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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감귤 판매에 적극적인 성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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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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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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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윈터스쿨 시간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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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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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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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ing-week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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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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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6 |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다른 캠퍼스를 섬기는 목자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연초에 새내기 양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는 원없이 양들을 만나게 하시는 것 같네요^^ 이번 한 주간 계속되는 피싱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정보를 다시 올립니다. 월~목요일은 교수학습개발원(CTL,61동)에서 수시합격생을 대상으로 "Learn how to learn" 프로그램을 주최합니다. 월~화는 인문계열 학생들 대상으로, 수~목은 자연계열 학생들 대상입니다. 프로그램은 첨부된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인문계열, 자연계열 따로 따로 200명 선착순입니다. 이번에 오는 양들은 평균적으로 3~4차례 학교에서 이미 전도를 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틀째 오는 양들보다는 첫날(월,수) 오는 양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점심 시간 내서 피싱하러 오고자 하시는 평신도 목자님이나, 체력 안배를 위해 집중하여 피싱하기 윈하시는 목자님들에게는 월요일과 수요일 피싱을 권하고 싶습니다. 또 이미 관계성 있는 양들에게는 문자로 이 프로그램에 등록했는지 알아보시고, 만나서 식사라도 한 끼 섬겨주시면 양들에게 힘이 되겠죠?? 수요일부터는 소식지라 나오므로 양들에게 나눠 주시면 캠퍼스 생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금~토요일은 정시 지원하는 양들이 논술고사와 구술,면접고사 보러 오는 날입니다. 금요일 논술고사는 인문계열이 오전 10:00 ∼ 12:00(1개 문항), 오후 14:00 ∼ 17:00(2개 문항)까지이고, 자연계열은 오전 10:00 ∼ 12:30(2개 문항), 오후 14:30 ∼ 17:00(2개 문항)까지입니다. 별도의 예비소집은 없습니다. 예비소집이 없기 때문에 당일날 와서 장소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양들이나 일찍 와서 기다리는 양들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양들을 섬기기 원하시는 "부지런한 피싱조"를 위해 오전 8시 40분에 먼저 한차례 캠퍼스에 올라가겠습니다. 그리고 11시에 다시 한 번 피싱기도모임을 갖겠습니다. 토요일 구술,면접은 예전처럼 오전 9시에 각 단과대학별로 지정된 장소에서 실시될 것으로 생각되며, 대략 10시 30분정도부터 양들이 드문드문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토요일엔 직장에 안가시는 평신도 목자님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오전 10시에 피싱 기도 모임을 갖겠습니다. 이번 주 일정은 모두 월~화, 수~목, 금~토 이틀씩 소요되기 때문에 숙소에 어려움이 있는 지방양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장막에서 적극적으로 숙소제공하고자 하니 원하시면 장막장들(정요한 010-6658-1787, 왕Faith 010-3098-8882, 민혜란 010-3433-1374)에게 연락주십시오. 아니면 각 가정에서 섬겨도 아주 좋겠죠^^ 올 한 해 저희가 부지런히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가운데,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새겨지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뜨거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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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08년 연요절 소감 제출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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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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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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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기름유출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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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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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6 |
지난 1월 3일 관악5부에서 인금철, 신유니스, 신수민, 민혜란, 서진우, 문연주 형제자매목자님들과 함께 태안 기름유출현장에 자원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새벽5시에 봉고를 타고 관악3부 목자님들과 함께 종로에 도착하여, 관광버스 3대정도가 함께 태안으로 향했습니다. 9시반정도에 도착하여 4시정도까지 기름제거작업을 하고, 8시반경에 센터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봉사자들이 다녀갔고, 저희도 하루종일 봉사하였으나 심각한 오염현장에서 줄 수 있는 도움은 미미하여, 일을 하다 말고 온 것 같았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기름들이 지층 아래에 깊이 자리하고 돌 아래에 숨어 있는 경우들이 많아서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보였으나, 돌을 헤집고 땅을 파들어가고, 물을 부으면 검은 기름이 둥둥 떠올랐습니다. 목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거해야 할 기름을 우리 마음의 제거해야 할 죄악들과 많이 비유해서 생각했었습니다. 마음 속의 뿌리 깊은 죄악들은 굳어진 바위와 같은 마음들을 깨고 호미로 캐고 삽으로 파서 성령이 부어질 때 조금씩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이러한 작업이 평생에 걸쳐 진행되어야 함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죄악으로 뒤덮인 마음이 얼마나 보기에 흉한지에 대해 실제적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타르성분의 독성때문이라고 하는데, 다녀와서 하루정도는 눈이 따갑고, 머리가 아팠습니다. 봉사활동을 끝마치고 어두운 차안에서 한참 잠 들었다가 센터에 들어오니 빛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전체 모임 중이시던 목자님들께 환대를 받아 감사하였고, 믿음의 길 끝에 천국에서 이와 같이 영접받게 된다면, 하고 생각하며 소망이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에 함께 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해주신 민혜란 목자님과 곁에서 세심하게 섬겨주신 신유니스 목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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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기름유출 자원봉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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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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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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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크리스마스 임성택입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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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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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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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hol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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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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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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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심방보고 (윤모세)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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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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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6 |
이번에 성탄헌금을 전체적으로 우간다 UBF 돕는데 드리기로 했습니다. 우간다는 아니지만, 아프리카 실정을 알면 마음을 드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윤모세 목자님께서 나이지리아 수양회를 도우러 가셨다가 적은 기행문입니다. 형식없이 진솔하게 적은 것이기에 아프리카를 아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이 힘에 지나도록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한 것처럼, 우리 안에 아프리카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주사 풍성한 구제헌금 드리도록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 - 나이지리아 심방 보고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11월 21일 (수) 나이지리아로 가기 위해 인천에서 두바이향 에미레이트 항공에 탑승하였다. 자리는 packed! (만석). 에미레이트 항공이 잘 되기는 잘 되는가 보다. 항공료가 싸지도 않은데 이렇게 꽉차니. 두바이까지 비행시간은 10시간 50분. 영국 런던에 갈 때 11시간이면 가는데, 훨씬 가깝게 보이는 두바이까지 거의 같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니 지도에서 보는 것과 달리 확실히 지구가 둥글기는 둥근가보다. 런던 가는 여행을 여러 번 했으니 11시간 정도를 보낼 요령은 이미 알고 있던 터 - 영화 두 편 정도 보고 한숨 깊이 자면 되겠지. 옆에 탄 아저씨가 팔걸이를 침범하여 차지하고 있으니 몸을 좀 왼쪽으로 기대고. 지루한 11시간 후에 드디어 두바이 공항에 도착. 지난 번 케냐 수양회 갈 때, 두바이에 도착했을 때 열사의 바람이 불었던 것 같은데, 11월은 좀 나은 듯. 날씨가 참을 만하다. 문제는 이제 나이지리아 라고스 가기 위해 두바이 공항에서 5시간 waiting! 공항 건물 자체가 사막 위에 세워진 길쭉한 원통형 건물인데다가 창문이 하나도 없어서 실내가 답답하였다. 공항 중앙 통로에 있는 벤치들에서 쓰러져 자는 사람들, 특히 의자들 밑, 뒤, 길바닥, 장소를 막론하고 엎드려져 자는 수많은 인도 사람들이 별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보이고 넓은 인천 공항이 그립다. 지난번에 노트북이 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리해도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 졸린 눈을 치켜세우고 이리저리 걷다보니 두 시간 정도 지났다. 졸면 안되지. 졸다가 비행기 놓치면 큰일 나지. 한국에 있으면 핸드폰 알람 켜놓고 두 시간 정도 자면 되겠지만 여기서는 핸드폰 자체가 연결이 안 되어 뜨지를 않는다. 알람 클록 작은 것을 하나 가져왔었을 것을 하는 후회. 1 시간 전에 라고스가는 비행기 출발 gate 로 갔다.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고, 30 분정도 줄에 서 있다가 겨우 대기실로 들어섰다. 이미 여기서부터 줄 서는 훈련 받는 것인 줄은 몰랐었지. 게이트를 들어가 라고스 가는 비행기 타기 위해 다시 활주로가 있는 곳에서 공항 버스에 타니 한참 돌고 돌아 공항 구석으로 도착했다. 많은 라고스 가는 사람들. 저마다 짐들은 얼마나 많은지. 보따리 장사하는 사람들처럼 엄청난 짐들을 모두 들고 탄다. 들고 타는 짐이 저 정도니 부친 짐은 또 얼마나 많을까? 옆에 있는 뚱뚱한 아줌마가 자기 짐을 하나 들어 달라는데, 한국 사람의 기사도를 발휘해서 들어주니, 어휴. 20 Kg 는 되겠구나. 비행기 올라가는 계단, 좁은 통로를 따라 내 짐과 그 아줌마 짐을 들고 겨우 겨우 들어가니 더운 날씨에 땀이 비오듯. 기사도의 영광 뒤에도 역시 고난이 있구나 하는 진리를 체험했다. 자리에 앉아 보니 역시 이 비행기도 full! 한 자리도 공석이 없었다. 이륙하기까지 long waiting. 당초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 지나야 이륙하였다. 두바이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인데, 벌써 비행기 활주로가 꽉 차서 포화상태라고 한다. 두바이서 라고스까지는 다시 8시간 50 분. 서울서 두바이까지 11시간, 대기 5시간, 다시 비행 9시간, 그러니 25 시간 만에 도착하는 셈이다. 이미 long flight 를 했기에, 다시 한번 9시간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기내 잡지도 이미 다 읽었고, 영화도 두 편 보았으니 시간을 잘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두바이에서 기다리면서 시편/잠언을 한번 읽었는데 이것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인생의 지혜를 얻자 방향을 잡고. 일단 잠을 청하자. 엎치락 뒤치락. 