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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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no image 새벽기도시간의 은혜(2) [1]
[레벨:20]정아브라함
99 2009-05-08
요즘 새벽은 새벽 같지 않습니다. 5시만 되어도 세상이 훤하여 도대체 새벽기분이 안 납니다. 5-7월까지는 새벽같지 않은 새벽기도시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오늘 아침 새벽기도시간의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김기중 목자님이 반역을 당한 다윗을 따르는 잇대의 충성을 증거하였습니다. 다윗은 잇대에게 위험한 자기를 따르지 말고 예루살렘에 남아 새 왕의 은혜를 받으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가드사람으로 이방인인 잇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또 왕이 살아계신 한 자신은 왕을 따르며 왕이 죽든 살든 자신은 왕과함께 있겠다고 다짐합니다. 김기중목자님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언제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우리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따라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도 하고 혹은 비그리스도인으로 살기도 하는 죄인의 모습을 깊이 회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의 유익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의 유익을 따르는 것임을 다시한번 확신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은 먹을 것, 마실 것이 부족하고 또 삶의 모든 것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이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 지금 온 세상에 꿀벌이 멸종 되어 간다고 합니다. 꿀벌의 멸종은 인류 대 재앙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 종말의 때에 이 여정이 힘들다고 대열을 이탈하여 안일을 찿고 인간조건 개선을 좇아가는 비겁자가 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294 no image 자녀교육에 관한 2009.9.7.자 조선일보 기사 [1]
[레벨:20]정아브라함
96 2009-09-07
입력 : 2009.09.07 03:32 인성 바른 아이로 키우려면 #1. 평일 저녁, 붐비는 식당 안 교사 김씨는 모처럼 가족과 외식을 하기 위해 집 근처 식당을 찾았다. 가족과 오순도순, 평소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해볼 참이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김씨 가족은 불쾌감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거, 도대체 밥을 먹을 수가 있어야죠. 애들은 식당이 운동장인 양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지, 부모는 밥 안 먹겠다는 애들 쫓아다니면서 숟가락을 들이대는데, 주변 사람들을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가 보오. 더 괘씸한 건, '식당에서 뛰어다니면 안 돼요, 얼른 가서 밥 먹어요'라고 말하는 내게 '당신이 뭔데 애들 기죽이느냐'고 호통치는 부모들입디다." #2. 주말, 대형 마트에서 두 아이의 엄마 이씨는 장 보는 날에는 한숨부터 나온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버리는 아이들 때문이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마트 안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통에 결국 아이들 손에 물건을 쥐여주고 만다. "안 해본 방법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버릇을 제대로 들였어야 하는데. 이제는 밖에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예요. 버릇없는 우리 아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요즘 아이들은 다재다능하다. 공부는 기본, 저마다 특기 하나쯤은 갖고 있다. 재능을 살리기 위해 조기 교육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따로 인성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보연(43) 이보연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은 "영어·수학 교육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이 인성 교육"이라며 "인성은 아이가 자라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두 돌이 지나면서 사회화 과정을 거칩니다. 이때부터는 다른 사람 존중하는 법을 알려줘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마구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만지는 것을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라 판단해요.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아야 창의력이 길러지기 때문에 아이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다는 거죠. 큰 오해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있는 사람도 인성이 뒷받침돼야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친구 같던 부모도 인성 교육을 할 때는 '어른다운 부모'가 돼야 합니다." ▲ 일러스트= 김현국 기자 kal9080@chosun.com ◆자녀의 인성은 부모에 의해 좌우된다 왜 우리 아이는 버릇이 없을까. 우선 부모의 일관되지 않은 양육 태도를 들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뛰어다니고 떼를 써도 '오냐'로 일관하는 것은 아이에게 '네 행동을 용납한다'는 뜻으로 비친다. 한번 용납한 행동을 제지하기란 쉽지 않다. 나사를 풀기는 쉬워도 조이기는 어려운 이치와 같다. 부모의 '내 아이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아이를 버릇없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부모의 언행은 '나밖에 모르는' 아이로 자라게 한다.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보연 소장은 "인성이 부모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며 "아이에게서 문제점을 찾기보다 부모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버릇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먼저 아이와 함께 규칙을 정해 보자. 공공장소에서 용납할 수 있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 세 가지 정도를 정해 가족 모두에게 공표한다. 부모는 정한 규칙에 따라 일관성 있게 지도해야 한다. 물론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 좀 더 효과적이다. 버릇없는 행동에 익숙한 아이의 반발과 저항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아이의 저항과 반발이 심해질수록 '부모의 품을 벗어나면, 버릇없는 내 아이를 받아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훈육할 때, 아이가 안쓰러워 마음이 약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순간,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부모는 아이에게 내보여야 할 감정과 숨겨야 하는 감정을 전략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평소에 효과적인 지시법을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단호하게 안 된다고 잘라야 할 때는 명령조로 말해야 한다.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에 좀 앉을래?' '조용히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청유형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이라 생각한다. '이리 와서 앉아' '조용히 해' '어서 밥 먹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알맞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훈육할 때는 아이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 잘 들어'라는 말로 훈육을 시작해 보자. 이때, 아이와 눈을 맞춰야 한다. 신경질적인 태도보다 단호하게 옳고 그름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떤 벌을 받게 될지도 선전포고해야 한다. ◆내 아이를 존중하자 인성 교육은 아이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한다. 존중은 아이의 감정과 생각,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해주는 것이 아니다. 또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아이를 존중하는 법 중 하나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지만,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율이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부모가 대신 해주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격려와 칭찬을 해줘야 한다. 다만,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음을 알려주자. 이보연 소장은 "아이를 양육할 때, 개입해야 할 때와 방관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293 no image 유익한 기사 [3]
[레벨:20]정아브라함
122 2009-10-19
아침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이 유익하고 흥미있는 기사가 있어 올려봅니다. "아침에 알람(alarm·자명종)시계가 울린다. 합리적인 사람은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알람을 끄고 다시 단잠에 빠져든다. 당신은 어떤 타입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대개는 일어나겠지만 가끔은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 때도 있을 테니까. 전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알람의 예에서 보듯 대체로 합리적이지만 때론 비합리적이기도 한 모순덩어리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사람들의 이런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인센티브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경제학의 새로운 분야다. 미국 시카고대의 리처드 탈러(Thaler) 교수와 캐스 선스타인(Sunstein) 교수가 쓴 '넛지(Nudge)'는 일반인을 위해 쉽게 풀어쓴 행동경제학 책이다. 이 책에서 두 저자는 사람의 '제한적 합리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콘(econ)'과 '휴먼(human)'이라는 두 자아를 등장시킨다. '이콘'은 전통 경제학이 가정하는 '냉철하게 자신의 이익을 계산할 줄 아는 합리적 존재'이자 계획하는 자아를 말한다. 이에 비해 '휴먼'은 유혹이나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현실 속의 비합리적 존재이자 행동하는 자아다. 다시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의 예로 돌아가 보자. 그의 계획하는 자아인 '이콘'은 자기 전에 알람을 맞추도록 만든다. 그러나 막상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행동하는 자아인 '휴먼'은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도록 만든다. 이때부터 '이콘'과 '휴먼'의 대결이 시작된다. 만약 '휴먼'이 '이콘'을 이기게 되면 그는 나중에 회사 지각 때문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런 후회를 막으려면 '이콘'이 '휴먼'을 이길 수 있도록 배우자나 부모님과 같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가 혼자 산다면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최근 미국에서 출시된 '클라키(Clocky)'라는 알람 시계가 그런 장치다. 클라키는 알람 시작과 동시에 스스로 온 방 안을 굴러다닌다. 시끄러운 클라키를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 클라키가 '이콘'으로 하여금 '휴먼'을 누르도록 만든 것이다. '이콘'과 '휴먼'의 갈등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국민의 '이콘' 성향이 발현될 때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국가 정체성 등 대한민국의 중심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현재의 고통을 감내해낸다. 반면에 '휴먼' 성향이 발현되면 포퓰리즘(populism·대중 영합주의)이라는 현재의 달콤함에 안주하게 된다. 그 결과 나중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우리 국민이 '휴먼'의 유혹에 빠져들 때 누가 궁극적으로 클라키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지도자는 하나같이 자명종 역할에 충실했던 '클라키형' 인물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바로 국민의 '이콘' 성향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클라키형 지도자는 재임 당시에는 인기를 얻기 힘들다. 오죽했으면 박 대통령이 우리 국민의 '휴먼' 성향을 억누르기 위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단호한 결기로 클라키 역할을 수행했겠는가. 클라키형 지도자가 인기가 없다 보니 많은 지도자들은 자명종 역할을 포기하고 오히려 국민의 '휴먼' 성향을 부추기고 인기에 영합하려 든다."
