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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1 가을수양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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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hy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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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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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His Eye Is On The Sparrow by Big M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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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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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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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참여한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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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110 |
2011-10-21 |
오늘 양식 본문(빌 1:1-11)에서 복음으로 인하여 '매임'(imprisonment), 복음을 '변명'(defense)함과 '확정함'(confirmation)을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바울이 왜 그처럼 복음에 참여한 빌립보 교회에 대해 감사, 기쁨, 사모의 마음으로 가득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교회가 상위 1%에 속하는 곳도 있고, 비난과 무시와 공격의 대상이 되는 곳이 있습니다. 1%가 되는 곳에는 너도나도 몰릴 수 있지만, 복음으로 인해 불편해지는 곳에는 참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는 캠퍼스, 아니 대부분의 세상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복음은 세상으로부터 늘 기소를 당합니다. 예수님부터 그랬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이어 우리도 복음의 증인이라는 이유로 매인 몸이 되고, 출두 고지서를 받고 법정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러한 법정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황은 참 불리하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정 싸움을 보고 한 두 사람이나마 복음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고 복음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기에 이 지루한 싸움은 끝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복음이 진리로 확정 판결이 나는 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이겠지요...
복음으로 인해 쇠사슬에 매이고 이를 변명하기 위해 생명을 무릎쓰고 법정에 서야 하는 어려운 시대에 복음에 참여했던 빌립보 교회처럼, 복음이 기소된 이 시대에 복음을 부끄러워하거나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고, 치열한 참여정신을 가지고 참여하는 동역자들을 생각할 때 깊이 감사가 됩니다. 복음을 변명하러 나오라는 고지서를 받아들고 진리를 확정하기 위해 오늘도 캠퍼스로, 직장으로 나가는 한 분 한 분을 바라보시며 감사하고 기뻐하시고 사모하시는 우리 주님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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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말씀의 은혜 : 타이밍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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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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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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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노트북을 찾아봅니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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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72 |
2011-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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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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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95 |
2011-10-09 |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사생활을 좀처럼 얘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에서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다고 합니다.
인생에 대해, 특히 최고의 자리에 오른 한 사람의 고백을 통해 삶과 죽음을 좀 더 생각하게 됩니다.
구원 얻은 나의 하루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삶을 통하여 IT 혁명을 통한 편리함 대신 하나님 나라 혁명을 통한 구원과 영생을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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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 2005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딱 세가지만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 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그런데 알고 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어서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지금 뒤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자퇴를 하니 평소에 흥미 없던 필수과목 대신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관심 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한 병당 5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또 매주 일요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헤어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고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배웠는데, 서로 다른 문자끼리 결합될 때 다양한 형태의 자간으로 만들어지는 굉장히 멋진 글씨체였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 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인 것이었고, 전 그 것에 흠뻑 빠졌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사실, 이 때만해도 이런 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매킨토시를 처음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아마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인쇄술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제 인생의 고비 때마다 힘이 되워줬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 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일들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세상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만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시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엄지들고 차를 유혹해서 빌려타며 여행하는 것/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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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스텐포드 대학에서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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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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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7 |
<영어 전문>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six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cent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dollars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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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ing 학생 소감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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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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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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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장막 새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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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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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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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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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75 |
2011-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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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Spirit 2일 정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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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홍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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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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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소감-왕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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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fai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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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 |
