 산소로 많이 갔습니다. 추운 날씨에 하루종일 흰 눈만 쌓인 들판에 있다가 감기가 걸리고 페렴이 생겼습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죽음의 구덩이에 깊이 빠져 몸부림치며 헤매던 저를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무지한 본성대로 세상에서 남편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조시대 여인처럼 생각했던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활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진정한 남편이 되심을 영접하였습니다. 나에게 가장 귀한 것을 빼앗아 가셨다고 불평하며 슬퍼하였지만, 이 세상에서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보배를 선물로 허락하였습니다. 눈물과 한숨이 변하여 감사와 찬송이 저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목자님께서 마지막으로 저에게 주신 선물을 붙잡고 새 인생을 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저는 이 은혜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 받은 자요, 행복한 자입니다. 저를 이렇게 부요한 자요, 가장 축복받은 여인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Dr. Lee 선교사님 소천하신후 한 가지 감사한 점을 발견하고 제가 조금 위로를 받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이제 하늘나라에서 평생 사모하고 그리던 어머님을 만나서 얼마다 기뻐하실까 생각하니 목자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니 나의 슬픔을 조금은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만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땅에서도 김모세 목자님과 함께 Purdue 국제수양회도 준비해야 하고 앞으로도 이분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아마도 하늘나라에서도 Purdue 수양회보다 더 큰 대회가 있어서 김모세목자님이 꼭 필요하고 준비위원장으로 세우고자 Dr. Lee 선교사님께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좀 빠르게 급하게 부르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봅니다. 사랑하는 사모님! 저는 자녀들과 함께 이날까지 지낸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자녀들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모님의 생각과 앞으로 계획이 어떠하신지는 모르지만 혼자 지내는 것은 슬픔과 외로움을 배로 만들게 되는 일이 됩니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모르지만 현재는 혼자 계신 것이 좋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일간의 여행이 마치 꿈같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사모님의 E-Mail 주소를 알았으니 자주 선교소식도 보내드리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부족한 자가 두서 없는 소식을 드려 죄송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과 위로함이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쓴 약을 먹는다는 심정으로 식사도 잘 드세요. 감사합니다. 임마누엘 ! 주안에서 Grace A. Lee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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