292 no image 재미있는 기사 --- 낙성대와 서울대 [1]
[레벨:20]정아브라함
76 2009-12-07
서울대 신입생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를 잘 알아야 할 것같습니다. 어떤 기자가 본 서울대와 서울대생의 현실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서울대생을 기자가 본것처럼 보고 있는지 아리까리 하지만 하여튼 참고로 하십시요 교육ㆍ시험 [서울대 출입기자의 서울대생 이야기](1) "저 낙성대 다녀요" 서울대생이 거짓말하는 이유는?박순찬 기자 ideach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12.07 11:20 ‘아이리스’ 김태희, KBS 조수빈 아나운서, 미스코리아 이하늬의 공통점은…놀랍게도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뿔테 안경을 쓰고 아크로에 모여 앉아 민족의 장래만을 걱정하던 서울대생은 이제 없다. 교내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이번 겨울 쌍꺼풀 수술을 계획 중인 청춘 남녀들이 관악 캠퍼스를 누비고 있다. 서울대 00학번 출신 서울대 출입 기자가 전하는 ‘같은 듯 다른’ 서울대생 이야기를 조선닷컴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학생, 어느 학교 다녀?” “저요? 저…낙성대요.” 택시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울대생 김지훈(20·가명)씨는 사람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냐”고 물을 때마다 난감하다. 가끔 학교 옆의 ‘낙성대(落星垈·강감찬 장군의 출생지)’를 둘러대거나 “그냥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고 답한다. 남들은 “그냥 서울대 다닌다고 하면 되지, 참 잘난 척도 가지가지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건 속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평소에는 그냥 보던 사람들도 대학을 밝히고 나면 “오 서울대였어?”하면서 갑자기 대하는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때 공부 잘했나보네” “볼 것도 없이 일등신랑감이네”하는 소리도 세트로 따라 다닌다. 김씨는 “어딜가든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돌아보면 나도 굳이 진실을 말해야할 필요가 없을 때는 “그냥 서울에 있는 학교 다녀요”라고 하거나, 빙빙 돌리면서 “아…저기 관악산 있는 쪽에”라고 둘러댔던 기억이 난다. 왠지 “서울대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과도하게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암행어사 신분을 숨기고 온갖 고초를 당하던 이몽룡이 흙을 툭툭 털며 ‘마패’를 꺼내들자 사또가 껌뻑 죽는 것과 비슷하달까. “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서울대생은 처음이야” “서울대생을 보다니 진짜 영광이다”라는 말까지 들은 뒤로는 더욱 그랬다.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성지(聖地)처럼 여겨지는 이른바 ‘취뽀(취업뽀개기)’라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이 곳에 가면 각자 자신의 ‘스펙(specification·구직자의 학력·점수 등을 일컫는 말)’을 올려놓고 신랄한 평가를 주고받는 게시판이 있다. “왕십리 H대입니다. 2010년 졸업예정이구요, 학점 3.28/4.5, 토익 905…은행권에 가고 싶습니다, 냉정한 스펙 평가 부탁드려요.” 재미있는 것은 대놓고 학교이름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이다. “왕십리H대, 신촌Y대, 안암동K대, 신촌S대, 대학로S대…”처럼 다들 유추할 수 있는 이름으로 한 번 ‘돌려’ 말한다. 서울대와 수도권 사립대, 지방대가 공존하는 이 게시판에서의 미덕이랄까. 얼마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에서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서울대생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서울대생이라고 밝히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거나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않고, 서울대생이라는 타이틀 하나 때문에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 ?서울대생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높은데, 자신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오는 부담감이었다. 나도 백수시절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아줌마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싫었다. “아니, 서울대까지 나와서 지금 집에서 놀고있는거야?”라는 환청이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이몽룡도 산발이 된 머리로 흙묻은 저고리 자락을 걷으며 ‘마패’를 꺼내기가 창피했을지도 모른다. 서울대생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사실 남들보다 수능 한두문제 더 맞췄을 뿐인데 이렇게 대우가 달라지는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남들보다 수능 한두문제 더 맞추면 서울대에 갈 수 있고, 서울대에만 가면 통상적으로 삶이 달라진다는데 있다. 그런 비정상적인 ‘혜택’에서 비껴난 이들의 ‘찬사’를 불편하지 않게 느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박순찬 기자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00학번으로 현재 조선일보 사회부 소속. 기동팀(경찰)을 거쳐 현재 서울대를 출입하고 있다.
291 no image 서울대의 외국인 학생선발에 관한 기사
[레벨:20]정아브라함
40 2009-12-14
서울대에서 외국인 학생 선발에관한 기사가 있어 올려드립니다. 세계선교를 위해 기억해야 할 기사입니다. "중국 秀才 뽑아라" 서울대의 파격박순찬 기자 ideach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3) 입력 : 2009.12.14 03:11 현지 직접 방문해 면접 4년 장학금·생활비 지원 학칙까지 개정하기로 서울대가 '글로벌 인재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서울대는 내년부터 세계 각국의 인재들을 찾아 현지에서 선발하는 방식을 도입한다고 13일 밝혔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 해외 유수 대학에 우수 인재를 줄줄이 빼앗겨오던 서울대가 반격에 나선 것이다. 첫 시도로 내년 9월에는 중국 현지의 우리 동포들 가운데 수재(秀才)를 뽑아 입학을 허가한다. 서울대는 중국의 지린(吉林)·랴오닝(遼寧)·헤이룽장(黑龍江)성 등 동북 3성에서 각 성(省)별로 100등 이내의 성적을 유지하는 최상위권 학생을 대상으로 선발한다는 방침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중국 내 서열 1·2위 대학인 베이징(北京)대와 칭화(淸華)대에 입학할 정도의 인재를 데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전국통일고사(일명 가오카오·高考)' 성적이 나오는 6월 말쯤 서울대 입학 관계자가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 학생을 면접하는 방식이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입시가 시작되는 7월 초 이전에 우수 인재를 한발 앞서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선발된 학생은 성적에 따라 4년 동안의 장학금과 생활비 등을 지원받는다. 서울대 관계자는 "선발 인원은 지원 학생의 수준과 재원 확보 정도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학사 과정의 입학 시기를 학년 초 4주 이내'로 규정한 학칙을 개정(학년 초→학기 초)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존 학칙에 의하면 7월에 졸업하는 조선족 학생들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는 옌볜(延邊)·지린(吉林)·선양(瀋陽)·하얼빈(哈爾濱) 등에 있는 조선족 학교 4곳과 우수 학생 교류에 대해 협의 중이다. 서울대는 앞으로 세계 각국의 인재로 유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교육통계연보'(2009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대학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동포 포함)은 모두 5만591명이다. 반면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의 숫자는 24만3224명으로 국내 체류 외국 학생의 5배에 육박한다. 현재 서울대에 입학하는 외국인 학생들의 실력은 높지 않은 편이다. 입학관리본부 관계자는 "외국인 특별 전형으로 입학하는 학생들의 실력은 한국인 입학생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뛰어난 외국 인재들을 끌어올 수 있을 정도로 서울대의 위상과 학업 여건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는가는 앞으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서울대는 QS·더타임스의 '2009 세계대학평가'에서 47위에 올랐다. 칭화대(49위)나 베이징대(53위)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하버드대(1위)·케임브리지대(2위)·예일대(3위)·호주국립대(17위)·도쿄대(22위)·교토대(25위) 등에 여전히 뒤처진다. 주종남 기획처장은 "서울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우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며 "연구와 교육 여건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290 no image 시카고 본부 방문 [1]
[레벨:20]정아브라함
94 2010-01-04
289 no image 키에프 역사보고서
[레벨:20]정아브라함
52 2010-02-08