졸업소감 요절: 요한복음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시즉 아귀까지 채우니 기도: 하나님 아버지 졸업을 이루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5년간의 박사과정을 통하여 죄인의 여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모든 은혜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2장에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자급자족하던 시대라 포도주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아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없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나이다” 하시며 예수님의 거절의 말을 들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거절 앞에서도 마리아는 믿음으로 하인들을 준비시켰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그곳에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는데 하인들이 순종해서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하셨을 때에도 하인들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이 포도주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몰랐지만 하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물을 떠다 주었는데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논문을 감당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인들의 순종의 자세를 배우게 하시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를 깊이 감사합니다. 2004년 2월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저에게 시청에 있는어학원에 직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거리가 멀고 보수가 적고 발전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사무실 전반적인 업무도 함께 하여야 하였습니다. 차 심부름도 하고 지하철역 앞에서 전단지도 돌려야 하였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밤이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곳에서 인내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훈련을 주셨습니다. 이 곳에서 2년 6개월 근무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오전시간 동안 사모님들과 자매목자님들을 동역하면서 피싱을 배웠습니다. 서울대 학생의 신분이 아니라서 겸손하게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피싱 하면서 서울대를 불쌍히 여겨 하나님께 순수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피싱 했지만 2005년 가을 학기 바이블 아카데미에 한명의 양도 초대하지 못하였습니다. 2006년 1:1목자님은 박사과정에 도전해 보도록 했고 부모님에게 물질 지원이 가능한지 물어 보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석사논문을 쓰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서 박사과정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돈도 벌고 ... 소시민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년6개월의 기간의 믿음의 투쟁을 기뻐하시고 2006년 9월에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합격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합격이 발표되던 날 목자님과 함께 감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하고자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간절하게 드렸습니다. 학과 행정실에서 학생증을 받아 이제 서울대 학생의 신분으로 당당하게 피싱을 나갈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학원 개강 전 지리산 팀 스피릿 훈련을 통해 저를 무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루 사이에 1900미터 넘는 천왕봉에 다녀온 것은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저에게 쉽지 않은 코스였습니다. 하지만 땀을 흘리고 끝까지 인내했을 때 정상까지 오르는 승리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공부하는 과정 중에 하나님을 의지해서 계속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불신과 싸워야 하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해야 했으므로 부족한 잠을 지하철 안에서 보충해야 하는 고된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깊이 의지하고 투쟁했을때 하나님께서는 학업의 승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올A를 두학기동안 받게 하셔서 장학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피싱를 해도 한명도 초청하지 못했었는데 대학원 공부하는 내내 양들을 계속 부쳐 주시고 1:1말씀으로 섬기게 하셨습니다. 장등, 호금령, 오금영, 탕앤나, 유아정, 윤총총, 마원중, 김습, 왕유리, 소암. 학기당 평균 3명의 양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 귀한 영혼들을 말씀으로 섬기면서 예수님의 내면성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007년 브루나이 선교지 심방과 2008년 미국 퍼듀 국제수양회 참석과 일본 쎈다이 심방을 다녀오게 하시므로 저의 영적 시야를 넓혀 주셨습니다. 2009년에 저의 지도교수가 바뀌면서 논문 주제도 바뀌게 되어 정식적으로 논문을 작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공에 있는 한국 학생도 학위논문을 어려워하고 시작도 못한 분들이 많아 심리적인 부담감이 커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어도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학문적인 안목이 예리하고 추진력이 있는 김진화 목자님을 통해 논문 앞에서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저를 많이 채찍질해주고 앞으로 밀어주셨습니다. 진화 목자님의 관심과 도움을 받아 저는 힘을 얻어 어려워도 조금 씩 조금 씩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은미를 안고 저를 도와주신 진화 목자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합니다. 목자님의 열정과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녀를 훈련하십니다. 2009년 여름에 논문자료 수집을 위해 상하이에 갔는데 36도의 더운 날씨에 고생도 하고 여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선약을 받지 않아 상하이 시청에 들어 갈 수 없어 이틀간 배회하다가 길거리에 주저 않으려고 했을 때 담당자로부터 만나주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믿음이 없는 제가 도전하는 것을 원하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2010년 6월 논문의 초고가 완성되었지만 지도교수님께서는 완성도를 높여야 하므로 심사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논문을 그냥 통과 시켜주시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의 훈련을 통해 제가 성장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가을에 지도교수님과 학술지 논문을 같이 작업하면서 학술적인 논문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교수님의 요구사항과 교수님의 리듬을 따라가는 연습과 훈련이 계속 되었습니다. 2010년 11월 한,중,일 국제포럼의 통역 및 논문발표를 통해서 전공자로서의 자부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2011년 4월부터 8월 초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마치 크고 작은 터널을 지나가는 과정과 같았습니다. 고민하는 문제가 해결되면 햇빛을 좀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또 문제점이 발견되어 캄캄한 터널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저의 몸과 정신은 마치 빨래를 지어 짜듯이 계속 짜내야 하였습니다. 저에게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논문이라는 항아리에 한 줄 한 줄 써서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내적인 힘, 즉 믿음과 건강과 체력과 집중력을 주셨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에스더 사모님의 헌신적인 기도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사모님은 자기 아이들의 이야기를 안 들어 줘도 저의 고민은 꼭 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풍성한 물질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논문 완성 단계에서는 전공 선생님들의 도움과 지도교수님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부족한 저를 하나님께서는 한 단계 한 단계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그 때 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훈련은 하나님의 선한 의도가 있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부족하며 믿음이 작았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서 저를 조금씩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공부의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저와 하나님 사이에 많은 스토리를 허락해 주시고 사랑과 신뢰의 관계성을 깊이 맺게 하셨습니다. 이 논문을 시작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논문을 완성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2심 심사결과를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논문을 완성해 연회장인 심사위원들에게 논문을 갖다 줬을 때 통과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학위를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습니다. 제가 계속 영적인 깊은 투쟁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족 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계속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캠퍼스에서 형제자매님들의 생명 구원역사에 계속 저를 사용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차이나요회 박충성 목자님과 화요회 목자님들과 센타 목자님들 사모님들 그리고 형제자매목자님들의 사랑과 기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팀 목자님 이셨던 은주사모님 정훈사모님 현정사모님 선덕사모님들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함께 장막생활을 하였던 진화 사모님 미아사모님 사랑사모님 기쁨사모님 미션사모님 미선사모님 세영 사모님 그리고 명옥목자님, 지연목자님, 혜란목자님 여진목자님 감사목자님 인애목자님들의 사랑과 기도에 깊이 감사합니다. 저에게 물질적인 지원과 사랑의 수고를 해주신 부모님과 말씀으로 섬겨 주시고 기도해 주신 정아브라함 목자님 인금철 목자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은혜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한마디 :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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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투표 공지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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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67 |
2011-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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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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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spirit 1일 정리보고.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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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대 |
67 |
2011-08-24 |
정리보고 1일, 제주도를 같이 가다. (개인적인감상입니다 오해가 있을수 있읍니다.)