서울/두바이의 11시간 보다 훨씬 지루한 두바이/라고스 9시간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라고스 공항에 도착. 아, 멀다. 우리 선교사들은 어쩌자고 이곳 지구 반대편까지 왔는고. 언더우드의 기도가 생각이 났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주여, 주께서 친히 우리 UBF 선교사님들을 이곳에 옮겨 심으셨으니 이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고 그들이 사역하는 땅이 은총의 땅이 되게 하소서...간절히 기도하였다. 도대체 나이지리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여 비행기 창밖을 열심히 내다보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미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했으니, 박모니카 선교사가 엄청 기다렸겠구나 하는 생각에, 신사 체면을 부인하고 약간 새치기를 하여 먼저 나가 입국 심사 줄을 섰다. 아, 벌써 긴 줄.. 한 참을 기다리는데... 나는 그 줄이 아니니 저리 가라고 군인 옷을 입은 사람이 말한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데 그 줄은 나이지리아 사람들만 서는 곳이고 외국인은 저쪽 끝줄에 서야 된다는 것. 이런 쯧쯧... 사정을 해서 제일 끝에 서지는 않고 중간 정도에 비집고 들어가니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작. 찌는듯한 더위, 섭씨 35도는 될 것 같다. 에어콘은 커녕 선풍기도 없고 안에는 이렇게 어둡고 답답한지. 한 30 분을 기다려서 담당하는 관리 앞에 가니, 그 줄은 입국 도장을 찍어주는 줄이 아니라, 내가 입국 신고서를 제대로 썼는지를 체크해 주는 줄. 맙소사. 제대로 쓴 것 체크를 끝내고 다시 다른 줄로 이동하여 다시 30 분 정도 waiting. 심사관의 얼마나 있을 거냐 라는 질문에 (별로 있고 싶지 않은 나라기 때문이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일주일 후에 간다고 하니 10일간 체류 허가를 준다. 아이고, 빨리 짐을 찾아 나가자하고 짐 찾는 곳을 가보니, 아주 천천히 짐이 하나씩 나오고 있는 상태. 수백 개는 될 텐데 저렇게 늦게 나오니. 일단 트롤리라도 가져오자. 트롤리를 찾아보니 보이지를 않는다. 하나가 보여 가져가려고 하니 어떤 사람이 정색을 하고 자기 것이라고 한다. 트롤리를 가져가려면 저기에 가서 줄을 서서 돈을 내야 된다고 한다. 또 줄서는 구나. 줄을 서도 빈 트롤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니 하염이 없다. 트롤리 빌리는 것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나이라 (현지화) 로 얼마라고 하는 데 그게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고 여하튼 1불을 주니 트롤리 티켓을 주었다. 잔 돈이 있을 것 같아 기다리니 그 친구 계속 (일부러) 꾸물대고 있으면서 뭘 찾고 있는 듯... 에라 몇푼 되도 않는 것 가져라... 하고 그냥 와서 짐을 기다리는 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짐. 다른 사람들의 짐들을 보니 모두 마스킹 테이프로 둘둘 말았거나, 아니면 자물쇠로 잠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인천 공항에서 저렇게 짐을 부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겠지. 사람들을 믿어야지 하면서.. 짐을 기다렸다. 비행기 도착 후 3시간후에 나오는 짐을 찾아 트롤리에 올려 보니 가방이 약간 홀쭉해 진듯한 느낌... 안을 열어보니 치아카 선교사가 부탁하여 사 가지고 온 모기장 3개 뭉치가 없어졌다. 사람들을 믿어야지?? 어떨 수 없지. 밖에 나가려니 세관에서 잡는다. 가방을 열어보라는 것. 스피릿인지 감정인지 발동하여 한번 마음대로 열어보라고 당당하게 말하니 한 두 개 열어보고는 가라고 한다. 와, 밖에서 나이지리아 동역자들이 엄청 기다렸겠구나. 비행기도 연착이 되었고 3시간이나 안에 있다 나왔으니. 피곤하기는 하지만 동역자들의 사기를 위해서 표정 관리를 해야지. 머리 한번 깨끗하게 빚고, 만면의 미소를 한번 연습하고는 나갔다. 밖에는 엘리사벳 자매 목자가 제일 먼저 나를 보고 맞이하였고 그를 따라 공항에 나온 분들을 만났다. 박모니카 선교사.. 이방 목자들, 윤레베카 선교사와 아이들도 나와 있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렸지요?" 그 분들이 대답하는 말 "그 정도는 보통이죠. Welcome to Nigeria!" 차를 타고 라고스 쎈타로 가는데 옆에 보이는 건물들이 우리나라 50년대, 60년대의 것처럼 보였다. "공항서 쎈타까지 얼마나 걸리죠?" 나의 질문에 모니카 선교사 하는 말 "교통이 안 막히면 20분이면 가고, 막히면 1시간이나 두 시간 걸리죠." 길거리 교통은 그야말로 먼저 가는 것이 임자. 길 어디에도 신호등이라는 것이 없다. 간혹 사거리 같은 곳에 경찰들이 나와서 교통 통제를 하는 데 아수라장이다. 오토바이들이 옆으로 쏜살 같이 지나 다닌다. 오토바이는 한결 같이 어떤 젊은 남자가 앞에 타고 뒤에는 대부분 옷을 잘 차려입은 젊은 여자들이었다. 이곳은 부부들이 저렇게 출퇴근을 하는가 보다.. 생각하였다. 차가 서면 길가나 중앙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뭔가를 판다. 땅콩, 양말, 옷, 생선, 야채, 펜, 물, 고기... 시장에서 파는 것은 뭐든지 가지고 와서 차의 창문을 두드리며 판다.. 길이 막히자 어떤 차들을 역주행을 하고, 중앙선을 넘어 간다.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파고 들어간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aggressive 한 이유가 있구나. 치열한 생존 경쟁. 양보하면 죽는다는 긴박감. 한 시간쯤 걸려 라고스 쎈타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현지 사람들이 사는 지역. 백인이나 동양인은 찾아볼 수 없는 곳. 그런 곳에 우리 쎈타가 있었다. 도착하니 마침 8시 저녁 기도 모임을 시작하는 시간. 모임에 참석하니 박베드로 선교사가 앞에 나와서 내 소개를 하라고 한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지금 잘 기억은 안 나고.. 여하튼, 그리고 나니, 엘리사벳 목자가 말하기를, 내가 왔다고 오늘 저녁은 특별히 음식을 준비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퍼서 내게 접시를 하나 주는 데.... 보니 고추장 같은 소스로 비빈 밥에, 손톱만한 딱딱한 양고기 두 조각을 올려놓았다. That's all.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돌리자 다들 맛있게 먹는다. 나에게만 특별히 고기 두 조각을 주고 다른 사람들은 한 조각이나 또는 없었다. 아, 이것이 특별 손님 초대 만찬이구나.. 치아카 목자가 종로에 와서 5층에서 밥 먹을 때 반찬 많이 나오는 것보고 놀란 것이 생각이 났다. 여하튼 맛있게 먹(어주)고, 다른 리더들은 수양회 준비하는 동안 나는 쎈타 2층의 박베드로 선교사 집에 올라왔다. 이층의 집은 방 세개에 거실 하나. 방 하나는 박베드로 선교사 부부가 쓰고, 하나는 중2 한나가, 다른 하나는 남산 쎈타에서 온 싱글 트루만 리 선교사와 중3인 피터 주니어가 쓴다. 내가 와서, 피터 주니어는 아빠랑 방을 쓰고 한나는 엄마랑 쓰고 나는 투루만 리 선교사와 방을 쓰게 되었다. 샤워를 하러 목욕탕에 들어가니 샤워기가 고장이 나 있다. 욕조 안에는 플라스틱 바가지가 두개 놓여져 있는 것을 보니 물을 받아서 몸에 뿌리라는 것임을 눈치 채고 잽싸게 적응. 방으로 다시 와서 잠을 자려하니 옆에서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진동을 한다. 기차가 지나다니는 것 같이 괭괭괭...소리가 밤새 진동.. 아, 심하다.. 거기다가 천정에 붙은 선풍기는 "덜걱 덜걱" 하면서 돌아간다. 그나마 그 선풍기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단다.. 옆의 트루만 선교사는 벌써 깊이 잠이 들었다. 모기장은 커녕 이불도 덮지 않고 잘 잔다. 나는 준비해 간 모기장을 꺼내어 잘 치고, 행여나.. 모기 한 마리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는 들어가 잠을 청했다. 말라리아 걸리면 큰일 나지... 발전기 소리, 선풍기 소리.. 에라, 그래도 믿음으로 잔다.. 한 시간 정도 자는 데 발전기가 퍽 하면서 꺼지는 소리가 났다. 기름이 떨어진 것이다. 선풍기가 안 돌아가니 밤 1시인데 잠을 잘 수가 없다. 온 몸에 땀이 흐른다. 안전 문제 때문에 창문을 열수도 없다. 덥고 찐다. 30 도는 족히 넘을 것이다. 도저히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일어났지만 전기가 안 들어온다. 불빛이 없다. 칠흑 같은 밤에 할 수 있는 일은 목욕탕에 가서 몸에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욕조안을 더듬어 들어가 앉아 물을 덮어쓴다. 2시에 뿌리고 3시에 뿌리고 4시에 뿌리고.. 아, 어둠 속의 원맨쇼여! 새벽이여 빨리오라. 빛이나 좀 보자. 새벽 5시가 되어 아래층에서 양식 모임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트루만 리 선교사가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으로 샤워 (?) 를 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6시에 그와 함께 가까이 있는 주유소에 석유를 사러 갔다. 사람들이 교통 혼잡을 피하고자 아침 6시부터 출근하느라 난리다. 오토바이는 사람들을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는 불법 영업 하는 사람들이었다. 석유 100 리터를 사서 쎈타에 와서 발전기에 기름을 넣니 다시 전기가 들어오고 선풍기가 돈다. Thank God! 두 아이 (피터와 한나) 는 아침 7시에 학교를 갔다. 이층의 집은 개인적인 가정의 삶이 없었다. 수시로 나이지리아 목자들, 양들이 이층을 올라온다. 무엇을 물어보러 오기도 하고, 프린터 하러도 오고.. 아이들이 자기들만 사는 가정을 그리워할 것 같다. "쎈타와 가정이 같이 산 게 얼마나 되었나요?" 나의 질문에 모니카 선교사의 대답 "한 10년 되었지요..." 아이들이 많이 투쟁이 될 것 같다. 이 가정이 따로 근처에 집을 얻어서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11/22 목요일은 하루 종일 강사들을 돕고 낮에는 잠시 라고스 대학 심방을 갔다. 이번 강사들은 2진 목자들로 그들을 훈련시키는 목적도 있었다. 대부분 직장과 학업으로 매우 바쁜 사람들이었다. 1차 및 2차 메세지 체크를 하고 필요한 사람들은 강의안 수정을 하였다. 라고스 대학은 우리나라 시골에 있는 오래된 대학 같고 참으로 낙후되어 보였다. 그래도 이곳이 이 나라 최고의 명문이라고 하니. 오후에 덥고 피곤하여 다시 목물을 하러 들어가니, 엄지 손가락 보다 큰 바퀴벌레가 욕조위에 앉아 있었다. 악! 그렇지만 잡아야지. 옆에 있는 막대기를 들고 내리쳤다. 이리 저리 빗나가기를 한 열 번. 그 바퀴 벌레가 내게 가까이 다가 오기에, 사느냐 죽느냐의 심정으로 내리쳤는데 드디어 막대기에 맞았다. 비틀거리며 피하는 놈을 필사적으로 내리쳐서 마침내 끝. 한쪽 구석에 안 보이는 곳으로 밀어버리고는 목물 시작.. 아무래도 찜찜... 아래 층에 내려가보니 치아카 목자가 수양회 팜플렛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바퀴 벌레 얘기를 하니,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얼마 전 쎈타 홀에서 리더들이 쥐들 잡은 얘기를 해 주었다. 모임을 하고 있는데 박베드로 선교사가 갑자기 창문을 다 닫으라고 리더들에게 지시를 하였다. 모든 문을 닫고 홀 안에 들어온 쥐를 잡기 시작하였다. 대 여섯 명의 리더들이 "너는 독안에 든 쥐... " 하며 막대기를 들고 달려들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쥐. 결국 생포. 즉사. 그러한 얘기를 듣고 이층에 올라 왔다. 거실에 잠시 앉아 있는데 거실 구석의 전기줄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악! 쥐. 저걸 잡아 말아... 아, 제발 없어져라.. 그 시커먼 쥐는 나를 보자마자 잽싸게 내려와 다시 나왔던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My God.. 학교에 간 한나 주니어가 생각이 났다. 수양회 떠나는 금요일 아침. 어제는 다행히 발전기가 계속 돌아서 잠을 좀 잔 편이다. 문제는 모기에게 많이 물렸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밑에서 모기들이 다리와 손을 많이 물었다. 이곳 모기들이 특이한 것은 날아 다니는 소리가 안 난다. 한국 모기보다 좀 작은 데 접근하거나 도망갈 때 아무 소리가 안 난다. 그러니 방어를 할 수가 없다. 말라리아약 먹고 왔으니 괜찮겠지.... 주여 살피소서.. 리더들과 양들을 태우기 위해 버스 3대가 아침에 온다. 우리 나라 중형버스 정도 사이즈인데 매우 낡은 것들이다. 한 리더에게 물었다. "여기서 수양관까지 얼마나 걸리죠?" 그가 말하기를 "버스로는 4시간 정도, 승용차로는 두시간 정도 걸리죠". "왜 차이가 나죠?" 물으니, "아, 버스는 차가 크니 계속 순서대로 가야 되고, 승용차는 요리 조리 피해서 갈 수 있으니 그렇죠." 아, 정답이다! 내가 왜 그 단순한 것을 물어보았는지. 수양관까지 가는 길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부 고속도로였다. 그 길로 죽 가면 옆 나라 베닌도 가고, 그 다음 나라 토고도 간다. 그런데 그 길이 이차선인데 한쪽은 버스로 막히니 결국 1차선으로 가는 셈이다. 길 가에는 각종 사람들이 물건을 팔려고 필사적이다. 차들이 낡은 차들이다. 유럽의 각종 폐차들을 가져온 것 같다. 세상에 저런 차가 움직이다니... 한국에서 내가 타는 차가 14 년된 중고차라 치아카 목자에게 오래된 차라고 하였는데, 그때 그가 내차는 정말 새차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어떤 차를 보니 문짝이 없고, 버스는 소형 승합차인데 뒤 유리창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차장은 문에 매달려서 다니고, 가다 서는 차가 여럿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차는 한 30년쯤 된 벤즈였는데, 앞의 두 헤드라이트 부분이 푹 파져 없어져서 마치 해골이 달리는 모습이었다. 두 시간 정도 가니 드디어 수양관에 도착. 고급 공무원 연수 장소라고 하여 시설이 나은 편이었다. 방 배치를 받았다. 가보니 방은 넓은데 목욕탕은 샤워가 고장 나 있고 바께스가 하나 욕조 안에 들어 있었다.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는데 왕개미들이 화장실과 욕조에 이리 저리 다녔다. 도마뱀도 오가는 것이 보였다. 짐을 풀고는 강당으로 갔다. 이곳의 문제도 전기였다. 쎈타에서는 전기가 나가면 발전기라도 틀면 되지만, 이곳은 전기가 나가면 발전기를 자기들 스케쥴대로 조금밖에 틀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다만 기도할 뿐이었다. 자주 전기가 나가고 발전기가 안 돌아가 찜통 더위 가운데 수양회를 진행하였다. 수양회 전체 주제는 요한복음 12:24 "한 일의 밀알" 이었다. 식사는 밥이나, 또는 세모비타 (흰색), 에바 (노란색), 아말라 (갈색) 로 이들은 모두 녹말가루같은 것을 뭉쳐놓아 호빵 같이 생긴 것인데, 이런 것 하나를 생선 졸인 국물 같은 것에 찍어 먹는 것이었다. 여하튼 한 사람당 접시 하나가 다였다. 반찬이라는 개념이 없고 고픈 배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음식도 하루 세끼를 주니, 양들이 수양회에 잘 온다는 것이었다. 집에 있으면 두끼도 못 먹는 데 이곳에 오면 남이 채려주는 세끼를 먹으니 천국 같다고 한다. 나는 아프리카 음식을 먹는 데 문제는 없었다. 에바를 먹을 때는 모래가 씹혀서 좀 어려웠지만 다른 것들은 그런대로 좋았다. 문제는 이렇게 계속 먹다보면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부족하여 영양 부족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프면 금방 죽는다고 한다. 얼마 전에 온 한 선교사 가정은 음식에 적응하기 어려워 가져온 라면을 주로 끓여 먹는 것을 보았다. 수양회 마지막 날은 전기 사정이 특히 안 좋았다. 날은 찌는데 전기는 나갔고 발전기도 안 돈다. 주제 강의는 계속 늘어져셔 25 분 분량이 거의 한 시간이 지났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순서를 하니 한 시간이나 더 늦어졌다. 덥고, 찌고, 전기가 없으니 어둡고, 더우기. 마이크는 안되고.. 사회자가 하는 말 "예수님 당시에 전기 없었습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전기 썼나요?" 놀라운 사실은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도리어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한국에서 지금 이렇게 수양회를 할 수 있을까? 찬양을 하는데 온 힘을 다하여 하였다. 한참 율동을 하며 찬양을 하는 데 한 30 미터 쯤 떨어진 저 건너편 방에서도 여러 명의 사람들이 찬양하며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거기는 무슨 모임인가.. 