다음은 본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키에프 역사보고입니다. 현대의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는 것같습니다. 2009년도 키에프 UBF 역사보고 2009년도 키에프 센타의 요절 말씀은'첫 사랑을 회복하라'(요한 계시록 2:4,5) 였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과의 첫 사랑의 관계성을 새롭게하며 내적 외적으로 성장케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이시간 2009년도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돌아보며 주님 주신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세계선교 1) 터키 CIS 지부장 수양회 1월 초에 2009년도 준비를 위한 CIS 지부장 수양회를 1월 17-19일까지 터키의 이즈밀(Izmir)에서 가졌습니다. CIS 65명의 지부장 및 현지 리더 목자들 그리고 외부에서 27명이 참석하여 요한 계시록 2장 말씀을 공부하고 초대 7교회를 순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CIS 지부장 및 리더들은 여러모로 지쳐 있었고 서로서로 위로와 권면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광대한 영토와 교통의 불편함등으로 서로 만나서 기도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기도끝에 CIS 지역의 긴 겨울로 인한 침체된 기분도 전환 시키고 짧은 시간이지만 따뜻한 곳에서 햇볕도 받을 겸 에게해가 바라보이는 터키의 에베소 지역에서 수양회를 갖았습니다. 갑바도기아의 카타콤 및 초대교회의 7 교회를 심방하며 초대교회 성도들의 아름답고 올곧은 신앙과 정신을 배우고 우리들의 심령을 새롭게 하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수양회였습니다. 2) 특강 2월에 미국 톨리도 UBF의 Paul Hong 선교사님과 Sarah Hong 선교사님을 초청하여 2일간에 걸쳐 다윗의 영성에 대한 특강을 가졌습니다. 이 특강을 통하여 올바른 성경적 리더쉽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이런 기회를 통하여 이땅 가운데 성경적 가치관을 지닌 훌륭한 리더들이 많이 설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3) 유학생 선교사 파송 하나님께서 9월에 K목자를 이스탄불 UBF에서 섬기고 있는 보스포러스 대학에 입학하도록 도우셨습니다. K목자는 어리지만 그동안 신실하게 키에프 제자양성 역사에 동참하였습니다. 바이올린을 통하여 오케스트라를 섬기고 헌신적으로 역사를 섬기며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가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이슬람권 제자 양성 역사를 영접하고 터키로 간것은 큰 성령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 포인트 & R 선교사 그리고 M 선교사님과 함께 견고한 성령의 그릇을 이루며 터키 제자양성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시길 기도 합니다. 4) 제임스 포인트 & R 선교사와 공부하던 이스탄불 UBF의 L자매가 터키 극우자들에 의한 핍박을 피하여 키에프 UBF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자매가 어리지만 핍박의 상황속에서 주님께 대한 신앙을 담대히 지킨것을 주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와 같은 신앙을 지니고 주님의 이름을 포기 하기보다 자기의 꿈을 포기한 그녀의 순수한 믿음으로 인하여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입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키에프 외국어 대학교에 한 명의 외국인 T/O를 만드시고 L 자매가 입학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변함없이 충성하고 제자양성에 온마음을 드리는 제임스 포인트 및 T국 선교님들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이분들을 크게 축복 하시고 주님의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길 기도 드립니다. 5) 타국 수양회 참석 역사: 주님께서 은혜 주셔서 이스탄불/캐나다/중앙 아시아/모스크바/시카고YDC/런던 UBF의 수양회 및 성탄 예배, 사랑의 교회 지도자 세미나등 세계 각국의 수양회에 목자 및 선교사들이 참석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수 있도록 하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2. 제자양성 역사 1) 주일 예배 말씀 역사 2009년도에 마가복음과 갈라디아서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창세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양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양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풍성한 말씀의 역사를 이루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부족하고 허물진 저와 김 사라 선교사를 리더들의 말씀을 돕는 성경 선생이요 말씀의 조력자로 사용하여 주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주일 말씀과 아침 일용할 양식 메신저로서 아브라함 블라드, 알렉산더 노아, 다비드, 요나단, 사무라이 슬라바, 워치맨 디마 목자를 세우시고 꾸준히 말씀을 공급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하여 주님께서 이들을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말씀의 종들로 성장하도록 도우시길 기도 드립니다. 2) 5 Felloship을 통한 역사 저희는 현재 5개의 Front로 나누어 제자양성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1)키에프 공과 대학 -1팀(요나단 목자), (2)공과대학 2팀(사무라이 슬라바) (3)키에프 쉐브첸코 대학 1팀 및 English Club(올레나 목자), 키에프 쉐브첸코 대학 2팀(워치맨 디마) (5)줄라니 선한 사마리아 팀(다비드)) 이를 통하여 저희는 키에프 대학과 키에프 공과대학에 말씀의 씨앗을 꾸준히 뿌릴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사용 하시어서 매주 100-120팀의 일대일을 꾸준히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리더들이 목자의 심정과 책임성을 지닌 제자들로 성장하고 이들의 제자 양육을 통하여 많은 가능성 있는 제자들이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다비드 & 빅토리아 목자 가정과 Mother스타니슬라바 목자님께 버려지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을 주시고 선한 사마리아 팀을 통하여 이들을 섬기게 하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저희는 저희 센타 주위에 학생은 아니지만 알콜과 마약 중독으로 버려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도와 주는 것이 이 땅위에 낮아지셔서 냄새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신 주님을 섬기는 기본적인 신자의 자세라는 것을 영접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를 통하여 저희 센타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복된 주의 전으로 쓰임 받게 하시길 기도 합니다. 3. 수양회 역사 1) 봄 수양회 봄 수양회를 우크라이나 연합 수양회로 오데사에서 가졌습니다. 창세기 말씀으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장9절)라는 주제로 아름다운 수양회를 갖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 수양회를 통하여 자라나고 있는 17명의 키에프 형제 자매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결단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수양회를 마음을 다하여 준비하고 섬겨주신 오데사 UBF 동역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한국의 바쁜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 경희 목자님, 최동진 목자님을 한걸음으로 달려 오게 하셔서 이 수양회를 지원하여 주신 경성 센타의 동역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2) 제 1회 흑해지역 연합 여름 수양회 «Jesus is the Answer»라는 제목으로 요한복음 4장 26절을 요절로 흑해지역 연합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저희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제자 양성을 하신 주님의 선교 전략을 본받아 흑해를 중심으로 제자양성을 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흑해 수양회를 우크라이나 및 터키가 연합하여 갖게 되었습니다. 방학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전체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말씀과 회개의 영이 충만한 수양회를 이루게 하신 주님께 감사들 드립니다. 무엇보다 저희들은 이 수양회를 통하여서 섬기는 리더들이 먼저 회개하고 복음신앙위에 굳게 서는 수양회가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30여명의 우크라이나 및 터키 형제 자매들이 진실하게 회개하고 새롭게 성령충만함을 덧입는 수양회로 축복하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또한 바쁘신 일정 속에서도 이 수양회에 참석 하시어서 온 마음을 다하여 축복하시고 섬겨 주신 전 요한 선교사님을 비롯하여 이사무엘, 이 옥희 목자님(한국) 김 다윗 목자님(연희) 서 제임스, 서경희 목자님(경성), 안 요셉, 안마리아(시카고) 선교사님을 비롯한 많은 목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좋은 강의를 하여 주신 폴 고(시카고) 선교사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3) 가을에는 매년 가졌던 전체 가을 수양회를 하지 않고 각 Front별로 성경 아카데미를 가졌습니다. 4) 12월 27일 누가복음 2장 12절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을 주제 말씀으로 성탄 예배를 갖고 많은 불우한 사람들을 초청하여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간다 베데스타 Medical Center 건축 성탄 보배합을 드렸습니다. 4. 가정교회 역사 1) 7월에 현재 Ph. D 과정에 있는 야로슬라브 목자와 kiev Internationl School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라리사 목자간의 아름다운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라리사 자매의 목자인 김 에스더 선교사는 15년전에 유학생으로 이곳 키에프에 왔습니다. 그녀는 김 사라 선교사와 말씀을 공부하며 온전히 헌신된 주님의 제자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15년간을 눈이오나 비가오나 기쁠때나 슬플때나 성공의 때나 실패의 때나 저희 가정과 완전한 동역의 관계를 이루었습니다. 헌신된 연희 센타의 김 마가 선교사님과 가정 교회를 이룬 후에도 변함없이 헌신하고 희생적으로 주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은 성령께서 친히 이루신 아름다운 동역의 산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분의 헌신을 축복하시고 오네시모와 같은 라리사 한 자매를 오랜세월 동안 품고 섬겨 가정교회를 이루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2) 젠틀맨 싸샤 튜텐코 목자와 올레나 추스 목자: 2010년 1월 3일 새해의 시작과 함께 이 두분을 통하여 가정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젠틀맨 사샤는 젠틀하고 조용한 목자로서 신실한 형제입니다. 야로슬라브 목자와 함께 키에프 UBF 축구팀을 만들어 Kiev Christian Soccer Club과 적극 연대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결혼식은 마치 축구 스타의 결혼식처럼 환호성이 넘쳤습니다. 요나단 목자와 캔두 목자가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드려 이 형제를 헌신적으로 제자양성 한 것을 감사 드립니다. 올레나 추스 목자는 전 우크라이나 어학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키에프 대학에 대통령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어학에 능통한 능력이 넘치는 자매였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알지 못해 죄를 짓는데 쓰다가 그러한 자신에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기숙사에서 절망 가운데 있는 그녀에게 주님은 키에프 센터 최고의 사람 낚는 어부였던 제임스 포인트 목자를 룻 목자와 함께 보내셔서 그녀를 피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Cooker인 마리아 피스 목자에게 인도 하셨습니다. 올레나 목자는 영어를 공짜로 공부할 수 있어서 센타에 계속 나왔습니다. 