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475 no image 유선 전화기 필요하신 분? [1]
[레벨:20]인금철
31 2009-11-03
474 no image 이탈주민 예비 새내기들을 만나보고... [5]
[레벨:20]인금철
96 2009-12-07
오늘 어딜 갔다가 T.V를 보는데, 베트남에서 시집 온 효부 얘기가 나오더군요. 이국 땅에서 힘든 기색 없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그의 인생이 단련되었기에 그와 같은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효부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며칠 전 처음으로 만났던 이탈주민 수험생들이 생각나서요. 애초에 서울대에 이탈주민 출신들이 지원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국정원 간부라도 따라다녀서 접근조차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어디서 면접 하는지는 학교에서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만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학교에 올라갔는데, 교내에 침투(?)해 있는 김❍❍ 자매님께서 고급정보를 주셔서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이탈주민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나와 있더군요. 근접하면 경계하고 도망갈까봐 걱정했는데, 그러는 기색이 하나도 없더군요. 진우 목자님과 가까이 가서 인사하니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던지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뒤이어 그의 친구 한 사람이 또 나오고... 그들의 고향은 저 먼 함경북도 ❍❍과 ❍❍... 와, 예전에 지리책에서나 듣던 그 이름이라~ 학교를 guide 해주고, 점심도 같이 먹자고 했더니, 선배님들 시간 뺏는거 아니냐며 아주 좋아하더군요. 학교가 넓으니 차로 안내해 주겠다고 하니, 그럴 필요 없다면서 자신들은 2~3일도 걸어봤다면서 다리가 튼튼하다고 하더군요. 그렇게해서 체육관 쪽에서 걷기 시작하여 301동 15층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 한 학생은 외교학과에 지원했는데, 꼭 통일이 되어서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외교학과에 온 이유도 통일에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하네요. 한 학생은 여전히 아버지와 여동생이 북한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솔직히 전 속으로 울컥했는데, 그 친구의 담담한 얼굴을 보고 놀랬습니다. 경영대 지원했는데, 돈을 많이 벌고 싶대요^^ 식당에서 이들을 환영하러 온 두 분의 사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제가 되고, 자연스럽게 동아리방까지 가서 사모님들과 말씀공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한 학생과는 길이 맞아 집 근처까지 같이 가게 되었는데, 헤어지면서 오늘 많은 걸 배워서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탈 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일단은 매우 순수하고 겸손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개인주의보다도 공동체정신을 강조하고, 조그마한 도움에 대해서도 매우 감사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삶이 연단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요즈음 대학생들이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때문에 문제의식을 점점 상실해가고, 소시민적이 되어 가면서 영적인 지도자 양성이 쉽지 않은 마당에,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제사장 나라로 쓰시는데 이렇게 연단된 자들을 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은 합격하고 학교에 들어와야 할텐데, 동역자님들께서 기도를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년 봄학기 예배 때에는 그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473 no image 박무디 목자님 인생 소감 파일
[레벨:20]인금철
63 2009-12-17
이번에 스탭 수양회 때 그 동안 안성쎈타를 섬겨 오시던 박무디 목자님의 책임목자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소감을 들으면서 목자님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목자생활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허락을 얻어 올립니다. -------------------------------------------------------------------- 2009년 목자 수양회(책임목자퇴임소감) 2009. 12. 15.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 롬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께서는 많은 주님의 종들을 통해서도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보여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은 안주실 것도 없고 못 주실 것도 없습니다. 