궁금하여 가보니.. 우리 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같이 춤을 추며 찬양을 하는 것이었다. 그중 한 여자는 춤을 추며 우리 쪽으로 오더니 같이 참여하여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찬양을 하였다. 나이지리아 공항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포스터가 있다. "Welcome to Nigeria. We are the happiest people in the world" 라고 쓴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어려움을 감당하는 법을 알고 그 가운데 자족함과 기쁨도 있다. 냉소적이고, 차갑고,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 사는 영국 사람들보다 이들이 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정말 얼마나 잘 사는가? 그런데도 불평과 불만, 하나님께 대한 감사부족.. 앞으로 감사 부족한 사람들은 나이지리에 단기 선교를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선교사들에게는 힘든 삶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인도에서 온 라데시 목자가 박베드로 선교사에게 물었다. "예전에 강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서요?" 박베드로 선교사가 말하기를.. "예, 두번 맞았는데 두번 째 것은 별거 아니었고 앞에 것이 좀 심했는데 한 몇 년 되었죠.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어둠 가운데 대문 앞에서 강도가 나타나서 칼을 들이대더군요. 그래서 "Welcome to my house" 하며 영접하고는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죠. 동역자와 아이들도 저와 함께 잡혀서 방에 묶였고. 돈을 달라고 하더군요. 돈이 있어야 주지요. 그래서 돈 없다고 하니 총을 들이대고 다 죽이겠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돈이 없으니 직접 찾아보라고 하니 우리들을 모두 화장실로 몰아넣고는 그들이 모든 방을 삿삿히 뒤졌지요. 돈이 나올 턱이 있나요? 없는데요. 나도 좀 있었으면 당장 주었을 겁니다. 나중에 모니카 선교사가 자기 여권을 주면서 이것 밖에 귀중품이 없다고 하니 그걸 가지고 가더군요." 라데시 목자가 다시 물었다. "겁나지 않았습니까?" "겁나기는 했지만 까짓것 죽으면 죽는 거죠." 나는 그 말을 옆에서 들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게 문제 되는 험한 음식, 전기, 바퀴벌레, 쥐, 말라리아... 이런 것이 아무 문제가 아니구나. 라고스 UBF 에는 세 목자 가정이 있다. 아브라함/엘리사벳, 빅터/탈매, 제임스/롱케 - 이들은 정말 UBF 목자라고 할 수 있는 믿음직하고 헌신된 사람들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이러한 성숙한 믿음의 종들이 세워졌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들은 피터박 선교사님 가정의 지난 17년간 그들의 생명을 드린 희생과 기도의 열매들이다. 그 외에는 12명 정도의 형제와 12명 정도의 자매들이 목자들로 성장하고 있다. 형제 장막에 25명 자매 장막에 14명이 공동 생활을 한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의 역사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은 역사.. 라고스 UBF 는 매우 기초가 잘 놓여졌고 소망이 넘쳤다. 라고스 대학은 나이지리아 최고 명문으로 졸업생들이 그래도 가장 직장을 잘 잡는 편이다. 목자들 중에 변호사 (Ronke) 도 있고 최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석유회사 (Charles 목자), 통신 회사 (회계사-Fato, Seun 목자) 근무하는 목자 등이 있다. 의대 졸업반 학생들도 있다. Seun 목자가 내년에 가정 교회를 이루고자 기도한다. 수양회를 마치고 수양관 근처의 노예 수출 항구를 심방하였다. 섬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서 섬을 가로질러 걸어 해안가를 가 보았다. 이곳이 바로 수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실려간 장소였다.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들의 원통함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노예들은 물건같이 취급되어 배에 실려 꼼짝 달짝하지 못하게 두세달 실려가다 보면 거의 반 이상이 죽었다. 그 길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실상 그 길의 이름은 "Route of no return" (돌아올 수 없는 길) 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기념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여 아브라함 목자가 카메라를 누르는데 .. 피식.. 밧데리가 나갔다. 안 찍힌다. 돌아올 수 없는 길임이 증명된 듯하다. 수양회를 마치고 다시 라고스에 돌아와서 11/26 월요일 하루 라고스 대학을 다시 가서 기도하고, 시내 구경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일 번화하다는 거리도 우리나라 변두리만도 못하였다. 다시 쎈타로 돌아와 쎈타 주위 지역을 치아카 목자와 한 시간 정도 걸었다. 어떤 구걸하는 사람이 보였다. 할머니. 무슨 병을 앓았는데 왼쪽 눈이 야구공처럼 튀어 나와 있었다. 불쌍하여 몇 푼 주고 .. 길은 하수 시설이 안 되어서 각종 오물이 쌓이고 악취가 났다. 길 건너 사층짜리 폐건물이 하나 보였다. 창문도 다 깨지고 일부는 지붕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였다. "치아카, 저게 무슨 건물인데 그 안에 사람이 있나요? 애들인 것 같은데..." 그의 말인 즉, "학교예요" "학교?" "예, 저기 가는 애들.. 저 학교서 공부해요. 저 정도면 아주 좋은 상태지요. 창문이 그래도 몇 개는 유리가 붙어 있잖아요." 오 주여... 생선 파는 시장에 가보니.. 아, 그 냄새.. 냉장 시설이 전혀 없는 무더운 곳에서 생선이나 고기를 판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보니 소인지 돼지인지 고기의 조각 일부를 땅에 놓고 칼로 잘라서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보였다. 월요일 저녁, 야바텍 지부를 방문하기로 하여 다섯 시 경에 윤레베카 선교사가 픽업을 왔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가는 길에 야바텍 형제 장막을 들르자고 한다. 그들에게 말을 안했는데 불시에 가보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길래 그러자고 하였다. 대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형제들이 있었다. 6명의 형제들이 작은 방 세 개에 살고 있었다. 그 방들을 보니... 참으로.. 우리나라 60년대 거지들이 사는 방 같이 느껴졌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침구나 벽, 방이 더러울 수 있을지... 주여, 주님이 태어나신 말구우가 이렇기 않았겠습니까? 마침 지붕이 무너져 내려 고치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장막이 형제들에게는 호텔과 같다고 한다. 기숙사에는 4명 들어갈 방에 10명이 자기 때문에 1인용 침대에 두명이 자고 침대밑 바닥 어디서든지 잔다고 한다. 야뱌텍 대학을 심방했다. 학생 수가 25,000 명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 선교사들이 유일하게 흑인이 아닌 사람들. 레베카 선교사는 여장부처럼 캠퍼스를 활보하며 양들을 피싱하고 여러 학생들과 관계성이 있었다. 선교사로 온 첫 날 부터 1:1 을 했다니 정말 체질인 듯.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보내시는 것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캠퍼스에서 기도를 하고 야바텍 쎈타에 가기 전에 윤안드레 선교사 가정과 이이디모데 선교사 가정이 공동 생활하는 집에를 갔다. 집은 넓은데, 안은 어둡고 지저분. 이층 잠자는 곳으로 가보니 아... 벽에는 애들 낙서와 얼룩이 범벅...한 꼬마 아기가 더위 가운데 몸을 들척이여 잠을 자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 어떤 빈민집도 이런 집이 없을 듯... 아래 층에서 식사를 하는데.. 초등학교 애들이 앉는 나무 의자에 앉아 거의 바닥에 닿는 테이블에서 식사.. 이런 저런 것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식사 후 8시 기모 모임에 갔다. 전기는 나가서 캄캄. 한 30 명 정도의 리더가 모였는데 돌아가면서 성경 암송을 하였다. 윤안드레 선교사의 카리스마가 돋보였고 리더들이 특별히 준비한 특송과 율동이 인상적이었다. 120 명이 참석하도록 기도하는 중. 그 후 자리를 옮겨서 선교사들과 대화의 시간. 이 디모데 선교사가 강도를 네 번 맞은 일, 윤안드레 선교사의 강도 만났을 때 피하는 요령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차를 몰고 올 때 커브 도는 곳을 특별히 조심해야 하고, 속도를 늦추지 말고 달려야해요. 엊그제도 한 커브 도는 곳에 차가 속도를 줄이자 무장 강도들이 차를 세우고 다 털어갔잖아요. 요즘은 성탄이 다가와서 강도가 더 극성이에요. 한 몫 잡아서 돈을 챙겨 고향에 가고자 하는 거지요. 강도를 대비하는 방법은 첫째 항상 50불 정도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강도 만나면 돈을 주어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강도가 심술이 나서 무슨 일을 할지 몰라요. 아 물론, 돈을 줄 때는 올린 두 손을 절대 내리면 안 되고 엉덩이를 들면서 지갑이 있는 쪽을 가르쳐야 되요. 그러면 대충 됩니다." “안드레 선교사님 가정과 같이 살다가 오늘 다른 집을 계약했어요. 2년치 세를 미리 줘야 하길래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주고 나니 앞으로 무얼 먹고 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지만 막막합니다. 물에 빠져 점점 밑으로 들어가고 있는 심정이에요”- 이 안나 선교사의 말이었다. 쎈타 비용, 집, 형제 장막 비용...너무나 기본 물질이 많이 들어가 쎈타를 사지 않으면 모두가 다 파산되는 것이 눈에 선하였다. 1층은 쎈타, 2층은 장막으로 하는 것으로 쎈타를 사도록 기도하고 있었다. 내가 보아도 그래야 최소한의 서바이벌이 가능하게 보였다. 안드레 선교사의 말 "이번에 LG 에 자리가 났는데 꼭 좀 선교사를 보내주세요.." 내가 말하기를 "아, 그거 월급도 많이 주고 좋은 자리인데, 벌써 UBF 홈페지에 광고를 냈어요. 이번에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응모자 중에 뽑아서 보내도록 해 볼께요." “안드레 선교사가 이어어 ”아, 그런데 이 얘기는 일단 하지 마시고, 나중에 사람이 뽑히면 하면 좋겠습니다. LG 에서 원래 인도 사람이 일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집에 무장 강도가 들어와서 다 털어가고 그 인도 사람을 총 개머리판으로 때려서 부상을 입혔어요. 그래서 그가 사직을 하고 인도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사람을 뽑는 겁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스펄젼 목자 말 "없어요. 종로 2부에서 사람을 뽑아 보내려고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없어요. LG 에 응모한 사람이 하나 있기는 한데, UBF 사람 아니고요, 어느 교회 사람인데 자매님이예요. 그래서 안된다고 했지요"..... 강도 맞은 거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군. 11/27 (화) 6일간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내 고향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새벽에 기도 모임에서 라고스 리더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일찍부터 챙겨서 공항으로 갔다. 박베드로 선교사, 모니카 선교사와 작별 기도를 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시작 되는 줄, 줄.. 왜 그리 사람은 많은지.. 티켓, 출국 심사, 물품 검사... 신속히 끝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절차를 끝내고 달음질 하듯이 출발 게이트로 향했다. '쇼생크 탈출' 에 나오는 주인공이 하수구를 통해 감옥 밖으로 탈출하여 두 손을 쳐들고 자유를 외친 심정이 되었다. “아, 자유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지극히 잠시. 마음 속의 고통이 밀려왔다. "너는 가지만, 네 형제, 네 동료들은 이곳에 있다. 너는 불과 6일 있었지만 피터박 선교사는 17년을 이곳에 있었다. 이들은 이 소망 없이 보이는 나라를 사랑하고 일생을 드리고 있다. 너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겠니?" 하시는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브리서 13:3 절 말씀이 기억났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피터박도 몸을 가졌고.. 윤안드레도 몸을 가졌고... 아이들도 몸을 가졌고... 자기 몸.. 가장 중요한 자기 몸. 그들은 이곳에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 몸을 드리고 있다. 네 몸 아끼듯이 그들의 몸도 아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우리의 나이지리아 선교사님들! 참으로 이들은 우리 UBF 의 자랑스런 선교사들이다. 이 분들은 가짜가 아니다. 진짜 선교사들이다. 한 알의 썪는 밀알 되신 예수님의 생애를 그대로 본받아 현재 어둠과 절망의 땅에 하나님의 소망을 붙들고 썩고 있는 밀알들이다. 이들은 나의 자녀요, 형제요, 동지가 아닌가? 자기 만의 편안함과 안전함을 도모한 지난 6일간의 생활이 부끄럽기만 하다. 내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모니카 선교사는 지난 9년간 한국에 온 적이 없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 반발심이 생겨 위로와 사랑이 또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 교육과 선교사들 의료 도움이 필요하고 목숨 바쳐 주님을 섬기는 이들의 경제적인 고통을 우리가 덜어주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상급이 많을 것이지만, 우리의 동료 의식이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한 알의 밀알 되신 예수님의 스피릿이 나와 우리 모임에 새롭게 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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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성탄경배의 밤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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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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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임성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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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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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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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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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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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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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박효진 