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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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태용 명옥 목자님의 김요한 사진입니다.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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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203 |
2017-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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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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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7 JBF 신년 첫 예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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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영 |
65 |
2017-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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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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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상] 2016 로마서 학생수양회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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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영 |
145 |
2017-0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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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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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년 수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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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한 |
153 |
2017-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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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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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6년 송년감사의밤 사진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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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한 |
171 |
2017-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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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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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읽기 결과 및 계획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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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폴린 |
87 |
2017-01-01 |
어제 성경읽기 결과
2017년 계획
나요한
마태복음,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1-7월 1회독
1월 창세기-민수기
2월 신명기-사무엘상
3월 사무엘하-역대하
4월 에스라-시편
5월 잠언-에스겔
6월 다니엘-사도행전
7월 로마서-요한계시록
8-12월 2회독
한베드로
사도행전(1-22장) : 읽으며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되었음. 사도들의 믿음과 열정을 본받아 복음 역사를 감당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게 됨.
매일 가족과 함께 30분 성경읽기.
고도전
잠언
구약 1독, 신약 2독
김승식
마가복음 (읽으며 연요절 1:35 잡음)
구약 – 창세기, 출애굽기
신약 - 전체
손바나바
사도행전 1-19장
매일 양식 본문 깊이 묵상하기
바울서신 묵상의 생활화
임바울
공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
올 해 성경 전체 2회독
1-6월 1회독
7-12월 2회독
서정수
사도요한의 말씀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 요한복음)
전권 1회독
- 저자의 말씀들을 모아서 읽을 계획.
- 신약에서 시작하고 구약으로.
1) 사도 바울의 말씀(사도행전, 서신서)
2) 사도 베드로의 말씀
3) 복음서
4) 그 외의 신약 말씀
5) 모세의 말씀
6) 구약 저자들의 말씀
김기중
사무엘상(1-23장)
성경 1독
강호영
누가복음
1월 창세기-민수기
2월 신명기-사무엘하
3월 열왕기상-에스더
4월 욥기-아가
5월 이사야-호세아
6월 요엘-요한복음
7월 사도행전-요한계시록
8월 (신약2회차)마태복음-누가복음
9월 요한복음-로마서
10월 고린도전서-데살로니가후서
11월 디모데전서-요한계시록
12월 (보충)마태복음-로마서
김원영
창세기(31-50장), 출애굽기(1-14장)
구약신약 1독 (성경읽기표에 따라)
목요한
1506절
전 권 3독
1-2월 하루 15장
3-7월 하루 10장
8-9월 하루 15장
10-12월 하루 10장
김레베카
민수기, 신명기(1-13장)
다음주부터 한 주에 2권씩 읽기
(창세기부터 시작하고 민수기, 신명기도 다시 읽고자 함)
손미아
마태복음
양식 책에 나온 1회독 일정 따라 읽기
서사랑
로마서
매일 3장씩 묵상. (창세기부터 시간순서별로 찾아 읽기)
임폴린
이사야, 미가, 열왕기하(18-25장), 나훔, 스바냐, 예레미야(1-45장)
구약 1독, 신약 2독. (매일 1시간씩 연대순 성경통독)
목리디아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복음(1-8장)
영어성경 1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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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센터 성탄예배 소식을 공유해드립니다!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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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
103 |
2016-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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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성탄 합창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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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57 |
2016-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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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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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성탄예배 및 성탄합창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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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웅 |
110 |
2016-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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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성탄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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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126 |
2016-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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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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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성탄축하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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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웅 |
122 |
2016-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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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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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샘리 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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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110 |
2016-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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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6 추수감사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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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112 |
2016-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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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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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회 소식 "캠퍼스 심방의 시간"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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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나바 |
175 |
2016-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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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베드로 한나 선교사님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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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110 |
2016-11-07 |
독일 함부르크 역사를 섬기시는 오베드로 한나 선교사님의 은혜로운 선교보고로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님들의 인생을 받으시고 독일 지성인들의 목자로 크게 사용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11번 12번 13번
[오 베드로 선교사님 선교보고]
선교보고 Peter Oh, Hamburg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1장, 죽을인생을 구원하신 영원하신 하나님
저희 부모님은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전국을 헤매시다 일단 부산낙동강뚝섬에 정착하셨는데, 저는 그곳에서 1958년6월 1일태어났읍니다. 그곳은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 저의 호적에는 무번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비가조그만 많이오면강물이 방안까지 들어와솥단지가둥둥떠다녔습니다. 저는그곳낙동강섬에서살며 갈대밭에서 놀고 물가에서조개를 잡았습니다. 국민학교 들어갈 때쯤이사하였는데 그곳은 뒤로는 큰 폭포가 있는 높은 산이 있고 동네와 떨어져 있었습니다. 학교길을 멀었지만저는거기서국민학교와중학교를다녔습니다. 이곳에서저는 10년간 30여마리되는염소먹이는목동노릇을하였습니다. 날마다 이른아침에산에다염소를데려다놓으면그들은거기서먹고놀다가제가학교갔다온후에다시산에올라가이들을몰고집으로돌아오는것입니다. 그 당시 산과들에는 뱀이 많았는데 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은 것들은 다 죽었습니다. 저는 산을 무척 좋아하며, 산에서 살고자 하였습니다.
