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35 no image [동영상] 2011년 부활댄싱 연습 [1]
[레벨:20]서진우
81 2011-04-20
534 no image [펌] 총장실 프리덤
[레벨:20]서진우
47 2011-06-10
533 no image 형제 장막 새 이름 [7]
[레벨:20]서진우
113 2011-09-22
532 no image [시] 가을 [2]
[레벨:20]서진우
75 2011-09-08
531 [공지] 투표 공지 파일 [6]
[레벨:20]서진우
67 2011-08-26
530 no image [펌] His Eye Is On The Sparrow by Big Mama [2]
[레벨:20]서진우
60 2011-10-24
529 no image [펌] 시에 관한 명언들 [2]
[레벨:20]서진우
43 2011-12-15
올해도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듣는 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찬송시들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에 관한 좋은 글이 있어 올립니다. ----------------- 1. 그 속에 한 조각의 애처로움도 없는 시는 씌어지지 않는 편이 낫다. -오스카 와일드 2. 내가 시를 만든 것이 아니다 . 시가 나를 만든 것이다. -괴테 3. 산문은 저녁과 밤을 그릴 수 있 지만, 시는 새벽을 노래하는 데 필요하다. -메레디스 4. 시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선한 마음의, 가장 선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셸 리 5. 시는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며, 시를 쓴다거나 감상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다. -루이스 6. 시는 마음속의 불꽃이고 수사학(修辭學)은 눈송이다. 불길과 눈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칼릴 지브란 7. 시는 번갯불의 섬광이어서, 어휘들의 배열로만 끝날 때는 단순한 작 문에 불과하다. -칼릴 지브란 8. 시는 불가해한 것에의 탐구이다. -스티븐스 9.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근엄하며 더 중요한 무엇 이다. 역사가 말해 주는 것은 독특한 것들이지만, 시가 말해 주는 것은 보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10. 시는 오직 사물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슬기롭고도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것 은 매우 중요하다. -아널드 11. 시는 인류의 모국어이다. - 허먼 12. 시란 강력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그것은 고요한 가운데 회상되는 감정에서부터 솟아난다. -워즈워드 13. 시란 덕(德) 의 표현이다. 훌륭한 정신과 훌륭한 시적 재능은 언제나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위고 14. 시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때 쓰는 것이다. -유치환 15. 시란 정을 뿌리로 하고 언어를 싹으로 하며 운율(韻律) 을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 -백거이 16. 시를 읽으면 품성이 맑게 되고 언어가 세련되며 물정에 통달되니 수양과 사교 및 정치 생활에 도움이 된다. -공자 17. 두 종류의 시인이 있다. 하나는 교육 과 실습에 의한 시인, 우리는 그를 존경한다. 또 하나는 타고난 시인, 우리는 그 를 사랑한다. -에머슨 18. 시인들은 모든 감각을 한없이 오랫동안 신중하게 교란시킴으로써 자신을 환상가로 만든다. -랭보 19. 시인은 이 세상을, 남자가 여자를 보듯이 본다. -스티븐스 20. 시인은 어둠 속에 앉아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나이팅게일 이다. -셸리 21.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일하는 만큼 화가나 음악가보다 진실에 대해 큰 구실을 하게 된다. -사이페르트 22. 시인 은 영혼의 화가다. -디즈레일리 23. 시인(예술가)은 인간성의 옹호자 이며 보존자이다. -워즈워드 24. 시인이나 예술가가 실제로 실현시킨 것 이상의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를 읽거나 그림이나 조각을 보는 것 등의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다니엘 호돈 25. 시인이란 그 마음속에는 남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고뇌를 감추고 있으면서, 그 탄식과 비명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 입술을 가지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다. -키에르케고르 26. 알려진 우주에는 한 사람의 완전한 연인(戀人)이 있으니, 그는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휘트먼 27. 언어를 살려놓는 수단은 시인의 심성과, 그의 입술과그의 손가락들 사이 에 존재한다. 시인이란 창조적인 힘과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중개자이다. 그는 영혼의 세계에 대한 소식을 연구의 세계로 전달하는 전보이다. 시인은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따라 가는 언어의 아버지요 어머니이다. 그가 죽으면 언어는 뒤에 남아 그의 무덤 위에 몸을 던지고는 다른 어떤 시인이 와서 일으켜 세 워 줄 때까지 슬피 흐느껴 운다. -칼릴 지브란 28. 위대한 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쓰면서 동시에 자기 시대를 그린다. -엘리엇 29. 진 짜 시인은 시도해 보는 것으로써 훨씬 아름다움의 비밀을 발견한다. 그것은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마침내 어떤 기도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내용을 펼치기 때문이다 . -알랭 30. 진정한 시인은 자기 자신의 소질에게 생기는 사상과 영원한 진리에서 오는 사상 외에 그 시대의 온갖 사상의 총체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고
528 no image [영상] 2012 부활댄싱 연습
[레벨:20]서진우
134 2012-03-30
527 [링크] 봄수양회 수양관 파일
[레벨:20]서진우
58 2012-04-14
526 [공지] 봄 M.T 수양회 (5.11-12, 배꽃향기 펜션) 파일
[레벨:20]서진우
68 2012-04-26
525 no image [펌] 성철 스님의 결혼주례사(불교 양 도우실 때 참고하세요) [6]
[레벨:20]서진우
109 2012-07-04
우연히 보내되었는데 내용이 재미있고 자신을 불교로 소개하는 양들을 도울 때 대화를 이어갈 꼬투리가 될까하여 올립니다. --------------------------------------------------------------------------------------------------------------- 일생에 딱 두번 밖에 안하셨다는 성철 스님의 결혼 주례사 입니다.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는데, 이 마음이 십년, 이십년, 삼십년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결혼식장에서 약속한 것 다 지키고 살고 계십니까? 이렇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검은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거나,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겠는가 물으면, '예' 하며 약속을 해놓고는 3일을 못 넘기고 3개월, 3년을 못 넘기고 남편때문에 못살겠다, 아내 때문에 못살겠다 이렇게 해서 마음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다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혼하기를 원해 놓고는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하는 게 나았을걸" 하며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럼 안 살면 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해놓고 안 살수도 없고, 이래 어영부영하다가 애기가 생기니까 또 애기 때문에 못하고, 이렇게 하면서 나중에는 서로 원수가 되어 가지고, 아내가 남편을 "아이고 웬수야" 합니다. 이렇게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고생 고생하다가 나이 들면서 겨우 포기하고 살만하다 싶은데, 이제 또 자식이 애를 먹입니다. 자식이 사춘기 지나면서 어긋나고 온갖 애를 먹여 가지고, 죽을 때까지 자식 때문에 고생하며 삽니다. 이것이 인생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혼할 때는 다 부러운데, 한참 인생을 살다보면 여기 이 스님이 부러워, 아이고 저 스님 팔자도 좋다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스님이 되는 것이 좋으면 처음부터 되지, 왜 결혼해 살면서 스님을 부러워합니까? 이렇게 인생이 괴로움 속에 돌고 도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 이유를 말할 테니, 두 분은 여기 앉아 있는 사람(하객들)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이렇게 좋아서 결혼하는데 이 결혼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것저것 따져보는데, 그 따져보는 그 근본 심보는 덕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 汰?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지위는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져 가지고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꼽 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덕볼 수 있는 것을 고르고 고릅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에게 덕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자기가 한 30%주고 70% 덕보려고 하니, 둘이 같이 살면서 70%를 받으려고 하는 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십중팔구는 하게 됩니다. 속은 것은 아닌가, 손해봤다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 좀 적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 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 해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명 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걸 고른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 조선시대에는 얼굴도 안보고 결혼해도 잘 살았습니다. 시집가면 죽었다 생각하거든... 죽었다 생각하고 시집을 가보니 그래도 살만하니까 웃고 사는데, 요새는 시집가고 장가가면 좋은 일이 생길까 기대하고 가보지만 가봐도 별 볼 일이 없으니까, 괜히 결혼했나 후회가 됩니다. 