장로님 초청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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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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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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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성탄합창 - 연습에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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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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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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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폴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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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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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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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수렴]작년 설문지와 말씀이 담긴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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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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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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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주센터 고성경 목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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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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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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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물 찾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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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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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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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 3부 최정일 목자님 단기 선교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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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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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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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과학과 신(神)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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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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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6 |
동역자모임에서 아브라함목자님께서 언급해주신 글을 찾아서 올려봅니다. [특별좌담] 과학과 신(神)의 만남 과학의 궁극 목표는 신을 아는 것, 신의 본질은 자유와 사랑 사회·정리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외계인, 신일 수는 있지만 창조주는 될 수 없어” ● “과학은 신의 위대함 증명하는 도구” ● “신은 시공간의 차원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 ● “우주 생성시 6일은 오늘날 시계로 160억년” ● “신은 다양한 모습… 과학의 틀에 끼워 넣지 말아야” ● “방향성과 목적성 가진 우주법칙이 곧 신” ● “휴거나 천지개벽은 한 차원 높은 세계로의 진입” 신의 입증은 과학의 오랜 숙제다. 불가지론(不可知論)에서 이신론(理神論), 범신론(汎神論), 지적설계론(知的設計論), 신과학(新科學)운동에 이르기까지 신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신에 대한 논쟁은 더욱 다양해지고 그 수준도 높아진다. 근저(近著)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통해 신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과학과 신의 관계 단절을 요구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강력한 무신론까지 포함해서. 이처럼 신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것은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그것이 인간과 우주의 근원적인 비밀을 풀 열쇠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평소 신의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해온 것으로 알려진 과학자 6명을 초청해 ‘과학과 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일시 2007년 9월11일 오후 2~5시 장소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6층 회의실 참석자 김재수(한국과학기술연구원 교수·금속공학), 임성빈(명지대 교수·교통공학), 임종록(한양대 교수·응용수학), 임종호(을지대 의대 교수·약리학), 우희종(서울대 교수·수의학), 제원호(서울대 교수·물리학) 사회·정리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좌담회에 참석한 6명의 과학자는 평소 ‘과학과 신’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가운데 앉은 두 사람은 사회자(앞쪽)와 속기사. 사회 : 오늘 모인 교수님들은 평소 전공과 관계없이 ‘과학과 신(神)’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오신 분들입니다. 사회자는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참석자들의 프리토킹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좌담에서 말하는 신은 종교적 신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절대자, 초자연적인 존재, 우주의 근원, 차원의 끝에 있는 존재 등 다양한 개념의 신입니다. 최근 리처드 도킨스(케냐 출신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옥스퍼드대 교수)의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오늘 좌담회의 운을 떼면 어떨까 싶은데요. 이런 주장을 했더라고요. “물리학자들이 비유적 의미로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물리학자들의 비유적 혹은 범신론적 신은 성서에 나오는 신, 인간사에 간섭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우리의 생각을 읽고 죄를 벌하고 기도에 답하는 신과 아득히 멀다. 둘을 일부러 혼동시키는 것은 지적인 반역행위다.” 임성빈 : 먼저 신의 정의부터 얘기했으면 합니다. 사람마다 개념이 다른 것 같아서요. 어떤 학자들은 외계인을 신과 연결시킵니다. 이를테면 오래전에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생명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겁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외계인이 신이겠지요. 우리가 통상 말하는 창조주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겠지만. 프리초프 카프라(오스트리아 출신 미국의 물리학자, 신과학(新科學)운동의 선도자)는 리처드 도킨스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어요. 확실한 유신론자이거든요. 그래서 과학과 신이 함께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지요. 만일 신이 참다운 존재라면 종교에 따라 다를 수 없다는 거죠. 과학과 분리될 수도 없고. 참다운 신이라면 과학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종교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결국 종교의 통합, 그리고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얘기하고 있어요. 에너지 뒤엔 뭐가 있나 제원호 : 과학은 객관성이 있고 반복성이 있는 현상을 얘기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신은, 마치 사랑이 실체가 있지만 이거다 저거다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오감으로는 알 수 없는, 때로는 육감으로 어느 정도 알 수도 있겠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부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신과 과학은 양립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할수록 신의 영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상호보완적인 면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과학과 신이 모순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생각엔 둘 중의 하나입니다. 과학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부족하든가, 아니면 신에 대한 이해가 없든가. 제 경우 성서와 과학을 통해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아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게는 과학과 신이 모순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죠. 과학이 보이는 것에서 시작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성의 방법으로 찾아가는 것이라면 신 또는 종교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 보이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모든 물질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게 1905년, 기껏해야 1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럼 에너지만 모아두면 물질이 되느냐, 그렇지 않지요. 그럼 에너지 뒤엔 뭐가 있는가. 신학자들은 그것을 신의 지혜, 창조의 지혜라 얘기하고 과학자들은 복잡한 정보가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정보는 보이지 않지요. 그러니까 과학이 물질에서 에너지, 즉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에너지다, 파동이다 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지요. 따라서 과학과 신은 지금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찾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성빈 : 제 교수께서는 창조과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원호 : 저는 창조과학회 회원은 아닙니다만, 요즘은 창조과학이라는 말 대신 지적설계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 상당히 수긍이 가는 점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나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반성해야 할 점도 있고. 임성빈 : 창조과학회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선 현대과학을 완전히 무시해요. 그러니까 빅뱅(우주 대폭발)도 무시하죠. 성경에 나오는 연대로만 계산해 우주의 역사가 2만년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진화론도 무시하고. 그거는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요. 김재수 : 개신교의 근본주의자들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창조과학회는 종교성이 너무 강해 객관성이 없죠. 제원호 : 인간의 관점이냐 신의 관점이냐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고 봅니다. 과학에서는 우주의 연대를 150억년으로 봅니다. 성서에서는 6일 동안에 모든 게 창조됐습니다. 저는 둘 사이에 전혀 모순이 없다고 봅니다. 김재수 : 종교적인 관점에서 신에 접근할 때는 현대과학의 패러다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종교의 핵심 혹은 본질은 영성(靈性)입니다. 요즘 스피리추얼 사이언스(spiritual science·영성과학)라는 표현을 씁니다. 영성과 과학이 만난다는 거죠. 저는 희로애락을 가진 기독교의 인격신이나 불교의 불성이나 다르지 않다고 봐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덕분에 세계의 본질과 근본을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처럼 과학과 영성이 만나면서 신의 일반적인 개념도 바뀌어간다고 봐요. 패러다임이 바뀐 거죠. 저도 어릴 적엔 인격신의 개념을 갖고 있다가 차츰 우주의 본질, 순수의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모든 가능성을 가진 그 무엇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지성이 있다고 신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그 다음엔 모든 존재는 신의 하나라고, 과학적 추론 또는 그 추론에 따른 체험으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은 손바닥과 손등 빅뱅 후 물질과 반물질의 변화. 우희종 : 과학과 종교는 언어나 범위가 다른 것 같아요. 과학은 사물의 이치, 사리를 다루는 데 비해 종교는 진리를 다룬다고 봅니다. 사리와 진리는 상충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과 종교는 대립할 까닭이 없지요. 그런데 왜 모순된 것으로 보이느냐. 과학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사물의 모든 관계를 끊고 분석적으로 접근하거든요. 흔히 말하는 분석적 환원론이죠. 