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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분의 1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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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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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1 |
다음은 런던올림핀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의 인터뷰입니다.
양학선 단독 인터뷰 "가난이 왜 부끄러워요?"
달동네 소년은 철봉에 매달려 하늘을 바라봤다.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파란 하늘. 10년의 세월이 흘러 소년의 작은 꿈은 마침내 그 하늘에 닿았다. 그리고 소년의 이야기는 '민들레 꽃씨'가 되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퍼지고 있다. '건전한 젊은이 상'과 '효자의 아이콘'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양학선(20·한체대). 10일(한국시간) 런던 올림픽선수촌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런던올림픽 선수촌 근처에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하는 양학선. 런던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 꼭 되돌려주고 싶은 '과분한 사랑' - 대한체조협회 포상금(1억원), SM그룹의 2억 짜리 아파트에 이어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5억원의 격려금을 준다고 하던데….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인터넷에 제 이름 치고 검색해봐요. 너무 좋은 일이죠. 1억도 엄청 큰 돈인데 5억이나 도와주신다니…. 실감이 안나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감사해요." - 평생 지원하겠다는 '너구리' 라면도 화제더군요.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던데…. "사실 어머니(기숙향 씨·43)는 다른 라면을 더 좋아하시는데, 제가 '너구리'만 먹으니까 종종 끓여주시거든요. 라면이 이렇게 이슈가 돼서 놀랐어요. 주변에서 '라면 먹으면 운동 잘 못할 거다'고 하시는데, 매일 밥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라면 먹고도 잘 하면 되죠.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도와주시는 마음이 다 감사한 일이에요." - 팬들은 양학선 선수가 '너구리' 라면 CF를 하면 좋을 것 같다던데…. "CF야 기회가 된다면…. 그런데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 훈련비를 모아 부모님께 드렸다는 얘기 등으로 효자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아요. "에이…. 어느 자식이라도 부모님께 저처럼 했을 거예요. 결과가 잘 나와서 제게 눈길이 쏠리는 거겠죠.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어느 집에서 저보다 더 가난하게 생활하면서 꿈을 키우는 선수들이 있을 거예요. 사실 저희 집도 비닐하우스에서 산 지 2년 됐는데, 이제야 알려진 거잖아요. 제가 그 선수들 마음 누구보다 잘 알죠. 제게 큰 사랑을 주신만큼, 꼭 그런 선수들을 돕고 싶습니다." ● 가난이 왜 부끄러워요? - 부모님께서는 '이런 데 사는 게 아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시더라고요. "부모님이라면 다 그러실 것도 같아요. 하지만 전 한번도 저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어요. 제가 광주체고를 다닐 때에요. 미장일을 하시는 아버지(양관권 씨·53)께서 학교 기숙사 공사장에서 일하셨거든요. 체육관에 가다보면 멀리서 아버지가 보이곤 했어요. 그 때마다 아버지께 달려가서 반갑게 인사하고 그랬는걸요. 부모님이 창피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요. 왜 그걸 부끄러워해야 하나요? 부모님이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데요. 가난해도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열심히만 하면 그 대가는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믿어요. '가난해서 뭘 못했다', 이런 말은 핑계가 아닐까요? 부모님은 제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물려주신 분들이에요. 돈 많아도 안 좋은 분들도 많잖아요." - 어떤 것을 물려주셨나요? "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거짓말 하지 마라. 남 등쳐먹는 것 아니다.' 그래서 항상 정직하게 운동해왔고, 그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 가르침대로 살아야죠. 또 좋은 몸도 물려주셨잖아요. 아버지께서 지금은 마르셨는데요. 젊으셨을 때는 근육도 많고, 날렵하셨대요. 태권도도 잘 하셨다고 하고…. 순발력은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같아요. 어머니는 지금은 살이 좀 찌셨지만…. 저도 런던 오기 직전에 알았는데요. 어머니께서 어릴 적에 육상을 하셨대요. 도마 종목 하려면 도움닫기도 중요하잖아요. 달리는 능력은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것 같아요. 감사해요." ● 힘들 때마다 떠오른 어머니의 눈물 - 부모님은 아들이 방황한 적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출도 하고. "중3 겨울방학 때였어요. 운동이 너무 힘드니까, 운동 안하는 친구들이 부럽더라고요. 그 추운 날씨에도 집 나가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어느 기사 보니까 포항에서 잡혀왔다고 나오던데, 잡혀온 건 아니고요. 경북 구미에서 선배 집에 있다가 제 발로 돌아왔어요." - 그 때 부모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어머니께서 '그렇게 힘들었느냐?'며 오히려 저를 다독여주셨어요. 펑펑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해요. 주름도 그 때 더 많이 생긴 것 같아 죄송해요. 저라고 운동하면서 왜 힘든 때가 없었겠어요. 그 때마다 저를 위해 우시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나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 지금의 양학선이 그 때의 자신에게 한마디를 해준다면? "재능은 있는데 저처럼 삐딱하게 나가려고 하는 후배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지금 그만두면 그간의 노력이 다 날아가잖아. 끝까지 꿈을 꿔보자'라고요." ● 먼 미래의 꿈은 교수 - 달동네에 살던 시절의 양학선은 어땠나요? "그 때는 딱지치기를 참 많이 했는데…. 동네 애들 것 다 따와서, 딱지만큼은 제가 부자였어요. 지는 게 싫어서 손이 바닥에 쓸릴 정도로 딱지를 쳤어요. 