결혼식하고 몇일 안 돼서 부터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기 전부터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랑신부가 둘이서 혼수 구하러 다니다가 의견차이가 생겨서 벌써 다투게 됩니다. 심지어는 안 했으면 하지만 날짜 잡아놔서 그냥 하는 사람들도 제가 많이 봅니다 . 오늘 이 자의 두 사람이 여기 청년 정토회에서 만나서 부처님 법문 듣고 했으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부터는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내가 그래도 저분하고 살면서 저분이 나하고 살면서.. 그래도 좀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 않느냐, 이렇게만 생각을 하면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심보를 잘못 가져놓고 자꾸 사주팔자를 보려고 합니다. 궁합본다고 바뀌는 게 아닙니다. 바깥 궁합 속 궁합 다보고 삼 년을 동거하고 살아봐도 이 심보가 안 바뀌면 사흘 살고 못삽니다. 그러니.. 이 하객들은 다 실패한 사람들이니까 괜히 둘이 잘살면 심보를 부립니다. 남편에게 " 왜 괜히 바보같이 마누라에게 쥐어 사나, 이렇게 할 것 뭐 있나'하고, 아내에게는 " 니가 왜 그렇게 남편에게 죽어 사나, 니가 얼굴 이 못났나 왜 그렇게 죽어 사노' 이렇게..옆에서 살살 부추기며, 결혼할 땐 박수 치지만 내일 부터는 싸움을 붙입니다. 이런 말은 절대 들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실패한 사람들이 괜히 심술을 놓는 것입니다. 남이 뭐라고 해도 " 나는 남편에게 덕되는 일 좀 해야 되겠다. 남이 뭐라 그러든, 어머니가 뭐라 그러든 아버지가 뭐라 그러든,누가 뭐라 그러든 나는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남편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딱 굳혀야 합니다. 괜히 애까지 낳아놓고 나중에 이혼한다고 소란 피우지 말고 지금 생각을 딱 굳혀야 됩니다. 신랑 신부는 그렇게 하시겠어요? 덕 봐야 돼요? 손해 봐야돼요? '손해보는 것이 이익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오늘 두분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반성 좀 해야합니다. 이렇게 두 분의 마음이 딱 합해지면, 어떻게 되느냐, 아내의 오장육부가 편안해집니다. 이 오장육부가 편해지면 어떻게 되느냐, 임신해서 애기를 갖게 될 때 영가들도 죽을 때 초조 불안해 죽은 귀신도 있고, 편안하게 도 닦다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편안한 데는 편안한게 인연을 맺어오고, 초조불안하면 초조 불안한 게 딱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것을 잉태라고 합니다. 태교가 아니고, 잉태할 때 여자가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잉태를 하면, 선신을 잉태를 하고, 심보가 안 좋을 때 잉태를 하면 악신을 잉태합니다. 처음에 씨를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결혼해 가지고 덕보려고 했는데 손해를 보니까, 심사가 뒤틀려 있는 상태에서 같이 자다보니 애가 생깁니다. 기도하고 정성 다해서 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냥 둘이 좋아 가지고 더부덕덥덥 하다보니까 애기가 생겨버립니다. 그러니 이게 처음부터 태교가 잘못됩니다. 이렇게 잉태해 가지고는 성인 낳기는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밥 먹고 짜증내고 신경질 내면, 나중에 위를 해부해보면 소화가 안되고 그냥 있습니다. 이 자궁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오장육부하고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짜증을 내면 오장육부가 긴장이 되어있습니다. 안에 있는 애기가 늘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선천적으로 신장질환이 생기든지 아이가 불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엄마가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원기가 늘 따뜻하게 돌고, 애기가 그안에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나중에 태어나도 선천적으로 도인처럼 편안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어떻든, 세상이 어떻든 애를 가진 이는 편안해야합니다. 편안하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편안한 것은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 바로 남편의 영향을 받습니다. 남편이 애는 좋은 애를 낳고 싶으면서 아내를 걱정시키면 좋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애를 가졌다고 하면 집에 일찍 들어오고, 나쁜 것은 안 보여주고, 늘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거들어 줘야합니다. 시어머니들도 손자는 좋은 것을 보고 싶은데, 며느리를 볶으면 손자가 나쁜 애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편안하도록 해줘야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이 편안한 것이 제일 좋고, 주위에서도 이렇게 해줘야합니다. 이렇게 정신이 중요하고, 두 번째는 음식을 가려먹어야 합니다. 육식을 조금하고 채식을 많이 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고 이렇게 해야 애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애기를 낳은 후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둘이서 서로 싸운다면 안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말 배우고, 미국에서 태어나면 미국말 배우고, 일본에서는 일본말 배우고, 원숭이 무리에서 자라면 원숭이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부모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아이의 심성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기가 조그만 하다고 애기를 옆에 두고 둘이서 짜증내고 다투면, 사진 찍듯이 그대로 아기 심성이 결정이 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술 주정하고 그러면 아이가 나는 크면절대로 그렇게 안 할거야 하지만 크면 술 주정합니다. 다투는 집에서 태어나면 자기는 크면 절대로 다투지 않겠다고 하지만 크면 다투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로 모방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애기를 낳으려면 직장을 다니지 말아요. 아니면 3년은 직장을 그만두어요. 아니면 애기를 업고 직장에 나가든지.. 이렇게 해서 아이를 우선적으로 해야합니다. 아이를 우선적으로 하려면 아이를 낳고, 안 그러려면 안 낳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가 복 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인생을 망치는 고생덩어리가 됩니다. 애 때문에 평생 고생하고 살게됩니다. 3년까지만 하면 과외 안 시켜도 괜찮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이렇게 안 하려면 낳지를 말고 낳으려면 반드시 이렇게 하십시오. 그래야 나도 좋고 자식도 좋고 세상도 좋습니다. 잘못 애 낳아서 키워놓으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반드시 이것을 첫째 명심하십시오. 가정에서 이것이 첫째입니다. 두 번째, 제가 신도 분들 많이 만나보면, 애 때문에 시골 살면서 남편 떼어놓고 애 데리고 서울로 이사가는 사람, 애 데리고 미국에 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절대 안됩니다. 두 부부는 애기 세살 때까지만 애를 우선적으로 하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합니다. 애기는 늘 이차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대학에 떨어지든지 뭘 하든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누가 제일 중요하냐? 아내요, 남편이 첫째입니다. 남편이 다른 곳으로 전근가면 무조건 따라 가십시요. 돈도 필요 없습니다. 학교 몇 번 옮겨도 됩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중심으로 놓고 세상을 살면 아이들은 전학을 열 번 가도 아무 문제 없이 잘삽니다. 그런데 애를 중심으로 놓고 오냐오냐하면서 자꾸 부부가 헤어지고 갈라지면, 애는 아무리 잘해줘도 망칩니다. 여기도 그렇게 사는 사람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정신차리십시오. 제 얘기를 선물로 받아 가십시오. 이렇게 해야 가정이 중심이 서고 가정이 화목해집니다. 이렇게 먼저 내가 좋고 가정이 화목한 것을 하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도 기여를 해야합니다. 우리만 잘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늘 내 자식만 귀엽게 생각말고, 이웃집 아이도 귀엽게 생각하고, 내 부모만 좋게 생각하 지 말고 이웃집 노인도 좋게 생각하고, 이런 마음을 내면 어떠냐.. 내가 성인이 되고 자식이 좋은 것을 본받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불효하고 자식에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합니다. 그런데 늘 자식보다는 부모를, 첫째가 남편이고 아내고, 두 번째는 부모가 돼야 자식이 교육이 똑바로 됩니다. 애를 매를 들고 가르칠 필요없이, 내가 늘 부모를 먼저 생각하면 자식이 저절로 됩니다. 그러니까 애를 키우다 나중에 저게 누굴 닮아 그러나 하면 안됩니다. 누굴 닮겠습니까? 둘을 닮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나쁜 인연을 지어서 나쁜 과보를 받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반드시 인연을 잘 지어서 처음에 조금만 노력하면 나중에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두 부부는 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해야합니다. 자식을 낳으려면 잉태 할때와 뱃속에 있을 때, 세살 때까지가 중요하니 마음이 편안해야 하고 부부가 화합해야 합니다. 주로 결혼해서 틈이 생길 때 애가 생기고, 저 남자와 못살겠다 할 때, 애기를 키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게 저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애가 중학교까지 잘 다니다가 고등학교 가더니 그렇다, 친구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그러니 이미 애기가 그렇게 되었거든 지금 엎드려서 참회를 하여야 고쳐집니다. 지금 이 부부는 안 낳았으니까 반드시 그렇게 낳아야 합니다. 세 번째 남편을 아내를 서로 우선시 하고 자식을 우선시 하지 않습니다. 첫째가 남편이나 아내를 우선시하고 둘째가 부모를 우선시하지, 남편이나 아내보다도 부모를 우선시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일단 아내와 남편을 우선시 할 것, 두 번 째 부모를 우선시 할 것, 세번째 자식을 우선시 할 것, 이렇게 우선 순위를 두어야 집안이 편안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사회의 여러 가지도 함께 기여를 하셔야 합니다. 이러면 돈이 없어도 재미가 있고, 비가 새는 집에 살아도 재미가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셔도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즐겁자고 사는 거지 괴롭자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두 부부는 이것을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밖에 가서 사업을 해도 사업이 잘되고, 뭐든지 잘됩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개인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 자기 생각 고집해서 살면 결혼 안 하느니보다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좋은 이 마음 죽을 때까지 내생에까지 가려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면 따로 머리 깎고 스님이 되어 살지 않아도, 해탈하고 열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승보살의 길입니다. 제가 부주 대신 이렇게 말로 부주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524 no image Love is... [3]