세상이 총체적 덩어리로 이뤄진 만큼 과학의 한계가 분명히 있죠.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 신이라고 할 때 그것이 반드시 동물이나 사물, 혹은 인격적인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데 대해 저는 부정적입니다. 반대로 지성이나 지혜의 형태로만 표현되느냐. 그것도 인간이 붙인 관념일 겁니다. 제원호 박사님은 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저는 알되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을 모른다면 사실은 얘기할 것도 없거든요. 신을 진리요 생명이요 혹은 순수이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신을 우리가 가진 개념으로 표현하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종호 : 신은 쉽게 생각하면 질적으로는 완전이고요, 양적으로는 모두여야겠지요. 그런데 이 완전하고 모두인 것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선 반드시 대상으로 삼아야 하거든요. 대상화해야 이성으로 알 수가 있으니. 또 하나는 직관으로 신을 아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는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의 도구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죠. 이성과 직관이 균형을 이뤄야 완성된 인간인 것처럼 과학을 통해 신의 위대함을 알 수 있죠. 저는 의사로서 매일 환자를 돌보는데, 환자들에게 우리가 진화를 통해 이렇게 됐다고 하면 실망하고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요. 반대로 거대한 존재가 우리 뒤에 있다고 말하는 게 치료에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은 이미 증명이 돼 있기 때문에 과학과 신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작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왜 존재의 목적이 있어야 하나 임성빈(명지대·교통공학) "나머지 일곱 차원 중에 신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불확실하지만 우리가 고차원으로 진화하면 자연스럽게 그 존재가 드러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희종 : 신이 완전하다, 세상이 완전하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완전’이라는 것도 하나의 개념이기 때문에 굳이 표현하자면 ‘온전’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종호 : 그렇네요. ‘완전’보다 훨씬 좋네요. 임종록 : 전체를 움직이는 거대한 그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에 과학도 존재하고 종교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신은, 수학 쪽에서 본다면 초월의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과 공간, 오감에 제약받지 않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그게 에너지 형태인지는 모르겠습니만―이라고 봅니다. 어떤 규정된 차원 너머의 차원에 들어설 때야 신의 개념이 어느 정도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가. 아닙니다.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방법론의 단계를 높이면. 어쨌든 저는 (신을) 지금의 차원보다 한 차원 높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싶지 그 무엇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습니다. 우희종 : 초월도 하나의 개념이 아닐까요. 임종록 : 시간과 공간에 잡히지 않고 형태에 매이지 않는 것, 인간이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그 너머의 차원이라는 생각입니다. 김재수 : 노자(老子) 말마따나 도(道)를 도라 할 때 이미 도가 아니라는 것과 똑같아요. 신은 바로 지금 여기서 움직이고 있어요. 어떤 고정된 관념을 갖고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신은 거기에 없죠. 임성빈 : 그래도 신은 여전히 있을지 몰라요. (웃음) 만일 우주와 나를 있게 한 창조주가 계시다면 어떤 목적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잘 모르겠어요. 남보다 잘 먹고 잘살고 조금이라도 더 즐기다 죽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모양인데,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우희종 : 그런데 왜 목적이 있어야 하나요. 임성빈 : 존재하는 목적이, 이유가 없다면 저는 (인생을)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우희종 : 그것은 내가 납득하는 것만 받아들이겠다는… 임성빈 : 그래도 하여튼 그게 알고 싶은 거예요. 김재수 : 존재는 목적 없이 ‘그냥 있음’ 아닐까요. 임성빈 : 세탁기는 빨래를 시키려고 만든 것이지 괜히 만든 것은 아니거든요. 우희종 : 인간은 다르지요. 내 수준을 높이면 신이 보여 임성빈 :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할 때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요. 임종호 : 태초에 말씀이 있는 거네요. 임성빈 : 만약 창조주가 계시다면 내가 뭘 해주기를 바라고 나를 창조했을까 하는 의문이죠. 임종호 :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건 신이 어떤 목적을 갖고 창조했다는 거지요. 우희종 : 말씀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임종호 : 저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빅뱅 이론과 관련지어 이렇게 비유합니다. 뻥튀기 장사하시는 분이 빅뱅을 일으키기 전에 항상 말씀을 합니다. “귀 막아!” 별로 안 웃기는 농담 같은데…. (웃음) 창조론이나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이나 비슷하죠. 연기의 최초가 무엇이냐죠. 그런데 부처님은 물어보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우리는 패러다임을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물질과학 차원에서 신을 물리적인 속성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도, 그런 태도가 저는 불만이라는 거죠. 내 수준이 높아지면 신을 이해할 수 있는데, 내 수준을 그대로 둔 채 물질 차원으로만… 김재수 : 그 안에다 집어넣으려 하지요. 임종호 : 인과관계를 교묘하게 표현해 유전자가 어떻고 바람 피우는 이유가 뭐다 하면서 신을 없애버리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한 거죠. 때로 그런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패러다임이나 차원을 높이면 그때야말로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임성빈 : 제가 할 얘기를 다 말씀해버렸네요. 제가 최근 펴낸 책(‘빛의 환타지아’)은 현대과학으로 우주의 시작과 인류의 역사를 정리한 겁니다. 이 책을 쓰면서 생물의 진화 문제를 많이 생각했어요. 인류 역사에서 신의 문제, 종교가 등장한 것은 현대인류, 즉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시절이거든요. 네안데르탈인 시절에는 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요. 네안데르탈인까지는 영혼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현생인류에 이르러 비로소 약간이나마 영성을 갖게 된 거죠. 제 생각엔 인류에게 아직도 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논할 만한 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수학적으로 얘기하면 비유클리드기하학을 논할 단계가 아니라 아직 대수나 산수의 단계라는 거죠. 그 정도밖에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것을 가지고도 있느니 없느니 마찰을 빚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M이론(우주의 모든 물질과 힘이 Membrane(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이나 11차원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서양 과학자들은 그것을 공간 차원으로 보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데 저는 공간이 아닌 영적인 차원으로 봅니다. 임종호 교수님 말씀대로 진화가 좀더 이뤄지면 얼마든지 그것을 느끼고 알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세상엔 숱한 전자파가 있는데, 19세기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시광선밖에 모르고 살았거든요. 지금 11차원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4차원의 시공간 속에서만 삽니다. 나머지 일곱 차원 중에 신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불확실하지만 우리가 고차원으로 진화하면 자연스럽게 그 존재가 드러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안데르탈인 멸종의 비밀 제원호 : 저에겐 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과 안다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신을 모른다는 것은 인간이 정보를 저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정보를 짜깁기하고 맞춘다 해도 우리보다 더 큰 존재를 알 수는 없습니다. 반면 신을 안다는 것은 계시를 통한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인 신, 슬픈 사람에게 위로와 사랑을 주는 하나의 인격체인 신의 존재를 계시를 통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신을 알지 못하지만 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적인 존재지만 창조주는 아니다 임성빈 : 과학과 신을 논하면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더 월드(세계론)’라는 책을 집필했다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처벌을 받자 출간을 중지하고 물심이원론을 주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대과학과 종교가 갈리는 계기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별개니 너희(종교)는 신하고만 놀고 물질학문에는 손대지 말라고 영역을 나눈 거지요. 그러다 보니 영성이나 정신이나 마음이 빠진, 물질만 다루는 학문이 발전해왔지요. 그런데 로마나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과학과 신의 영역이 지금처럼 구분되지 않았어요. 말씀하신 대로 과학은 객관적이고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인과율을 따라야 하는데,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입자물리학에서는 다 깨지지 않습니까. 객관성이나 개연성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다 깨졌지요. 이제는 과학이 신을 연구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요. 어떤 은혜나 특정한 종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신의 존재가 뭔지, 인류와 신의 관계가 어떤 건지.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류가 태어나는 데 관여했다면 그도 신적인 존재지요. 창조주 신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도 제가 보기엔 신적인 존재일지는 모르지만 창조주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성경 내용으로 봐서. 여호와가 만든 아담과 이브가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쫓겨날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걱정해요. 그렇다면 그들 외에 다른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얘기잖아요. 또 여호와가 유일하게 인류를 만든 존재도 아닌 것 같아요. 창세기에 보면 천지창조를 하는데,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하면서 ‘우리의 형상대로’ 만든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우리’라는 건 창조주가 여러 분이라는 걸 뜻하죠. 김재수 : 복수를 쓰지요. 임성빈 : 복수를 쓰고 형상도 인간과 같고. 그러면 천지창조가 이뤄지기 전부터 여러 분의 창조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계셨을까, 그래서 우주를 만든 창조주와 인간을 만든 창조주는 서로 다른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김재수 : 저도 한때 그런 의문을 가졌어요. 신이 복수더라고요. 이상하잖아요. 이거, 다른 시각으로 봐야겠구나.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시간과 공간이 양자물리학에 의해 무너지면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환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에너지가 환상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그 환상 속에서 게임을 하는 거죠.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렇다면 신의 개념은?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과 물질 속에 확고히 고정돼 있던 것인데, 다 사라졌어요. 임종호 : 데카르트 시대를 말씀하니 하는 얘긴데,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안 풀리는 문제가 있어요. 생각이 먼저냐, 뉴런(신경 단위)이 먼저냐. 뉴런을 다치면 생각을 못하지요. 생각이 먼저 일어나 뉴런이 따라갈 수도 있겠고요. 300년 전에 제기된 문제인데 아직도 풀기 어려워요. 우희종 : 어떤 신 혹은 창조주를 상정하고 거기서 우리가 계시를 받는 것으로 보면 과학과 종교의 접점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이 지적설계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죠. 과학과 종교가 만난다는 것은 타자가 된 신이나 대상이 된 신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해 이미 발현돼 있는 신, 안과 밖이 하나인 통합적인 신의 존재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반대로 창세기의 신이 복수라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거든요. 이 경우도 접점이 없어진다고 봅니다. 저는 신이 종교적 신으로 표현돼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신을 그 틀에 국한하는 게 문제지. 신은 다양한 언어와 모습으로 표현되고 성경이나 불경은 상징과 은유라고 봐요. 외계인의 생명 조작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메시지죠. 그런데 과학에 길든 사람은 그것을 분석합니다. 그러한 분석적 환원론으로 성경의 창세기를 읽는다면 답이 나올 수 없어요. 창조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적 생각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비에 어떤 목적이 있을까요. 풀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떤 현상이 펼쳐지는데 그 역할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 거지 존재의 목적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봐요.