고등학교때는울산으로통학하며다니게되었는데, 오며 가며 인생의의미가뭔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형님이대전에 계시기에 77년도충남대철학과에 입학 하였습니다. 그당시같은 학번이던 친구 오요한목자가 센타에 탁구치러 가자고 하여갔다가, 일대일 목자를 소개받고 창세기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에대한깨우침은 없었습니다. 이 시절인생의의미가무엇인가하는질문이제머리를떠나지않았읍니다.사람이태어나 고생하다가 죽고,죽으면모든것이끝난다는 생로병사의 엄연한 사실앞에, 사람이 산다는 것이 헛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없다면,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고, 살면 살아 갈수록 고통은 더 많을 것이고, 또 알게 모르게 죄도 더 많이 지어 지옥행을 면치 못할것이라는 생각에,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는 자주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신탄진강에서자살할 생각으로 강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러나 환상가운데 제시체를앞에놓고슬피통곡하시는어머니의모습이떠올라, 자살은 못할짓이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은, 그냥 의미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주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3학년때출애굽기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3장에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노예살이에 신음하는 그의 택한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위해 모세에게나타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신이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하나님이라 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으로서, 아브라함 당대에 끝나지 않고, 다음세대 이삭과, 또 그 다음세대 야곱, 그리고 우리 세대에도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 그분 안에 있는 자마다 그 분 안에서 영원한 부활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제 눈을 띄워주셔서 이 성경의하나님을저의하나님으로영접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영원하신하나님을만났을때마치 이스라엘 노예백성이 출애굽하듯, 저도 죽음과허무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이 영원하신하나님안에서영원히산다는것을깨닫고, 저의 방황하던영혼은이제 안식을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의 하나님이 되셨고, 저는 그의 택한 자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자 저의 만성 두통에서 나음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고, 그리고 이 믿음이 생기자 마자, 저는 머리아픈데서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센타에서 공동생활 시작했습니다. 저를 허무와 사망권세에서 구원하신 성경의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2장, 저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제가하나님을저의하나님으로영접하였으므로, 그분의말씀에순종하는것이마땅하였습니다. 더이상제멋대로살지말고말씀에순종하고자하였을때, 처음엔 좋았지만, 점점 마음에갈등이생기기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거룩하신대, 그러나저는온통죄의소욕으로가득한죄인임을 발견하였습니다. 