[레벨:20]서진우
82 2012-08-18
523 2012년 가을수양회 시간표 파일
[레벨:20]서진우
45 2012-11-09
522 마인드 세팅 이퀄라이저 파일 [2]
[레벨:20]서진우
55 2012-12-10
521 no image [펌] 연아의 사명과 영광 [1]
[레벨:20]서진우
75 2012-12-12
520 no image [기사] '복지 천국' 제니퍼소프트의 비밀 [2]
[레벨:20]서진우
62 2013-01-16
최근 직장내 복지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제니퍼소프트 대표의 인터뷰입니다. 개인적으로 평가와 보상을 구분하는 급여시스템에서 배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승규의 매거진 플러스'로부터 퍼온 글입니다---- '수영장이 있는 꿈의 사옥'으로 유명해진 제니퍼소프트를 다시 찾았다. 대기업도 따라올 수없는 유럽수준의 복지를 실천하는 이 작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존재는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 ‘기업은 생존 공동체’…유럽 수준 복지 실험) 하지만 지난 취재 때 이원영 사장을 만나지 못했다. 오늘의 제니퍼를 설계한 주인공이다. 마침 미국 출장 중이라고 했다.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괴짜 CEO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걸까. 그가 갖고 있을 혜안과 자신감이 못내 궁금했다. 수은주가 또 한번 치솟은 8월13일(월) 오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로 향했다. 제니퍼는 요즘 새 식구를 맞는 일로 분주했다. 여기저기 언론을 타면서 신입사원 모집에 300~400명이 몰렸다. 이날도 이 사장은 1층 카페에 입사 지원자 두 명과 마주앉아 면접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희가 찾는 프로그래머 상과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사장의 너무나 솔직한 말에 두 사람은 무척 놀란 눈치였다. 이 사장은 "수백명 지원자 중에서 5명을 뽑았다"며 "이들이 제니퍼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전직원이 18명인데 5명은 너무 많지 않나. - 우리 규모로 보면 분명히 많다. 하지만 이들은 제니퍼의 미래다. 그동안 제니퍼가 해온 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이들이 만들어 낼 거다. 생각만해도 벌써 신난다. 앞으로 1년은 아무 일도 맡기지 않고 책만 읽게 할거다. 아침에 오면 신문 보고. 해외 기업 탐방도 보내고.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스케치 능력, 프리젠테이션 기법, 브레인스토밍 방법 같은 공통 소양을 익히고, 거기에 더해 각 역할 별로 전문적인 교육도 한다. 7년 가까이 사업을 해보니 어떤 비즈니스 던지 기획, 마케팅, 프로그래밍, 리더십, 디자인 등 5가지 역량을 갖춰야 아귀가 맞는다. 이번에 뽑은 5명은 한명한명 각자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분들이다. = 어떤 기준으로 뽑았나. - 사유의 능력을 봤다.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하는. 또한 생각의 방향성이 얼마나 진보적인 가도 중요하다.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이 사회를 온전하게 바꾸려는 건전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기획자로 지원한 어떤 분이 자신의 꿈은 적정기술을 아프리카에 적용하는 삶을 사는 것인데, 제니퍼라는 회사의 틀 내에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메일을 보냈더라. '너무 기쁘다, 제니퍼는 오히려 그런 걸 적극 권장한다'고 답을 보냈다. 리더십 쪽으로 뽑은 분은 나이가 정말 어린 데도 사회과학적인 측면이나, 철학적인 측면이 아주 뛰어나다. = 지원자가 많았다는데. - 가장 놀란 게 신입사원 모집 분야에 경력자들이 굉장히 많이 지원했다는 점이다. 하나같이 애잔하고 눈물 나는 사연을 갖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직장, 행복할 수 있는 직장, 자기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직장, 자기 아이들과 가정을 꾸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직장, 누구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직장. 이런 건강한 기업에 대한 절절한 고민과 갈구가 배어있다. 15년 경력자가 신입사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 급여 수준은 어떤가. - 급여는 비밀이다. 대안적 기업으로서 급여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최근에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기존의 급여 보상 시스템은 멤버들의 기여가 있으면, 그걸 평가하고, 거기에 비례해서 보상을 하는 방식이다. 새롭게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는 평가와 보상의 관계를 단절 하자는 것이다. 평가는 평가고 보상은 다른 걸로 하자는 거다. 그럼 뭐가 있나. 그 사람이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보상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적 동기, 열정, 꿈을 향한 전진, 소명의식, 실행력, 공감과 소통의 능력, 삶과 일의 균형이 잡힌 노력, 그런 문화를 만들려는 의지 등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도 그 포션이 커서는 안 된다. 전통적인 방식은 인센티브를 높여서 자꾸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내몬다. 기본 임금을 충분히 높이고 보상은 작은 부분으로 하되, 정성적 평가를 통해 내적 동기를 유발하는 쪽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 해외 유학을 보낸 직원도 있다던데, 정말인가. - 1년 어학연수를 보냈다. 비용은 회사에서 전부 지원했다. 또 한 직원은 비행사 자격증을 따고 싶어해 지원했다. 지금은 김포에서 강릉까지 경비행기 몰고 왔다갔다한다. = 왜 그런 일을 하나. - 기업이라는 틀 속에서 구성원들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비전이 가능할까. 직무에 대한 커리어 패스?. 소극적인 차원이다. 좀더 넓혀 보면 개개인의 꿈이 중요하다. 몇십년 지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문제다. 그건 모두가 다 다르다. 그걸 인정하고 진정으로 지원해 주려고 한다. 때로는 금전적으로, 때로는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약속으로. 한 직원은 앞으로 아시아 지역 헤드쿼터를 설립하면 거기서 자기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정년없는 회사를 꿈꾸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을 죽을때까지 노동자로, 노예로 가둬놓고 싶지는 않다. 작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지금은 단지 우리가 뜻이 같기 때문에 함께하는, 거쳐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많은 투자를 했는데 그 사람이 이직하면 어떻게 하나. - 투자를 많이 하지만 그들이 지금과 같은 괄목할만한 성과도 만들어 내고 있다. = 대학 생활은 어땠나. 학생운동을 했나. - 경북대 수학과를 나왔다. 학생운동의 끝자락인 90학번이다. 1학년 때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진전돼 쌀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거기에 참여했다 3개월간 미결수 생활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 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당시 학생들의 그런 노력이 지금까지 우리 농촌이나 사회에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고 싶다. = 그때 경험이 이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그때 사유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직장생활 8년 동안 계속 눌려있다가 창업해 법인설립하고 어떤 회사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다시 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금은 그걸 하나씩 실천하는 과정이다. = 대학 졸업하고 어떤 일을 했나. - LG-EDS(현 LG-CNS)에 입사해 미들웨어 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후 한국IBM으로 옮겨 프리세일즈 엔지니어, 테크니컬 엔지니어 생활을 5년간 했다. = 직장 때도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공유 운동을 했다고 하던데. - 자바서비스닷넷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1999년에 쓴 '모든 자바개발자에게 고함'이라는 글이 있다. '모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되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모든 자바 개발자여 지식을 한 곳으로 모읍시다. 이곳은 당신의 이름 그 석자를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지금 봐도 잘 썼지 않나.(웃음) 자바서비스닷넷은 지금도 운영된다. 내가 사회에 환원해야 할 봉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뽑은 5명 중에 이 커뮤니티를 담당할 사람도 있다. (사무실 바닥에 제니퍼의 철학을 자바 스크립트로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위는 유토피아를 찾고 판타시아로 간다, 아래는 고정되있으면 유연성을 찾고 닫혀 있으며 열고 창의성을 실천하라는 의미) = 커뮤니티가 법인으로 전환된 건가. - 아니다. 