그리고 존 피스, 마리아 피스 목자 가정의 헌신적인 사랑과 열정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어느날 목자요 섬기는 자로 변화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새로운 가정 교회를 우크라이나 복음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길 기도 드립니다. 5. 2010 새해 방향과 기도제목 저는 2010년을 시작하면서 지난 19년간의 선교 역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8월이면 키에프 센타도 개척된지 20주년이 됨을 알았습니다. 저는 보리떡과 같은 저와 김 사라 동역자 그리고 김 에스더 선교사를 오랜동안 오병이어로 사용 하시어 광야와 같은 이땅에서 절망의 역사를 소망의 역사로 바꾸시고 황무지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신 것에 깊이 감사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양육된 제자들을 통하여 6명의 해외 선교사와 14 가정 교회를 이루신 것을 주님께 감사하고 어떻게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감사의 제단을 쌓으며 보답할 수 있을까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결과 우리 모임이 추구하는 네비우스 선교 방식을 적용하여 20살 푸르른 청년의 나이가 되는 2011년에 현지 제자에게 리더쉽을 계승 시키고 영적부흥을 위한 성령의 그릇을 잘 이루도록 도와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성령의 방향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이 일을 기뻐 하시고 합당한 방향대로 인도 하시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2010년 키에프 센타 요절은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입니다. 부요절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 «성령을 따라 행하라»입니다. 2009년 한해 동안 전 세계 복음의 동역자님들의 사랑과 모든 기도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10년 기도 제목은 1) 열심으로 복음을 자랑하고 회개와 기도에 힘쓰며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도록 2) 메신저들과 Front 리더들의 영적 성장 위하여: (1) 제임스 포인트 2)아브라함 블라드 3)야곱 블라디미르 4)노아 자이킨5)요나단 쌀륙 6)다비드 부치코프 7)사무라이 슬라바 8)야로슬라바 9)디마 워치맨 10)싸샤 튜텐코 목자 3) 150팀 일대일과 100명 주일 예배 4) 키에프 센타 역사의 계승을 위하여 견고한 기초를 놓을 수 있도록입니다. 한마디: «첫사랑을 회복하라» 김 베드로 선교사 드림
288 no image 어떤 에세이 [1]
[레벨:20]정아브라함
83 2010-02-16
어느 잡지에 "아버지의자리"라는 제목으로 몇분의 에세이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를 소개합니다. 근무중 혹은 공부중 피곤하면 쉬어가십시요 출판인 고정일 사람들은 아버지를 등신이라고 불렀다. 몸집이 작고 안경도 쓸 수 없을 만큼 약시인 데다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누구든 대차게 나오면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리 억울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 일제 때 아버지는 수레에 된장을 싣고 팔러 다녔고 해방이 되자 군고구마 장사를 했는데, 때때로 못된 사람을 만나 된장통이 엎어지거나 군고구마 항아리가 박살나기도 했다. 만만해 보인 아버지는 이런 행패를 당하기 일쑤였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던 5살짜리 어린 내 가슴에는 그때마다 분노가 치밀었고, 사람들 말대로 아버지는 정말 등신인가보다 생각하며 슬퍼 울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아버지는, 노부모를 두고 어찌 피란가느냐며 어머니에게 애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라 했다. 이틀 뒤 반나절거리 외가를 눈앞에 두고 우리 가족은 중공군과 미군 사이에 꼼짝 못하게 갇히고 말았다. 어느 날 밤, 한 차례의 섬광이 엄청난 폭발 굉음과 함께 우리가족을 순식간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포연 속에서 나는 참혹하게 조각난 두 동생과 짓이겨진 어머니의 몸을 보았다. 나는 전쟁 고아가 되어 한겨울 눈보라 벌판을 헤맸다. 그때 나는, 이 모든 불행이 사람들 말대로 등신 같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원망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종로5가 적산가옥 지하 단칸방을 빌려 아버지는 동대문 시장에서 꽁치장사를 하시고, 나는 영창서관 사동으로 일했다. 동네아이들에게 내 별명은 언제나 ‘꽁치’였다. 그 시절 아버지는 지나가는 엿장수에게서 고물 빅타유성기, LP판 ‘슈베르트 가곡집’, 달력에서 떼어낸 ‘밀레의 만종’, 일어판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을 사들였다. 아버지는 비가 와 장사를 공치는 날이면 온종일 그것들을 즐겼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 짓곤 한다. 소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등신이라 불린 아버지에게 그렇듯 숨겨진 감성이 있었다니…. 아버지 회갑 때였다. 후취로 와서 무던하게 살아온 새어머니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시라고 나는 적잖은 돈을 마련해 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누가 곤경에 빠졌다는 거짓 사정에 속아넘어가 그 돈을 몽땅 줘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이 전에도 수없이 있었다. 그즈음 사무실로 찾아온 아버지께 나는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등신이라고 하지요!”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않다가 “나, 간다” 한마디를 던지고는 곧장 발길을 돌리셨다. 몹시 쇠약해진 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그날따라 무척 힘없어 보였다. 그 얼마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그날 일을 두고두고 후회해왔다. 아들이 아버지를 힐책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었다. “아버지, 잘하셨어요.” 그때 왜 따뜻한 말 한마디를 못했을까. 아버지는 조그만 바람에도 고개를 숙이는 여린 들풀이셨다. 사람들에게 멸시당할 때마다 아버지 가슴속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고였을까.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당신보다 더 어려운 이를 도우려 애쓴 아버지, 그 선한 아버지가 그립다. 내 가슴에 고인 아버지의 눈물이 오늘도 내 마음에 흘러내린다.
287 no image 재미있는 통계
[레벨:20]정아브라함
51 2010-02-24
신문에 나온 기사입니다. 마음 속 공상으로 연결되기 쉬운 취미 보다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취미가 인생에 더 나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보여 주어서 참고로 올려드립니다. 조깅이나 마라톤 등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취미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축구도 테레비로 구경하기 보다는 실제로 운동장에서 뛰어 기술을 연마하고 다른 선수나 팀을 압도하는 현실성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요회 목자님들은 CEO에 해당합니다. 2010년에 요회 부도를 내지 말고 배가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참고로 CEO가 골프를 즐기면 회사경영을 등한이 하게 된다는 말도 통용되고 있습니다)이하 기사입니다. ( 최고경영자(CEO)가 스포츠를 즐기는 회사는 부도가 날 확률이 낮다는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나왔다. 신용보증기금은 2002∼2008년에 보증을 서준 36만4436개 회사의 재무적 요인 및 CEO의 성별 연령 등 비재무적 요인과 기업 성과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CEO의 취미와 기업 부실이 상당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영자가 스쿼시(부실률 2.7%) 마라톤(3.0%) 골프(3.4%) 조깅(3.9%) 테니스(4.3%) 등의 스포츠를 즐기는 경우 부실률이 낮았지만 음악감상(8.6%), 산책(9.1%), 영화감상(10.3%), 인터넷(11.7%)이 CEO의 취미인 회사는 부실률이 높았다. 독서(7.1%) 서예(7.3%) 미술(7.3%)도 부실률이 높은 편이었다. 류재현 신보 리스크관리부 팀장은 “경영자가 지구력이 필요하고 활동적이거나 전문성이 높은 취미를 가진 경우 대체로 부실률이 낮았고 영화 음악감상 같은 비활동적인 취미를 갖고 있으면 부실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가정이 안정돼야 사업도 잘된다는 것도 입증됐다. 경영자가 배우자 및 자녀와 함께 지내는 경우 부실률은 4.9%로 낮았지만 자녀가 없으면 6.9%, 이혼 등으로 자녀만 있으면 9.8%, 미혼이면 10.9%로 부실률이 높았다. 정재윤 기자 jaeyuna@
286 no image 창세기 특공대 위한 기도 [3]
[레벨:20]정아브라함
96 2010-08-03
지금 창세기 특공대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로 신입생 형제자매님들이 특공대가 되어 은혜 새롭습니다. 창세기 공부야 말로 우리 UBF모임이 한국과 세계 기독교에 기여한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사뮤엘 선교사님이 창세기 강의안을 만들어 강의를 시작하고 창세기 1:1공부를 시작하여 많은 한국과 세계의 대학생들이 창세기 공부를 통하여 기독교 인생관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창세기 1:31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을 통하여 많은 운명주의적 형제자매님들이 새롭게 섭리의 인생관을 회복하고 위대한 주님의 종들로 거듭났습니다. 이로써 창세기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생명력이 충만한 말씀인가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창세기는 하나의 신화로 치부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한국교회나 교회지도자들도 창세기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은 안해도 대부분의 교인들도 창세기는 신화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가 신화로 간주되는 한 각 사람의 신앙역시 신화적인 것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심히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은다고 하여 모든 것을 신화로 간주해 버리면 신앙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창세기는 우리의 영혼에 울리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입니다. 창세기 공부를 시작한 우리 신입생 및 새로운 형제자매님들이 창세기 공부를 끝까지 완주하여 기독교 인생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사탄이 어찌하든지 이 공부를 방해하기 위하여 의심을 심고 다른 것으로 유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탄의 궤계를 물리쳐 주시고 창세기 특공대를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85 no image 한국 명절의 이해 [2]
[레벨:20]정아브라함
69 2010-09-28