어릴 때도 자존심이나 강단은 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어떤 친구가 '피부도 까맣다'며 저를 계속 놀리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얼굴로 주먹이 날아갔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을 시작한 뒤로는 화나는 일이 있어도 한번 더 생각해요. 부모님 얼굴도 떠올리고…." - 언제 체조에 재능이 있다고 느꼈나요? "처음에는 그냥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철봉에서 놀았어요. 트램폴린도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남들보다 체조 기술을 빨리 배우긴 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올라갈 때였어요. 쓰카하라 더블(손 짚고 옆 돌아 몸을 펴고 두 바퀴 비틀기. 양학선이 금메달을 딸 때 구사한 쓰카하라 트리플보다 한 바퀴 덜 도는 기술)을 시도해봤는데 되더라고요."(대한체조협회 김대원 전무이사는 "당시 쓰카하라 더블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쓰던 기술이다. 양학선이 어린 나이에 그 기술을 시도했다면, '도마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며 감탄했다) - 앞으로는 어떤 꿈이 있나요? "일단 4년 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에 도전하려고요. 채점 규정이 바뀌는 것을 봐서 신기술도 만들어야 하고요. 먼 훗날에는 한체대에서 교수를 하는 게 꿈입니다. 제 전문분야가 체조니까, 체조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싶어요. 운동 대신 공부만 하라면, 잘 할 자신 있는데…. 살면서 아쉬웠던 적은 있지만, 한번도 절망한 적은 없었거든요. 어떤 분들이 '큰 관심이 앞으로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고 하시는데,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제가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부모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예의바르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런던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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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성철 스님의 결혼주례사(불교 양 도우실 때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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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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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
우연히 보내되었는데 내용이 재미있고 자신을 불교로 소개하는 양들을 도울 때 대화를 이어갈 꼬투리가 될까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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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딱 두번 밖에 안하셨다는 성철 스님의 결혼 주례사 입니다.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는데, 이 마음이 십년, 이십년, 삼십년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결혼식장에서 약속한 것 다 지키고 살고 계십니까? 이렇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검은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거나,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겠는가
물으면, '예' 하며 약속을 해놓고는 3일을 못 넘기고 3개월, 3년을 못 넘기고 남편때문에 못살겠다, 아내 때문에 못살겠다
이렇게 해서 마음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다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혼하기를 원해 놓고는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하는 게 나았을걸" 하며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럼 안 살면 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해놓고 안 살수도 없고, 이래 어영부영하다가 애기가 생기니까 또 애기 때문에 못하고, 이렇게 하면서 나중에는
서로 원수가 되어 가지고, 아내가 남편을 "아이고 웬수야" 합니다. 이렇게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고생 고생하다가 나이 들면서
겨우 포기하고 살만하다 싶은데, 이제 또 자식이 애를 먹입니다. 자식이 사춘기 지나면서 어긋나고 온갖 애를 먹여 가지고, 죽을
때까지 자식 때문에 고생하며 삽니다. 이것이 인생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혼할 때는 다 부러운데, 한참 인생을
살다보면 여기 이 스님이 부러워, 아이고 저 스님 팔자도 좋다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스님이
되는 것이 좋으면 처음부터 되지, 왜 결혼해 살면서 스님을 부러워합니까? 이렇게 인생이 괴로움 속에 돌고 도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 이유를 말할 테니, 두 분은 여기 앉아 있는 사람(하객들)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이렇게 좋아서 결혼하는데 이 결혼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것저것 따져보는데, 그 따져보는 그 근본 심보는 덕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 汰?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지위는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져 가지고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꼽 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덕볼 수 있는 것을 고르고 고릅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에게 덕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자기가 한 30%주고 70% 덕보려고 하니, 둘이 같이 살면서
70%를 받으려고 하는 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십중팔구는 하게
됩니다. 속은 것은 아닌가, 손해봤다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 좀 적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 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 해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명 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걸 고른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 조선시대에는 얼굴도 안보고 결혼해도 잘 살았습니다. 시집가면 죽었다