다 주시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전요한 박사님의 운전수로 일을 했기 때문에 이분들의 든든한 백으로 겁도 없이 모든 캠퍼스를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원 없는 목자의 인생을 펼쳐 나가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사무엘 선교사님에게서 절대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훈련을 배우고, 전요한 박사님에게서는 창조적인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을 배웠습니다. 저는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거저 주는 사랑을 받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의 목자 철학도 그분처럼 절대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훈련입니다. 특히 그는 1년 365일 매일, 매 시간, 매 순간마다 훈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을 절대적인 훈련으로 키웠습니다. 한 순간도 훈련 없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창조적으로 훈련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 곁에 있으면 초침이 쉬지 않고 움직이듯이 항상 깨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전요한 박사님은 저에게도 창조적인 개척과 도전으로 역사를 섬기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저에게 대표기도를 시키는가 하면, 각종 수양회와 성경학교 강사, 주일 메시지, 때로는 갑자기 결혼 주례를 맡기시고, 장례예식도 맡기시고, 총회 총무, 총회 부총회장까지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목자님은 운전수인 저를 1991년 가을, 안성UBF 책임목자로서 개척역사에 도전하도록 하셨습니다. 당시 중앙대 안성캠퍼스 주변은 논과 밭과 산으로 어우러진 전형적인 시골마을로서 UBF센터가 설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제가 안성캠퍼스를 개척 나가자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너는 나의 운전수인데 어느 날 갑자기 책임목자가 되었다, 고로 너는 120명의 양 무리들을 돌보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이분들의 절대적인 사랑과 훈련, 창조적인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으로 모든 캠퍼스를 휘젓고 다녀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멋있는 목자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일대일 역사가 한창 일어나고 있을 때에는 20팀을 오르내리는 정말로 일대일에 미친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그때 우리는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이었고 일대일에 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카페, 네스트랑은 물론, 심지어 목욕탕까지 쫓아다니며 일대일 역사를 섬겼습니다. 한창 일대일 전성기에는 석, 박사는 물론 목사님들까지 몰려와서 열심히 일대일 하고 가셨습니다. 당시 어떤 노 목사님은 센터에 들어서면 영적인 권위가 너무 강력해서 머리를 들 수 없다고 고백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숙제를 하고 소감을 쓰며 일대일을 하고 가셨습니다. 이들도 일대일에 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88올림픽 기간에 박마리아 동역자는 일대일 금메달을 받을 정도로 일대일 전투의 선두주자였습니다. 정말로 행복한 목자의 시절이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귀하신 주님의 종들을 통해서도 우리를 향하신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 무렵 성대 윤구 원인희 박정완 84학번 3총사가 성장해서 목자요 선교사가 되었고, 86학번 김용관 양희직 등 성대 법대를 중심으로 아주 활발한 일대일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중에는 대학3학년 때부터 요회를 개척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도 자라서 선교사요 목자들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학생 때부터 목자 훈련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자원해서 풀타임 훈련을 받고 캠퍼스 목자로 자라갔습니다. 당시 훈련을 시키는 분들도 자원해서 자립적으로, 훈련을 받는 분들도 자원해서 자립적으로 잘 감당해 나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러한 영적인 훈련들은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누가 방향을 주어서 시키고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당시 저는 출판부를 섬기고 있었고 일용할 양식을 보급 판매 교육까지 섬기고 있었습니다. 