특히마음에서일어나는육신의정욕과안목의정욕은저를더럽게 하고 신음하게만들었습니다. 저는죄의소욕이없는거룩한자가되고자했지만, 그러나저는철저히죄인이었습니다. 저는,마치야생동물이쇠창살에안에갖혀있는것처럼마음에자유가없었고, 하나님믿는것이왜이렇게고통인가신음하였습니다. 저는나 같은 죄인으로서하나님을섬길수없다고생각하였습니다. 이런어느날대전역을지나가는데그전에교회에서안면이있던자매를우연히 만났습니다. 친척집에바람쇠러가는길이라고하였습니다. 저는농담반진담반나도 같이 갈까? 하고물었습니다. 그자매는한동안생각하더니따라오라고하였습니다. 저는그아가씨를따라팔공산으로놀러갔다가정욕의죄를짓게되었습니다. 저는죄를짓고 자아가 무너지는 큰 고통에,마치베드로가예수님을세번부인하고울었듯이,저도여관방을치며울었습니다. 그러자옆방에있던사람들이시끄럽다고벽을같이 쿵쿵 뚜드렸습니다. 저는대전에돌아와장막방으로가서저의짐들을다꾸리고나왔습니다. 저도양심이있는지라더이상장막생활을할수없었습니다. 짐을싸들고일단도서관에가서앉았습니다. 마음이허탈하였습니다. 하나님을순종하여 산다는것도일단중단하고자하였습니다. 그래도일단한말씀만읽고자하여성경을펴서읽은곳이요한복음 5장이었습니다. 그곳에는한 병자가고통가운데38년이나 무기력하게 슬피앉아있는데, 제 꼴이 그 사람과똑 같다는생각이들었습니다. 그러나예수님은이쓸모없는병든자를고쳐주시고자명절에일부러찾아오사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걸아가라! 하시는 말씀으로 낫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 아버지는 제 눈을 열어, 이 예수님이 저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내죄를직접해결할수없기때문에내죄를해결하기위해그가이땅에오셔서십자가에죽으셔야만했다는것을비로서알게되었습니다. 38년된병자를찾아오신예수님은, 저를찾아오셔서무조건저를사랑하시고,저를죄의무력함에서구원하셨습니다. 저는이예수님의사랑과구원과자유를영접하고, 구원과자유의기쁨을누리게되었습니다. 너무나기뻐, 내일생이주님을사랑하고그의성전의문지기라도살고자결단하였습니다. 이일이 1980년 10월이었습니다. 어느듯 36년이지났지만지금도그때그구원의감격이생생히살아있습니다. 저의죄를용서하시고저를구원하신우리주예수님을찬양합니다.
제3장, 저를선교역사에부르신성령님
저는전방에공병대로군대갔다제대하는기쁨을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집으로오는버스안에서장래방향을생각하던중주님을위해 살고자하는마음이있었지만, 장래먹는것때문에결단을못해마음이무거웠습니다. 그래서기도하기시작했읍니다. "주님, 주님의목숨을버리신그사랑을생각하면제인생을다드려야하는데, 제가빵문제로걱정하여결단을못하고있으니불쌍히여겨달라"며눈물로기도하였읍니다. 그리고 "제가빵문제만해결된다면주님을먼저섬기겠읍니다"하고도와달라고하였읍니다. 그때제안에서주님께서말씀하시기를 "나는너를사랑해나의사랑하는독생자도아끼지않고주었는데, 그까짓빵같은것을아끼겠는냐?" 하는것이었읍니다. 이말씀은롬 8,32로 제게확신을주었고저는주님을먼저섬기리라결단할수있었읍니다. 저는홀가분한마음으로대전센타와서아무도날보고인턴목자하라고하지않았지만제스스로그렇게하였읍니다.그리고주님께서는그의약속대로신실하게저와 저의 가족을 지금껏좋은것으로먹이고입히고 계십니다.
제가그렇게자칭인턴목자로역사를섬기고있었을때, 목자인턴훈련초청을받고종로와안암센타에서2년간 목자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이기간서독쾰른에서오신한나선교사님과하나님의 뜻가운데 결혼하고독일로 선교사로가게되었습니다. 쾰른에서 6년간있으며, 독일하나님역사배우고, 독일어와직업전환교육을받았습니다. 그리고복독일키일에직장을얻어 직장생활하며개척역사를시작하였습니다. 저는주님의사랑과구원의은혜에힘입어열심히양들을초청하고말씀을주었습니다.
한학생은졸업논문을앞두고인생의미를못찾아중도포기한상태였는데, 말씀공부하고변화받아, 심지어자기가아끼던음악카세트를다내버렸읍니다. 그리고성공리에잘졸업했읍니다. 어떤학생은법학 4년을공부했지만학점하나못따대학공부를포기한상태였는데, 말씀공부시작하여 5년만에사법고시를합격하고변호사가되었읍니다. 어떤자는시골구석에서이름없는전문대다니다성경공부하여비젼을갖게되어나중에키일대학교에가서공부하고졸업하게되어좋은직장을구하였습니다. 박사과정을못해울던자매가성경공부통해믿음을갖고학위를따게되고꿈에도그리던직장자리도얻었습니다. 그외에도말씀공부하는양들중에여러명의 의사들,박사들이나왔읍니다. 이를통해저희가운데여러명의목동들과 5명의목자들도세워지는역사가있었읍니다.