생각하거든... 죽었다 생각하고 시집을 가보니 그래도 살만하니까 웃고 사는데, 요새는 시집가고 장가가면 좋은 일이
생길까 기대하고 가보지만 가봐도 별 볼 일이 없으니까, 괜히 결혼했나 후회가 됩니다. 결혼식하고 몇일 안 돼서 부터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기 전부터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랑신부가 둘이서 혼수 구하러 다니다가 의견차이가
생겨서 벌써 다투게 됩니다. 심지어는 안 했으면 하지만 날짜 잡아놔서 그냥 하는 사람들도 제가 많이 봅니다 . 오늘 이
자의 두 사람이 여기 청년 정토회에서 만나서 부처님 법문 듣고 했으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부터는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내가 그래도 저분하고 살면서 저분이 나하고
살면서.. 그래도 좀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 않느냐, 이렇게만 생각을 하면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심보를 잘못 가져놓고 자꾸 사주팔자를 보려고 합니다. 궁합본다고 바뀌는 게
아닙니다. 바깥 궁합 속 궁합 다보고 삼 년을 동거하고 살아봐도 이 심보가 안 바뀌면 사흘 살고
못삽니다. 그러니.. 이 하객들은 다 실패한 사람들이니까 괜히 둘이 잘살면 심보를
부립니다. 남편에게 " 왜 괜히 바보같이 마누라에게 쥐어 사나, 이렇게 할 것 뭐 있나'하고, 아내에게는
" 니가 왜 그렇게 남편에게 죽어 사나, 니가 얼굴 이 못났나 왜 그렇게 죽어 사노' 이렇게..옆에서 살살 부추기며, 결혼할
땐 박수 치지만 내일 부터는 싸움을 붙입니다. 이런 말은 절대 들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실패한 사람들이 괜히
심술을 놓는 것입니다. 남이 뭐라고 해도 " 나는 남편에게 덕되는 일 좀 해야 되겠다. 남이 뭐라 그러든, 어머니가 뭐라
그러든 아버지가 뭐라 그러든,누가 뭐라 그러든 나는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남편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딱 굳혀야 합니다. 괜히 애까지 낳아놓고 나중에 이혼한다고 소란 피우지 말고 지금 생각을 딱 굳혀야
됩니다. 신랑 신부는 그렇게 하시겠어요? 덕 봐야 돼요? 손해 봐야돼요? '손해보는 것이 이익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오늘 두분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반성 좀 해야합니다. 이렇게 두 분의 마음이 딱 합해지면,
어떻게 되느냐, 아내의 오장육부가 편안해집니다. 이 오장육부가 편해지면 어떻게 되느냐, 임신해서 애기를 갖게 될
때 영가들도 죽을 때 초조 불안해 죽은 귀신도 있고, 편안하게 도 닦다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편안한 데는 편안한게
인연을 맺어오고, 초조불안하면 초조 불안한 게 딱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것을 잉태라고 합니다. 태교가 아니고, 잉태할 때
여자가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잉태를 하면, 선신을 잉태를 하고, 심보가 안 좋을 때 잉태를 하면 악신을
잉태합니다. 처음에 씨를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결혼해 가지고 덕보려고 했는데 손해를 보니까, 심사가
뒤틀려 있는 상태에서 같이 자다보니 애가 생깁니다. 기도하고 정성 다해서 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냥 둘이 좋아 가지고
더부덕덥덥 하다보니까 애기가 생겨버립니다. 그러니 이게 처음부터 태교가 잘못됩니다. 이렇게 잉태해 가지고는 성인 낳기는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밥 먹고 짜증내고 신경질 내면, 나중에 위를 해부해보면 소화가 안되고 그냥
있습니다. 이 자궁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오장육부하고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짜증을 내면
오장육부가 긴장이 되어있습니다. 안에 있는 애기가 늘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선천적으로 신장질환이
생기든지 아이가 불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엄마가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원기가 늘 따뜻하게 돌고, 애기가 그안에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나중에 태어나도 선천적으로 도인처럼 편안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어떻든, 세상이 어떻든 애를 가진 이는 편안해야합니다. 편안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편안한 것은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 바로 남편의 영향을 받습니다. 남편이 애는 좋은 애를 낳고 싶으면서 아내를 걱정시키면 좋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애를 가졌다고 하면 집에 일찍 들어오고, 나쁜 것은 안 보여주고, 늘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거들어 줘야합니다. 시어머니들도 손자는 좋은 것을 보고 싶은데, 며느리를 볶으면 손자가 나쁜 애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편안하도록 해줘야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이 편안한 것이 제일 좋고, 주위에서도 이렇게
해줘야합니다. 이렇게 정신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음식을 가려먹어야 합니다. 육식을 조금하고 채식을 많이 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이렇게 해야 애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애기를 낳은 후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둘이서 서로 싸운다면
안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말 배우고,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말 배우고, 일본에서는 일본말 배우고, 원숭이 무리에서 자라면
원숭이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부모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아이의 심성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기가 조그만 하다고 애기를 옆에 두고
둘이서 짜증내고 다투면, 사진 찍듯이 그대로 아기 심성이 결정이 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술 주정하고 그러면 아이가 나는
크면절대로 그렇게 안 할거야 하지만 크면 술 주정합니다. 다투는 집에서 태어나면 자기는 크면 절대로 다투지 않겠다고 하지만 크면
다투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모방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애기를 낳으려면 직장을 다니지 말아요.