11명이 사람들이 봉고를 타고 목포를 가게 되었읍니다. 센타에서 출발기도를 한 것은 4시 30분 무렵이었읍니다. 제주도에서의 프로그램들을 생각해볼때에 지금 자놓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 잠을 자고자 하였읍니다. 그러나 제 바로 옆에 계시던 영길목자님의 순수함은 절를 잠 못 이루게 하였읍니다. 제 뒤에 있던 세웅형은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깨어 계셨읍니다. 우리는 늦게 출발하였기 때문에 늦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나 봅니다. 영길목자님은 이런 우리를 대표하여 더 빨리 가라고 금철목자님께 말씀해 주셨고, 금철목자님은 넉넉하게 목포항에 도착하게 해 주셨읍니다. 목포항에서 우리는 먹을래 싸갈래 김밥을 맛있게도 먹어치웠읍니다. 저는 태용형의 칫솔을 빌려 이를 닦았읍니다. 홍렬형은 "바다다~"하며 소년같은 미소를 지으며 호화여객선 스타크루즈호에 그 첫발을 내딛으셨읍니다. 저는 타이타닉호의 축소판 같은 스타크루즈호에 감탄사를 연발하였읍니다. 우리네는 이십명 정도가 같이쓰는 3등석 객실에 둥글게 둘러앉아 하나됨에 관한 말씀을 공부하였읍니다. 말씀은 빌립보서 2장 1절에서 11절 말씀이었읍니다. 저는 말씀 공부중에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있는 세웅형의 다리털을 잡아당기며 말씀에 집중하도록 깨웠지만, 곧 배멀미로 인해 세웅형과 똑같은 행위를 하였읍니다. 세웅형은 그때 깨어 웃으며 제 다리털을 잡아당기어 저는 면목이 없었읍니다. 배멀미 덕분에 저는 말씀에 별롲 비중하지 모사였지만, 2장 3절 말씀을 통해 남에게 관심없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저는 여러가지 유전병으로 남에 대하여 피상적인 열등감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남의 장점은 무엇인지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제 단점과 장점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읍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찾음으로 남에게 관심을 가지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은 죄인의 정체성을 분명이 해야겠다는, 반쯤은 주제와 동떨어진 한마디를 남기고 저는 말씀공부를 끝내었읍니다. 우리네는 식당에서, 한솥도시락을 맛이 있게 먹었읍니다. 스타크루즈호에서 우리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새우며 "원스피릿!"을 많이도 외쳤던 것 같읍니다. 제주도에 내려서는 세웅형의 강추로 '신비의 도로'를 가보기도 하였고, 또한 한라산 등반의 몸풀기로 올레길코스를 따라 4시간 정도를 걷기도 하였읍니다. 올레길은 길을 안내 해주는 표지판이 없어, 올레리본이라는 파란색과 주황색으로 이루어진 끈과, 도로에 새겨진 화살표로 그 방향을 가늠합니다. 그러한데 우리는 올레길 걷기를 시작한지 30분만에 그것들을 놓치었읍니다. 사실 저는 우리가 가는 큰길이 아닌 다른 오솔길에서, 올레리본이 나부끼는 것을 보았고 후에 그 길이 옳은길로 판명되었지만 저는 그 사실을 늦게 말하여 아무도 되돌아가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 보다는 "큰길로 가면 된다"정신으로 제일 큰 도로를 타고 걷게 되었읍니다. 땅에 화살표의 흔적은 있었지만 이길로 가지 말라는듯 검은 라카로 지워져 있었읍니다. 저는 천로역정에서 담을 뛰어 넘어오는 사람들이 생각이 났고 불안하였읍니다, 또한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길을 걷는것이 재미있기도 하였읍니다. 결국 45분 정도를 걸은 후에 옳은 길로 들어서기는 하였읍니다. 우리는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걷는 속도대로 선발대, 후발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중간사람들 3부류로 나뉘어 걸어 갔읍니다. 올레길에서 우리는 [저는 산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읍니다.] 말똥산 (말똥이 100m간격으로 쌓여있었음, 말을 10마리 넘게 보았음)을 등반하고, 반쪽계란산(산모양이 계란 반쪽)을 보았읍니다. 저녁은 저와 종현목자님이 삽겹살과 된장국을 하였고, 보석과도 같은 신 선생님이 제주도 한치를 10마리 잡아서 회쳐주셨읍니다. 한치는 살아있는 상태였고, 맛은 썩은우유처럼 고소하였읍니다. 맛이 상당히 신기하고 좋았읍니다. ===== 댓글에 회 관련 이야기가 나와서 맛을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모습은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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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Spirit Training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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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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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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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Abraham Kim 선교사님 세계대표 취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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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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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0 |
August 6, 2011
Fourth UBF General Director Inaugural Address Pastor Abraham Kim
“"For you know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though he was rich, yet for your sakes he became poor, so that you through his poverty might become rich.”" (2Co 8:9)
Dear friends and fellow-workers in Christ.