그러나이들이독일교회와 가정의 핍박, 그리고 성공리에공부를마치고직장문제와결혼문제를앞두게되자, 이들은하나둘씩저희를떠나 독
일 지역교회로 갔습니다. 그런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한목자가정은남아현재 드레스덴 개척하는 지부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남는자의 역사인것을 다시금 배우게 됩니다.
저는 이방땅에서 제자양성을 하여 주의 교회를 세우고자 했지만 실패를 반복하였습니다. 신학을공부하면양들을좀더잘도울 수있지않을까생각하여, Kiel대학, Hamburg 대학, 그리고Berlin Humboldt 대학에서 신학공부도하였습니다. 그러나현대신학은복음을전도하고 제자양성하는데는 크게도움이되지않는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선교사로 부르심받아 독일땅까지 왔는데, 독일에서 과연 주의 교회를 세울수 있을까? 하는 절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왜 반복된 실패를 하는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외적 내적요인들이 있지만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는 세가지 면에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양들을 정말 사랑하는것입니다. 제가 주의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사랑하고 희생한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친구를 위해 정말 자기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는 참사랑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고 이 사랑을 실천하기 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말씀을 깊이있게 공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는데, 제가 말씀에 대해 얼마나 우둔한가 고백합니다. 제가 말씀연구에 힘써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는 성령의 권능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았을때 주의 교회를 세울수 있었습니다. 제가 저의 반복된 실패를 통해 깨달은 것은 제게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성령의 권능에 의지하지 않고 다만 제가 받은주님의 사랑과죄사함의은혜를기초로예수님을증거하였습니다. 저는 왜 성령의 권능이 필요한가 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교에 열매가 없자,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의 권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고 그 안에서 영혼의 안식을 갖게 된 것도 성령의 역사요 또 예수님을 알고 그 안에서 죄사함을 얻게 된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저를 저의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받도록 도와주신 분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저를 도우시기 위해 오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이 성령님의 도움으로,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예수님을 증거하고 독일에 ubf 주의 교회를 세우기 원합니다.
결론)제 마음에 성령의 감동주사 하나님 아버지와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이를 통해 저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선교역사에 세우신 크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한마디> 성령의 권능으로 주의 교회를 세우시오!
[오 한나 선교사님 선교보고]
나의 인생소감
독일 함부르크, 오한나
요절> 베드로 전서 2장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제 1장: 하나님은 저를 독일 간호사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1951년 음력 8월 16일 강창식씨와 박영순씨의 부모님을 통하여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시골 농촌이었으나 대전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제 밑으로 6명 동생들이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어찌하든 아들 하나 얻고자 자식을 낳으셨는데 낳기만 하면 딸, 딸, 또 딸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저의 어머니를 다 불쌍히 여겼습니다. 저의 어린 마음에 남동생을 주시면 저는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때 7딸을 낳으시고 마지막으로 마침내 아들을 기적적으로 얻었습니다. 저의 가정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가고자 할때, 아버지는 제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서 대학가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때 집안은 가난하고 제 동생들이 줄줄이 있어, 대학가기를 포기하고, 아버지 몰래 공주간호고등학교에 시험을 보고, 아버지에게 혼났지만, 그러나 저는 19살에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 가셨습니다. 저는 마치 온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친척들도 저의 집 많은 아이들을 보고 난감해 했습니다. 그때 독일 간호사로 가면 월급을 한국보다 몇배나 더 번다는 소리에 친척들이 저를 재촉해 독일간호사로 떠 밀려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때문에 마치 팔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독일 베를린 땅에 도착하여 3개월 언어 훈련받고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하루 아침에 모든게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슬픔과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제게 쇼크가 되었고, 그리서 자주 공동묘지가서 울었습니다. 저는 사망권세에 눌려 아침이 되면 다시금 현실을 직시해야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때 저의 한가지 간절한 마음은 온통 저의 어린 동생들의 교육문제이었습니다. 막내는 고작 6개월될 때였습니다. 생활력이 없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돕는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어린동생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로 세워주시면 하나님을 열심히 믿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월급을 타는데로 집에다 보내고,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사시는 집근처 개척교회에도 십일조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하고 있는데 아는 분들이 조언하기를 어머니가 하숙생들을 치면서 자립할수 있도록 하는게 좋겠다고 하여, 독일에서 연금 낸것이랑 융자를 얻어 어머니에게 집을 마련하시도록 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어머니는 자립을 하셔서 자녀들을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희 동생들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로 기르시고 잘 키워주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한때 슬픔의 상징이던 딸들을 통해 많은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 제 딸을 돌보러 오셨다가 말씀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금은 교회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동생들도 거의 다 교회 나가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다 들어시고 저의 동생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쓰셔서 저의 아버지집에 아름다운 덕을 세워주신 고마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 2장: 하나님은 저를 UBF선교사로 불러 주셨습니다.