처음에 회사 이름은 커뮤니티와 연관성을 나타내기 위해 자바서비스컨설팅으로 지었을 뿐이다. 이후 제니퍼라는 제품 브랜드가 중요해져 회사 이름을 제니퍼소프트로 바꿨다. = 창업을 함께한 동료들은 어떻게 됐나. - 뜻이 맞지 않아 설립 1년 지나 헤어졌다. 정체성이나 가치관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요즘도 진보성을 강조하는 게 사회적으로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다. = 그래도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게 좋지 않나. - 맞다. 요즘 젊은이들은 진보가 진부하다고 느낀다. 정치적인 싸움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사실 진보는 보다 온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다. 그게 진보의 정의다. 이걸 누가 반대하겠나. 진보는 가난하고 도덕적으로 완벽 해야만 하는 고지식한 게 아니라 멋있는 진보, 간지나는 진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걸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 외부 투자자는 없나. - 없다. 제니퍼는 비상장회사를 꿈꾼다. 미국 회사면서도 가장 미국적이 않은 회사인 SAS가 롤델이다. 이 회사는 아직도 비상장사로 남아있다. = 대기업 생활은 어땠나. -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기업은 제 2의 가정이자 구성원들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틀이기 때문에 이제 이윤추구 이외의 것들을 고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 기사 댓글 중에 재벌기업들이 제니퍼를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 이러다 LG나 삼성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지금 모든 사장님으로부터 제니퍼가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있다.(웃음) = 제니퍼 소프트웨어는 어떤 건가. - 성능관리 소프트웨어다. 인터넷 뱅킹을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데, 국내 은행 인터넷 뱅킹 시스템에 대부분 제니퍼가 탑재돼 있다. 추석이나 명절 때 사용자가 폭주하면 시스템 응답 속도가 늘려지고 성능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제니퍼가 탑재돼 있으면 사용자가 몇 명 들어왔고 응답 속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개별 서비스가 어떤 위치에서 병목이 발생하는지 비주얼한 그래픽을 통해 즉시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시스템 담당자가 성능 장애 원인을 즉각 판단해 조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단층 촬용을 통해 몸 안의 암 세포 위치와 전이 정도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제니퍼는 웹 미들웨어 시스템 내부를 단층 촬영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제너퍼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는 이원영 사장) = 해외 시장 진출은 어떤가. - 제품을 개발 할 때 첫 버전부터 한국어와 영어, 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5개국어로 제품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거다. 창업 1년만인 2006년 일본 법인을 설립했고, 곧이어 미국 사무소도 개설했다. 건강한 글로벌 기업이 제니퍼의 비전이다. 현재 일본과 미국, 오스트리아, 태국에 법인이 있다. 말레이시아, 폴란드, 영국, 브라질, 네덜란드, 독일은 협력사가 있다. = 성장 전망은 어떤가. - 많은 사람이 제니퍼의 성장을 궁금해 한다. 복지를 저렇게 시행하면서도 저렇게 잘 성장하는 기업이 있다니, 그런 시각이다. 하지만 그것 보다는 대안적 기업을 만들어가는 실험적인 모습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정말 많은 근로자들이 건강한 노동을 통해 근사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 열망이 지금 극에 달해 있다. 그걸 충족하고 채워 줘야 할 기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걸 화두로 삼고 있다. = 지난번에도 느낀 거지만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 (웃음) 여기 쉬던 직원들도 방금 올라갔고 외근 중인 직원도 있다. 재택 근무나 외부 근무도 적극 권장한다. 요즘 시대는 자리에 꼭 앉아서 뭘 할 필요가 없다. 수영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고 한 건 몰입과 여유의 균형이 창의력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몰입은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효과적이고, 여유는 장기적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둘의 균형이 필요하다. = 어려움은 없나. - 비슷한 생각을 가진 기업가들과 모임을 만들고 싶다. 안철수 원장이 이윤추구는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공감한다. 나는 이윤추구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윤추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전부가 아니라면 그럼 나머지는 뭔가. 혼자 열심히 찾아가지만 한계가 있다. 대안적 기업의 틀을 함께 만들고 싶다. 인사보상 평가 시스템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고, 기업의 정년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또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는지 아이디어도 교환하는 거다. 그동안 자신도 제니퍼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몇 분이 찾아왔다. = 사옥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가 뭔가. - 공간은 사유를 압도한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큰 영향을 받는다. 계속 스트레스 받고 답답한 곳에 있으면 건강한 마음을 갖기 힘들고 새로운 통찰력 있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반대로 자연적인 공간, 여유로운 공간, 아름다운 공간에 있으면 마음도 그런 쪽으로 가게 된다. 자율적인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사각형 박스 안에 넣어 놓으면 자율적이 되기 어렵다. 글로벌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글로벌로 나가 생각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다. 각고의 고통 속에서 여기 있는 모든 걸 잊고 머릿속 사유만으로 미국을 생각하고 네덜란드를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거기에 가면 그 순간 한국은 잊어버리고 그곳에 집중하게 되는데 말이다. 공간은 사유를 압도한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투자는 아깝지 않다. = 날씨가 마치 유럽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 요즘 글로벌화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 자랄 때도 세계화가 화두였다. 지금은 글로벌 다음 단계를 고민 할 때다. 한때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그곳에 파라다이스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막상 가보니 그런 건 없다. 한국과 다른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그곳이 꿈꿔왔던 파라다이스는 아니더라. 그곳에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고, 개선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을 벗어나는 게 답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 필요하면 만들어 가는 거다. 헤이리 사옥을 짓고 내가 꿈꿨던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서 생활하면 이곳이 바로 파라다이스다. 한국을 버리고 외국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한국을 품은 탈영통화, 탈세계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삶에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이 누군가. - 아버지다. 태백산맥 꼭대기 오지마을인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태어나셨다. 국민학교만 있던 그곳에 중등과정 학교인 고등공민학교 설립을 주도하셨다. 정년 퇴직할때까지 월급 받으면 학비 못내는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빈 봉투만 어머니한테 가져왔다. '자연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가 가훈이었다. 어릴 때는 그게 잘 이해도 안되고 조금 부끄러웠다. 학교에서 가훈 적어 내라면 친구들은 성실하게 살자 이런 수준인데 우리집은 자연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니. 선생님도 의아하게 생각하셨다. 그런데 20~30대 지나면서 그 말이 정말 삶의 나침반으로 작용했다. 지금도 정정하시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신다.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라, 직원들에게 최선의 선의와 복지를 베풀라는 말씀이다. 요즘도 한겨레, 경향신문 등 신문 4개 보시고, 월간지도 2~3개 보신고, 책도 한 달에 2~3권씩 보신다.
519 no image 아리랑 민족은 누구인가 [1]
[레벨:20]서진우
42 2013-08-22