Here I stand to submit myself to the calling to assume the duties of the fourth General Director of UBF. I am deeply grateful to God for His grace and to all UBF coworkers for your trust. I’'d like to thank Dr. John Jun for his hard work as General Director for the past five and a half years. He wholeheartedly cared for the frontline missionaries and built up relationships with Christian communities in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May God be with him and M. Sunji Jun and bless the services they want to continue.
As an organization, we have just celebrated the 50th anniversary. We were reminded of the spiritual heritage God bestowed on us through His servants, the Late Dr. Samuel Lee, and Mother Sarah Barry. From the beginning, God led UBF to serve world campus mission through disciple-making. We have devoted our youth, dreams, and desires to obey this commission. Eighteen hundred missionaries have gone to 92 countries, leaving comfortable lives in their homelands. Many of them have endured poverty, cultural and language barriers, persecution and hardships for pioneering self-supporting ministries. God has blessed us by raising thousands of native disciples and 2nd generation missionaries in 400 UBF chapters around the world. Praise be to God who called us to be a royal priesthood and a holy nation and who has done great work among us for the past 50 years!
Before us there are 140 countries that are waiting for UBF missionaries. Even in the U.S.A and Germany, we have reached only 20% of major universities. This is the time we should newly and humbly receive the Lord’'s Great Commission—-“"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Mt 28:19-20). We must move on with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re are economic and political barriers. There are challenges of post-modern cultures. But I am convinced that our Almighty God who has led us for the past 50 years will enable us to carry out this great task if we wholeheartedly obey Him.
While praying for this, the Spirit led me to the words of 2 Corinthians 8:9, “"For you know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though he was rich, yet for your sakes he became poor, so that you through his poverty might become rich.”" For the greatest task of world salvation, our Lord took the way of servantship. He gave up the honor and glory as God. He became a man in order to be our friend. He was born in a stable and lived in poverty.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He served sinners until he gave his life on the cross. He could have chosen other ways, but he chose this way because it was God’'s way. Through his poverty, he made us rich. He set us free from slavery to sin and death and restored God’'s image in us. He gave us meaning and purpose in life; He gave us eternal life and the inheritance of the kingdom of God. He has filled us with love, peace, joy and hope, making us bear the fruit of righteousness through the Holy Spirit. To the Lord and God,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be praise and honor and glory forever! Amen.
The Lord has entrusted His remaining work for world salvation to His church. We know the beautiful epilogue of John’'s gospel. After predicting Apostle Peter’'s martyrdom, the Risen Christ said to him, “"Follow me”"(Jn 20:19). It was the Lord’'s calling for His church to serve the people of the world in His footsteps. If there are other easier ways for the church to fulfill God’'s world salvation purpose, the Lord would have not given this command. Peter and all the other apostles followed the Lord’'s footsteps. Numerous saints followed the Lord’'s footsteps. When Christians followed the Lord’'s footsteps, the church became the light of the world. When Christians followed other ways, the church lost life and influence. God blessed and used UBF because we have followed the Lord’'s footsteps. We are living in a world in which servantship is not honored.