저는 가난으로 인해 공부를 못했으므로 항상 공부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저는 실업계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대학교 들어갈 자격이 안돼 고등학교부터 다시 다녀야 했습니다. 저는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녀서 대학입학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과 관계없이 연구실에 틀어박혀 혼자 살고자 약학을 택하였습니다. 소망하던 대학공부를 했지만, 저는 늘 해야하는 실험과 공부와 일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는 이렇게 일생동안 보내면 어떻게 될까하는 장래 두려움이 쌓였습니다. 저는 외국인으로서 갈 때도 없는 고아와 같은 생각에 슬퍼하며 내가 서야 할 땅은 어디인가 하고 스스로 질문하며 괴로와 했습니다. 원래 나는 운명적인 인생이라, 내 인생이 이렇게 끊나야 하는가 하며 자포자기하고 살던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제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마침 그때 제 학교친구 였던 안룻선교사가 연락하기를 자기가 학생선교사로 독일 쾰른에 왔으니 자기를 방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말씀공부를 하고자 친구를 방문한것이 아니고 친구로서의 도리로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말씀공부에 초청받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유비에프회관에 가면 사람들을 어찌나 극진히 영접하는지 그런 곳은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나중에 한국에 들렀을 때도 그렇게 극진히 사람들을 영접하여 아 이렇게 사람들을 대하는데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UBF에 붙잡혀 말씀공부를 하며 나의 생명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 유비에프 사람들은 독일말도 서툴면서 지성인 독일 학생들을 가리치겠다고 기도하고 덤비는 용기에 감동하였습니다. 왜냐면 저는 그때까지 교회를 다녔지만 말씀에 대한 구체적 믿음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예수님과 저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몰랐습니다. 나는 나의 삶을 찾고자 했고, 내가 설 땅은 어디인가 간절히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확실한 답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말씀공부통해 하나님은 나의 삶은 예수님에게 있고 내가 설 땅도 예수님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생명과 내가 설 땅이 어디인가 더이상 묻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을 통하여 명확히 제게 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말씀과 사명을 영접하고 창세기 12,2/3으로 결단하여, 베를린에서 쾰른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때 유비에프는 독일 학생선교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는 저의 인생문제를 해결해주신 예수님을 따르고, 이시대 역사에 동참코자, 독일학생들의 복의 근원이요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어미요,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성경선생으로 성장하고자 소원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독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게 되고 독일땅을 위하여 독일 젊은 학생들이 이 나라와 세계에 복의 근원이 되고 세계선교에 세움받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독일 자매님양도 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이 저의 가치관을 바꾸고 저를 의미있는 인생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어느듯 35살된 노처녀가 되어 있었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받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었습니다. 왜냐면 저와 가까운자들에게 나의 죽음을 인하여 상처를 주지 않고 또 상처도 받지 않고자 다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통해 제 마음의 상처가 낫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자 결혼에 대한 소망도 생겼습니다. 하늘에 계신 은혜로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믿음이 있고 충성스러운 오베드로 목자님을 준비하셨습니다. 당시 인턴훈련받던 오베드로목자님은 저보다는 7살 연하이지만 저와 결혼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두말하지 않고 저와 결혼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일로 독일 선교사로 쾰른에 파송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쾰른에서 6년간 있으며 독일어 배우고 직업훈련받고 역사 섬기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절 하나님께서는 Joel과 Jochebed 건강한 두 아이를 주셨습니다. Peter Oh선교사님은 직업훈련 마친후 자비량 개척선교사로 북독일에 있는 Kiel에 직장을 얻어 1993년부터 개척역사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양들을 심방하여 독일 학생양들이 저희집에 끊이지 않고 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들을 온 마음으로 영접하여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사용하셔서 여러 독일 학생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들을 믿음으로 세우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Peter Oh 선교사님은 직장생활 10년 한 뒤에 선교역사에 전념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약사로서 독일의 자그마한 도시에 있는 시설이 가장좋은 최신식 약국에서 근무하며 그곳 독일사람들의 건강을 도왔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저를 다 알고 특히 할머니들은 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피터선교사님은 독일선교를 위해서 공부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박사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두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도우사 의대를 공부하고 이제 의사들이 되었습니다. 