지난 화요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했다가 저녁축하행사로 정선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왠 아리랑...처음엔 별 흥미 없이 들었습니다. 그냥 구슬픈 노래라고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왜 이런 노래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는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부르시는 분들의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모습에 마음이 열렸고 그 뒤에 단장의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아리랑은 고려가 조선에 망했을 때 고려의 신하들( 7현)이 강원도 정선의 산속에 들어가 나물만 먹고 살며 나라 잃은 슬픔은 노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아리랑 대신 좀 더 긍정적인 노래가 민족의 노래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주장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그 아리랑이 어떻게 조선이 건국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불리게 되었던 것일까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아리랑'의 '아리'는 메아리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랑(郞)'은 신랑, 화랑과 같이 '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직역하면 아리랑은 메아리님입니다. 한스러운 마음을 풀 길이 없는 백성이 산에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자기 목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라도 응답을 들은 것으로 감사합니다. 메아리를 나의 '님'으로 부릅니다. 그 응답을 하늘님의 위로로 여깁니다. '아라리요'는 날 알아주리요 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는 하늘님 하늘님 (나의 고통을) 알아주세요. 하늘 나라 고개 넘어 절 좀 보내주세요. 아리랑은 돌아오는 메아리를 기도응답으로 여기는 한 많은 민족의 노래입니다. 아리랑은 바벨론 포로 생활이 후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다 민족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예레이마 애가'요 '곧 오소서 임마누엘'이라고 할 만한 노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리랑은 잘 어울리지 않고 부르는 사람도 적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여전히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리랑은 저와 섬기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제가 날마다 불러야 하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18 안요셉 선교사님 연희센타 선교보고 파일 [3]
[레벨:20]서진우
170 2013-02-05
“와보라!”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삼아라!” (“COME AND SEE,” and “GO,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말씀: 요한 1:39a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보라 ….” 마태 28:19a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예수님이 이 어두운 땅에 오셔서 하신일이 많으십니다. 그것을 대중사역과 제자양성사역으로 볼수 있겠읍니다. 대중사역은 “Preaching and Healing” ministry 로 요약할수 있읍니다. 즉 무리들에게 “말씀가르치시고”, “각종병자” 고치시고, 배고픈 5,000 명을 먹이는” 사역이었읍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싶은 것은 “제자양성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대중사역도 사실 제자양성사역을 위해 모두 사용하셨읍니다. 제자 사역을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께서 하신 두마디로 요약할수 있겠읍니다. “와보라!” 즉 내게로 오라. 내게로 와서 보고 배우라. 내가 그리스도요, 세상의 구세주인것을 와서 보고 믿으라. “와보라! 참 내 제자가되라!” 한 예를 들면, 예수께서 안드레와 빌립을 갈릴리 해변에서 직접 핏싱하셨읍니다. 그들이 “어디계십니까?” 물었읍니다. 예수님은 “Jesus@gmail.com”하시면서 이 메일주소를 주시거나, “서대문구 대신동 32-1번지다” 나중에 보자 하시지 않았읍니다. “와보라!” 하셨읍니다. 바로 그즉석에서 직접 자신이 계신곳으로 초청하셨읍니다. 그들이 바로 가서보고 “우리가 메시아를만났다”고 했읍니다. 요즘 김연아의 10,000시간, 뭐든지 10,000 번을 하면 세계최정상에 이를수 있다란 말이있읍니다. 세계최고의 영적 목수이신 예수님께서 명품 제자를 빚어내시는데 하루 24시간, 일주 168시간 3년간 약 26,208 시간을 투자하셨읍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마침내 예수님은 구세주시다. 그의 죽으심은 모든 족속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그의 부활하심은 우리로 영생을 얻게하려하심이다를 깨닫기 까지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하시는 말씀이 “가라!”입니다. 아니, 언제는 “오라” 하시더니, 이제는 “가라?!” 그렇습니다. “와보라” 하신것은 세상에대해 “Good bye! 하고, 와서 보고 “참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초청이었읍니다. 이제 제자가 된 그들에게는, 도로 세상으로”가라” 하십니다. “가서, 뒤엉켜 또다시 죄를 짓는것이아니라, 그들로 제자를 삼으라!”입니다. “모든 족속에게 가서 모든족속을 제자삼으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명품제자를 만드셨듯 직접 일대일, baby sitting, 매일돌봄으로 예수님처럼 제자양성가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로 “와보라! 가서 제자삼으라!” 는 십자가와 부활 다음으로 예수께서 친히 하셨고,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심을 알수 있읍니다. 지난 50여년간 저희 유비에프는 “와보라!” 하시고, “가서제자삼아라!” 하신 예수님께 순종했읍니다. 그때 주께서 현재 95개국에 1,500 여명의 선교사가 나아가 제자삼는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그간 큰일을 해내었읍니다. 그러나 아직 150 여개국이 남아있읍니다. 이 남은 150 여개국 모든족속으로 제자삼기 까지 중단없는 전진을 해야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제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와보라”는 대학시절때나 가서 예수님배우고, 이제는 가서 제자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제일먼저 해야할것이, 일용할양식 , 기도등으로 예수님께 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입니다. 거기서 예수님께로 부터 깊은 영생수를 들여마십니다. 제 영혼과 몸과 마음에 큰힘을 얻읍니다. 그리고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삼아라” 하시는 말씀을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부르실때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제 인생에 주님의 초청받았던 때, 제자훈련, 캠퍼스 목자, 선교사로서의 이제까지의 삶을 잠간 돌아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짧은 시간에 다증거할수 있겠읍니까? 바다를 먹물로, 하늘을 두루마리로 해도 다 기록못할 주님의 은혜입니다. 다만 짧은 글을 통해 우리의부름받은 인생이,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모두에게 얼마나 축복되고 가장 보람된 천국생활인것을 조금이나마 나눌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Part one: 와보라 “Come and see!” 1. 태어나서 부터 대학까지 (1946-1965)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해방이듬해 저는 8남매 중 세째로 대구에서 태어났읍니다. 그러니 지금 6학년 7반입니다. 어머님은 시골 과수원 장노님의 따님으로 믿음이 좋았읍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처음 불신자로 술 주정이 심했읍니다. 아버님이 술취해서 밥상을 뒤엎고, 숫가락, 젓가락은 마치 UFO 처럼 저희 머리위를 날아다녔읍니다. 그때 어머님과 저희들이 늘 울며 지옥같이 불행했었읍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늘 새벽기도를 빠짐없이 다니며 울며기도했읍니다. 그러자 아버님이 믿게되었읍니다. 나중 장립집사가 되었읍니다. 저희집에 손님들이 늘 가득하고, 웃음과 찬송과 기도가 끊이지 않는 작은 천국으로 변했읍니다. 그러나 제가 고2인 16세때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읍니다. 저는 이때 인생은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렇게 죽으면 모든게 끝장인것을 왜 고생고생하며 살아야 하나하고 허무와절망가운데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방황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을 알수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읍니다. 제가 고민중에 있을때 어릴적부터 접했던 ‘성경’에 해답이 있겠다는 생각을 주셨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하게도, 제가 제일 좋아한 귀절은 “전도 서1장 말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였읍니다. 그때 답답한저를 누나가 다니던 성경공부 모임으로 와보라며 초대해 주었읍니다. 거기서 성경말씀공부를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칼과 같아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우리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 (히브리4:12) 하셨듯 저의 모든 과거가 벌거벗은것 같이 들어나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그때까지대구 칠성국민학교를 거쳐 잘나가는 소위 TK로 대구 경북, 중고등학교에서 우등생, 반장, 전교에서 제일 잘달리기, 제일 멀리뛰고, 높이뛰는 육상선수에, 교회 학생회장등 제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좋은 사람인줄 착각하고 살았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어둡고 추한 내면을 비추었읍니다. 그때 한창 사춘기의 마음의 모든 정욕의 죄가 들어났읍니다. 저는 한번도 간음한적없는 제일순결한 고교생이라 생각했읍니다. 그때 음욕을 품고 여인을 보면 간음한것과 같다는 말에 쇼크를 받았읍니다. 그러고보니 어릴때부터 이쁜여인을 볼때마다 간음한 자였읍니다. 그리고 착한척했지만 속으로는 제가 일등을 함으로 나보다 못한자는 무시하고, 경쟁심, 시기심, 분통, 화냄, 욕심, 이기심등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미 살인한자 인것을 깨달았읍니다. 성경에 적힌 죄란죄는 제가 모두 속으로 다 짓고 있었읍니다. 그때 제일 제가 무서워 한것이 갑자기 죽거나 예수님이 갑자기 오시는 것이었읍니다. 왜냐면, 그때는 바로 제가 지옥행 일호로 떨어질것이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죄를 짓지않으려고, 온갖노력을 했읍니다. 일일삼성 즉 하루에 세번 반성하기, 죄와 싸우기, 모든방법을 동원했는데도, 모두 도로아미 타불이었읍니다. 선을 행하려는 나에게 악이있어 날마다 나를 사로잡아 죄를 짓게 하였읍니다. 마침내 저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져내랴?” 웨치게 되었읍니다. 