When we served young people giving our lives, however, the Lord filled us with His richness—- not the richness of the world that is temporal, but the richness of heaven that is eternal. And God enabled us to bear fruit that lasts forever. Now many of us have stable lives and ministries, while many missionaries are struggling to keep God’'s lamp burning in their mission fields. This is the time we should look after one another and carry out the Lord’'s Great Commission together. This is the time we should remember the grace of our Lord and newly accept his calling, “"Follow me.”" If we continue to follow the Lord in His footsteps, God will continue to use us for fulfilling His vision for world campuses, and God will bless us and our children. I ask the Lord for his mercy and help so that I may follow His footsteps daily.
I’'d like to ask all of my fellow workers in UBF to join me in prayer for the following spiritual direction:
First, we should restore the spirit and vision we had. We studied God’'s word, prayed for God’'s heart’'s desire, and simply obeyed and went out to preach the good news by faith. Then God enabled us to overcome obstacles and worked with us. We served world mission with a giving spirit. Korea UBF chapters sent out their leaders as missionaries, like Apostle Paul and Barnabas. When they did so, God blessed them to grow in number. For the past 35 years, Korea UBF has sent out one third of its members as missionaries, which is over three times more than the Moravians, who are known to be the most missionary-minded community in history. We change our ways in order to win the people we serve, but we must not change in serving God’'s work in God’'s way—-through faith, obedience, and giving. Let’'s pray that we may serve world mission with a giving spirit and by faith and obedience. I pray that U.S.A UBF chapters may send out one third of their members as missionaries. God is not limited. He will show great things when we serve Him with spirit of giving and vision by faith.
Second, we should live the gospel. Our Lord’'s first message was “"The time has come.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Mk 1:15) The purpose of the gospel is to transform a sinful person into a spiritual person who loves God and loves neighbors. Our discipleship should be focused on this. How can our sinful nature be transformed? It is only through sincere repentance before the word of God. We should daily repent of our selfcenteredness that stands against God so that we are filled with God’'s holiness and love. We should help our Bible students to do the same. We can recruit people by programs, but we cannot raise disciples who practice God’'s love without a work of the Holy Spirit in them through repentance. Without this transforming work, we cannot build a Christian community which God can dwell in and use for his purpose.
Apostle Paul best characterized Christianity when he said, “"If I have a faith that can 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1Co 13:2). Our ministry should be based on God’'s love for one soul. Our community should be built on love for one another. We confess that we didn’'t live the gospel as we should. I ask forgiveness from God and from those who were hurt in our ministry due to our lack of love. Seventy percent of 400 UBF chapters are run by one or two families. They need love, encouragement, and support. Let’'s pray to build a community of love in each city, nation, and continent. Then the Lord will make us a city on a hill that shines God’'s light to the world. The Late Dr. Samuel Lee’'s last words for us were to “"go back to the Bible.”" The Bible is about Christ and his gospel. I believe that God, through Dr. Lee, pointed out the right direction of UBF—-to restore the spirit of giving and vision by faith and to live the gospel through sincere repentance before the word of God.
Third, we should build up native leadership. Raising native leaders is the ultimate goal of our ministry. Native leaders include the 2nd-gens of missionaries and native leaders. God has blessed the sacrifice of our missionaries and raised thousands of potential native leaders. Each chapter should promote an environment in which missionaries work together with native leaders. Each chapter should also have a plan concerning how to build up native leadership including a longrange plan of leadership transfer from missionaries to native leaders. I will work with continental coordinators to develop education programs for raising native leaders.
I’'d like to thank Christian organizations and friends who have shown affection in Christ and support for our organization. I especially thank Dr. John Armstrong and Dr. Scott Moreau at Wheaton College. I also thank Rev. Samuel Ilsik Choe, president of Global Inter-Missions Network. We will continue partnership with Christian communities including the other campus mission organizations for the common purpose of expanding God’'s kingdom on earth. By God’'s grace, we were called to live the life of Jesus’' disciples. We know we have lived the most glorious and wisest life by His grace. Let’'s follow the Lord Jesus to the end. May God fill us with the Spirit of Jesus as we follow his footsteps for fulfilling His commission for world campus evangelization.