특히 일용할 양식은 저에게 인연이 깊었습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김모세 목자님은 꾸준히 일용할 양식을 보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UBF에 나오기 전부터 매일 일용할 양식을 잘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UBF에 나오자 어떤 목자님은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몇 번 먹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용할 양식은 매일 먹는 것 아닙니까?” 하고 반문한 적이 있습니다. UBF에 가장 좋은 훈련은 일용할 양식 훈련이었습니다. 저는 일용할 양식 훈련을 통해서 목자로 자라갈 수 있었습니다. 1974년 저는 척추 수술을 받고 고집과 심술을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저를 심방오신 배사라 선교사님은 “회개하시오!” 한 마디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로 회개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덕분에 병상생활을 통해서 무려 4번 성경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경읽기와 말씀 공부를 통해서 한없이 하늘 문을 여시고 쏟아 부어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받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1976년 봄 저는 고린도 전서 15장 부활장 암송대회에서 장원을 하고 부상으로 양복을 한 벌 받았습니다. 당시 여러 목자님들이 반발하고 떠나기도 하였지만 저는 열심히 암송한 덕분에 5분 동안에 100% 완벽하게 암송하여 목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1976) 12월 1일, 박마리아 목자님과 단 하루 만에 오직 믿음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추종을 불허하는 믿음의 여장부 안마리아 선교사님과 이를 단순하고 우직하게 순종한 믿음의 어미 박마리아 목자님 덕분에 저도 위대한 가정교회를 이루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딸 마리아가 안양 UBF의 임야곱 목자님과 믿음으로 결혼을 해서 아들 임한결 왕자님과 딸 임이랑 공주님을 얻었습니다. 아들 마가도 종로 1부 박지은 목자님과 2세 역사상 첫 가정교회를 이루고 아들 박모세 왕자님을 얻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수 없이 많은 하늘의 천사들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 육의 자녀들, 영, 육의 손자 손녀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갖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저에게 D.L. Moody처럼 위대한 목자가 되도록 Moody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캠퍼스 양무리들을 섬길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을 얻고 매일 새벽을 깨워 캠퍼스에 올라가서 기도하며, 형제 장막에서 일용할 양식모임을 하고, 캠퍼스 기도모임을 이루면서 캠퍼스 개척역사를 활발하게 섬겼습니다. 1991년 9월 22일, 저와 마리아 동역자와 두 자녀와 함께 4명이서 개척예배를 보고 중앙대 안성캠퍼스 개척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안성에서도 임아브라함 임사라 목자 가정을 좋은 개척 동역자들로 보내 주시고(1995년 5월), 손성한 오흥원 모준범 형제 3총사가 자라게 축복하셨습니다. 또한 서미영 이지윤 모수정 자매들도 키우셔서 이제는 모두 가정 교회를 이루고 사모님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IMF가 터진 1999년 4월 6일에는 경매에 넘어가버린 옛 안성센터를 떠나서 새롭게 말구유 센터를 건축하는 기적의 역사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하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역사입니다. 2009년은 제가 책임목자직을 퇴임하는 해입니다. 지금 임아브라함 임사라 목자 가정이 후계자로 성장하여 계승역사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돌아온 장규헌 장미영 목자 가정이 새 역사를 감당하는 활력소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9학번 양님들이 일대일을 하는 역사가 활발합니다. 특히 임사라 목자님이 섬기고 있는 이의승 형제는 여름 수양회를 참석하고 꾸준히 자라가고 있습니다. 또한 장미영 목자가 섬긴 김용훈 형제는 믿음으로 2009유럽국제여름수양회에 참가하여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 외에도 윤주민 백승현 형제들이 박마리아 사모와 일대일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저희가 책임목자직을 퇴임하게 되지만 일대일, 제자양성, 세계선교는 꾸준히 앞장서서 잘 감당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 까지 풍성한 열매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까지 저와 저의 가정을 끝까지 섬겨주신 이사무엘 선교사님, 그리고 그레이스 선교사님, 전요한 박사님과 전선지 사모님, 이사무엘 목자님과 이옥희 사모님, 페터장 선교사님, 윤모세 목자님, 그리고 모든 스텝 목자님들의 기도와 사랑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한마디: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
472 no image 도전해 보세요! [2]
[레벨:20]인금철
82 2009-12-30
471 no image 3월 아카데미 날짜 정해졌습니다~
[레벨:20]인금철
27 2010-02-12
470 no image 양들의 고민... [1]
[레벨:20]인금철