기도하기는 이들이 누가복음 9,1/2말씀을 근거로 독일에서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며 일대일 성경말씀선생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하는 자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원래 독일 이방땅에서 갈데 없는 고아처럼 울며, 노처녀로 늙어가던 자였는데, 주님께서 저를 저희 UBF교회로 인도하시고, 큰 사명주시고, 남편과 자식들도 주셔서, 저의 집도 세우게 하셨습니다. 제가 이 좋으신 주님을 온 마음을 다해 찬양합니다.
제 3장: 제가 주의 집 세우는데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Peter Oh선교사님은 독일에 오자 마자 선교열정이 많았습니다. 쾰른에 처음와서 독일말을 못할때는 강의안을 들고 다니며 독일학생들에게 독일말을 배우고 싶다며 읽도록 부탁하여 간접적으로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Thomas라는 독일 학생이 말씀을 영접하고 자기가 좋아하던 많은 세상음악테이프를 다 버리고, 긴머리도 잘랐습니다. 그는 목자로 세움받기까지 하였지만, 저희가 키일로 간 뒤, 저희 교회를 떠나 신학교 가서 독일교회목사가 되었습니다.
키일에 있을때 피터선교사님은 대학캠프스를 꾸준히 심방하여 항상 양들이 저희집에 와서 말씀공부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어려울때 찾아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공부못하는 자들이 와서 말씀의 은혜를 덧입고 힘을 얻어 졸업을 하고, 그들이 원했던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자로 설 만하면 독일교회와 그 집안들이 저희들이 핍박을 하여 부르심에 미처 뿌리도 내리기전에 넘어지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저희를 떠났지만 독일교회로 가서 헌신들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구멍난 독에 물붓기식 역사와 투쟁했습니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님께서는 Harm Marcus 목자와 천안에서 파송받은 Maria 선교사가 목자가정을 이루고, 역사에 남게 하시고, 이들을 지금은 Dresden 개척역사에 세워주셨습니다. 저희가 이곳 한국에 오기전 그곳 드레스덴에서 리더 선교사와 이방목자들 수양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잘 섬겨서 저희 참석자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들을 붙들어 주시고 세워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내년부터 다시 함부르크 개척역사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피터오선교사님의 소원은 독일에 어찌하던 주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올해 9월부터 은퇴하였습니다. 그를 도와 함께 힘을 합해 주의 집을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지난45년동안의 독일 생활에서 저의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시고 많은 아름다운 덕을 행하셨습니다. 주께서 저의 슬픔많은 운명을 걷어내시고 제 삶에 주의 아름다운 덕을 행하셨습니다. 제가 이 주님을 높이 찬양합니다. 저는 저의 하나님, 저를 어두움에서 건져내시고 독일학생들을 위한 기도의 어머니요 성경선생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전하고자 합니다. 독일 젊은이들을 위해 저의 남은 생을 바치고자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마디> 저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이 기이한 빛가운데로 인도하시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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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상] 가을수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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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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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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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형제님 Fellow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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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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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4 |
16년 8월 26-27일(금토) 1박 2일간, 강원도 속초로 형제팀 Fellowship을 다녀왔습니다.!
원영의 아버님께서 이번에도 저희들을 즐겁게 환영해주시며, 속초의 명소들로 직접 드라이브 해주셨습니다.