우리나라명절인 추석에 하는 조상제사에 관하여 유익한 글이 있어 올려드립니다. [송호근 칼럼] 조상숭배의 나라 [중앙일보] 기사 나도 한마디 (138) 2010.09.27 19:46 입력 / 2010.09.28 00:25 수정 관련핫이슈 [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지난 추석 명절을 잘 쇠셨는지, 부모와 일가친척은 평안하신지, 조상은 만나뵈었는지, 그리고 청명해진 가을밤 그윽한 달빛을 맞으셨는지. 우리 정서엔 꼭 들어맞는 이런 인사의 뒤편에는 앞앞이 말 못하는 갑갑증과 파열음이 꿈틀대고 있다. 부모, 친지와의 만남이 항상 저 환한 달빛과 같으면 좋으련만, 가족사엔 언제나 기대와 원망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서로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게 명절이다. 말이 명절(名節)이지 수백 년 대물림된 행사를 치러야 하는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뭇한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한국만큼 명절이 제례(祭禮), 특히 조상 제사로 일관되는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말 개화기 선교사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미몽의 백성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자의 나라’로 뭉뚱그려 묘사했는데, 세계에서 유례없는 조상숭배 열기만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유교 문명의 종주국인 중국은 물론 주변국인 일본과 월남에서도 조상 제사를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교문화권, 아니 세계에서 한국이 조상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나라가 된 까닭,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이 위패 앞에 은덕을 비는 나라가 된 까닭을 정작 우리도 잘 알지 못한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풍경인가라고 어른들은 짐짓 위엄스러운 표정을 짓겠지만, 남녀 간 불합리한 역할, 가족 간 불공평한 노력봉사와 비용조달에 가슴앓이하고 시간을 쪼개 품앗이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소소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게 요즘의 추세다. 아마 귀경길에서 언쟁깨나 했을 부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소중한 시간을 의례에 쏟아붓고 허둥지둥 돌아설 때 그런 회의가 들지 않겠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유별난 ‘조상숭배의 나라’가 되었을까? 1894년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는 오백 년 도읍지 한양에 종교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종교 없는 제국은 없다는 문명사적 시선으로 보면, 사찰은커녕 공자 사당 하나 없는 유교국가의 수도가 이상했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무속과 민간신앙에 푹 빠져 있는 조선인들을 목격했다. 콜레라가 습격한 마을엔 고양이 그림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가는 곳마다 무당이 있었고, 으슥한 곳마다 귀신이 살았다. 귀신 종류도 다양해 그녀는 36가지 귀신 이름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이 과도한 무속과 민간신앙을 조상제례로 전격 대치한 계기가 바로 조선 건국이다. 고려 말까지도 명절은 하늘과 자연을 경외하는 집단축제였다.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한 조선은 민간신앙을 일소할 방법을 주자학에서 찾았다. 제천(祭天)과 제사(祭祀)가 그것이다. 경복궁 우측에 사직단을 지어 하늘신과 토지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좌측에 종묘를 지어 제사의 기원을 마련했다. 15세기 말 성종은 아예 『경국대전』을 편찬해 국법으로 반포했다. 예제(禮制)에 이런 조항이 있다. ‘6품 이상 문관이나 무관은 3대까지 제사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일반 서민은 부모에게만 제사 지낸다.’ 잡신을 섬기는 자는 처벌되었다. 빈곤한 서민은 위패를 모시고, 명절 땐 두어 가지 음식으로 족했다. 굶는 판에 더 차릴 것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양반이 향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봉제사는 충군효친의 규율 수단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엄격한 격식과 요란한 상차림이 강제됐다. 조상숭배가 통치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놓이자 봉제사는 곧 가문의 위세경쟁으로 변했다. 유교는 내세관이 없는 게 특징이다. ‘조상숭배의 나라’에서 불교와 주술신앙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다. 미국 선교사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기』에서 ‘코레아인들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에, 사고방식은 불교에 속하며, 곤경에 빠지면 귀신을 믿는다’고 썼다. 21세기 대명천지에 귀신을 믿는 사람은 이제 없어졌고, 외래종교가 유입되자 한국은 다종교사회로 변했다. 그런 와중에 유교는 제천(祭天) 기능을 다른 종교에 넘겨주고 주로 생활의례, 특히 제례(祭禮)로 살아남았다. 명절이라는 축제의 시간을 제사로 종종걸음을 쳐야 하는 ‘조상숭배의 나라’가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이런 내력을 알았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조상을 기리는 방식은 여럿인데 왜 반드시 상차림 형식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조상숭배가 왜 자기 가문(家門)에만 국한돼야 하는가. 전자는 덮어두고라도 후자는 의미심장하다. 탁월한 학자와 선비, 그리고 민족 영웅과 구국의 정치가들이 가득한 오천 년 역사에서 국민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할 선현들을 기리는 데는 인색했다. 명절마다 천여만 명이 이동하고, 집집마다 족보 하나쯤은 갖춘 세계 유일의 ‘조상숭배의 나라’에서 다 같이 숭배할 조상이 이처럼 없는 것도 너무 특이하지 않은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284 no image 김형석교수에 관한 기사
[레벨:20]정아브라함
68 2010-11-03
김형석교수님은 연세대철학과 교수였습니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수필집을 써서 유명해진 분입니다. 위 제목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영원하신 예수님과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인의 대화에서 따온 것입니다. 다음의 기사에 위 책에 관한 뒷이야기가 실려 있어 참고로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만년필로 글을 쓰신다는 것도 배울만합니다. 다음은 기사내용입니다. 김형석(90·철학) 연세대 명예교수는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에세이로 지친 영혼을 위로해준 우리시대의 대표적 멘토다. 1960, 1970년대 그가 펴낸 수많은 에세이집은 방황하던 젊은이들에게 ‘삶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 1980년대 후반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읽을거리가 많아지면서 그의 글이 갖던 절대적 영향력은 차츰 약화됐고 그 또한 대학강단에서 정년퇴임하며 세인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원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당 조만식 선생 추모 60주기 및 전기 출판기념회에서 ‘고당에게는 꿈이 있었다’는 추모 강연을 했고, 11월9일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년 추모 모임 강연자로도 나설 예정이다. 지난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그는 가을 햇볕처럼 따스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어느덧 중년이 됐지만 그는 구순이라는 연세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고 단아한 노철학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연세대 철학과에서 정년퇴직하신 게 벌써 25년 전인데, 정말 건강하시네요.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항상 조심하면서 사는 습관이 붙었지요. 지금도 무리는 안합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건강을 위한 건강에 매달리는 것 같은데 나는 좀 생각이 달라요. 건강이 목적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앓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늘 무리하지 않고 지냈죠. 무슨 일이든 쫓기지 않으며 하려고 노력합니다. 원고나 강연을 청탁받으면 마감날짜 4∼5일 전에 끝냅니다. 많은 일을 하면서도 긴장을 덜 하고 살아온 게 건강 비결인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맡은 일도 미리미리 한다는 그는 매일 아침 50분씩 산책을 하고 오후엔 수영을 한다. 그것도 지나치지 않게 한다. “더하고 싶을 때 딱 그만둔다”는 게 그의 말인데, 평생 조심하면서 준비하고 절제하며 살아온 습관이 그의 오늘을 만든 듯싶다. 김 교수는 “얼마전 원고청탁이 들어왔는데 사람이 얼마나 사는 게 좋으냐는 게 주제였다”면서 “객관적으로 얼마나 사는 게 좋으냐를 생각하며 쓰다가 얻은 결론은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200자 원고지에 만년필로 원고를 쓴다. 한땀한땀 바느질하듯이 정성을 다해 생각을 모으고 글로 옮긴다. ‘컴퓨터로 쓰면 손의 피로도가 덜할 텐데 여전히 손으로 쓰시냐’는 질문에 “이렇게 만년필을 들고 원고지 앞에 앉으면 생각이 한곳으로 모아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마치 성직자가 기도하듯이 구도하는 자세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는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펴내는 잡지 ‘아산문화’에 두고온 북녘을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마침 이번 주말부터는 금강산지역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예정돼 있는 상황이어서 그의 글은 실향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북녘의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고향의 가족에 대한 기억은 어떠신지요. “나는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났고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송산리에서 성장했어요. 북한에 누님과 누이동생, 사촌이 있는데 저쪽에서 내가 반공주의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 만나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한번도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지 않았어요.” 그의 표정엔 고향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1947년 월남한 이후 행방을 모르고 살아온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났지만 이내 학자적 냉정함을 찾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8·15 해방을 북한에서 맞고 2년여 북한체제를 경험한 뒤 1947년 월남했다. 