아니면 3년은 직장을 그만두어요. 아니면 애기를 업고 직장에 나가든지.. 이렇게 해서 아이를 우선적으로
해야합니다. 아이를 우선적으로 하려면 아이를 낳고, 안 그러려면 안 낳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가 복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인생을 망치는 고생덩어리가 됩니다. 애 때문에 평생 고생하고 살게됩니다. 3년까지만 하면 과외 안 시켜도
괜찮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이렇게 안 하려면 낳지를 말고 낳으려면 반드시 이렇게
하십시오. 그래야 나도 좋고 자식도 좋고 세상도 좋습니다. 잘못 애 낳아서 키워놓으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반드시 이것을 첫째 명심하십시오. 가정에서 이것이 첫째입니다. 두 번째, 제가 신도
분들 많이 만나보면, 애 때문에 시골 살면서 남편 떼어놓고 애 데리고 서울로 이사가는 사람, 애 데리고 미국에 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절대
안됩니다. 두 부부는 애기 세살 때까지만 애를 우선적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합니다. 애기는 늘 이차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대학에 떨어지든지 뭘 하든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누가 제일 중요하냐? 아내요, 남편이 첫째입니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무조건 따라
가십시요. 돈도 필요 없습니다. 학교 몇 번 옮겨도 됩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중심으로 놓고 세상을
살면 아이들은 전학을 열 번 가도 아무 문제 없이 잘삽니다. 그런데 애를 중심으로 놓고 오냐오냐하면서 자꾸 부부가 헤어지고
갈라지면, 애는 아무리 잘해줘도 망칩니다. 여기도 그렇게 사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정신차리십시오. 제 얘기를
선물로 받아 가십시오. 이렇게 해야 가정이 중심이 서고 가정이 화목해집니다. 이렇게 먼저 내가 좋고 가정이 화목한 것을
하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도 기여를 해야합니다. 우리만 잘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늘 내 자식만 귀엽게
생각말고, 이웃집 아이도 귀엽게 생각하고, 내 부모만 좋게 생각하 지 말고 이웃집 노인도 좋게 생각하고, 이런 마음을 내면
어떠냐.. 내가 성인이 되고 자식이 좋은 것을 본받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자식에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합니다. 그런데 늘 자식보다는 부모를, 첫째가 남편이고 아내고, 두 번째는 부모가 돼야 자식이 교육이
똑바로 됩니다. 애를 매를 들고 가르칠 필요없이, 내가 늘 부모를 먼저 생각하면 자식이 저절로 됩니다. 그러니까
애를 키우다 나중에 저게 누굴 닮아 그러나 하면 안됩니다. 누굴 닮겠습니까? 둘을 닮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나쁜 인연을 지어서 나쁜 과보를 받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반드시 인연을 잘 지어서 처음에 조금만
노력하면 나중에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두 부부는 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해야합니다. 자식을 낳으려면
잉태 할때와 뱃속에 있을 때, 세살 때까지가 중요하니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부부가 화합해야 합니다. 주로 결혼해서 틈이 생길
때 애가 생기고, 저 남자와 못살겠다 할 때, 애기를 키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게 저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가 중학교까지 잘 다니다가 고등학교 가더니 그렇다, 친구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그러니 이미 애기가 그렇게 되었거든 지금 엎드려서 참회를 하여야
고쳐집니다. 지금 이 부부는 안 낳았으니까 반드시 그렇게 낳아야 합니다. 세 번째 남편을 아내를 서로 우선시
하고 자식을 우선시 하지 않습니다. 첫째가 남편이나 아내를 우선시하고 둘째가 부모를 우선시하지,
남편이나 아내보다도 부모를 우선시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일단 아내와 남편을 우선시
할 것, 두 번 째 부모를 우선시 할 것, 세번째 자식을 우선시 할 것, 이렇게 우선 순위를 두어야 집안이
편안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사회의 여러 가지도 함께 기여를 하셔야 합니다. 이러면 돈이 없어도 재미가 있고, 비가 새는
집에 살아도 재미가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셔도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즐겁자고 사는 거지 괴롭자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두 부부는 이것을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밖에 가서 사업을 해도 사업이 잘되고, 뭐든지
잘됩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개인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생각 고집해서
살면 결혼 안 하느니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좋은 이 마음 죽을 때까지 내생에까지 가려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따로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살지 않아도, 해탈하고 열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승보살의
길입니다. 제가 부주 대신 이렇게 말로 부주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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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X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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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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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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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짜는 AD 33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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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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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9 |