첫째날, "청천호" -> "원영 아버님 댁 (숙소)"
둘째날, "청간정 (정자, 바다경관)" -> "영랑호 (자전거, 습지공원, 범바위)" -> "바닷가 카페" -> "설렁탕" -> "해수사우나"
형제팀이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각각 한 사람씩, 제자양성 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배가 역사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번. 청천호의 야경
2번. 청천호에서 (김원영 형제) 3번. 청천호에서 (정철헌 형제) 4번. 청천호에서 (목요한 형제 / 아니 뒤에 잠깐... ) 5번. 청천호에서 (한승대 형제 / LEGO...) 6번. 청천호에서 (??? 형제) 7번. 청천호에서 (형제들) 8번. 이마트에서 내일 아침서빙거리 사며 즐거워하는 (원영, 목요 형제) 9번. 이마트에서 내일 아침서빙거리 사며 즐거워하는 (목요한, 한승대, ??? 형제) 10번. 원영 아버님 댁에서 내려다본 설악산 전경 11번. 원영 아버님 댁에서 내려다본 설악산 전경 (울산바위의 모습) 12번. 원영 아버님 댁에서 아침 식사; 시래기밥, 된장찌개 (서빙을 섬겨주신 정철헌, 김원영 형제의 수고와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13번. 청간정 가는 길, 숲에서 (형제들, 썬크림 주목) 14번. 청간정 가는 길, 숲에서 (형제들, 독수리 오형제) 15번. 영랑호에서 자전거 타며 (한승대, 목요한 형제, photograph by ???) 16번. 아름다운 영랑호와 함께 (정철헌 형제) 17번. 아름다운 영랑호와 함께 (김원영 형제) 18번. 아름다운 영랑호와 함께 (김원영, 정철헌 형제, 썬크림 주목) 19번. 아름다운 영랑호와 함께 (김원영, 정철헌, 목요한? 형제) 20번. 아름다운 영랑호에서 뭐하는 것일까요 (??? 형제) 21번. 아름다운 영랑호에서 다 같이!! (형제들) 22번. 아름다운 영랑호에서 다 같이!! (형제들) 23번. 아름다운 영랑호에서 다 같이!! (형제들) 24번. 물 좋고 미세먼지 없는 아름다운 영랑호 25번. 물 좋고 미세먼지 없는 아름다운 영랑호에서 (한승대, ??? 형제) 26번. 물 좋고 미세먼지 없는 아름다운 영랑호에서 (목요한 형제) 27번. 영랑호 습지공원 ("이색칼라배" 관상용 호박 터널) 28번. 호박 터널에서 (정철헌, 한승대, 필자, 김원영[주목] 형제들) 29번. 호박 터널에서 (목요한, 한승대, 필자, 김원영[헬멧 어디갔니?] 형제들) 30번. 영랑호 습지공원 31번. 영랑호 습지공원 소라 (살아있음) 32번. 영랑호 범바위(큰바위) 33번. 정말 크다.... 34번. 큰바위 위에 중간바위들 35번. 범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영랑호와 함께 (목요한 형제) 36번. 범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영랑호와 함께 (정철헌 형제) 37번. 범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영랑호와 함께 (한승대 형제) 38번. 범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영랑호와 함께 (김원영 형제) 39번. 범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영랑호와 함께 (김원영 형제) 40번. 범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영랑호와 함께 (필자) 41번. 위기 탈출 넘버원 (따라하지 마세요) 42번. 범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영랑호와 함께 (형제들) 43번. 울산바위 들려다가 실패한 사진 (필자) 44번. 범바위 위에서 하늘을 향해 (형제들, best photo,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45번. 범바위에서 내려다 본 영랑호의 전경 46번. 동해바다 최고의 카페 (바다정원) 47번. 동해바다에서 (목요한 형제, best photo, 인생샷, 카톡프로필각) 48번. 바다정원 카페 49번. 바다정원 카페에서 (목요한, 한승대 형제/ 어디보니?) 50번. 바다정원 카페에서 (목요한, 필자 형제) 51번. 동해바다에서! (형제들) 52번. 돌아오는 길, 서울 어딘가 (아름다운 석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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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회모임 소식 "문화행사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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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나바 |
150 |
2016-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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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복음팀 Fellow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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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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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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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매님 fellow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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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리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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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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