어느저녁, 죄문제 해결없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있을때, 밤12시경이 되어도 해답이 없었읍니다. 그때, 교회 주일학교에서 불렀던 노래들이 떠올랐읍니다. “예수사랑하심은거룩하신 말일세…..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이 예수밖에 없네… 예수!! 그가 찔림은 너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너의 죄를 인함이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 이말씀에 그때저는 크고작은 저의 일생의 모든죄를 다 생각나는대로 낱낱이 고백했읍니다. 그리고 잊어버린죄가 있으면 그것도 용서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읍니다. 그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의 하는일 알지못하니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들려왔읍니다. 그밤 마침내 2000 년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바로 오늘의 내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영접하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을 이미 받았음을 믿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너무 놀랍고 고마워 이 눈물과 감사로 이 주님의 사랑과 보혈의 공로를 찬송했읍니다. “내죄를 씻으신 주이름 찬송합시다.” 저는 너무기뻐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그때 새롭게 체험했읍니다. 이렇게 새장에서 나온 새같이, 우리에서 해방된 사자같이 제 영혼이 기뻐뛰며, 자유를 얻자,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게되고, 짦은시간에 집중공부하여, 서울법대 65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읍니다. 2. 대학생활과 UBF (1965-75) (제자 훈련) 그런데 서울법대 1년생활은 자유분방, 한일협정반대데모, 이대생들과 미팅주선등으로 바람과 같이 날라가 버렸읍니다. 1966년 봄 2학년이 되었읍니다. 허전한 마음으로 서울에 의미없이 올라와 땅만바라보며 걷는제게,“와서보라. 배사라” 란 조그만 광고쪽지가 눈에 들어왔읍니다. “와서보라, 배사라?” 그 다음에 “Come and see, Sarah Barry!” Free English Bible study! By native missionary 였읍니다. 방황하던 제 영혼을 이렇게 신기하게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일년간 거의 매일 성경공부를 했읍니다. 저는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마치 지금도 살아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수많이 체험했읍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때 제 인생을 맹물같은데서 맛있는 포도주와 같이 변화시키심을 체험했읍니다. 소경의 눈을 띄우실때, 저의 눈도 떳읍니다. 거라사 귀신들린자를 고치실때 저를 잡고있던 모든 귀신도 떠나갔읍니다. 광풍을 잠잠케하시고, 죽은자를 살리시고, 십자가의 용감하신 죽음, 다이루었다” 승리을 외치신 주님, 주의 말씀이 힘이있어 제 인생은 드디어 독수리가 날개침같이 비상하기 시작함을 느낄수 있었읍니다. 1967 제가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때 저는 안드레,빌립, 동네로 달려간 사마리아 여인과 꼭 같았읍니다. 저는 캠퍼스로 달려갔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와서 보라!”하고 외쳤읍니다. 이에 한꺼번에 약 50 여명의 법대 신입생들이 회관에 찾아오는 놀라운일이 있었읍니다. 또 매주 구룹바이블이 시작되었는데, 황우여 현 신민당대표도 제 GBS 멤버의 한사람이었읍니다. 지금은 모두 떠나갔지만 관악5부의 정 아브라함목자가 법대의 열매로 남아있읍니다. 유비에프의 귀납적 방법으로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성경공부방법은 그대로 캠퍼스에 나갔을 때 다른 학생들과 성경 공부하는데 써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는 대학생성경읽기가 말씀공부뿐 아니라 어떻게 말씀을 다른사람에게 나누는가도 동시에 가르친 결과가 됩니다. 이로보아 제가 오랫동안 교회생활에서 아무에게 한 말씀도 못 전한 소위 모태신앙 (아무것도 못하는못해신앙)이 된것은 바로 말씀이 내속에 차고 넘치지 못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말씀을 전하는지 그 방법을 몰랐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목자생활이 시작되면서 갈등과 어려움도 생겼읍니다. 그당시는 개척초창기라 매일 말씀공부와 기도모임이 있었읍니다. 모두 고시공부에 몰입하는데 저많이 매일 오후 5시경 모두가 조용히 열을내어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을 떠나 유비에프회관으로 향해갔읍니다. 사탄은 저에게, “야 보아라! 머리좋은 친구들이 매일 너보다 2-3시간씩 더 공부를 하니까 너는 그들에게 상대가 안되! 빨리 유비에프 말씀공부를 그만 청산하고 고시공부에 돌입하라고! 그때 저는 이러다간 정말 경쟁에서 낙오하고 제대로 직장도 못구하고, 제 인생이 망가질것같은 두려움이 생겼읍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에스더서를 통해 “죽으면 죽으리라! “ 아니 “죽으면 살리라!”하고 격려해 주셨읍니다. 그래서 부활신앙을 덧입고, “먼저그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 외치며” 끝까지 주님역사편에 섰읍니다. 그때 놀라운 체험을 했읍니다. 전체 1,000 여명 외무고시 응시자중 17명이 합격했읍니다. 쟁쟁한 법대동기들중에서도 20 여명이 응시했는데, 2명이 합격했읍니다. 그 한명은 저희 구룹바이블스터디 멤버이고, 또한사람은 바로 저였읍니다. 또 이 외무고시 제3기에 현 유엔의 반 사무총장도 고시동기로 합격했읍니다. 이렇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때 주님은 저의인생을 크게 축복해 주셨읍니다. 와보라 해서 간 유비에프 성경공부는 이렇게 예수님과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세주시요, 나는 거룩하고 흠없이 살아가야할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해 주었읍니다. 대학4년과 곧이은 군대생활, 제대후의 생활은 참으로 주님의 제자로 훈련받는 좋은 시간이었읍니다 저는 그당시 버스비가 없어서 한시간넘게 걸리는 낙산을 넘어 보문동에서 법대까지 걸어다니고, 점심값이 없어서 하루 두끼만 먹으며 공부하던 때입니다. 저의 목자가 십일조에 대해 이야기할때, 저는 1,000 원도 안되는 돈을 십일조로 바치는게 부끄러워 나중 좋은 직장을 가지면 많이 바치겠다고 말했읍니다. 그러나 주의종은 과부의 옆전한잎의 귀함을 가르쳐주었읍니다. 그때부터 십일조가 시작되었고 스페인에 있을때는 십의 2조도 드리게 되었읍니다. 이 십일조 훈련을 받은뒤로 저는 한번도 물질문제가 없었고 이제까지 늘 풍성한 물질이 저의 뒤를 따라 다니게 되는 축복을 입었읍니다. 또 그당시 말씀공부, 곧 순종이라는 훈련이 심했읍니다. 창세기22장,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을 공부하며 모두가 자신의 가장좋아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우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한다고 배웠읍니다. 저는 그간 제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아끼고 있던 숨은 우상이 된 여학생에게 장문의 결별의 편지를 쓰며, 주님께 대한 저의 최고의 사랑을 먼저 드리는 결단을 했읍니다. 그러자 곧 하나님은 하나님을 저보다 더사랑하는 마리아 선교사를 일생동역자로 약혼을 허락해 주셨읍니다. 그뒤 군3년동안 대학때와 같이 목자의 생활을 하는 축복을 받았읍니다. 내무반 병력을 시골동네 주일예배때 데려가기도 하고, 군목이 없을때는 대대예배때 말씀도 전하고, 또 군 내무반에서 한 일대일을 통해 제대후 중앙센터의 초기 조상의 한명이 나오기도 했읍니다. 그리고 갓제대하고 일전한푼없는데 마리와 선교사와 결혼했읍니다. 그는 와세다대학 법대출신의 전직 서울고법 판사의 큰딸로, 마치 나뭇군과 선녀가 결혼하는것 같았읍니다. 이때 장인어른이 좋은집 한채를 결혼선물로 주었읍니다. 저는 일생가도 집을 살수 있을것같지않은 가난한생활만 했기에 wife 에 House 까지 주니까, 이게 웬 하나님의 축복이냐 하고 감사했읍니다. 그때 하나님의 종 저의 목자님은 창세기 14:22 로 제게 도전했읍니다. 즉 소돔왕에게 아브람이 “네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할까 하여“ 실오라기 하나라도 받지않겠다 했읍니다. 제게도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불신인 장인어른께 그 집을 돌려주도록 권고했읍니다. 저는 마리아선교사와 장인을 찾아가 절한뒤, 집을 돌려드린다고 말하니 장인어른이 화가나서 벌떡일어났읍니다. 저는그때 마리아선교사를 뒤로두고 막 달아났읍니다. 그러나 나중에 들으니 장인께서 “이시대에 보기더문 사위를 얻었다”며 동료변호사들에게 자랑했다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이것은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좋은 제자 훈련이되었읍니다. 나중 하나님은 저에게 미국에서 큰 3층집을 허락해 주셨읍니다. Part two: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1975-현재) 당시 조그만 지구본을 포켓에 넣고 다니며 “세계는 우리의 밥이다” 어서 가서 잡아먹자! 하고 세계를 우리 손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은 당시 소감대신, “메시지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매일 먹고 연말에 일용할 양식 노트 무게를 재었습니다. 그리고 여름 수양회 때, 태평양을 바라보는 동해안 해변에서 당시 전세계 150개국 나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 그중 한나라를 골라 장래에 선교사로 내보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손을 잡고 “성서한국, 세계선교!”를 외쳤습니다. 국내적으로 대학생성경읽기가 광주에서, 전주, 제주, 대구, 대전을 이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로 즉각 이어졌습니다. 저희들은 그간 하나님의 죄용서하심, 제자삼으심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이제는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하신 말씀을 접하게 된것입니다. 모든말씀을 순종해온 저희에게 이 지상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대학생이 여권도, 비행기표도, 선교지원금도 없이 어떻게 선교를 하겠읍니까? 그러나 그당시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강력하게 저희들을 움직였읍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의 5병2어를 주께 드리라. 주께서 5천을 먹이시리라! 하나님께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믿으라! 저희는 우리 밥이라! 그래서 세계선교가 시작되었읍니다. 그당시 처음듣는 용어,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 즉 신학교도 안나온 학생, 학사들이 자기직장통해 선교자금을 만들어 자비량으로 선교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2013년 초에는 95개국에 약 1550 명의 선교사가 나가게 되었읍니다. 