69 2010-03-25
예전에는 성경공부 하자고 할 때 시간이 없다고 하는 양들을 보면, 하기 싫어서 핑계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게 정말인 양들이 많더군요. 수시로 제출해야 하는 레포트 때문에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늘 잠이 든다는 어떤 양의 말을 들을 때, 과연 그들이 인생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할 시간이 있는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요즘 '김예슬 선언'이 이슈입니다. 엊그제 신문기사를 읽다 보니, 그를 지지하는 카페를 개설한 한 대학생의 인터뷰가 있어서 올려 봅니다. "21년간은 별다른 회의 없이 살았다. 나름대로 착한 딸이라 부모님이 만족하실 만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입학한 뒤엔 학점이 좋아야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내가 (부모님에 의존하는) 인큐베이터 인간인가? 내 삶을 헤쳐나갈 능력이 내 안에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부모님도 나 때문에 희생하고, 나한테 매달리시고... 그렇다고 내가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교수님들은 단순한 직장인이 아니라 스승이다. 우리가 인생을 걸고 큰 물음을 던진다면, 그분들도 우리를 이끌어줘야 한다...2008년 촛불집회 때가 생각난다. 집회 나가느라 수업을 빠졌더니 담당 교수님이 '그런 데 왜 가니'라고 했다. 대학생인데 진리를 추구할 자유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못했던 일들을 하고 싶다. 존경받는 삶을 사는 분들을 만나 가르침을 구하고, 젊은이답게 신나게 놀아도 보고, 내 손으로 먹을 것을 길러보고 싶다.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 만날 땐 따뜻하게 손 한 번 잡아드리고 싶다" 갈수록 바빠지는 젊은이들의 말 속에서 점점 말라가는 영혼의 소리를 듣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암8:11~13)
469 no image 부활절을 앞두고... [1]
[레벨:20]인금철
64 2010-03-29
절차와 형식의 폐단은 많이 있지만, 때로는 의미를 새기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죠.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에서 흔히 지키는 사순절에 대해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사순절(四旬節)은 예수님이 대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겪으신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부활절 전 40일간의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을 말합니다. 사순절 기간이 40일로 처음 결정된 것은 A.D,325년 니케아 회의(council of Nicea)에서였고, 7세기 무렵 서로마 교회가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 사순절이 시작되는 수요일)부터 사순절의 첫 주일까지의 4일을 포함하면서부터 오늘날과 동일한 40일간의 사순절을 철저히 지키게 되었습니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렌트(Lent)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이란 뜻을 갖는 명칭이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희랍어인 '테살코스테'를 따라 사순절로 번역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지켜지는 여러 행사가 있는데요,그 중에 금식이 대표적입니다. 사순절 행사로서 금식은 수세기 동안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습니다. 사순절의 식사로는 저녁 전에 한 끼 식사만이 허용되었으며, 물고기와 고기등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까지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8세기 이후로 가면서 이 규정은 많이 완화되기 시작해 14세기에는 금식 기도 대신에 절식 기도가 행해졌으며 , 15세기에 와서는 정오에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 관습이 되었고, 저녁 시간에도 간단한 식사인 콜레이션(collation)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연극, 무용, 연애 소설 읽는 것과 같은 오락 행위는 여전히 금지되었으며, 화려한 옷을 입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 호화 생활 등도 자제되었습니다. 대신 자선과 예배 참석, 기도 등이 권장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517년 종교 개혁이후 종교 개혁자들은 형직적이며 지나치게 많은 교회의 의식 철차들을 폐지했는데, 이때 사순절에 관계된 많은 의식들도 간소화 내지는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시기로 지켰던 중세 교회의 사상은 받아들여 공동기도문 중 사순절 기도문의 주제를 회개로 삼는 등, 계속해서 이 절기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요란한 행사를 자제하는 의미에서 무언극도 권장하고 있네요. 부활절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한 가지 사순절 행사를 가지면 부활절의 의미가 더욱 풍성하게 다가올 것 같네요.