Quake reveals day when Jesus died. Scientists have deduced the exact day of Jesus’ death to be Friday, April 3, 33 A.D., based on earthquake activities of the time, Discovery News reported Thursday. To find out the precise point Jesus had passed away, an international team of geologists focused on a verse from the Gospel of Matthew, which describes the crucifixion of Jesus. “And when Jesus had cried out again in a loud voice, he gave up his spirit. At that moment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 The earth shook, the rocks split and the tombs broke open,” the book says. Scientists assumed the “the Earth shook” part referred to actual seismic activity in the Death Sea region that took place somewhere between 26 and 36 A.D., when the infamous Pontius Pilate was procurator of Judea. Jefferson Williams of Supersonic Geophysical, Markus Schwab and Achim Brauer of the German Research Center for Geosciences looked at three cores at a beach close to the Dead Sea. They found that at least one earthquake large enough to affect the core had occurred during the time of Jesus. By factoring in the common testimony of four biblical gospels that the crucifixion happened on Friday and Jesus died by nightfall, researchers concluded that April 3, 33 A.D. is the mostly likely candidate. - The Korea Herald.
‘예수의 정확한 사망날짜 밝혀졌다!’
미국과 독일의 지질학자들이 예수가 사망한 정확한 날짜가 기원후 33년 4월 3일이라고 밝혀냈다고 디스커버리 뉴스 등이 보도했다. 미국 슈퍼소닉 지오피지컬의 제퍼슨 윌리엄스, 독일 지구과학 연구소의 마커스 슈밥과 아킴 브라워는 예수의 죽음을 묘사한 성경구절에 나온 ‘땅이 흔들렸다’는 문구를 지진이라고 가정하고 사해 근처의 지질활동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유대지방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재임기간인 기원후 26~36년 사이에 큰 지진이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여기에 예수의 사망 날짜가 금요일로 추정된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연구진은 예수가 기원후 33년 4월 3일, 금요일에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한명인 윌리엄스는 ‘예수의 사후, 주변이 어두워졌다’는 문구가 지진 후 생겨난 먼지보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성경에 언급된 지진이 실제 지진이 아니라 비유였을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 이 연구는 International Geology Review에 게재되었다.
출처 : http://news.koreaherald.com/kh/view.php?ud=20120528000368&cpv=0&md=20120528174309_6
정말일까요?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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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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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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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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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왜 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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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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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7 |
아래 글은 유럽위기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중심을 지키는 독일에 대한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우리도 신록이 무르익는 센터 옆 공원길을 산책하면서 우리의 근본을 묵상하여 강한 개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만복 호서대 기계공학부 교수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 상황에서 독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프랑스와 그리스의 선거 결과로 위기 가능성이 재론되자 다시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주위의 지인들이 묻는다. 독일의 강한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고. 정치 전문가가 아닌 공학도지만, 독일에서 공부하고 독일회사에 오래 근무해 독일을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왜 독일이 강한가? 경험을 통해 나는 바로 산책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독일인들은 유난히 산책을 좋아한다. 산책은 이들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평생 엄격하고 규칙적인 산책 습관을 지킨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를 잘 알고 있다. 또한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유난히 저명한 독일 철학자가 많다. 산책과 철학과 과학기술의 연계성을 찾는 것, 이는 필자에겐 아주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과학이란 결국 자연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가까이 다가가서 함께 호흡하며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산책은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색의 여유를 주며 철학적 사고력을 강화시켜 관념의 합리성과 논리성을 갖추게 한다.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은 결국 과학의 발전으로 연결된다. 고대의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와 근대의 파스칼 등 위대한 철학자들은 모두 뛰어난 과학자였다. 