I’'d like to ask all UBF coworkers to hold on to the following prayer topics:
1. Sanctification of our inner persons by the word of God
2. Raise disciples through one-to-one Bible studies
3. Raise 100,000 missionaries by 2041 and send them out to 140 countries unreached by UBF and to all major campuses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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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JBF 여름수양회 보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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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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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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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송명희 시인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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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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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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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하반기 양식부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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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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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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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안요셉 선교사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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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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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
안요셉 선교사님 초청 특강
한 알의 밀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
예수님과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충성!” 대학시절부터 현재까지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에 온 인생을 바치신 목자님들을 모시고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같이 묵상하게 된 은혜를 주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당시 지성의 최첨단을 걸었던 그리스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지성인들은 ‘어떻게 죽지 않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지성인들에게 예수님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 한 알의 밀의 진리
다같이 24절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너무나 유명한 진리입니다. 그 증거로 이집트의 파라오 무덤을 팠을 때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약 3,500여 년 전의 것으로 여겨지는 밀알이 발굴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그것이 아직도 한 알의 밀로 남아 있다는 것에 경이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것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을 때,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고 또 죽었다면 많은 열매를 맺어 전 이집트인은 물론, 전 세계 인구를 몇 번이나 먹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저희 인생은 한 알의 밀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실 때 다만 한 생명만 주셨습니다. 한 알입니다. 이 한 알과도 같은 한 생명을 갖고서 절대로 손해보지 않고, 죽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쓴다면 이 한 생명은 그저 ‘한 생명’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알과도 같은 한 생명일지라도 주와 남을 위해 죽으면, 이 한 생명을 통해 또 하나의 새 생명을 배태하는 역사가 생기게 됩니다. 이는 세포분열과 같습니다. 자기가 반으로 쪼개지고 희생할 때, 두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여덟 개가 되고… 수천, 수만 개로 불어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 모두가 다 아는 이 ‘자명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까? 그것도 “진실로 진실로”라고 하시며 온 마음을 다해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죽기만큼 싫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식물들은 이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물들, 특히 사람들이 이를 참으로 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 단순한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합니까? 이는 우리 개개인, 생명을 갖고 있는 모든 것에게 자기 보존의 본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죽으려 할 때, 이 법칙에 따라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여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이 결코 자연스럽게,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고도의 영성을 필요로 하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이 진리를 믿고 가르치셨지만, 막상 이 진리대로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할 때는 몸부림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3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로 승리한 예수님께 사탄은 최후의 공격을 가해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군인들과 무리들, 옆에 매달린 사형수의 절규였습니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자기도 구원할 지어다.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남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구하라!(Save yourself!) 그러면 믿겠노라!” 이것이 바로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우리의 가장 약한 약점입니다. 식물은 죽어 열매를 맺지만, 사람은 죽으면 끝장이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야 남을 돕든지 말든지 하지, 죽으면 어찌 남을 도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탄의 논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이 진리는 식물뿐 아니라 온 생명체들에게 진리입니다.
한 알의 밀인 우리 일생이 때가 되면 단 한 번 죽는 것과 “나는 매일 죽노라!”라고 했던 사도 바울처럼 부활을 믿고 매일 죽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 알로 남든지, 아니면 많은 열매를 맺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가르친 뒤, 말씀대로 땅에 떨어져 죽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2. 한 알의 밀, UBF의 역사
지난 50년 동안의 UBF역사는 바로 ‘한 알의 밀’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새 지도자들이 새로운 방향을 줄 것입니다. 그 후에는 또 다른 지도자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도자가 새로 오든 바뀌든 상관없이 우리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한 알의 밀알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 목자든, 평신도 목자든, 사모든, 요회 목자든, 목동이든, 처음 나온 새내기든,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결단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않고 한 알의 밀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죽어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살 것이냐?’입니다. 그것은 한 번만 결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번, 매일 결단하고 살아야 합니다.
3. 죽지 않으면
저는 65학번입니다. 제 인생 최고의 황금기에 모두가 선망하는 학교에 들어왔지만,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깊은 절망에 처해 있었습니다. 어머님도 가셨고, 곧이어 아버님도 떠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버스비가 없어 보문동에서 낙산을 넘어 대학로에 있는 학교까지 한 시간씩 걸어 다녔습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다니더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그때 제가 좋아하며 생의 무상함을 되새기며 외우던 시 한 구절입니다.
나라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한일협정 반대, 군사독재 타도 등 매일 데모의 연속이었습니다. 거기에 북한은 서울에서 김일성 생일파티를 하겠다며 위협하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저의 괴로운 마음을 달래줄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성경공부에 초청해주셨습니다. 배사라 선교사의 성경공부, “와서 보라, 배사라!”, “Come and See, Sarah Barry’s English Bible Study!”로 66년도에 종로5가 효제동의 UBF회관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자가 남을 위해 인생을 드리는 자로 조금씩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죄를 용서받는 기쁨, 더 나아가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에 쓰임 받는다는 비전에 찬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UBF 생활은 순간순간 말씀에 따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즉 죽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캠퍼스 목자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졸업하면 UBF도 졸업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안마리아 자매와의 약혼을 통해 저를 UBF에 남아있게 하셨습니다. 3년 동안의 군 선교 후, ‘선녀와 나무꾼’ 같은 결혼이 있었습니다.
