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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최수산나 선교사님 일시 입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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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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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가정 예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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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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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와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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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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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담당목자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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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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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012년 천로역정 심포지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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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
2012년 천로역정 심포지엄 소개
1. 천로역정과
저자 존 번연
천로역정의
원제는 “The Pilgrim’s Progress”로서 “순례자의
여로(전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 최초의 번역판이 나올 때 “天路歷程”, 즉 “천국으로 가는 경로”라는 이름을 택한 이후로 이 제목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순례자의 인생길을 실제 여행에 비유하여 서술한 소설입니다. 1678년 제1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1684년에 제2부가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함께 기독교 3대 고전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담고 있는 내용이 깊이가 있으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은 영적인 유익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기독교가 전파되면 먼저 성경이 번역되고 그 다음으로 천로역정이 번역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로역정은 근대 최초의 번역 소설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믿음의 선배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고난을
이겨낼 힘을 얻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John Bunyan(1628~1688)은 1628년 England의
Bedford 근처 Elstow에서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책 읽기와 글 쓰기 정도 외에는 거의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땜장이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알기 전,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마귀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그의 뜻을 좇는 것”이 그의 기쁨이었으며, 거짓말하고 신성 모독하는 것에 있어서 그와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신실한 믿음의 여인이었던 그의 아내가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온 두 권의 신앙 서적을 읽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악한 행실을 고칩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온 영국에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은
없을 거라는 자기 의로만 가득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Bedford에
갔다가 우연히 서너 명의 가난한 여인들의 말을 엿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온통 기쁨으로 예수님의
공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은혜를 나누며 기쁨이 충만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Bunyan은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친 Bedford 침례교회의 John Gifford 목사를 찾아가 그의 카운셀링을 받습니다. Gifford
목사는 그의 좋은 멘토요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Bunyan은
성경을 정말 철저히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마귀의 유혹 사이에서 치열한 내적인 투쟁을 하면서 복음을 영접합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 받지 못한 자가 아닌지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한 소망 없는 자가 아닌지 말씀 앞에서 철저히 기도하며 씨름합니다. 치열한 영적 투쟁 끝에 구원의 확신을 얻고 거듭나자 그는 자기가 받은 은혜를 소감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함께 하는 성령의 능력을 본 사람들은 그를 초청하여 복음을 전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고, 그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나중에는 담대하게 영국 여러 교회를 돌며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나 Bunyan이 활동하던 시기는 청교도
혁명 이후 다시금 왕정 복고가 이루어졌던 시기로 국교도가 아닌 사람을 철저히 핍박하던 시기였습니다. 영국
국교회는 개신교이기는 하지만 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는 영국의 국교로서 철저한 성직자 계급과 권위주의적인 예배 제도를 가졌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정확하게 선포되지 못했습니다. 청교도란 영국의
칼빈주의자들을 가리키는데 복음 중심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청교도가 주류인 의회파가 왕당파를
몰아낸 청교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왕정이 회복되자, 왕당파는 청교도를 핍박했고 국교회에서 성직자로
임명되지 않은 사람이 설교하는 것을 반역 음모를 가진 불법 집회를 인도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았다면 오늘 메시지를 전하신 인금철 목자님이나 여름 수양회 메신저 목자님들도 국교회 목사가 아닌데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을 것입니다. 평신도인 Bunyan은 이런 형편을
잘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각 청교도 교회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약 5년 간에 권세 있는 메시지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Bunyan은 1660년 결국 불법 집회를 인도했다는 죄목으로 당국에 체포됩니다. 당초 3개월 형을 받았지만, 출옥한
후에 설교를 하지 말라는 명령을 끝내 거절했기 때문에 결국 12년 간 옥살이를 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 Bunyan은 사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싸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억울한 옥살이였지만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이 때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감옥에서 그는 죄수들에게 설교를 하고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 가운데 나온 최고의 작품이 바로 천로역정입니다.
1672년 출옥 후에는 그의 목자였던 Gifford 목사의 뒤를 이어서 Bedford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1688년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까지
복음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탁월한 복음 전파자로 살았습니다.
천로역정은 바로 Bunyan의 회심 이전까지의
치열한 영적 투쟁과 회심 후 복음을 전파하던 과정, 또 12년
옥살이의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녹아 들어 있는 역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이
놀라운 작품을 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깊이 읽으면 신앙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을
이길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목적지인 천국에 대한 소망을 충만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2. 천로역정
해제
천로역정은
저자의 꿈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가 꿈 속에서 본 크리스챤이라는 인물의 여행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믿는 사람의 대표입니다.