468 no image 책 필요하신 분... [2]
[레벨:20]인금철
56 2010-04-28
467 no image 관악 3부 최정일 목자님 단기 선교 소감
[레벨:20]인금철
70 2007-10-28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갈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 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실제적인 체험에 기초하여 생각해 볼 수 있기에 소감을 퍼 올립니다. ---------------------------------------------------------------------------------------------------------- 마사카티! 마시카티는 짐바브웨 쇼나어로 Good Afternoon입니다. 저는 오병어이 요회 최정입니다. 아프리카 단기 선교 보고 요절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저는 지난 8월 6일부터 10월 10일까지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케냐에서 열린 아프리카 수양회를 참석하고 짐바브웨에서 2개월간 생활한 뒤 남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수양회를 참석하였습니다. 케냐에서 열린 2007년 Africa 여름 수양회의 주제는 The Vision of God이었습니다. 아프리카 현지 목자님들께서 싱어롱에서부터 분반인도, 메시지 모두를 섬겨 주셨습니다. 특별히 가나의 바나바 코조 목자님은 건강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양회를 섬기시기 위해 오셨다가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이 수양회을 통해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목자로 세우시고 선교사로 세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양회 이후 저는 단기 선교지인 짐바브웨로 갔습니다. 윤모세 목자님은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을 주시면서 선교사님들의 섬김을 잘 배우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센터는 짐바브웨 대학이 훤하게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큰 나무와 잔디가 펼쳐진 넓은 전원 주택이었습니다. 센터에는 형제 장막이 있었는데 저는 옆에 있는 guest room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밤에 자는데 추위로 떨었고 누군가 들어오지 않을까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날 밤 저는 총에 맞아 죽는 악몽을 꾸었습니다. 짐바브웨의 첫날 아침은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귀는 소리와 무수한 새벽 별을 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5시에 제임스 선교사님의 인도로 일용할 양식을 먹고 개인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형제들과 같이 태권도로 아침운동을 하였습니다. 낮에는 혼자 영어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영어 과외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의 자녀들을 12 STEP 말씀으로 섬겼습니다. 짐바브웨에서는 원래 아침식사로 빵과 차를 먹는데 요즘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빵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옥수수 가루를 물에 풀어서 죽같이 만들어 설탕을 타 먹었습니다. 저는 아침에는 선교사님이 주신 쌀로 밥을 해 먹었고 저녁에는 형제들이 해주는 서빙을 먹었습니다. 형제들은 나중에는 옥수수 가루도 구하기 힘들어 굶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에서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 라면 20개와 칼로리 바란스 10개 카레와 짜장을 준비해 갔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파 나누어 먹을 생각을 못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중에는 준비해 간 음식이 떨어져 계란을 사 먹었는데 누가 먹을까 걱정이 되어 냉장고 구석에 숨겨 두면서 먹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프리카에서 몸무게가 5kg이나 늘었습니다.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시는 신갈렙 선교사님은 주말마다 저를 시내 중심가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거기서 인터넷을 통해 관악 3부 기도 제목과 소식을 알고 목자님들에게 메일도 보냈습니다. 시내에는 화려한 현대식 빌딩이 많았지만 상점에는 물건이 없었습니다. 또, 거리에는 빵을 사기 위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짐바브웨는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한 뒤 88년부터 무가베 대통령이 20년간 독재를 해 오고 있습니다. 그는 97년 정치적인 위기에 처하자 백인농장을 몰수하여 흑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짐바브웨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고, 또 백인들이 떠나면서 송수관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농장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결국 경제는 극도로 침체되었습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짐바브웨 사람들은 남아공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때 아프리카 최고 수준이었던 짐바브웨 대학도 교수의 절반 이상이 다른 나라로 떠나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이런 상황에서 계속해서 캠퍼스에 올라가 피싱을 하시고 제자양성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또한 자녀 교육과 물질 자립을 위해서도 애쓰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아프리카 현실 앞에서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졌습니다. 