칸트도 수학과 물리학에 심취해 첫 저서가 철학이 아닌 물리학에 관한 것이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을 바탕으로 한 기술력은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무한경쟁력의 토대가 되었다.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철학적 통찰을 모든 학문에 접목시켜 기술과 실제 응용분야의 기본을 강화했다. 이러한 사고의 틀을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국가운영체계에 도입해 시스템화에 성공한 것이 바로 독일의 힘이다. 한마디로 그륀틀리히(gruendlich·근본적)라는 단어가 독일의 사회제도와 독일인의 사고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유럽의 맹주로서 역할을 계속 담당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흔히 독일인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근면과 검소함을 이야기한다. 이들이 원래 근면하고 검소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의 틀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기본적으로 형성된 사고의 틀이 행동에 나타나는 중요성과 함께 국가제도의 틀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간파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은 침몰한다는 말에 공감하고, 중국의 일당 독재 시스템의 붕괴를 예견하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은 일찍이 독일 시스템을 도입해 국가제도와 국민의식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중국 또한 이상하리만큼 테크노크라트로 구성된 국가 지도자들이 독일의 제도를 선호하고 있어 이는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이들은 오래전부터 독일의 합리성과 논리성에 의한 흔들리지 않는 뿌리의 저력을 인지하고 배워 튼튼한 자생력을 갖추었으며, 향후 지속적으로 밑으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능력에 따라 보장하고 추호의 편법을 허락하지 않고, 개인의 관념과 부정부패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 사회구조, 초월적 권력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힘을 요구하는 정치풍토를 이룬 독일의 원동력을 우리는 어떻게 도입하고 배울 것인가? 그동안 많은 지도자가 내놓은, 국가를 위한 수많은 정책의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불안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작금의 국제정세에 우리도 이제 국가 정책과 제도에 “왜”라는 질문을 심각히 던져야 한다. 산책은커녕 빌딩 숲에 둘러싸여 오로지 아스팔트 길을 따라 학원만 오가는 우리 자녀의 정서를 다시금 돌아볼 때다. 이만복 호서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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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혹시, 봄 MT 수양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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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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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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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빠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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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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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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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사고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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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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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8 |
당신이라면 다음 빈칸에 어떤 단어를 넣겠는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 )보다 더 비참하지는 않다. ( )은 모든 고통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것이 '가난'이라고 대답한다. 유대주의는 오랫동안 가난을 일종의 저주로 여겨왔다. "만일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을 모아서 저울 한쪽에 올려놓고 가난을 다른 쪽에 올려놓는다면, 가난이 그 모든 것보다도 더 무겁다." 빵 바구니가 비어 있으면, 불화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①아이들 ②친절함 ③쾌활함 ④평화 ⑤형제·자매 ⑥신발끈 ⑦아내 ⑧수줍음) 놀랍게도 유대 율법은 "관대함에도 지나친 관대함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탈무드 랍비들은 수입의 10% 이상을 자선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어느 누구도 수입의 20% 이상을 자선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나치게 베풀다 가난해져, 결국 그 자신이 다른 사람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죽기 전에 한 번은 유대인을 만나라'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랍비가 1년 365일에 맞춰 하루에 한 꼭지씩 탈무드의 주요 내용을 익힐 수 있게 편찬한 책이다. 알려진 대로 탈무드는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사회의 모든 현상에 대하여 구전·해설한 것을 집대성한 책이다. 기독교나 이슬람에서와 같은 고정된 의미의 경전이 아니라, 1200년 전부터 편찬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는 일종의 '살아 있는' 경전이다. '랍비'라 불리는 정신적 지도자들이 토론해 얻은 중요한 내용이 탈무드의 콘텐츠가 된다. 전 세계 134개국에 걸쳐 1400만 정도인 유대인은 현재 미국에 580만, 이스라엘에 500만명이 살고 있다. 유럽 240만, 라틴아메리카 50만 등의 분포를 보인다. 미국의 학계·정계·언론계·예술계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기본적 의식구조를 파악하는 데 탈무드만한 '교재'가 없다. 가령 '비명을 질러야 할 때 비명을 지르는가'. "만일 끓는 물이 모로코에 있는 한 유대인 머리 위에 끼얹어진다면, 파리나 런던에 있는 참된 유대인은 비명을 질러야 한다. 고통을 함께 느낌으로써, 그는 조국에 충성하는 것이다" 같은 대목은 유대인의 단결력과 집결력을 설명해주는 단서다.