Bunyan 자신이기도 하고 바로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그가 천국까지 걸어가는 순례길은
신자들의 인생길을 상징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곧게 뻗은 좁은 길을
따라 하나님 나라까지 나아갑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와 논쟁을 하기도
하며 그를 도와주거나 유혹하기도 합니다. 믿음, 소망은 그의
동행자가 되고 허례, 위선 같은 사람은 그와 논쟁하며, 데마, 아첨쟁이 같은 사람은 그를 유혹하여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사람들은 그 이름 그대로 신앙 생활에서의 미덕이나 악덕을 상징합니다. 지명도
이런 상징성을 가지는데 해석자의 집과 아름다움의 집이 있는 반면 허영의 시장과 의심의 성도 있습니다. 크리스챤은
순례길에서 기쁨과 위로를 얻기도 하고 복음을 분명하게 증거하기도 하며 죄에 넘어지기도 하고 마귀와 싸워 이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천국에 도착하여 천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영원한 복락을 누립니다.
천로역정을
통해 내가 신앙 생활에서 어떤 단계에 있는가 점검할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어떤 죄에 붙들려 있는가
깨닫고 크리스챤과 같이 천성으로 가는 좁은 길로 속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3. 천로역정
심포지엄의 영적인 유익
천로역정
심포지엄은 천로역정을 읽고 그 중 본인이 은혜를 받았거나 감명을 받은 부분을 선택하여 그 내용을 정리하고 자신에게 적용하여 발표하는 독서 심포지엄입니다. 여러분의 선배들도 천로역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로 끝까지 가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의 무지를 회개했고 어떤 분은 자신의 믿음 없음을 회개했습니다.
이로 인해 신앙 생활을 끝까지 감당할 힘을 얻었습니다. 잠시 사진을 통해 선배들이 어떻게
심포지엄을 통해 천로역정을 기쁘게 소감과 연기로 표현했는지 보겠습니다.
http://www.snu5ubf.kr/xe/inside_news/1893
http://www.snu5ubf.kr/xe/inside_news/27590
천로역정을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심포지엄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첫째, 천로역정의 내용을 다시 돌아보면서 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읽고 책을 덮으면 금방 잊어버리기 쉬운데, 이를 발표와 연기로 표현하면 기억에 깊이 남습니다. 천로역정은 천국까지
가는 지도와 같아서 신앙 생활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 내용을 기억하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천로역정
심포지엄을 하고 나면 천국 가는 길을 생생하게 미리 체험한 것과 같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가져갈 정확한 지도를 얻게 됩니다.
둘째, 천로역정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회개하며 새롭게 방향 잡을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보면서 자신의 현재 상태와 비슷한 부분을 한 군데 이상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세속 현자를
만난 크리스챤처럼 세상의 철학과 사상에 귀가 솔깃하여 따라가고 있을 수도 있고, 절망 거인에게 붙잡힌
것처럼 의심과 절망에 빠져 믿음의 길을 갈 힘을 많이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크리스챤이 말씀에
기초하여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회개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셋째, 함께 하는 형제 자매님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라난
환경도 생각도 성격도 다른 형제자매님들을 한 팀이 되게 하신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님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와 똑 같은 문제로, 혹은 전에 겪었던 문제로 투쟁하는 분들의 진솔한 소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에 있어서 자기보다 더 깊이 성찰하고 투쟁한 분의 소감도 들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도 믿음과 소망이라는 동료를 얻었을 때 위로를 얻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격려하며 천성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천로역정을 하는 동안 구원의 징표인 봉인 된 두루마리를 릴레이 하듯이 다음 사람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이 팀플레이가 큰 힘이 됩니다. 천국은 이처럼 한 팀이 되어 함께 갈 때 더 즐겁고 안전하게 갈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천로역정을 통해 당시 나태와 거만의 죄 문제가 우는 사자가 돌아다니는 위험한 길에서 잠을 자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게으르고 교만하면서도 큰 문제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큰 경계가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도 이 죄 문제를 인식하고 소감으로 투쟁하게 된 것은 천로역정에서 본 상징의 힘이 컸습니다. 또한 천로역정 심포지엄을 통해 무엇보다도 천국에 가고자 하는 소망이 커졌습니다. 이 세상 순례길 끝에는 나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임금님이 다스리고 계신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사실이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신앙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신 분이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신 분이든 천로역정
심포지엄을 통해 큰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의 축제에 나와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격려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참고문헌>
1. John Bunyan, The Pilgrim’s Progress (천로역정)
2. John Bunyan, Grace Abounding to the Chief of Sinners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3. 오병학 (1994), 신앙위인전기 시리즈 존 번연, 규장
4. 김동언 (1998), 텬로력뎡과 개화기 국어, 한국문화사
참고로 천로역정 원작에 충실한 크리스찬 영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자막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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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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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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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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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
오래만에 우리나라 수필의 정수라고 하는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전문을 읽었습니다. 가을에 캠프파이어 하면서 이 정취도 느껴보면 어떨가요?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새 날아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보다. 삼십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굴뚝의 붉은빛만 남기고 집 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거들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치 않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 나면 지저분하게 흙 속에 묻혀지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쪽쪽 그 뒷시중을 해야 된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자욱해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버린 꿈을 잃은 허전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꾸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린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 ─ 죽어 버린 꿈의 시체를 ─ 땅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에 없이 손수 목욕물을 긷고 혼자 불을 지피게 되는 것도 물론 이런 감격에서부터이다. 호스로 목욕통에 물을 대는 것도 즐겁거니와,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만 아궁이에 나무를 태우는 것도 기쁘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을 어린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런 물건 같다. 얼굴을 붉게 태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막 받았을 때의, 그 태고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는지 모른다. 나는 새삼스럽게 마음속으로 불의 덕을 찬미하면서 신화 속 영웅에게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좀 있으면 목욕실에는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의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 속에 전신을 깊숙이 잠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지상 천국은 별다른 곳이 아니다. 늘 들어가는 집 안의 목욕실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사람은 물에서 나서 결국 물속에서 천국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 물과 불과 ─ 이 두 가지 속에 생활은 요약된다. 시절의 의욕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 두 가지에 있어서다. 어느 시절이나 다 같은 것이기는 하나, 가을부터 절기가 가장 생활적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의 원소의 즐거운 인상 위에 서기 때문이다.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 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피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알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그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 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전등으로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하고 계획도 해 보곤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책상 앞에 붙인 채, 별일 없으면서도 쉴 새 없이 궁싯거리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하면서, 생활의 일이라면 촌음을 아끼고, 가령 뜰을 정리하는 것도 소비적이니, 비생산적이니 하고 경시하던 것이, 도리어 그런 생활적 사사(些事)에 창조적, 생산적인 뜻을 발견하게 된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절의 탓일까? 