이후 중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한 뒤 1954년 연세대에서 철학과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철학자 겸 수필가로 이름을 날린 것은 1961년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펴내면서부터다. 1960, 1970년대 문학평론가인 이어령 당시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했는데 빼어난 수필을 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물으니 이렇게 얘기했다. “연세대에 오기 전에 중학교에 있었는데 내 꿈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모범적인 사립학교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게 20대 후반의 내 목표였고 일찍이 중학교 교감도 됐지만 자의반 타의반 연세대로 오게 됐어요. 7∼8년 동안 정열을 갖고 가르쳤던 아이들을 만나보면 애들을 버리고 떠난 부모 같은 심정도 들고 해서 그 애들과 대학초년생들에게 뭔가 주고 싶어 ‘고독이라는 병’ ‘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쓴 것입니다. 특히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1961년 여름 미국으로 교환교수로 가기 전 서문을 써주고 갔는데 이듬해 귀국해서 보니 제가 그 책 덕분에 많이 유명해졌더군요.” 1960년대 초 발간된 그의 철학 에세이를 읽은 독자들은 이제 50, 60대 장년층이 됐다. 10년 전 그가 울산으로 강연을 갔을 때 초로의 신사가 다가와서 “선생님께서 우리의 20대 젊은 시절을 키워주셨어요”라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 울먹인 일도 있다. “제 책의 독자들은 60대가 제일 많습니다. 지금도 강연을 하면 내게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분들이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때 받은 영향이 큰 것 같아요. 나나 안병욱 선생이나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글을 썼지만 그 시대(1960∼1970년대)엔 우리의 글이 필요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글은 인간 존엄성과 가치관, 영원한 것에 대한 추구 등 실존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박정희 정권 때 안전기획부에 끌려가 조사도 받았고, 전두환 정권 때엔 강연이 취소된 적도 있다. “박정희 정권 때 학생들이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김찬국 연세대 신학과 교수와 함께 나섰는데 나는 ‘자유의 조건’을 강연 제목으로 제시했어요. 그런데 기관원들이 와서 ‘자유’를 주제로 한 얘기는 곤란하다며 방해해 강연 자체가 취소된 적이 있어요. 나는 그때 사회적 현실에서 역사를 바꾸는 자유는 투쟁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죠. 이성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유를 말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다는 게 핵심내용이었는데 기관원들의 공작으로 불발됐어요.” 그는 박정희 시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준 대중의 철학자로 유명하다. 그가 1985년 9월 연세대에서 정년퇴직할 때 고별강연을 했는데 그날은 마침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날이었다. 학교측은 시위 때문에 강연을 미룰 것을 검토했으나 김 교수는 강연을 강행했다. 그런데 데모를 하던 학생들이 시위 도중 하나둘씩 강의실로 들어왔고 강연장은 이내 최루탄 범벅이 된 채 입장한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런 상황에서 김 교수는 고별강연을 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내가 연세대에서 잘못 살지 않았구나 싶어 고맙게 생각됐다”고 말했다. 그는 늘 가치지향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로 자유의 중요성을 얘기했을 뿐 1970, 1980년대 참여지식인들처럼 투쟁적인 언어로 정권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날 인터뷰에선 우리 역사 속에서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위상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얘기했다. “나는 일제강점기 때 유년기를 보내고 20대에 해방을 맞으며 6·25와 4·19, 5·16을 거치며 살아왔지만 대한민국에서 제일 슬펐던 때는 역시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때부터 전두환 정권이 6·29선언을 하기 전까지입니다. 다시는 우리 역사에서 그 같은 암흑기가 반복돼서는 안됩니다. 그때 저는 조용히 살았지만, 하룻밤도 편안하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특히 전두환 정권 때에는 지성인까지 침묵을 지키면 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역사의 암흑기였던 전두환 시대가 끝날 즈음 그는 대학강단을 떠났고 이후 20여년이 흘렀다. 그는 요즘 고민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민족의 앞날에 대해 많이 걱정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950년대에는 여러 가지 어렵다고 해도 인생이 뭐냐, 가치관이 뭐냐를 추구하며 살았고, 박정희 시대 후반기부터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많이 쏟았습니다. 그런데 민주화한 이후 요즘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자리가 잡혀가지만 좌우 대립은 여전한 듯합니다. 지금은 자유와 평등보다 높은 것, 진보와 보수보다 높은 것이 필요합니다. 고당 조만식 선생 추모 강연 때도 얘기했지만 선진국에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이미 다 끝났습니다. 보수가 열린 사회로 가면 지지하고, 진보가 닫힌 사회로 가면 반대해야 합니다. 소련은 좁은 사회를 추구하다 망했고, 북한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열린 사회가 필요합니다.” 평생 자유로운 지성으로 살고 싶었다는 그는 “젊은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며, 그래야 우리 민족의 길이 열릴 수 있다”며 강의와 같은 긴 대화를 마쳤다.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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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정아브라함
72 2011-03-22
조선일보 기자가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썼습니다. 학부모와 학부모인 교사의 대화입니다. '취업맘' 자책은 금물, 뻔뻔하고 대범해져야 약간 방임하는 것도 아이에겐 藥… 21세기 최고 경쟁력은'헝그리 정신'새 학년이 시작된 3월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무개 어머니, 아무개 담임입니다. 아무개가 아직 구구단을 외지 못합니다. 구구단은 2학년 때 배우는 과정입니다. 수업에 지장이 많사오니 가정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마녀',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 아무개 엄마입니다. 저는 성실히 세금 납부하여 선생님 월급을 드리고 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선생님의 의무지 저의 의무가 아닙니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할 터인데 왜 제게 책임을 물으시는지요? 아무개가 구구단을 제대로 욀 때까지 A/S 해주시기 바랍니다.' # '정보수집'차 엄마들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이프'라는 사이트에 들어간 영란씨. 저 해괴한 글을 발견하고 한밤중 컴퓨터 앞에서 혼자 배꼽을 쥐었다. 세상에 이런 통배짱 엄마가 있었어? '마녀들의 수다'라는 문패가 붙은 코너에는 이 글 말고도 불순한 엄마들의 목소리가 와글와글했다. '엄마, 아이 캔 스픽 잉글리시가 뭔 뜻이야?' 묻는 중1 딸에게 '영어 못하는 것도 대한민국에선 개성이지' 하고 낄낄대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이번 시험에 낙제했으니 부진아 학습을 시키겠다'고 통지해온 선생님께 '우리 애는 명문대학 갈 의사가 전혀 없사오니 그냥 집에 보내달라'며 호기를 부리는 엄마도 있다. 황당해진 담임, 아이를 불러 '니네 엄마 계모니?' 했다는 대목에서 또 깔깔 웃은 영란씨는, '계모'도 좋고 '마녀'도 좋으니, 나도 통배짱 엄마 되어 이 험난한 교육 전장(戰場)을 뚫고 나가리라 다짐하였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통배짱이 시험대에 섰다. 반찬 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출산 전 다니던 회사에 파트타임으로 나가 일하는 영란씨. 한 달에 기십만원 하는 학원비가 벅차 겨울방학 동안 학교가 시행한 방과후수업에 3학년 아들 녀석을 등록했던 것인데, 하필 영어는 오전에, 수학은 오후에 있어 도시락을 싸서 보내게 되었다. 한데 퇴근길 동네 수퍼에 들렀더니 같은 학교 학부형인 주인 아주머니가 혀를 찬다. "에이그, 우리 애 데리러 학교에 갔더니 그 댁 아들이 차가운 학교 계단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습디다." "진짜요?" 사실 확인차 집으로 뛰었다. 아들내미 왈, 도시락 먹으러 제 교실로 갔더니 자물쇠로 잠겨 있고 다시 영어 수업했던 교실로 돌아오니 그 사이 문이 잠겼더라고 했다. 그래서 계단에 앉아…. 이튿날 열일 제쳐놓고 학교로 달려갔다. 교무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당직 선생님 앉아 계신다. "어쩐 일이세요?" 나이 오십줄에 밝게 웃는 여교사와 눈이 마주치자 영란씨 잠시 흔들렸지만 애써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아이가 찬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도시락을 까먹을 때 선생님들은 뭘 하고 계셨습니까. 그렇잖아도 다른 애들처럼 풍족하게 뒷바라지 못해 피눈물이 나는데요, 흐억…." 설움에 북받친 영란씨, 잠시 숨을 골랐다 다시 쏟아부을 태세인데, 선생님 그녀의 손을 덥석 잡는다. "일단 앉으시지요, 추운데 차 한 잔 드시지요." # "방학이라 수업 없는 교실들은 문이 잠겼을 테고 당직 서는 교사들 한둘뿐이니 미처 못 봤을 테지요. 보았다면 그렇게 놔둘 리 없지요. 저희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서운하다는 겁니다. 솔직히 일하는 엄마 애들은 뒷전이고 찬밥 아닌가요? 남편 월급만 갖고 살 수 있다면 저도 학교 봉사 열심히 할 수 있다 이겁니다. 아이 손에 열쇠 쥐여주고 집 나서는 심정, 선생님은 모르시잖아요." "재미난 얘기 해 드릴까요? 30년 교직에 있어도 우리 애 선생님 뵈러 갈 땐 심호흡을 했지요. 담임이 까마득한 20대 후배교사인데도 허리 굽혀 인사하게 되데요. 저도 죄 많은 취업맘 아닙니까." "……" "아이 몸에 열이 펄펄 끓어도 학교로 나서야 하는 날엔 남의 집 아이들 잘 키우려고 내 아이를 이렇게 버려둬도 되나 하는 죄책감에 눈물 뚝뚝 흘리며 등교했지요." "……" "재미난 얘기 또 해 드릴까요? 5학년 딸아이가 구구단을 못 외니 그 책임을 선생에게 엄중히 묻는 어떤 어머님 글이 인터넷에 떴더라고요. 뜨끔하고도 통쾌했지요. 우리 딸도 4학년 되도록 구구단 못 외웠거든요. 흐흐!" "…근데, 그 따님 대학은 갔나요?" "가다마다요. 엄마 믿었다간 밥 굶고 대학도 못 간다 싶었는지 알아서 밥 차려 먹고, 알아서 병원 가고, 알아서 공부하고, 알아서 사윗감 물어오고. 그러니까 돈 워리(Don't worry)! 21세기 최고의 경쟁력은 '헝그리 정신'인 거 아시죠? 그거 하나는 제대로 길러준 셈이에요, 하하!"