2008년 11월 뉴욕에서 열린 연례 유대인 국제회의에 참석한 세계 72개국 출신의 랍비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이스라엘이 1960~70년대 중동과 수차례 전쟁을 치르며 선제공격을 가한 배후에도 탈무드가 있다. 탈무드는 "누군가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일찍 일어나 먼저 그를 죽이라"고 가르친다. 계획적인 살인을 금하고 있음에도, 다른 마을로 피하라거나 어떻게든 화해를 도모하라고 하지 않고, 선수를 치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이 지침은 개인적인 위협뿐 아니라 국가적인 위협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탈무드 대부분의 내용은 일상생활과 관련되는 것이며, 더할 나위 없이 실용주의적이고 구체적이다. 공허한 구호나 두루뭉수리는 없다. 탈무드는 "(①)은 더 나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①)이 주는 것이라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②)이며, "친구에게 이(齒)를 드러내고 웃는 사람이 친구에게 우유를 건네는 사람보다 낫다"는 구절에서 보듯 유대인들은 (③)을 매우 중요시하고, "(④)는 위대한 것이다. (④)를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진실 또는 사실을 수정하신다"고 말하며, 금치산자가 아닌 이상 부모님이 살아있든 돌아갔든 (⑤)와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가장 큰 불효이며, "아이를 때려야 한다면 (⑥)으로만 때리라"며 자녀를 체벌로 위협하지 말도록 하고, 손님을 초대할 때 제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사람은 (⑦)이고, 유대 전통은 일반적으로 (⑧)과 비공격성을 좋은 덕목으로 여기지만 '토라'(유대 경전) 공부나 일반적인 배움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질문 때문에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괄호의 답은 이 글의 어딘가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되새겨볼 만한 구절이 많다. "다른 모든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데 자신만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코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고통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에." 가장 와 닿은 내용 중 하나는 자녀를 위한 시간을 반드시 내라는 권고다. "만일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을 만큼 바쁘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바라는 것보다 더 바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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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봄 M.T 수양회 (5.11-12, 배꽃향기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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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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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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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단지 제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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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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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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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물고기 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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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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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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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봄수양회 수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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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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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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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2012 부활댄싱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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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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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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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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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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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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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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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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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9 |
독일 출신 미국인 32세 처녀 선교사, 보리밥에 된장국 먹으며…광주=이태훈 기자 <iframe class="title_ad" src="http://news.chosun.com/common/r_search/article/index.html" width="200px" height="70px" frameborder="0" scrolling="no" marginheight="0" marginwidth="0" style="margin-top: 0px; margin-right: 15px; margin-bottom: 0px; margin-left: 0px; padding-top: 0px; padding-righ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left: 0px; border-top-width: 0px; border-right-width: 0px; border-bottom-width: 0px; border-left-width: 0px; border-top-style: none; border-right-style: none; border-bottom-style: none; border-left-style: none; border-color: initial; border-color: initial; border-color: initial; border-color: initial; float: right; "></iframe>기사 100자평(35) 크게 작게 입력 : 2012.03.18 20:34 | 수정 : 2012.03.19 05:07 간호사 교육을 받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마친 당시의 젊은 서서평(엘리자베스 셰핑) 선교사. 독신 여성 간호 선교사로 조선 땅에 와서,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평생 병들고 가난한 조선인과 나환자들을 섬기며 살았다. /Serving the People 제공 “1934년 6월 서서평 선교사는 광주에서 만성풍토병과 과로, 영양실조로 숨졌습니다. 그녀가 남긴 건 담요 반 장,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뿐이었습니다. 한 장 남았던 담요는 이미 반으로 찢어 다리 밑 거지들과 나눴습니다. 