깊어가는 가을이, 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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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2절에 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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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24480달란트, 레벨:20/20 [레벨:20]](http://snu5ubf.kr/xe/modules/point/icons/default/20.gif) 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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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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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수양회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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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31745달란트, 레벨:20/20 [레벨:20]](http://snu5ubf.kr/xe/modules/point/icons/default/20.gif) 인금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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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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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수양회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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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29885달란트, 레벨:20/20 [레벨:20]](http://snu5ubf.kr/xe/modules/point/icons/default/20.gif) 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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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명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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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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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수시 면접 양들 도우실 때,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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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14160달란트 (82%), 레벨:16/20 [레벨:16]](http://snu5ubf.kr/xe/modules/point/icons/default/16.gif) 정세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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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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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모집 카드 예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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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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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b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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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Bread]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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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UBF, 기독교 교육 브랜드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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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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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6 |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 물음에 대하여 질문해왔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성취하려고 한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왜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는지 의아해 합니다. 한 운동선수가 최고 정점에 오르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해주었으면 좋았을 말은 무엇이었냐고 말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해줬다면 좋았을거에요.” 목표들은 이루고 나면 시간이 지난 후에는 공허한 결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업의 성공, 부, 인간관계, 성관계, 오락, 그리고 선행 등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 부, 인간관계, 그리고 쾌락을 얻고 나서도 그들 깊은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있다고 증언합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이 느낌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측량할 수 없는 부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지혜를 지녔으며, 많은 부인을 거느리고, 다른 왕국들이 부러워할 만한 궁전과 정원, 가장 좋은 음식과 술, 모든 종류의 오락물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때 원하고 추구했던 것들을 언급하고 나서 결국 “해 아래 있는 삶” 즉 우리가 보고 느끼는 삶은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런 허전함이 생길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하여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 이상의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왕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으셨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여기 (here-and-now)”에서 경험하는 것이 모든 것이 아님을 압니다. 창세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말씀합니다 . 여기서 우리는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 죄로인해 타락하기 전 그리고 땅이 저주받기 전에는 인간은 다음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셨다 (2)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을 주셨다 (3) 하나님은 사람과 교제하셨다 (4)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게 하셨다 이 사실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인간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위의 네 가지가 필요하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와 같이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특히 인간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인간의 죄와 저주받은 땅으로 인해 변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제 하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 하셨으나 인간은 죄로 그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분리된 삶은 무엇을 성취하고 소유하였어도 허무한 것일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삶의 의미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면서 잃게 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발견됩니다. 오늘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그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당신이 크리스챤이 아니라면 “별로 그렇게 기쁠 것 같지 않은데!” 라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라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11:28-3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하반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4-25). 이 말씀들은 우리가 선택권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내 삶을 계속해서 스스로 인도해, 허무한 결과를 맞이하거나,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 충만하고 소망이 가득차며 자족하는 삶을 살거나 오늘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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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기도할 때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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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24480달란트, 레벨:20/20 [레벨:20]](http://snu5ubf.kr/xe/modules/point/icons/default/20.gif) 정아브라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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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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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세팅 이퀄라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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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29885달란트, 레벨:20/20 [레벨:20]](http://snu5ubf.kr/xe/modules/point/icons/default/20.gif) 서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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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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