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근대과학에서는 진화를 발전의 개념으로 봤어요. 헤겔도 그렇고요. 하지만 근대 생명과학에서는 그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든 뭐든, 진화란 적절하게 주위환경에 적응하는 것으로 좀 복잡해질 뿐이지 고등이니 하등이니 하는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 그렇게 말씀하면 도킨스와 비슷한데… 우희종 : 그렇지 않습니다. 큰 차이가 뭐냐면요… 임성빈 : 창조주를 믿는 유신론자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가 유신론적 진화론이에요. 빅뱅론이나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어떤 방향성, 창조주의 의지에 따라 진행된다고 믿는 거죠. 다른 하나는 지금 말씀한 것처럼 창조는 과학적인 원리로 우연히 일어났으며 방향도 없고 인류가 특별히 진화된 생물도 아니라는 견해죠. 환경 적응성으로 보면 박테리아만도 못한 게 인간이라고. 곤충보다도 못하고. 우희종 : 그 다음이 다른 겁니다. 도킨스 같은 사람은 거기서 멈추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러한 원리로 작용하는 것을 종교적 신으로 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부정할 필요도 없고. 일반적인 사회생물학자는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임성빈 : 그렇죠. 바로 그 얘기입니다. 우희종 : 사회생물학의 시각만으로 이것은 신이 아니고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하는 건 오만이죠. 160억년과 6일은 같아 임종호(을지대 의대·약리학) "저는 과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신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봐요. " 임성빈 : 신과 종교도 구분해야 해요. 아까 성경 내용을 비유라고 하셨는데, 저는 굉장히 사실적인 기록이라고 봅니다. 가설이긴 합니다만, 조셉 데니케르(러시아 출신 프랑스의 인류학자) 같은 학자들은 분명히 지구상에 외계인이 많이 왔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 얘기대로라면 외계인이 찾아와서 지구인을 생명복제나 유전자 조작 등으로 만들거나 개조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여호와라는 존재가 유대인을 생명과학적으로 조작한 어떤 외계인 집단의 대표라는 추론이 가능한 거죠. 한동안 외계인이 피조물인 인류와 같이 살면서 결혼도 하고. 마찬가지로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온 국조(國祖) 환웅 천제도 한민족을 생명과학적으로 조작한 외계인 대표라고 추론할 수도 있지요. 우희종 : 창조와 조작은 다르죠. 임성빈 : 다르죠. 그들은 신은 아니죠. 조작 정도이지, 무에서 인간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우희종 : 외계인은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외계인의 존재를 가정한 논리이기 때문이죠. 김재수 : 아니요, 짚고 넘어갈 문제입니다. 임성빈 : 남미에도 그런 신화가 많은데, 거기서 묘사된 신들은 외계인 수준이지 창조주는 아닌 것 같거든요. 우희종 : 저의 문제 제기는 왜 외계인을 상정하느냐는 거죠. 김재수 : 어떤 차원에서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의 차원에서는 우연이라도 한 단계 위 차원에서는 필연이 되거든요. 콜럼버스가 도착할 때 처음엔 인디언들에게 배가 안 보였어요. 머릿속에 배에 대한 관념이 없으니까 대상이 보여도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신적인 개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관념과 개념에 따라 체험하는 내용이 다른 거죠. 임종호 : 좁게 보면 우연이고 넓게 보면 필연이죠. 외계인 문제도 그 외계인은 또 누가 만든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에 꼭대기로 가면 필연이겠지요. 밥 먹으면 소화시키는 우리 몸의 오묘함은 신이 아니고야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갖게 해요. 저는 그중 일부를 밝히는 면허증을 따서 사람을 고치고 있지만, 너무나 사소한 지식이죠. 우리 안에 신이 안 계시면 신이라는 개념이 안 생겼을 거예요. (이때 우희종 교수가 급한 사정이 생겨 먼저 퇴장-편집자) 제원호 : 계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까 (임성빈 교수께서) 현대과학으로 오면서 객관성, 반복성이 깨진다고 말씀했는데, 그렇지는 않고요. 양자역학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검증이 잘된 이론입니다. 물론 M이론같이 우주를 재창조하는 이론은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지만. 저에겐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나이입니다. 현대과학에서는 대략 160억년이나 150억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에 따르면 6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우주 창조가) 다 이뤄졌습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신과 과학은 모순이고 신앙이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영역이 아닌지 고민해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이 패러독스를 새롭게 해석하고 신과 과학을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신의 오묘하고 깊은 우주창조 섭리를 이해했고 거기에 객관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160억년과 6일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다른 얘기로 들릴 뿐이지 같은 내용이라는 거죠. 우주 생성시 1초는 오늘날 9만년 이 패러독스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학적인 원리는, 시간의 개념은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관찰자의 시계는 정지해 있는 관찰자의 시계보다 상대적으로 더 천천히 움직입니다. 사건이란 시공간의 한 점과 다른 한 점 사이의 거리를 말합니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정지해 있는 관찰자의 시계로 재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고 빨리 움직이는 관찰자의 시계로는 찰라나 1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주의 시작을 알리는 빅뱅 이후 첫 물질이 생겼을 때 우주의 온도는 지금보다 약 3조배 높았습니다. 이는 우주시계의 주파수가 지금보다 3조배 높았음을 뜻합니다. 즉 태초에 우주시계가 한 번 똑딱거린 주기는 현재보다 3조배 짧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 생성 이후 첫 물질이 생겼을 때의 1초는 오늘날 지구상 시간으로 환산하면 3조초, 즉 9만년가량 됩니다. 이 수치를 대입하면 태초의 첫 하루 24시간은 오늘날 시간으로 80억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우주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는데, 이런 냉각 효과를 고려하면 둘째 날의 24시간은 약 40억년이 됩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우주 생성 당시의 첫 6일은 오늘날의 시계로 대략 160억년입니다. 물론 저는 이것으로 성서의 내용이 증명됐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모순인 것처럼 보인 것은 인간의 과학적 지식이, 혹은 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리고 빛에 대해 말씀했는데, 저도 광학과 원자물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빛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빛의 성질을 더 알게 되면서 우리 주위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빛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즉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시간의 상대성에 갇혀 있지만 빛 안에서는 시간의 절대성만이 존재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1987년 2월23일 칠레의 한 천문대에서 우주에서 날아온 밝은 빛이 관측됐습니다. 슈퍼노바(초신성)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빛이었죠. 측정해보니 지구에서 17만광년 떨어진 별이었습니다. 즉 이 초신성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데 지구시계로 17만년 걸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만일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가 있었다면 그에게는 그 시간이 0.1초도 아니고 0초였을 겁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계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고 영원한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은 차원엔 영원한 현재만 17만년과 0초의 차이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시간 안의 세계와 시간 밖 세계의 차이입니다. 시간 안의 세상에서는 시간이 과거와 현재, 미래로 분리돼 존재하지만 시간 밖의 빛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한 현재일 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빛은 시간의 영역을 벗어난 세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빛의 존재를 통해 인간의 삶 에 임하는, 시간 밖의 보이지 않는 창조주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저에겐 이것이 만물 안에 나타나는 신적인 특성, 즉 창조주의 신성을 내 인격의 지적 작용을 통해 이해하고 감상하는 좋은 접촉점입니다. 임성빈 : 저도 그 점엔 동의합니다. 시간이 멈춘 차원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차원마다 시간이 다르다는 거죠. 고차원으로 갈수록 점점 느려져 가장 높은 차원인 신의 자리에 가면 영원한 현재만 있죠. 제가 책을 쓰면서 우주 창조 순간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나 힘이나 에너지는 빛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빛의 변화일 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어요. 그럼 이것이 우연히 아무도 없는 데서 갑자기 이뤄진 것이냐. 많은 과학자가 의문을 던졌죠. 이노마타 슈지라는 일본 학자가 생각이나 신, 인간, 의지도 에너지가 되고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논문을 냈더라고요. 만일 창조주가 계시고 창조주의 의지가 있다면 그것이 에너지와 물질로 바뀔 수 있다는 거죠. 창조주가 없다면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와 물질이 나타났는지 설명이 안 되는 거죠. 김재수 : 제 교수님 말씀 중에 우리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점은 신의 개념 중 인격과 지성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의 인격은 인간과 다를 바 없어요. 자기가 창조해놓고도 미워하고 질투하는 신이죠. 제가 말한 지성은 우주의 법칙이에요. 그 법칙으로 창조한 겁니다. 그것은 차원에 따라 다릅니다. 임종록 : 말하자면 정형화된 무엇이 아니라 어떤 흐름에 대한 법칙 자체를 신이라고… 김재수 : 그렇죠. 그것이 인격과는 다른 지성인 거죠. 임종호 :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요. 제원호 : 저도 차이를 잘 못 느끼겠는데요. 창조주의 지혜를 찾아가는 것을 물리학자들은 법칙이라 말하는데, 그것은 지성이라기보다는 전체의 일부분을 본다는 뜻입니다. 저도, 비록 임성빈 박사님이 생각하는 방향성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우주의 생명 현상에는 분명히 어떤 지혜나 방향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연이 아니라는 거죠. 임종호 : 김재수 박사님, 좀 전에 도킨스 같은 말씀을 하신 거죠? 김재수 : 그것과는 또 다른데…. 그 법칙에 방향성이 있었기 때문에 창조가 이뤄진 거예요. 사회 : 잠깐 중간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여기선 설 자리가 없군요.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신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특히 원자물리학을 전공하신 제 교수님이 인격신, 창조주로서의 신을 주장하는 게 흥미롭습니다. 김 박사님은 우주의 법칙을 말씀했는데, 그것은 칼 세이건이 말한 신의 개념과 비슷해 보이네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면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겠다고 했지요. 도킨스는 물리학자들이 그런 개념으로 신을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어쨌든 그런 우주 법칙에 의지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죠. 그건 지적설계론과도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김재수 : 법칙의 방향성이 바로 신이겠지요. 사회 : 임성빈 교수님은 외계인의 개념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신의 개념을 말씀하셨고요. 저항할 수 없는 에너지 임성빈 : 도킨스 같은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종교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신은 만들어진 신이거든요. 종교의 신을 문제 삼는 것이라면 저도 같은 견해예요, 도킨스하고.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요. 제원호 : 저도 동의합니다. 임성빈 : 제 교수님은 창조주나 신은 완벽한 존재이고 인간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신에게 가장 근접한 것이 인간이고 신의 의지가 있다면 인간을 통해 표현된다는 거죠. 말하자면 인간이 신의 일부인데, 부분 속에 전체가 있을 수도 있으니 제가 신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사회 : 논의 방향을 좁혀보면, 우주 법칙이나 생명 현상이 우연이냐 필연이냐, 필연이라면 어떤 의지가 작용했느냐가 되겠죠. 지적설계론까지 포함해서요. 김재수 : 창조의 의도, 방향성이 바로 신성이겠죠. 그 방향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의 개념이 좁아질 수도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신의 인격을 얘기하다가는 자칫 신을 인간적 차원에서만 헤아리게 된다는 거죠. 임종호 : 개별적인 현상들도 실제 차원에서는 다 연결돼 있지요. 네트워크가 그런 얘기죠. 어떤 것들이 서로 연결되려면 필연적 의지가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자기조직화가 안 됩니다. 따라서 법칙은 의지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거대한 의지를 지금의 내가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내가 머무는 차원의 수준만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임종록 : 저는 그 의지가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펼치는 것일 수도, 어떤 법칙으로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저항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자연현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것이 의지가 아닌가 싶어요. 