시신도 유언에 따라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됐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 조선에서 22년간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고 고무신을 끌고 다니며 ‘조선인의 친구’가 아니라 그저 ‘조선인’으로 살았던 사람. 가난하고 병든 이웃, 나환자들을 죽기까지 섬겼던 그 사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왔습니다….” 서서평(본명 엘리제 셰핑·1880~1934) 선교사 기념사업 경과보고를 하던 양국주(63) 씨가 잠시 울먹였다. 17일 광주광역시 양림동 기독간호대학 안 오웬기념각. ‘서서평 선교사 내한 100주년 기념 예배 및 서서평 평전 출판 기념회’에 모인 1000여명의 사람이 여기저기서 함께 눈가를 훔쳤다. 독일 출신 미국인인 서서평 선교사는 1912년 32살의 나이에 처음 조선에 온 처녀 간호 선교사였다. 당시 조선은 나라를 잃은 슬픔 속에 제 백성 돌볼 엄두도 못 내던 나라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병고에 시달리는 몸으로 광주 제중원 등을 중심으로 전라도 일대와 제주도를 끊임없이 순회하며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가난한 여인들을 가르쳤다. ◇14명의 양자·양녀, 38명의 과부 거둬 서서평이 바라본 조선 땅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번 순회 진료와 전도 여행을 나서면 한 달 이상 말을 타고 270㎞ 이상 거리를 돌았다. 진흙탕에 말이 쓰러지면 머리에 이고 백릿길을 걸었다. “이번 여행에서 500명 넘는 조선여성을 만났지만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열 명도 안 됐습니다. 조선 여성들은 ‘돼지 할머니’ ‘개똥 엄마’ ‘큰년’ ‘작은년’ 등으로 불립니다. 남편에게 노예처럼 복종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들을 못 낳는다고 소박맞고, 남편의 외도로 쫓겨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팔려 다닙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우쳐주는 것이 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1921년 내쉬빌 선교부에 보낸 편지) 서서평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교인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의 전신)를 세워 여성들을 가르쳤다. 조선간호부협회(현 간호협회의 전신)를 세우고 일본과 별도로 세계 간호사협회에 등록하려 애썼던 이도 서서평이다. 한글 말살정책이 진행 중인 일제 치하에서 간호부협회의 소식지와 서적들은 모두 한글 전용을 고집했다. 조선사람들에겐 출애굽기를 가르치며 독립의 확신을 심어주려 애썼다. 1914년 광주 제중원 여성 성경공부반의 조선 부인과 함께 선 서서평(엘리자베스 셰핑) 선교사. 독신 여성 간호 선교사로 조선 땅에 와서, 한복에 고무신을 신고 평생 병들고 가난한 조선인과 나환자들을 섬기며 살았다. /Serving the People 제공 ◇출애굽 정신 가르치며 한글 사용 고집 1929년 조선간호부협회를 세계협회에 가입시키기 위해 갔던 미국에서, 서서평은 갓 1살 된 자신을 할머니에게 버려두고 떠났던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어머니는 “니 몰골이 내 딸이라 하기에 부끄러우니 썩 꺼지라”고 서서평을 내쳤다.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서서평은 수양딸 13명과 나환자의 아들 1명 등 14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해 기른 ‘조선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냥 데려다 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시집가도록 돕고, 소박이라도 맞으면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다. 1933년에는 서서평은 조선인 목회자 등 동역자들과 함께 50여명의 나환자를 이끌고 서울로 행진을 시작했다. 강제 거세 등으로 나환자들의 씨를 말리는 정책을 펴고 있던 일제 총독부에 나환자들의 삶터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소식을 들은 전국 각지의 나환자들이 이 행진에 합류했다. 서울의 총독부 앞에 이르렀을 때 동참한 나환자들의 숫자는 530여명에 달했다. 결국 총독부도 두 손을 다 들었다. 소록도 한센병환자 요양시설과 병원은 이렇게 시작됐다. ◇장례행렬 나환자들 “어머니” 부르며 오열 최초의 광주시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를 땐 수천의 광주 시민과 나환자들이 쫓아 나와 “어머니”를 부르며 오열했다. 당시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백만장자의 귀한 위치에서 하인을 두고 차를 몰고 다니는 선교사들, 동족의 비참한 생활에 눈감고 오직 개인 향락주의로 매진하는 신여성들이 양심에 자극을 받길 바란다”고 썼다. 그가 한국땅을 밟은 지 100년을 맞은 올해에야 기념사업회가 세워졌다. 양창삼 한양대 명예교수의 ‘조선을 섬긴 행복’, 양국주 씨의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이상 Serving the People 펴냄) 등 평전 2권이 세상에 나왔다. 재미교포인 양국주 씨는 미 재무부 등록 전쟁·재난 구호 NGO ‘열방을 섬기는 사람들(Serving the Nations)’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서서평 선교사는 남자가 아닌 독신여성, 목사가 아닌 평신도, 의사가 아닌 간호사라는 이유로 잊혀 있었다. 유산 놓고 다투는 부잣집 자식들처럼 가진 게 너무 많아 근심뿐인 한국교회가 다시 돌아봐야 할 분”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기념식 뒤 인근 호남신학대 캠퍼스 언덕 위의 선교사 묘역으로 갔다. 이끼 낀 서서평 선교사의 묘비에 화환이 놓였다. 설교를 맡은 서서평기념사업회 회장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원로)의 목소리는 피를 토하듯 절실하게 느껴졌다. “여수 애양원에서 나환자를 섬겼던 손양원 목사의 삶, 그리고 서서평 선교사의 삶.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게 원본입니다. 말기암 환자인 91세 박재훈 목사가 손양원 목사를, 뇌졸중으로 쓰러져 다리를 쩔뚝이는 양국주 대표가 서서평의 삶을 이 땅에 되살려냈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대응되는 실제가 없는 공허한 단어로만 말해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논리가 아닙니다. 삶이며 생명 그 자체입니다. 믿음은 늘 구체적인 삶의 용솟음입니다. 손양원과 서서평이라는 믿음의 원본을 다시 갖게 된 것을 감사합시다. 한국교회는 이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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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Absolut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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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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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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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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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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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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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탭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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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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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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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정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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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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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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