이때 장인어른은 제가 생전에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큰 집 한 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은 믿지 않는 장인으로부터 이 집을 받으면 주님의 일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거절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더 큰 물질을 주실 것을 믿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질에 대해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 죽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 집을 놓치면 평생 셋방살이나 할 것 같았는데, 주님의 종의 가르침과 마태복음 6장33절 말씀을 붙들고 그 집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진실로 진실로”라고 하신 말씀대로 평생 동안 한 번도 물질 때문에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었고, 물질의 많은 열매를 축복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에 대해서 죽는 훈련은 계속되었습니다. 결혼하고 갓 낳은 아이를 두고서 혼자 선교사로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말이야 쉽지만, 또 한 번 땅에 떨어져 죽는 일이었습니다. 자식과 아내보다 주와 복음을 더 사랑할 수 있느냐는 훈련이었습니다. 약 10년 가량 혼자 선교사로 살아야 하는 죽는 아픔이 따랐습니다. 그 결과 제 내면에는 이 세상 아내와 가정보다 더 귀한 하늘나라의 소망과 기쁨,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성이 생기게 되었고, 예수님은 떨어져 산 기간보다 더 긴 세월을 결혼한 자녀들과 손자들과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주님으로부터 초기 개척기의 선교사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한 죽는 훈련을 계속 받았습니다. 그 다음은 “사랑하는 외교관 직장보다 하나님의 역사를 더 사랑하는가?”였습니다. “외무부에 사표를 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그것도 저의 첫 번째 근무지였던 과테말라 선교사의 생활이 아주 의미가 있었고 좋아서, 외교관 직장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했을 때였습니다.
‘내가 한 알의 밀로서 땅에 떨어져 죽을 수 있을까?’라고 주저하면서도 믿음으로 사표를 던지고 돌아오는 기쁨은 컸습니다. 이제 평신도 생활은 끝내고 풀타임으로 일생을 주께 드릴 수 있다는 것과 주님을 사랑하여 마음에 드는 직장도 버릴 수 있다는 것에 환희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사무엘 선교사님는 잠깐 테스트를 해보려 했을 뿐이요, 진짜 그만두라는 뜻은 아니였다고 말씀하시며 사표를 취소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의 체면을 다 구기면서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사표를 취소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얼굴은 팔렸지만 이제 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 멕시코와 유엔에서 근무하고 10년이 지나 1989년 스페인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시카고로 부르셨습니다. 10년 전에 이미 저는 외무부에 대해 소망을 끊었었기 때문에 사표를 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종으로 주께 불명예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아주 놀랍게도 저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제가 어느 날 사표를 써서 스페인 대한민국 대사관에 출근했을 때, 대사님은 복도에서 저를 기쁜 얼굴로 맞이하며 축하해주셨습니다. 바로 제가 공사급으로 승진했다는 전문을 받아보신 것이었습니다. 10분 뒤 제가 사표를 내던지자, 대사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해 청와대의 공관장 회의에서 여러 주요 안건들이 논의되었지만, 사석에서는 제가 미친 것인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던지 둘 중의 하나라는 논쟁이 찬반으로 엇갈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는 생활은 미국에 도착한 1990년 그 이후가 진짜배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그때 모든 선교사들은 미국 학생들을 위한 비료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셨습니다. 저는 “아멘, 당연한 말씀이시죠.”라고 겉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25년의 선교사, 목자의 경험이 있었고, 마리아 선교사까지 둘이서 같이 주님을 섬기니까 역사가 크게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애쓰고 노력하면 할수록,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 일대일 매주 12팀, 거의 매일 피싱, 일용할 양식쓰기, 이렇게 바쁜 가운데 모든 모임 참석하기까지 정말로 그간의 UBF생활에서 배운 모든 것을 동원했고, 스페인, 과테말라, 멕시코, 유엔, 종로 3부 개척의 모든 것들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래서 곧 100여명의 수양회, 성탄절 참석자들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한 명의 목자도 세우지 못한 채로 10년이 지나갔습니다.