어떤 거대한 존재에 그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이고요. 제원호 : 우주의 역사는 카오스에서 시작해 코스모스로 바뀌어가는 과정입니다. 저도 여기에 의지나 목적, 방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선생님이 얘기하신,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통해 깨닫게 되고 인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장갑 속에 손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 것처럼 인간 안에 창조주가 들어설 공간이 있습니다. 개나 돼지에게는 없지만. 그 안에 들어오는 방향성이 뭔가. 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신은 무한한 사랑과 지혜의 존재입니다. 신은 어디에나 깃들여 있다 임종호 : 도킨스처럼 과학적으로 보면 창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어야 토론이 더 재미있을 텐데…. 과학으로 재단하면 신이 나올 리 없죠. 신이 주신 과학이라는 이성의 도구는 사람 치료에도 쓰이는 등 좋은 점이 많아요. 그런데 환자가 낫는 건 의지 때문이에요. 리처드 파인만(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 얘기한 대로 과학은 현상을 잘 이해하는 전략이지 진리를 찾는 수단은 아니죠. 저는 과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신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봐요. 도가 어디에든 있는 것처럼 신도 어디에든 깃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원호 : 자연의 법칙 속에 나타난 신에는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가 다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접근하든 전체가 아닌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임종호 : 신이 여러 군데 편재하시는 거죠. 임성빈 : 카프라 박사처럼 신과학에 접어든 사람들 중에는 신이나 영성을 부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런데 생물학 쪽에선 아직도 근대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신을 부정하는 것 같아요. 제원호 : 개나 돼지에게는 과거나 미래, 역사나 문화라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창조의 방향성에서 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종착역이 인간의 몸이라는 생각입니다. 시공간의 접점을 천국과 지옥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몸 안과 밖은 전혀 다르죠. 속은 영의 세계이고 밖은 물질의 세계입니다. 영이 없는 동물과 흙이 없는 천사와는 다르게 인간 몸에는 영혼의 접점이 있습니다. 임종록 : 제 교수님 말씀 중에 영혼과 몸이 나왔는데요.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그 중간에 마음을 넣으면 어떻겠습니까. 영혼은 마음의 상위 개념으로 이해되거든요. 그러니까 몸의 차원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시공간을 넘어서는 도구가 마음인 셈이죠. 제원호 : 저는 우주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종합 상황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소우주이고. 보이는 흙과 보이지 않는 영혼이 합쳐진 것이죠. 몸을 통해 의식이나 영이―그것을 마음이라 해도 좋고요―TV스크린처럼 나타납니다. 천사와 동물 임종록 : 임종호 교수님 말씀 중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신적인 영역 아래 과학의 영역이 있다며 과학이 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반대의견을 갖고 있어요. 과학의 영역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과학의 방법론을 통해 신을 이해하는 것이지 과학이 신 밑에서 뭘 한다는 개념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다차원의 과학은 신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임종호: 여기 물리학 하는 분이 계셔서 좀 꺼림칙하긴 한데… 아까 얘기가 나왔듯 현대물리학에서는 11차원이나 그것이 말려 있는 7차원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현실적으로 물리학에서 인정하는 것은 공시 4차원이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3차원의 존재만 인식할 수밖에 없어요. 감각기관을 통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차원 내려와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는 그런 점은 고려하지 않는단 말이죠. 감각의 대상화 문제로 한 차원 밑에 내려와 생활하는데도 그게 전부인 줄 알고 거기서만 인과관계를 찾는 거죠.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공시 4차원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차원 낮은 곳에서 감각의 단면도를 끼워 맞추려니 맞을 리가 없지요. 김재수 : 아까 제 교수님 말씀 중에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것은 분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고 신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종교적 관념과 어떤 개념으로 억지로 쥐어짜는 게 아닌가. 화이트헤드(영국의 수학자, 이론물리학자, 철학자)가 왜 철학자가 되었나.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단 말이에요. 있다는 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거죠. 우리 모두 환상을 보고 있는 거예요. 사실 동물도 우리가 동물이라고 규정하고 이름 지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 뿐 그것도 착각이에요. 신의 개념에서는 분리의식이 없어져야 돼요. 신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하나죠. 임성빈 :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죠. 내가 보기엔 중요한 차이 같지는 않은데. 김재수 : 신의 개념을 인격화하고 한정하면 모순이 생겨요. 교육받아온 종교적인 관념으로 신을 가공하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과학을 통해 느끼는 신은 가슴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신이에요. 아까 제 교수님이 자꾸 신을 종교적 관념으로 묶고 천사와 동물 얘기가 나오는 순간 신과 멀리 떨어진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어요. 제원호 : 쥐어짜는 게 아니고요. 인간의 몸이 신적인 것을 이해하는 통로라는 거죠. 그럼 신이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인격을 통해서죠. 그런 점에서 인격을 언급한 겁니다. 임종호 : 과학은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이에요. 과학의 ‘과’가 나눌 과(科)자이기 때문에 과학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봐요. 반면 신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지요. 목적이 있어서 내려오는 겁니다. 과학의 발견 중에는 직관에 의한 발견이 많아요. 따라서 저는 도킨스가 그런 식으로 생명을 이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요. 우주로부터 끌어오는 비밀 임성빈 : 과학만능주의에 따른 오류죠. 신은 어디에도 있을 자리가 없다든지 하면서…. 김재수 : 지금 우리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3차원, 또는 4차원의 시공간 속에 있는 것 중에 극히 일부를 설명할 뿐이죠. 임종록 : 그게 묶어놓은 과학이라는 거죠. 김재수 : 얼마 전 세계적으로 ‘시크릿(Secret·저명한 저술가, 과학자, 철학자, 성직자 등이 들려주는 부와 성공의 비밀을 담은 DVD와 책)’ 열풍이 불었잖아요. ‘시크릿’의 핵심은 Law of Attraction, 즉 유인(誘引)의 법칙입니다. 그 법칙으로 스스로 창조주가 되는 거죠. 스스로 창조하자는 거죠. 이런 생각이 바로 신의 자격인지 몰라요. 우주로부터 끌어오는 비밀, 신의 본질이 뭐냐. 신은 사랑이라는 거죠. 인격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러브’ 하나로 끝날지도 몰라요. 임성빈 : 신을 논할 때 신의 레벨을 생각지 않으면 안 돼요. 예수가 외계에서 왔다고 믿는 라엘리안 무브먼트 추종자들은 6~8차원까지 진화한 외계인과 채널링이 된다고 주장하죠. 자신들이 얼마나 신과 가까운 존재인지 강조합니다. 심령사도 능력은 좀 부족하지만 우리보다 한 차원을 더 내다보는 것 같아요. 중국의 기공사가 가장 쉽게 배우는 재주 중 하나가 밀봉된 약병에서 약을 꺼냈다 넣는 것입니다. 현 차원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는 아주 쉽게 되는 일입니다. 이처럼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을 이용하는 것을 신적인 현상이라고 하죠. 종종 신격화되기도 하고요. 제원호 : 신과 신적인 요소는 구별하고 싶어요. 인간은 누구에게나 신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 우리도 숙련 정도에 따라 좀 더 높은 차원을 접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특별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불경이나 도덕경을 보면 현대물리학을 공부하지 않고 어떻게 그런 글이 나올 수 있었는지 참 놀랍습니다. 11차원론에 따르면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면 신적인 또는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죠. 사회 : 좌담자들께서 인격신이든 법칙의 신이든 대체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분위기인데, 그 배경엔 인간 중심, 지구 중심의 사고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심판의 날 혹은 세계의 종말을 얘기하고, 과학적으로는 혜성과의 충돌 등에 따른 지구의 종말을 추정합니다. 심지어 외계인과의 우주전쟁까지 얘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설을 상정한다면 신의 의지나 우주의 법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휴거는 차원 변이 임성빈 : 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휴거나 증산교의 천지개벽이나 비슷한 개념이라 보는데, 곧 우주의 질서가 바뀔 거라는 거죠. 인류학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조상을 네안데르탈인으로 여겼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30만년 전에 나타나 3만년 전까지 존재했습니다. 현대인류가 유럽에 나타난 게 4만년 전이니 두 인류는 약 1만년 동안 같이 지냈다고 봐야죠. 그 기간에 네안데르탈인은 완전히 소멸해버렸어요. 그런데 현대인류와 전쟁을 벌여 죽었다면 시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유골이라도. 그런데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유럽 전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그래서 저는 네안데르탈인까지는 영혼이 없었고, 영혼을 가진 현대인류가 등장하면서 4차원의 세상이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차원이 높아지면 그 아래 차원은 그냥 그림자가 되지요. 그런 차원의 변화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이 소멸하지 않았나 싶어요. 만일 그렇다면 휴거니 천지개벽이니 하는 것은 또 한 차례의 인간 진화를 뜻하는 것이고, 지금은 한 단계 더 진화한 인류와 진화하지 않은 인류가 공존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죠.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세상이 오면 진화하지 못한 인간에게는 휴거나 천지개벽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나 싶어요. 김재수 : 지금이 그때라고 보지요. 임종호 : 생물의 진화과정을 보면 진화의 단계가 높은 고등생물일수록 사랑이 더 커지죠. 외계인이 인간보다 진화한 존재라면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저는 UFO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요. 외계인이 우리보다 뛰어난 존재라면 지금 지구에 환경오염 같은 문제가 없어야겠죠. 김재수 : 왜요? 우주엔 불간섭의 법칙이 있어요.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지 왜 남에게… 임종호 : 우리보다 영악했다면 우리를 지배했을 테고요. 우리보다 더 진화했다면 사랑이 넘칠 테니 우리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지구를 이끌었을 거예요. 그러지 않은 것으로 봐 없는 거죠. 김재수 : 너무 단순한 논리로… 임종호 : 아까 더 진화한 인류가 그렇지 못한 인류를 죽였다고 말씀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사랑이 더 커지고 영성이 더 깊어졌을 텐데…. 임성빈 : 그건 아니라니까요. 김재수 : 그건 아니죠. 어차피 말이 나왔으니 차원 변이를 얘기해보죠. 2012~2013년에 지구에 차원 변이가 일어난다고 해요. 2012년에 지구의 자기장이 최저점에 달하고 태양의 폭발에 따른 자기폭풍은 가장 강해진다고 해요. 지금 태양계가 난리예요. 금성은 30년 만에 25배 밝아졌고, 천왕성과 해왕성이 40% 이상 밝아졌고, 목성도 두 배 이상 밝아졌대요. 최근 자료를 보니 그래요. 도대체 이게 뭘 의미하느냐. 바로 차원 변이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인간이 차원 변이에 편승해 진화를 하니 마니 하는 논란이 있죠. 역사 전체를 두고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회 : 김재수 박사께선 그런 일련의 과정에 필연적인 법칙과 방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김재수 : 그렇죠. 지구 자체의 진화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죠. 그것을 신이라 규정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이 우주법칙에는 방향성이 있어서 그 방향성대로 창조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임종호 : 저는 지구의 종말이나 휴거를 멈출 수 있는 게 뭔지를 얘기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중요하다고 봐요. 사실 의학이 이만큼 발전했으면 환자가 덜 아파야 하는데 더 아프단 말이에요. 종말이 온다면, 외적 요인보다는 내부적인 요인, 즉 인간의 본성이 자꾸 썩어가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스스로 창조하라 김재수 : 그래서 스스로의 신성을 깨닫는 게 중요하죠. ‘시크릿’의 핵심은 ‘너 자신이 신이라는 걸 알라’는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창조하라. 제원호 : 우리가 신이라면, 신처럼 온전하다면 왜 이 세상이 악하고 죄가 있고 서로 죽이고 할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신이 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치 바벨탑을 쌓아올리듯이 우리가 하늘에 도달할 수 있다, 신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 때문이라고 봐요. 그런 것이 도리어 세상을 더 악하게 만들죠. 인간이라면 부족함을 느낄 텐데, 자신을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전지전능한 신으로 여기면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영역이 좁아지죠. 자기 가면을 쓰는 것이죠. 