의무감으로 캠퍼스에 올라가 피싱을 하였습니다. 캠퍼스 학생들은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흔쾌히 성경공부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Russel 그리고 Gift라는 형제와 일대일 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겸손하게 말씀을 배우려는 소원이 많았고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말씀 공부는 포인트가 없었고 그들에게 별로 힘이 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프리카 양과 일대일 한번 했다는 것에 만족하였습니다. 또한 장막의 형제들을 볼 때 그들을 이해하고 섬기기 보다 그들의 게으름과 감사함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판단하고 소망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임스 선교사님은 나미비아 봄 수양회를 지원하러 가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날라온 수양회 스케줄에는 제가 주제강의 메신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임스 선교사님은 웃으시면서 한번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은 요한복음 14장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저는 고민 고민하여 써보았지만 포인트도 없고 뜬구름만 잡는 것 같았습니다. 점점 두려움이 생겼고 도망쳐 버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기도하기 보다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결국에는 제임스 선교사님이 구해 주신 메시지와 제가 가지고 있던 2006년 요한복음 메시지를 참고하여 완성하였습니다. 나미비아는 원래 이제임스 선교사님이 개척하신 곳이었는데 97년 대사관이 없어지면서 짐바브웨로 가시고 현지 목자인 아브라함 빅터 목자님과 우간다에서 오신 베티 목자님 한 가정이 역사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두분 다 직장을 다니시면서 역사를 섬기시다 보니 제가 보기에도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빅터 목자님은 메시지를 준비하시고 또, 양들을 수양회 장소까지 픽업하셨습니다. 베티 사모님은 음식을 준비하시고 자매들을 섬기느라 바쁘셨습니다. 저도 수양회 소책자를 만들고 낮에는 나미비아 대학에 가서 피싱을 하였습니다. 5명의 형제들을 만나서 초청하여 수양회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수양회 당일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수양회는 토요일 오전 9시에 시작되었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현지 목자인 Cliff 형제가 친구 3명을 초청하였고 기숙사에 있던 자매들이 참석하여 총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양회 주제는 I AM THE WAY였습니다. 저는 싱어롱을 섬기고 분반인도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메시지를 전하고자 할 때 청중도 별로 없고 자신감도 없어서 메시지를 섬길 스피릿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양들은 수양회가 좋다고 하면서 소감을 깊이 있게 썼습니다. 오후에는 소감을 같이 나누었는데 저는 이미 힘이 빠져서 양들의 소감도 잘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무룩한 얼굴로 빨리 수양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수양회가 끝나고 짐바브웨로 돌아 가기 전날 밤 아브라함 빅터 목자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빅터목자님은 단기 선교사라도 좋으니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시고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보고 오라고 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격려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피곤하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피해 먼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도망치듯 짐바브웨로 돌아온 저는 죄책감과 함께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기도하는 중에 저의 문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의 문제는 믿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럴 때 외적인 환경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저는 배고파 하는 형제들과 나눠 먹지 못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어려운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절망하여 시무룩하게 지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양식도 잘 먹고 양도 잘 치는 목자라고 생각했지만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겉으로는 가난과 부정부패, 에이즈로 보이지만 그들의 근본문제는 가난으로 인한 지독한 이기심의 죄와 부정으로 인한 불신과 거짓의 죄, 뿌리깊은 음란의 죄입니다. 