이때 저희들은 “시카고 UBF, 즉 ‘미국’은 우리의 선교지가 아니구나. 잘못 온 것이구나.”라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다른데서는 수년간 그토록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도 열매가 많았는데, 왜 유독 미국에서 만큼은 10여년이 넘도록 온갖 투자를 다 했는데도 이렇게 빈 그물만 올리고 있는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날마다 애써도 되지 않을 때 생각나는 것은 “울려고~ 내가 왔는가~”라고 하는 유행가 가사였습니다. 미국을 탓하고, 고약한 양들을 탓하고, 싹수없는 양들을 탓하는 등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넘쳐서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이때 또다시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진리’가 다가왔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24a)” ‘왜 내가 한 알 그대로 남아있는가? 왜 열매가 없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은 내가 얼마나 수고했는데?!’ 그러나 가만히 주님 앞에서 생각해보니 저의 외부에 드러나는 모든 열심의 뒤에 동기가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시카고에서 시니어 목자요, 선교사로 어찌하든지 모임을 빨리 크게 이루어 모두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여러 선교사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조금 앞서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 오자마자 들었던 “선교사는 비료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속으로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비료가 되기보다 미국 양들을 비료로 삼아 저의 모임, 저의 요회, 저의 이름을 높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간 미국 양들이 왜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양들은 목자보다 더 본능적으로 ‘이 목자가 삯군인가? 아닌가?’ 냄새를 맡을 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와서 남아있다 보면 자신이 결국 저의 비료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게 확실해 보이기에, 진작부터 눈치를 채고 모두 달아났던 것입니다.
저는 마침내 제 내부 동기가 ‘한 알의 밀로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어떻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라는 것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미국에 비료가 되기 위해서 왔다! 미국 학생들을 큰 나무로 키우기 위해서 저를 비료와 거름으로 사용해주옵소서!” 그리고 미국 학생들을 볼 때마다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와! 너는 큰 나무가 될 재목이구나! 내가 너의 비료가 될 테니 내게로 오렴!” 이런 마음으로 미국 학생들을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성경의 많은 부분이 새롭게 영접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의 황태자이면서도 자신 스스로가 땅에 떨어져 죽어 비료가 되신 예수님, 이때 많은 열매를 맺으신 점, 예수님이 제자들의 비료가 되어 3년이나 가르치신 점...’ 그러고 보니 구약의 다윗과 요나단에서 저는 자신을 늘 다윗이라고 외치고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나의 요나단이 되어 나를 위해 희생해 줄 것인가?’라며 제 주위 사람들을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속에서부터 “나는 ‘요나단’이 되어야 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2세들도, 현지 학생리더들도, 선교 동역자들도,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저의 ‘다윗’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간 UBF에서 “나는 구약의 요셉이다!”라며 우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거름이 된 신약의 요셉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요한복음 12장24절 한 구절만 제 마음 속에 진리로 받아들였을 뿐인데, 진리가 저를 자유케 하고 기쁨을 주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까? 그간 아무리 애를 써도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가버리던 양떼들, 여름의 무성한 나뭇잎처럼 몰려왔다가 가을의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던 양떼들에게 변화가 있기 시작한 것입니다. 달아났던 양떼들에게서 돌아와도 괜찮겠느냐는 전화와 그들의 회복의 역사가 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씩 둘씩, 또 그들을 통해 셋씩 넷씩,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미국 학생들에게 역사가 조금씩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 선교사 생활 22년 중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은 제가 예전처럼 그렇게 열심히 안달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양들이 모이는 역사가 조금씩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NEIU에 선교사 열 가정과 현지목자 열 가정이 생겼습니다. 주일예배가 90명대로 오르고 있고, 지난 부활절 수양회에는 121명이 모였고, 크리스마스 때는 160명 가량이 모이는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주님과 저는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여! 지난 66년, 대학 2학년 이래로 약 45년 동안 저의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니,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네 나이가 몇이냐?”, “6학년 5반입니다.”, “내가 아브람을 몇 살에 불렀느냐?”, “75살 때였습니다.”, “40년 광야 훈련 뒤, 내가 모세의 나이 몇 살일 때 그를 불렀느냐?”, “80살 때였습니다.”, “그런데 네 나이는 몇 살이냐? 이제 겨우 6학년 5반, 한국나이로도 6학년 6반 밖에 못 되었지 않느냐? 이제부터 본선에 나가 뛰어야 하느니라.”, “주여, 지난 45년간 성서한국, 세계선교 본선에서 죽자고 뛰었는데요?”, “그것은 준비운동에 불과했느니라!”
목자의 삶과 선교사의 삶은 많은 열매, 즉 천국백성이 많이 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는 선교는 바로 한 알인 나 자신이 얼마나 땅에 떨어져 죽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로 돌리고, 이제부터 이 ‘한 알의 밀의 진리’에 따라 복음역사를 이루는 것에 더욱 매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또 그동안 죽어 많은 열매를 맺은 여러분들, UBF의 모든 동역자분들이 지금까지는 준비운동을 좀 한 것으로 치고, 이제부터는 세계선교의 본선에 진출하여 과거보다 천국의 열매를 한 단계 더 많이 맺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한마디 : 한 알의 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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