282 no image 신문칼럼 소개 [3]
[레벨:20]정아브라함
67 2011-04-05
아래 신문의 컬럼에 모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청할 부분이 있어 올려 드립니다. 사설 • 칼럼[아침을 열며/4월 5일] 친구 아무개 목사에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오랜만이네. 자네 직업이 성직자, 목사이기 때문에 우리 같은 속물들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소식을 전해주는 친구가 있어 소식은 이따금 듣고 있네. 아닌 게 아니라 지난번에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자네 이야기가 나왔네. 회사 다니다가 근자에 그만둔, 아니 잘린 친구 몇몇은 자네를 퍽 부러워하더구먼. 한 해에 연봉이 몇 억이고 정년도 아직 한참 남았다면서 말이야. 나도 그런 생각이 슬며시 들었네. 자네 교회가 세상에 유명한 아무 아무 교회처럼 몇 만 명의 신도를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 명을 넘는 신자가 있고 거기다 교회가 부자동네에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성경 말씀과 동떨어진 삶 오늘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그 날 그 모임에서 나온 자네 이야기 때문이네. 그날 모임에서 자네가 일본에 쓰나미가 일어난 것을 두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말을 들었네. 그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네. 왜냐하면 쓰나미에 죽거나 다친 사람들 중에는 적기야 하겠지만 기독교 신자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네. 솔직히 말해 안 믿는다고 쓰나미로 자신의 피조물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여 버린 하나님이란 존재를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네. 자네 말을 전해 듣고 나는 강도를 맞아 쓰러져 있던 사람을 구한 사마리아 사람이 생각났네. 예수님은 거지반 죽게 된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의 이웃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이 이웃이라 하셨네. 만약 예수께서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면, 눈물을 쏟으시고 크게 슬퍼하셨을 것이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셨을 것이네. 이왕 말을 꺼냈으니, 몇 마디 더 함세. 자네는 새벽이면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교회에 가서 큰 소리로 무엇 무엇을 바란다고 기도를 한다는데(하기야 보통 기독교 신자들도 다 그렇지만),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예수님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지 말고 아무도 안보는 골방에서 기도하되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던가. 자네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자네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자네 마음을 다 아실 것이네. 어떤 친구는 자네가 강남의 값비싼 아파트에 산다고 또 부러워하더군. 과연 그런가.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오직 자신만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어찌 하여 예수님과 그렇게 다른가. 자네는 또 세금도 내지 않는다 하였네. 정말인가.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자네는 교회가 늘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고 하지만, 그렇게 으리으리한 수백억짜리 교회를 지으면서 어떻게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겠는가. 또 예수님은 제자들을 여러 곳으로 파견하시며 지팡이 외에는 돈도 먹을 것도 가지지 말고 신발도 그대로 신고 속옷도 껴입지 말라고 하셨네. 그런데 자네는 번쩍이는 양복에, 어찌 그리 값비싼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가. 부디 예수 믿기를 권함 자네 알다시피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네. 아니 어떤 종교도 믿지 않지. 하지만 성경은 종종 읽어본다네. 그런데 자네의 말과 행동이 성경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니, 나로서는 자네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네. 어릴 적 친구니까 무람없이 부탁하네. 자네 제발 예수 좀 믿어보게. 자네가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에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말이 있는데,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니 좀 좋은가. 물론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불신지옥을 택하겠네만, 자네는 직업이 직업인만큼 예수를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남보다 자네가 먼저 예수를 믿어야 남에게도 믿으라 권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부디 먼저 예수 믿고 천당 가시게.
281 no image 은혜로운 글 [4]
[레벨:20]정아브라함
89 2011-06-02
다음은 ab.jr가 어디선가 읽고 보내온 글입니다. 아버지들에게 위로를 주는 글입니다. 아버지들이 읽기 원합니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 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이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 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 ~ 아빠는 무었이나 할 수 있다. 7세때 ~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 ~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가? 12세때 ~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 ~ 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 ~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 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 ~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 ~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 ~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였어. 60세때 ~ 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두 배쯤 농도가 진하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잇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옮긴글==
280 no image 재미있는 기사
[레벨:20]정아브라함
58 2011-11-15
다음은 어떤 신문에 나온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실정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아버지는 평생 목회만 하다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친가, 외가 가족 모두 아무도 빼먹지 않고 주일 예배 꼬박꼬박 지키는 집안이라 교회에 익숙하다. 그런데 근래들어 이렇게까지 기독교인이 욕먹는 분위기는 예전에 본 적이 없다. 옛날에는 “쟤 교회 다닌대” 그런 말을 할 때, 사람들 생각은 그럼 착한 애겠구나, 내지는 좀 재미없고 심심한 애겠구나, 뭐 그런 거였다. 요즘에는 “누구누구씨 교회 다닌대”, 할 때 아무도 그를 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재미없고 심심할 거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땅값도 잘 알 것 같고, 세금 피하는 법에도 훤할 것 같고, 시세차익 같은 것도 쫙 꿸 것 같고 막 그렇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누구누구씨가 평소에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다면 사람들은 실망도 한다. 누구누구씨 그렇게 안 봤는데 교회를 다닌다고? 확실히 기독교인을 보는 시선이 좀 묘해져서, 이 분위기에서 ‘저 교회 다녀요’ 하고 말하는 건 커밍아웃까지는 아니라도 좀 민망해진 감이 있다. 그래서 “저 교회 다녀요”, 다음에 붙이는 말이 자꾸 늘어난다. 저 교회 다니지만 저희 교회 큰 교회 아니구요, 저희 목사님은 세습 목회 반대하시구요,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그런 선교는 안 좋아하구요, 저는 리처드 도킨스도 읽는다니까요, 이렇게 주섬주섬 변명을 하는 내용인즉슨, 나는 교회를 다니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 ‘개독’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 친척들은 모여서 장로 대통령이 되라고 참 열심히 기도했다. 그런데 장로 대통령이 되니까 희한하게도 교회 다니는 게 ‘쪽팔린’ 세상이 왔다. 이게 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꼴이 될까봐, 혹시 내가 일방적으로 우기는 건 아닌지 열심히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약삭빠를 것 같고, 잘 우길 것 같고, 꼼수 잘 쓸 것 같은 사람처럼 이미지를 일신하고 만 것은 장로 대통령 때문이 맞는 것 같다. 여전히 오세훈을 좋아하는 우리 친척들 사이에서도 곽선희 목사님(소망교회 창립자)은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그러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떤 사람들 눈에는 참 시시한 목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 이 세상에 욕심 낼 것 없다, 좋은 차, 좋은 옷, 이런 것 욕심낼 것 없다고 가르쳤다. 어차피 천국에 가면 얼마든지 좋은 것이 많으니 살아서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기독교인이 보통사람과 가장 다른 점은 죽음 이후에도 생이 계속된다는 것을 믿고, 그리하여 구원받아 영원한 삶을 믿는다는 것일 텐데, 이명박 장로님을 보면 좀 민망하다. 내곡동 게이트도 그렇고 돈에 대한 순수한 ‘욕정’의 소유자라고 이렇게 놀림을 당하는 걸 보면, 누가 죽고 난 후에 삶이 있다고 하겠는가. 이래서야 누가 기독교인이 사후의 삶을 믿는다고 하겠는가. 그럼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지같이 살아야 되냐, 예수 믿고 축복 받아서 물질적으로 잘 풀리는 것도 은혜다, 하고 버럭들 하시겠지만 평생 교회 다녀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그린벨트 언제 풀릴지, 귀신같이 알 사람 취급보다는 좀 재미없고 심심한 사람 취급이 백배 나은 것 같다
279 no image 성탄시 [1]
[레벨:20]정아브라함
88 2011-11-23