사회자께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자꾸 악해지고 우리의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부여한 자유의지로 신을 부정한 탓이죠. 성경적인 표현으로는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인데, 모든 것을 선악으로 재서 나와 안 맞는 것을 원수로 여기고 사랑하지 않게 되면서 죄와 죽음과 고통이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 지금까지는 제 교수님과 저의 생각이 상당히 비슷했는데, 지금 하신 말씀에 대해선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각자의 역할이 있거든요. 현재의 인간사회는 아직 누구나 다 행복하고 사랑이 충만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어요. 저는 전쟁을 싫어하지만 국가의 명령으로 전쟁터에 나간다면 할 수 없이 총을 잡고 싸워야 할 겁니다. 제게 다른 역할이 주어진다면 또 그 역할대로 살아야 할 거고요.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우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는 거죠. 김재수 : 제 교수님이 얘기하는 죄, 선, 악, 죽음은 상대적인 거예요. 절대적인 죄가 없고 절대적인 선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이원성의 게임을 하고 있어요. 신이 우리에게 세상을 맡겨둔 거지요. 지지건 볶건 미워하건 사랑하건. 죽음? 죽음도 어차피 환상이에요. 죽음이 있다는 환상이죠. 시간도 공간도 홀로그래피적인 거예요. 순간이지만 영원이고 티끌이지만 그 안에 삼라만상이 있는. 내가 지금 순간에 살지만 영원성이 있다면 나에겐 죽음이 없는 거죠. 죄? 이것처럼 웃기는 것도 없어요. 이건 신이 벌이는 게임이야. 우리가 지구라는 데 와서 노는 데 필요한 게임의 방식이지. 즐기러 와서는 죄니 영원한 지옥불이니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라이얼 왓슨(모잠비크 출신의 영국 생물학자)의 ‘생명조류’라는 책이 크게 히트했어요. 1960년대 초반에 600만부나 팔렸지요. 이 사람이 죽음이 뭔지를 규정하려고 연구해보니 생명체의 죽음이라는 건 정의할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양자물리학이나 현대물리학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죽음의 실체가 없다는 거예요. 절대선과 절대악을 버려라 임종호 : 그래도 도약이지요. 김재수 : 아니, 현실적으로 그렇다니까. 시간도 에너지고 공간도 하나의 물체라는 것. 색즉시공(色卽是空)은 부처님이 과학을 알고 나서 하신 말씀이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건 예수가 홀로그래피적으로 이야기한 거죠. 어차피 우주가 홀로그래피라면 나는 순간을 살지만 영원을 사는 것이고 나의 존재가 우주에서 티끌이지만 내 안에 무한의 우주가 있는 거죠. 임종호 : 이런 나는 죽겠죠, 하여튼. 김재수 : 그렇죠. 나라고 규정지어진 나는 죽어. 그러나 규정되지 않은 그 무엇은 죽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면 신의 개념도 확 바꿔버려야 해. 우리가 죄니 절대선이니 절대악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을 인정하는 한 인간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격적 개념의 신에 짓눌려 살 수밖에 없어요. 21세기엔 패러다임이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해요. 임종호 : 하나 여쭤볼게요. 상대성이론이 증명되면 절대성이 증명되는 거죠. 왜냐하면 상대론은 절대론과 상대적인 관계니까.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면 상대론은 절대론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상대성이니까. 김재수 : 아니, 절대론은 아래 차원이죠. 무극이에요. 임종호 : 그러면 상대성이 안 되겠네요. 김재수 : 임 교수님, 조금 이상하네. 그건 잘못된 거죠. 상대론은 우리 게임의 모든 것에는 중심이 없다는 겁니다. 나 중심으로 보면 내가 선인데 너 중심으로 보면 악이 되고…. 임성빈 : 김 박사님, 임 교수가 얘기하는 건 철칙은 없다는 거지. 맞아요? 임종호 : 불가(佛家)에서는 상대적인 화두를 타파하면서 절대적인 경지로 나아가잖아요. 열반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이고. 그래서 절대와 상대를 말씀드린 건데. 죄송합니다. 웃기려고 하면 웃지를 않네. (웃음) 김재수 : 제가 말하는 신은 전근대적인 종교로 채색되거나 가공되거나 강요되지 않은 신이에요. 신은 절대자유예요. 절대사랑이고. 제원호 : 김 박사님이 기독교 교리는 잘 아시는 것 같은데 핵심 부분에 대해선 오해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이죠. 그런데 그 사랑은 너무 큽니다. 신적인 사랑은 3만볼트인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00볼트의 전기죠. 신적인 사랑이 변압기의 작용처럼 낮춰져 우리에게 찾아온 게 바로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이유라 생각해요. 그냥 쇼 하려고, 즐기려고 창조한 게 아니라는 거죠. 신의 사랑이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다운되어 우리에게 찾아오는 과정이 바로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몸은 부모를 통해 분명히 흙으로 태어납니다. 우리의 시작은 분명히 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우주적인 신의 사랑을 통해 하늘에 속한 자로 바뀌어 인간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비처럼 똑같이 내리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결국 남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흙으로 다시 돌아갈 때 남는 것이 뭐냐. 철학이 남는 것도 아니고 페이퍼가 남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남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랑은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밖에서 주어진다는 거죠. 임성빈 : 아까 사회자께서 말씀했듯이 여기 모인 분들은 대체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의 독자 중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요. 아쉬운 것은 현대과학을 비롯해 어떤 과학이라도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야, 봐라. 이러니까 신이 있는 거야’라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거죠. 그렇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통해 신의 존재를 느낄 겁니다. 또 죽을 때까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테고. 앞으로 신학과 과학이 자주 만나 신의 존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학은 신을 바르게 이해하는 도구 임종록 : 우리가 에고라는 틀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상대계가 열리면서 신의 영역과 합일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됩니다. 에고를 탈(脫)에고로 바꾸면 신의 영역에 근접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차츰 탈에고 쪽으로 진행되면 내가 전체이고 전체가 나인 세계가 열리고 과학과 신이 합일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희망을 느꼈습니다. 임종호 : 오늘 제가 부드럽게 하려고 좀 웃기려 했는데 못 웃겨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웃기겠습니다. (웃음) 아까 우주의 나이와 관련해 뭐가 잘못됐는지 제가 알아냈어요. 우주가 태어나면서 출생신고를 안 해 이런 혼란이 생겼구나…. (웃음) 출생신고를 했더라면 140억년이든 뭐든 좀 분명해졌을 텐데. 신과 과학은 손등과 손바닥이지요. 둘은 분리될 수 없어요. 백지를 아무리 흔들어도 양면인 것처럼. 그렇지만 손바닥이 손등은 아니잖아요. 그러므로 과학으로 신을 알 수는 없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제일학원도 안 다니고 상아탑학원도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랑을 배워 자식한테 사랑을 베푸는지 신기하다는 거죠. 사랑은 신성이에요. 남한테 주면서 내가 즐겁다는 것이 신성의 본질이라면, 내 속에 있는 사랑은 점차 진화하면서 확률적으로 좋아진 결과라는 도킨스의 주장과는 달리 정말 신이 주신 거죠. 임종록 :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죠. 임종호 : 예. 이 사랑은 우리가 다 갖고 있는 겁니다. 그걸 쓰지 않아서 그렇지. 김재수 :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믿지 않으면 지옥이고 믿으면 천당이라는 얘기는 신의 개념이 아니에요. 과학을 통해 보편적이고 타당한 우주법칙, 사랑의 법칙을 깨닫고, 그것이 바로 창조주이자 신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믿는 것은 사기 칠 수 있거든요. 겁을 주면 돈 내야 하고. 그렇지만 과학은 아는 거예요. 1 더하기 1은 2라는 것을. 정확하게 신을 알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과학의 목적이지 않을까요. 임성빈 : 그게 신과학이지요. 임종호 : 역대 신부님이나 스님 등 여러 종교인과 현대의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우리가 영성을 찾아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종합선물세트? 제원호 : 과학이 인간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과학이 신을 찾아가고 이 땅에서는 알 수 없는 큰 사랑을 알아가는 방법이고 신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부작용은 고쳐야겠지만, 온전하지 못한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 사랑을 만들어내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신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학문을 하는 것도 결국 학문 그 자체보다는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이니만큼 창조과정에 나타난 신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서로 사랑하는 자들로 변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오늘의 주제인 ‘과학과 종교의 만남’은 무척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대략 다 말씀했나요? 좀 더 말하실 게 있는 분은 더 하시고…. 김재수 : 사회자께서 질문을 하시죠. 사회: 정리하는 차원에서 다시 한 번 묻고 싶군요. 내가 생각하는 신은 이러이러하다고. 요약해서. 제 교수님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요. 인격신이고 창조주라고 확고하게 믿고 계시니. 김재수 : 사랑이라는 느낌도 있고 법칙이라는 느낌도 있고 지혜라는 느낌도 있고. 생명, 그냥 살아 있음이라고 느끼기도 하고요. 창조라는 느낌도 있고 평화라는 느낌도 있고 조화로움도 기쁨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 사회 : 좋은 건 다 있네요. 김재수 : 신의 개념을 어떻게 한마디로 정리하겠습니까. 임종호 : 선물세트. 임성빈 : 종합선물세트.(웃음) 김재수 : 아니, 신은 뭐라 규정지을 수 없지만 속성은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어느 순간에 신을 느끼느냐면 정말 기쁠 때, 정말 아름다움을 느낄 때, 내가 뭔가를 창조했을 때, 뭔가를 깨달았을 때, 진짜 사랑을 느낄 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때…. 그리고 정말 자유를 느낄 때 나는 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종호 : 저는 실용적인 신을 말씀드려야겠네요. 치료할 때 신을 자주 모셔오기 때문에. 의사로서 저는 신의 존재와 그에 대한 신념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종종 경험합니다. 제가 얘기하는 신은 제 교수님이 말하는 신과 다릅니다. 호흡을 길게 오래 하다 보면 신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떤 단계에 이르면 신을 영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데, 환자에게 이런 체험을 겪게 하면 병이 낫습니다. 임성빈 : 신에 대한 저의 체험을 얘기해볼까요. 10여 년 전 가을이었어요. 친구 셋과 강원도에 있는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산장에 묵은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저는 마당에 나가 꽃밭의 꽃과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지 인간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그러면서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과 함께 주위 풍광이 달라져 보이는데, 꽃과 나비 같은 생명체는 물론 돌과 바위 같은 무생물조차 생동감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꽃밭에서 발길을 돌려 30~40분 거리에 있는 약수터로 향했는데 그런 느낌이 계속 되면서 우주 전체가 무엇인가로 가득 찬 느낌, 나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 존재 자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더불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온몸에 충만해지더라고요. 사실 이런 느낌은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한 수련의 뒤끝에 온 것이라 아!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생각했죠. 그후 이 세상의 일들이 이 세상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계와도 얽혀 있다는 느낌, 그 속에서 누군가 저를 돌보아주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제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대적이면서 상보적 사회: 오늘 3시간 동안 좌담을 진행했습니다. 좌담에 참석하신 교수님들 모두 어떤 형태의 신이든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종교적 신과 비종교적 신을 두고 논쟁은 있었지만. 아인슈타인이 “종교 없는 과학은 불구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종교는 신으로 바꿔도 무방하겠지요. 오늘 말씀을 들어보니 과학과 신의 영역은 상충하는 게 아니라 서로 포용이 가능하고 보완적인 관계인 것 같습니다. 임성빈 :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신이라는 것은 신을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습니다. 아직은 과학이 신을 부정하는 사람에게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죠. 사회 : 이만 마치겠습니다. 임종호 : 아까 아인슈타인 얘기를 하셨는데, 과학과 신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대로 상대적이지만 또한 상보적이지요. 불확정성 원리이기도 하고요. 사회 : 아니, 다시 시작하는 겁니까. (웃음) 임종호 : 갑자기 생각나서요. 불확정성 원리란 어떤 것이든 한 존재로 떼어 존재할 수 없고 양면의 작용으로 존재한다는 거죠. 상보적 상대성을 좀더 물리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서로 싸우는 상대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김재수 : 그러니까 이원성의 개념이에요. 지구에 즐기러 왔는데 너무 심각해져서 신성을 잊어버린 거예요. 분리의식 속에서. 사회 :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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