1.외교관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생활 (75-2013) 1975년 외무부에서 스페인 어학연수 일년을 떠날때 아이 요셉이 갓태어나 혼자가야했읍니다. 그리고 1976 년 저는 주 과테마라부영사로 발령을 받았읍니다. 이때 마리아 선교사는 전요한 선교사가 이 사무엘 선교사후임으로 갓 취임하였기 자신이 섬기던 종로 2부 학사회스텝일을 계속하여야 한다며 저를 또 혼자가라고 했읍니다. 제 생각에 많은 여인들이 외교관 부인의 화려하고 이국적인 삶을 좋아할터인데 오직 마리아선교사는 세상즐거움은 아랑곳않고, 하나님만 고집하니 너무 한다 싶었읍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말든지, 했으면 남편따라 오든지, 결혼은 왜했느냐 하면서 구박했읍니다. 그래도 남편보다 주님을 더사랑하며, 저도 자기아내보다 하나님을 더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읍니다. 이때 처음으로 제가 아기자기한 사람으로 하나님보다 아내, 가정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였읍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혼자 가기로 했읍니다. 그렇지만 한 3개월이나 6개월뒤면 하나님께서 곧 보내주시겠지하고 기대하며 떠났읍니다. 이것이 총 합해서 약 10년간떨어져 있게될줄 처음부터 알았다면 절대로 혼자가지 않았을것입니다. 처음 낯선 이국 외교관 생활에 업무도 업무지만 매일 밥하고 빨래까지하고, 가는날 첫 주일예배부터 스페니쉬 메시지준비해서 전하고 또 일대일 양치는 생활까지 일인 3역 4역의 고된생활이 6개월이 되어도 아내는 오지않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너무 외롭고 괴로워 달밝은 날이면 보름달같은 마리아 선교사를 생각하며 기타를 치면서 그리움을 달랬읍니다. 그래도 오지않자 저는 일년이 지나면서 이러면 못살겠다 싶어 공갈을 치기 시작했읍니다. 이제까지는 참았지만 이제 빨리 오지 않으면 큰일날줄 알라고! 사실 그때쯤 매일 혼자 외교관 멋진차를 타고 오가는 동양의 젊은 외교관을 과테마라의 젊은 아가씨들이 유혹해오기 시작했읍니다. 토요일 혼자 외롭게 지내는 저에게, 난데없이 전화가 걸려왔읍니다. 혼자있느냐고? 저는깜짝놀라 전화를 끊었읍니다. 그런데 그다음 토요일 오후 또 전화가 걸려왔읍니다. “나는 하나님믿는 크리스천이고, 또 선교사”다하고 말했읍니다. 그런데 아릿다운 여인의 목소리는”선교사면 어때요?”했읍니다. 그다음 토요일에 혼자있는 저의 아파트에 누가 노크를 했읍니다.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왠 아가씨가 밀고 들어왔읍니다. 저는 그때 두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읍니다. 하나는 오래동안 참았던 육체의 욕망의 소리였읍니다. 마리아 선교사가 오라고 해도 안왔고, 이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수 없다는 소리였읍니다. 그러자 그는 남편이 한 일주일 출장을 갔기에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읍니다. 이때 제맘에 또다른 소리가 들려왔읍니다. 잠언인것 같은데..“아내아닌 이방여인을 품에 안는것은 뜨거운 숯불을 가슴에 안는것과 같고, 또유혹하는 여인을 따라가는 것은 소가 죽으려고 푸줏간에 끌려가는것 같고, 그 나중은 슬픔과 번민뿐이라” 그리고 구약의 요셉이 “내가 어찌 이 큰악을 주앞에 행하리요하고 달아났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집이라 제가 달아날수도 없었읍니다. 그때 또 사랑하는 마리아 선교사가 생각났읍니다. 제가 공갈은 쳤지만, 저만 믿고 있을 그에게 이런일을 몰래하면 하나님앞에서 그에게 결혼때 서약한 신뢰를 배반하는 나쁜일이라는 것이었읍니다. 이런 급박한상황중 주여 좀 도와주십시오 기도할때 주님께서 갑자기 하나의 지혜를 주셨읍니다. 그래서 그 여인에게 말했읍니다. “당신 남편에게 당신이 나에게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하겠다”고…그랬더니 그는 후닥딱 놀라며 문을열고 나가서 다시는 오지않았읍니다. 휴--- 저는 가슴을 쓰다듬어 내리고 하나님께 감사했읍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술, 돈, 여자를 조심해야 된다더니… 이런일도 다 있구나 하고말입니다. 이것이외에 여인들의 문제가 또 있었지만 하나님은혜로 모두 극복하게 되었읍니다. 이제 여인문제는 이정도로 하고 다음제자훈련으로 넘어가겠읍니다. 그런가운데 실비아자매가 꾸준히 말씀공부하여 제가 떠날때쯤 1979년엔 한국의 강노아 선교사와 첫 중남미의 가정교회를 이루는 축복이 있었고 과테마라에는 15명 정도의 대학생모임으로 자라있었읍니다. 과테마라에서 한국에 돌아온 1979-82년사이의 일입니다. 종로 3부, 현재의 배봉센터개척이 있었읍니다. 학생시대, 군, 또 과테마라에서 하였던 것을 이제 어디가든지 하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개척을 시작했읍니다. 돌아가신 복실할머니가 저희 둘째 갓태어난 마리아를 등에업고 저의 주일메시지를 유일하게 들어주는가운데 종로센터좁고 퀴퀴한 곰팡이냄새가 나는 지하실에서 시작했읍니다, 2년뒤 떠날때쯤에는 약 15-20명의 양떼들이 몰려왔고, 그중 거의모두가 나중 선교사로 나가고, 스텝이 되었읍니다. 그런저에게 난데없이 저를 가르친 목자님을 통해 외무부사표를 낼수 있느냐는 도전이 왔읍니다. 저는 이때 외교관생활이 너무 재미도 있고, 적성에도 맞고, 봉급도 국내보다 2-3배 정도 많아서, 무엇보다 평신도 자비량선교사 하기에 딱 좋다고 생각했읍니다. 그래서 “무슨말씀을 하시냐고? 외교관을 그만두라니!” 하고 반발했읍니다. 그런데 기도중에 혼자가만히 나를 살펴보니, 저도모르게 하나님보다 외교관을 더사랑하고 있는것을 발견하게 되었읍니다. “안보이시는 하나님은 이제 떠나도 되지만, 외교관은 못떠나, 이게 나를 밥먹여주고, 명예와 부귀와 권세도 줄터인데” 하고 외교관을 꽉붙잡고 절대로 놓지지 않으려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일생공부하여 성취한 것인데 사표를 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화를 내고있는 나를 보았읍니다. 바로 저의 우상이 되고만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사표를 내고 왔읍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기쁘고 홀가분했읍니다. 더디어 해냈다! 나는 이제 아내보다 자식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또 직장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자가 증명되었다! 하며 즐거웠읍니다. 그런데 이소식을 들은 저의 훈련관 목자님은 “언제 사표내라고 했느냐, 너무 외교관을 사랑하는것같아서 한번 훈련을 해본건데 하면서” 빨리 사표를 취소시키고 외교관 선교사로 계속 살라고 했읍니다. 저는 너무나 황당했읍니다. 사표취소가 사표내는것 보다 몇배나 어려웠읍니다. 외무부는 체면으로 살아가는 집단인데 거기가서, 어린애 장난치듯 사표내고, 이제 또 사표취소를 하면 사내일언 중천금, 사나이 한마디는 천금보다 더무겁다는 경상도 사나이의 기개에 맞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있는데…또 혼자 조용히 기도해보니, 이것은 제가 하나님보다 저의 체면을 더사랑하고 있기에 화를내고 있음을 발견했읍니다. 그래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가서 사과하고 사표취소를 받아돌아왔읍니다.이로서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저의 체면따위는 무시할수 있고 믿음으로 못할것이 없는자로 승격시켜 주었읍니다. 그러자 82-85년 멕시코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겸 참사관으로 발령이 났읍니다. 이때도 마리아선교사는 아직 주의역사섬길것이 많아 저를 못따라 가겠다고 말했읍니다. 할수 없이 또다시 혼자떠났읍니다. 그때쯤 과테마라의 역사를 맡은 강노아 실비아가정이 교회로 감으로 유비에프 과테마라가 없어져 버렸읍니다. 저는 이에 큰 쇼크를 받고 제가 후속조치를 잘 하지 못한것을 깨달았읍니다. 그래서 멕시코에서는 주일메시지, 양치기도 열심히 했지만, 후계자를 잘세워야만 될것을 알고 한국에서 좋은 선교사들을 보내어 달라하여, 황아브라함 사라부부및 이디모데 선교사가 파송되어 왔읍니다. 이제 삼년이 되어 떠나려는데 아직 제대로 선 목자는 없고, 주의 역사는 어찌될찌 모르는 가운데 근심하는 저에게 창세기 말씀이 생각났읍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뭇별을 셀수있나 보라”하신 주의 명령대로 별을 세어 보았읍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새까만 밤하늘에 별이 한개도 안보이는 것이었읍니다, 그때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들렸읍니다. 저는 슬픔과 근심에 차서 방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러나 사실 멕시코는 그당시 공기오염이 심해서 구름과 먼지로 하늘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조금뒤 저는 다시 밖으로 나갔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되뇌이며… 그때 그 캄캄한 밤하늘 저 너머로 찬란한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기 시작했읍니다. 주께서 저의 영의 눈을 열어주사, 구름과 공해가 가린 저너머를 보게 하신것입니다. 저는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네 자손이 이와같으리라”하고 승리의 고함을 외쳤읍니다. 그리고 20여년이 손쌀같이 지난 2005년경 멕시코를 다시갈 기회가 있었읍니다. 그때 부활절 수양회말씀을 전하는 저의 눈앞에 800 개의 초롱초롱한 눈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읍니다. 저는 저의 기도도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주께서는 아브라함,사라, 디모데선교사님들의 피땀나는 제자사역의 결과로 벌써 400 여명의 멕시코 형제자매의 역사를 주께서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멕시코의 현지목자들이 자라 페루, 엘살바돌, 도미니칸 리프부릭, 미국 또 더나아가 라틴이 쇠퇴해가는 유럽을 먹이자하고 작년 지부장수양회를 스페인에서 갖기 까지 했읍니다. 그때 85년-87년 귀국하여 현재 종로7부인 외대요회, 호세요회를 개척했읍니다. 그리고 87년에는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에 발령을 받았읍니다. 그런데 유엔 주재 2년만인 89년에 스페인으로 발령을 받았읍니다. 이것은 전례없이 3년이 아닌 2년만에 발령이 나서 속으로 상당히 불만에 차있었읍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당시 어학연수를 온 빠블로 오 현재 대사부부의 기도때문이었읍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연휴때 유럽여행을 갔다가 오는길에 피레네산맥골자기로 떨어지는 자동차 사고를 당했읍니다. 그때 빠블로대사는 그간의 모든 죄를 고하고, 특히 외무부에 합격시켜주시면 주님을 열심히 믿겠다한 자신의 맹서를 지키지못한것을 용서해주시고 한번만다시 자신과 가족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합니다. 그때 기도대로 차는 완전히 망가졌지만 온 가족은 살아남았읍니다. 그래서 100일간 하루한끼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좋은 성경선생을 보내주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빠블로 오 외무부 후배가 자기와 부인에게 성경을 좀 가르쳐달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저는 세번이나 두고보자며 석달이 지났읍니다. 