가을수양회 정해찬 목자님의 메세지를 듣고 저의 소감을 성탄시로 적어 보았습니다. 제목 "이름 모를 여인의 편지"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 바리새인의 집 뜰에서 나는 당신을 보았답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서슬 퍼런 눈빛 속에서도 다만 고요히 얼굴을 숙이고 들어와 예수님 뒤로가 섰지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당신은 예수님 발 곁에 앉아 우셨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히 흐느끼다가 어느 샌가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 시선이 당신에게 향하였지만 당신은 그냥 울기만 하셨지요 나는 그때 가만히 당신 쪽으로 다가갔답니다. 당신의 눈물이 마치 비처럼 예수님의 발에 떨어졌습니다. 당신의 눈물로 예수님 발은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긴 머리를 풀어 예수님 발을 닦았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우는 내내 당신이 그렇게 발을 닦아 드리는 내내 예수님은 그윽한 눈길로 당신을 그냥 보고만 계셨습니다. 오- 사람들 눈에 어찌 그처럼 많은 눈물이 담겨있지요? 사람의 눈물이 어찌 다른 사람의 발을 그처럼 젖게 할 수 있지요? 사람의 울음이 어찌 그리 서러울 수 있지요? 긴 눈물 뒤에 나는 당신이 향유병을 따서 예수님 발에 그 향유 붓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름 모를 여인이여 나는 그때 나의 눈 속 눈물병에도 아직 쏟지 않은 눈물이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여 아름다운 당신은 나에게 말합니다. 너의 그 눈물이 연민의 눈물이 되지 않게 하라 너의 그 눈물이 분노의 눈물이 되지 않게 하라 너의 죄로 인하여 통곡하라 너의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지게 하라 그 눈물이 모두 회개의 눈물이 되어 예수님 발을 적시게 하라 다만 너의 눈물병에 담긴 그 눈물들을 그냥 가지고 가지 말라
278 no image 유익한 기사 [3]
[레벨:20]정아브라함
71 2011-11-25
다음은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왜? 실제로 뇌가… 내 처지에 화가 나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주변에 감사할 일을 세가지 꼽아보자.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나아질 지 모른다.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카전서 5장 18절)"는 성경 대목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일반인인에게 많이 음송된다. 그런데 여기에 과학적 논리가 숨어있었다. 종교에 무슨 과학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를 미국 심리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감사의 과학적 변화를 확인했다. 연구 요지는 감사하면 뇌 좌측의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해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고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reset(재설정)`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설명했다. 감사가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라는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재확인한 것이다. 미국 마이애미대 심리학 교수 마이클 맥클로우는 "잠깐 멈춰서서 우리에게 주어진 감사함을 생각해보는 순간 당신의 감정시스템은 이미 두려움에서 탈출해 아주 좋은 상태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승리에 도취된 감정을 느낄 때와 유사한 감정의 선순환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감사하는 게 좋을까. 왜 감사한지를 생각하고, 꼽아보고, 음미하는 게 효과적이다. 감사가 가지는 힘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는 것. 미국 시카고에서 심리클리닉을 운영하는 심리학자이자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르얀 트로이아니는 환자들과 상담을 하면서 불만을 제한하고 감사함을 더 표현하게 하면서 효과를 봤다. 그는 "감사일기나 공책은 중요한 치유의 도구가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UC데이비스의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에몬스는 실험을 통해 "감사하는 사람은 훨씬 살아있고, 경각심을 가지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다른 사람들과 더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감사의 과학』이란 책을 2권 집필하고 감사일기의 효과에 대한 연구발표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생리학적으로 감사는 스트레스 완화제로 분노나, 화, 후회 등 불편한 감정들을 덜 느끼게 한다"고 했다. 에몬스는 12살에서 80살 사이의 사람들을 상대로 한 그룹에는 감사 일기를 매일 또는 매주 쓰도록 하고, 또 다른 그룹들에는 그냥 아무 사건이나 적도록 했다. 한달 후 중대한 차이가 발생했다. 감사 일기를 쓴 사람 중 4분의 3은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고, 수면이나 일, 운동 등에서 더 좋은 성과를 냈다. 그저 감사했을 뿐인데 뇌의 화학구조와 호르몬이 변하고 신경전달물질들이 바뀐 것이다.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 사랑과 공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뇌 좌측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
277 no image 재미있는 유머 [5]
[레벨:20]정아브라함
90 2011-12-14
우리 사무실 어떤 분이 메일로 보내준 유머입니다. 심심풀이로 읽어보십시요 변호사님께 오전에 약간 망그러지고 와서 , 망중한... 기분도 풀 겸 후배로 부터 받은 유머 하나 전달해 드립니다 ( 구문일지도 모릅니다. 부담없이 지우시면 됩니다) 경상도 내이티브 스피커들은 다 이해 되실텐데 이해안되시는 분은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서창희 드림 <경상도학교수업시간> [학생(이름 안득기)가 수업시간에 졸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불려나갔다] 선생:니 이름이 뭐꼬? 학생:안득깁니다. 선생:안드끼나? 니이름이 머냐꼬! 드끼제? 학생:예! 선생:이짜슥바라! 내...니 이름이 머냐꼬 안무러 봤나? 학생:안득깁니다. 선생:정말 안드끼냐? 학생:예! 선생:그라모 니 성말고, 이름만 말해 보그라. 학생:득깁니다. 선생:그래!드끼제? 그라모 성하고 이름하고 다 대보그라. 학생:안득깁니다. 선생:이자슥바라.드낀다 캤다,안 드낀다캤다. 니 시방 나한테 장난치나? 학생:샘요, 그기 아인데예! 선생:아이기는 머가 아이라카노! 반장아, 니 퍼떡 몽디 가온나! (껌을 몰래 씹고 있던 반장은 안 씹은 척 입을 다물고 나간다) 반장:샘예.몽디 가꼬 왔는데예~~~ 선생:이머꼬?몽디 가오라카이 쇠파이프를 가왔나? 햐~요새키 바라,반장이라는 새키가 칭구를 직일라꼬 작정했꾸마... 야~니 이반에 머꼬? 반장:예?? 입안에...껌인데예~~~~~ 선생:머라꼬? 니가 이반에 껌이라꼬? 날씨도 더버서 미치겠는데 뭐~이런놈들이 다있노! 시방 너그 둘이서 낼로 가꼬노나? 그날 반장과 득기는 뒈지게 맞았다
276 no image 시대의 정신병 [3]
[레벨:20]정아브라함
115 2011-12-21
다음은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읽으면서 이 사회가 무엇인가 매우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자기 개성을 갖지 못하고 의류판매회사의 판매전략에 걸려들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다른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정신병 속에서 아이들이 매우 불쌍합니다. 2012학번 형제자매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는 점을 우리가 알아야겠습니다. 그래도 성적이 좋을수록 그런 옷을 입지않는다는 말이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이나리 기자 경제부문 차장 퇴근길에 오른 A씨에게 고교생들의 대화가 들렸다. 이들은 모두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었다.  “1학년 땐 너처럼 무조건 검은색만 입어야 돼. 2학년 때는 나처럼 색깔 들어간 거 입어도 괜찮아. 단 형광색이 들어간 건 3학년 전용이야. 잘 알아둬.”  대화 주제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패딩 점퍼였다. A씨 얘기에서 알 수 있듯 이 점퍼는 요즘 우리 십대들이 가장 많이 입는 옷이다. 오죽하면 ‘노스(노스페이스) 교복’이니 ‘교복 패딩’이니 하는 말까지 생겼을까. 얼마 전까지 산 강북 동네엔 남자 중·고등학교가 나란히 있었는데 아침이면 꼬리 문 노스 행렬이 교문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스 광풍이 본격화한 건 2008년 무렵이다. 과거 이 브랜드는 고가의 전문가용 의류란 이미지가 강했다. 한데 몇몇 학생이 이를 교복 위에 걸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선도그룹 중엔 미국 조기 유학생 출신이 적잖았다. 미국은 이 브랜드의 최대 시장이다. 예쁘고, 기능 괜찮으며, 잘나가는 애들이 입는 옷. 관심을 증폭시킨 건 스타 마케팅이었다. 이 브랜드는 2009년 업계 최초로 유명 산악인 대신 젊은 여배우를 모델로 기용했다. TV 노출도 잦아졌다. ‘1박2일’류의 야외 버라이어티가 득세하면서 출연진 의상도 함께 떴다. ‘나PD 노랑 점퍼’ ‘이승기 파카’ 같은 것들이다. 이는 한정 판매, 노(No) 세일 전략과 맞물려 노스를 십대의 ‘필수 간지 아이템’으로 격상시켰다.  물론 과거에도 나이키 운동화 같은 인기몰이 제품은 있었다. 그에 비해 노스 열풍은 훨씬 격렬하고 냉혹하다. 지난 주말 포털 인기 검색어 1위를 차지한 이른바 ‘노스페이스 계급’ 게시물을 보자. 같은 패딩이라도 20만원대는 ‘찌질이’, 30만원대는 ‘중상위권’, 60만원대는 ‘있는 집 날라리’용이다. 70만원대는 ‘대장’ 계급을 상징한다. 50만원대 이상엔 따로 ‘등골 브레이커’란 별칭이 붙었다.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제품이란 뜻이다.  이 비싼 걸 비강남권 아이들이 더 많이 입는 건 아이러니다. 새로 이사한 강남 동네에도 아파트 담 바로 뒤에 남자 고교가 있다. 여기 학생들은 노스를 입는 비율이 확연히 낮았다. 중3 아들은 “성적이 좋을수록, 잘사는 집 애일수록 노스를 덜 입는다”고 전해줬다. 진짜 부자들이 로고 가득한 루이 뷔통 가방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연유일까. 반면 보통의 십대에게 노스 착용은 또래 주류로 입성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 절박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네티즌 B씨가 올린 중고 노스 판매담이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이미 예약 판매가 끝났는데 중학생 하나가 뒤늦게 전화했다. 아이는 “지금껏 짭(모조품)밖에 못 입어봤다”며 악착같이 매달렸다. 어머니까지 동원했다. “형편이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엄마 목소리 뒤로 욕설 섞인 아들의 애타는 다그침이 이어졌다. B씨는 결국 그 제품을 아이에게 넘겼다. 어머니가 불쌍했기 때문이란다.  최근 발생한 인천공항철도 노무자 참사 사건에도 이 제품이 등장한다. 중학생 아들의 소원인 노스를 사주고자 새벽 작업에 나섰다가 변을 당한 사연이다. 이 비정규직 아버지의 월급은 160만원 남짓이었다.  이렇다 보니 집안 사정은 아랑곳 없이 노스에 매달리는 십대들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게 어디 애들 탓일까. 웬만해선 계층 상승을 꿈꾸기 힘든 세상이다. 그 불안과 좌절을 옷으로라도 견뎌보려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돈으로 사람 값 매기기야 어른들만 하겠는가. 더 속상한 건 취향의 실종이다. 취향은 자아의 징표이며 ‘영혼의 액세서리’다. 교양처럼 평생 갈고 닦아야 한다. 기업은 ‘고도의 마케팅’으로, 어른은 천박한 물질주의로, 학교는 규제와 줄 세우기로 그 귀중한 학습 기회를 빼앗아버렸다. “학생들이 노스에 빠진 건 우리 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란 우스개가 하나도 안 우스운 이유다. 그런 면에서 “노스 중독을 없애려면 코트까지 교복화해야 한다”는 모 교수의 제안은 그야말로 코미디다. 아이들이 진정 구하는 건 ‘간지’가 아닌 위안이요 희망임을 정녕 모르는 걸까.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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