저는 스페인대학생들에게 말씀가르치려왔는데 난데없이 한국사람이 나서서기분이 언짢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번째는 자기집에서 저녁상을 크게 차려놓고 100일 기도얘기를 들려주었읍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인것을 깨닫고 즉시 그날 부터 매주 한번, 문제풀고, 소감쓰고, 또 혼자와있는저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한다는 조건으로 말씀공부에 들어갔읍니다. 처음한번, 한달뒤 일주두번, 두달뒤 일주 세번, 네번 그리고 거의매일공부하여, 6개월여만에 창세기, 요한복음을 다 끝내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캠퍼스 핏싱도 같이 나가고, 또 주일예배 멧시지도 가끔전하도록 훈련을 했읍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제가 외무부를 떠나야되기 직전 외무부 후계자를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를통해 알젠틴, 칠레, 베네즈웰라, 엘살바돌그리고 지금의 스페인 개척에 외무부에서 크게 쓰임받는 종이 되게 하셨읍니다. 그해 1989 주님은 저를 UBF 시카고 세계본부의 요원으로 부르셨읍니다. 그래서 사표를 내어야 했는데 다만 저의 사표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제가 예수믿다가 역부족이되어 밀려났다는 불명예가 되지않게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읍니다. 12월 둘째주, 사표를 써서 대사관에 갔읍니다. 마침 대사님이 복도에서 걸어오시다가 저를 보며 반갑게 포옹하시며, “공사진급이 되어 축하한다고” 3배수추천의 어려움을 뚫고 진급했다며 본부인사발령소식을 알려주셨읍니다. 10분후 직원회의때 저는 사표를 대사님께 제출했읍니다. 사표절차에 따라 한국에 돌아왔을때 교회 장노이신 외무장관은 저에게 물었읍니다. 왜 무엇이 외무부를 떠나게 했냐고? 저는 마태복음을 인용했읍니다. “천국은 마치 한 사람이 밭에서 금광을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 사람과 같으니.” 그리고 저가 그 금광을 발견한 자입니다라고 말했읍니다. “저는 한 때 외교관 보다 더 매력적이고 보람된 직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높고 귀하고 영원한 하늘나라 대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세상나라 대사를 팔기로 했습니다.” 이때 제 마음가운데는 “주예수보다더 귀한것은 없네, 이세상보화로 바꿀수 없네!” 하는 찬송이 울려퍼졌읍니다. 장관님은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부양해야할 가신들이 아직 많아 그렇게 못한다며, 부러운 결정을 축하해주고 장도를 빈다고 해 주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 해의 공관장 회의에서는 전두환대통령이 제시한 의제만큼 Mr. Ahn 의 사퇴에 관한 찬반의 논의가 비공개 주요 토의 의제가 되었다는 뒷말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미친 짓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대사보다 뭔가 더 좋고 영원한 하나님의 대사라는 것도 있구나! 수긍했습니다. 이제 외교관을 사퇴한지 23년이 되어 가는데 대사를 끝낸 친구나 또 후배들 중 많은 분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기도 이제는 하늘나라의 대사가 최고로 귀한 줄 알게 되었다고. 이제 외무고시 동기들은 모두 대사를 그만둔 지 한 10년은 됩니다. 그러나 아직 현직에 남아서 그 예전 어느 때보다 바쁘게 일하는 분이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반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그 분보다 자신과 대한민국에 더 영광된 일을 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은 바로 그 옛날 외교관 시 또 지난 40여년 UBF 선교사로 산 것보다 더 바쁘게 주님의 영원한 나라위해 이름도 없이 일하는 하늘나라 대사 호세 안 입니다. 이제 때가 되어 주의 호령으로 심판하러 오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도 그의 불꽃같은 눈으로 판단하사 누가 과연 가장 영광된 생활을 살았는지도 구분해 주실 것입니다. 1990년부터 지난 23년간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겠읍니다. 다만 짧세 한마디 한다면, 시카고에서 평신도 자비량선교사로 11년간 국민학교 교사생활한것과, 지난 7년간 아들 Dr. Joseph 과 딸 Dr. Maria 가정의 지원으로 자비량 Full Time staff 으로 UBF 시카고 국제본부에서 일하고 있읍니다. 시카고에서 배운것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11년간 계속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직접제자 훈련을 지독히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를통해 많은것을 배웠읍니다. 한때는 제가 큰나무가 되기위해 미국양들을 비료로 삼으려할때 아무리 애써도 양들이 모두 달아났는데, 회개하고 제가 비료가 되고, 미국학생들을 큰 나무로 키워야 되겠다 할때 역사가 많이 일어났읍니다. 이전에는 제가 주인공인 다윗이었고 제주변의 모든 사람은 저를 위해 죽어주어야할 요나단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제 제가 제 주변의 모든 사람을 다윗으로 생각하고, 제 자신은 요나단으로 살도록 새 마음을 주셨읍니다. 그리고 60이 되었을때 아 이제 UBF 40년에 나의 인생을 온통 투자해서 하나님을 섬겼으니 이제는 쉬어야 겠구나 했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몇세에 불렀느냐물어, 75세요대답했읍니다. 모세는 몇살에 불렀느냐 물어, “80이요” 대답했읍니다. 그런데 너는 지금 몇살이냐? 물었읍니다. 대답을 못하는 저에게, UBF 40년은 간단히 준비운동한것이니 그리알고 이제 제대로 주님영광과 양들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라 방향을 주셨읍니다. 그래서 엊그제 브라질의 한 2세가 “선교사님 저는 16세인데 선교사님은 몇살이예요?”하고물어왔을때 대답했읍니다. “아! 나는 17세입니다. (그리고 주를 달았읍니다. 다만내나이에서 50을 던져버린것은 잊어주세요) 이렇게 우리주님은 저를 대학생때 “와보라” 초청해 주셨읍니다. 이초청은 이세상에서 그어떤 왕들의 초청보다 가장귀한 초청이었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참제자, 명품제자가 되도록 일대일로 친히 훈련하사 빚어주셨읍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하시며 내보내셨읍니다. 원래 시골 구석에서 자라 우물안개구리처럼 “아기자기” 곧 아기하고 자기만알며 살다가 죽어갔을 저의 인생을 그 웅대하시고, 세계적이시고, 역사적이시고 영원한 하늘나라대사로서 이제껏 세계 100여개 이상 나라를 돌며 기도하고, 말씀전하고, 제자삼는 역사가 있게 하셨읍니다. 그리고 이제 은퇴는 커녕, 2세, 3세 또 세계각처의 New Generation 현지 리더들을 내가요나단이 되고, 또 그들의 비료가 되어 큰 꿈나무 다윗들을 많이 길러내는데 남은 인생을 온통 쓰시겠다하십니다. 저는 참으로 여러분과 같이 이세상에서 가장 또 영원히 축복받은 주님의 제자요, 또 제자양성가인것을 인해 주님께 감사와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이제 찬송가하나로 마치겠읍니다. “내구주 예수를 더욱사랑, 간절히 비는말 들으소서. 내일생소원은 내구주 예수를 더욱사랑, 더욱사랑. 이전에 세상락 기뻤으나, 지금 내자랑은 오직예수! 내일생소원은 내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사랑!! 한마디 :”와보라!” “가서 모든족속으로 제자삼으라!”
517 no image [펌] 경주력 향상 [1]
[레벨:20]서진우
59 2013-04-25
516 창의 인재상 파일 [1]
[레벨:20]서진우
69 2013-06-12
요즘 각 대학에서 향후 7년간 지원되는 정부대학원예산을 따내기 위한 제안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전보다 예산규모가 커진 대신 선정대학 수는 줄어 경쟁이 치열합니다. 예산을 받아 어디에 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대학원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인재상이 중요합니다. 저희 과에서 제안한 인재상을 듣고 영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공유합니다. 성장과 집중은 기초분야성장과 특화분야집중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기초 성장: 보편성을 가진 기초학문 분야에서의 성장을 가르킵니다. 영적으로는 말씀과 기도와 같이 언제 어디서나 요구되는 신자의 덕목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화 집중: 기초학문 위에서 그 시대, 그 환경에 걸맞는 응용 학문에서 집중하여 성과를 내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로 따지면 캠퍼스미션 그 중에서도 서울대 영혼 구원 역사의 특징을 이해하고 걸맞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Glocalization은 Globalization(세계화)+Localization(지방화)의 합성어인데요 Globalization(세계화): 우리의 것을 세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고요, 더불어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하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복음 전도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Localization(지방화): 세계의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단순히 외부를 모방하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색깔에 알맞는 모양으로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봄수양회에서 세상의 트렌드인 Healing을 영적으로 풀이해 낸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통섭은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연구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부분은 저도 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인재상의 핵심은 균형적 관점입니다. 기초와 집중이 균형적으로 발전할 때 Globalization(세계화)와 Localization(지방화)과 동시에 이루어질 때 국가와 세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창조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은 인재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인재상에 비추어 자신을 바라볼 때 내가 앞으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할지 감이 잡히는 면이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도 궁금하네요. 암튼 참고 되시면 좋겠습니다.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