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의 은혜와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의 문제 앞에 같이 절망하여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저에게는 복음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었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캠퍼스 시절 많은 믿음의 승리를 주셨고 이번에 아프리카로 단기 선교사로 오는 은혜까지 주셨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지난 2개월 동안의 아프리카 생활을 돌아볼 때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죄인임을 발견하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죄인을 아프리카로 인도하시고 믿음 없는 문제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앞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의 목자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제게 대학원 공부를 한 뒤에 제 3세계에서 선교사로 사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제가 대학원 동안 학업에서 실력을 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여 믿음 있는 선교사로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짐바브웨 기도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20명 주일예배 참석위해 2. 12 제자 양성 위해 3. 기숙사가 폐쇄된 올해 신입생 제자 양성 역사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한마디, 믿음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466 no image 나이지리아 심방보고 (윤모세) [2]
[레벨:20]인금철
79 2007-12-16
이번에 성탄헌금을 전체적으로 우간다 UBF 돕는데 드리기로 했습니다. 우간다는 아니지만, 아프리카 실정을 알면 마음을 드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윤모세 목자님께서 나이지리아 수양회를 도우러 가셨다가 적은 기행문입니다. 형식없이 진솔하게 적은 것이기에 아프리카를 아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이 힘에 지나도록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한 것처럼, 우리 안에 아프리카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주사 풍성한 구제헌금 드리도록 도우시길 기도합니다. -------------------------------------------------------------------------------------------------- - 나이지리아 심방 보고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11월 21일 (수) 나이지리아로 가기 위해 인천에서 두바이향 에미레이트 항공에 탑승하였다. 자리는 packed! (만석). 에미레이트 항공이 잘 되기는 잘 되는가 보다. 항공료가 싸지도 않은데 이렇게 꽉차니. 두바이까지 비행시간은 10시간 50분. 영국 런던에 갈 때 11시간이면 가는데, 훨씬 가깝게 보이는 두바이까지 거의 같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니 지도에서 보는 것과 달리 확실히 지구가 둥글기는 둥근가보다. 런던 가는 여행을 여러 번 했으니 11시간 정도를 보낼 요령은 이미 알고 있던 터 - 영화 두 편 정도 보고 한숨 깊이 자면 되겠지. 옆에 탄 아저씨가 팔걸이를 침범하여 차지하고 있으니 몸을 좀 왼쪽으로 기대고. 지루한 11시간 후에 드디어 두바이 공항에 도착. 지난 번 케냐 수양회 갈 때, 두바이에 도착했을 때 열사의 바람이 불었던 것 같은데, 11월은 좀 나은 듯. 날씨가 참을 만하다. 문제는 이제 나이지리아 라고스 가기 위해 두바이 공항에서 5시간 waiting! 공항 건물 자체가 사막 위에 세워진 길쭉한 원통형 건물인데다가 창문이 하나도 없어서 실내가 답답하였다. 공항 중앙 통로에 있는 벤치들에서 쓰러져 자는 사람들, 특히 의자들 밑, 뒤, 길바닥, 장소를 막론하고 엎드려져 자는 수많은 인도 사람들이 별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보이고 넓은 인천 공항이 그립다. 지난번에 노트북이 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리해도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 졸린 눈을 치켜세우고 이리저리 걷다보니 두 시간 정도 지났다. 졸면 안되지. 졸다가 비행기 놓치면 큰일 나지. 한국에 있으면 핸드폰 알람 켜놓고 두 시간 정도 자면 되겠지만 여기서는 핸드폰 자체가 연결이 안 되어 뜨지를 않는다. 알람 클록 작은 것을 하나 가져왔었을 것을 하는 후회. 1 시간 전에 라고스가는 비행기 출발 gate 로 갔다.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고, 30 분정도 줄에 서 있다가 겨우 대기실로 들어섰다. 이미 여기서부터 줄 서는 훈련 받는 것인 줄은 몰랐었지. 게이트를 들어가 라고스 가는 비행기 타기 위해 다시 활주로가 있는 곳에서 공항 버스에 타니 한참 돌고 돌아 공항 구석으로 도착했다. 많은 라고스 가는 사람들. 저마다 짐들은 얼마나 많은지. 보따리 장사하는 사람들처럼 엄청난 짐들을 모두 들고 탄다. 들고 타는 짐이 저 정도니 부친 짐은 또 얼마나 많을까? 옆에 있는 뚱뚱한 아줌마가 자기 짐을 하나 들어 달라는데, 한국 사람의 기사도를 발휘해서 들어주니, 어휴. 20 Kg 는 되겠구나. 비행기 올라가는 계단, 좁은 통로를 따라 내 짐과 그 아줌마 짐을 들고 겨우 겨우 들어가니 더운 날씨에 땀이 비오듯. 기사도의 영광 뒤에도 역시 고난이 있구나 하는 진리를 체험했다. 자리에 앉아 보니 역시 이 비행기도 full! 한 자리도 공석이 없었다. 이륙하기까지 long waiting. 당초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 지나야 이륙하였다. 두바이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인데, 벌써 비행기 활주로가 꽉 차서 포화상태라고 한다. 두바이서 라고스까지는 다시 8시간 50 분. 서울서 두바이까지 11시간, 대기 5시간, 다시 비행 9시간, 그러니 25 시간 만에 도착하는 셈이다. 이미 long flight 를 했기에, 다시 한번 9시간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기내 잡지도 이미 다 읽었고, 영화도 두 편 보았으니 시간을 잘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두바이에서 기다리면서 시편/잠언을 한번 읽었는데 이것을 다시 한번 읽어보며 인생의 지혜를 얻자 방향을 잡고. 일단 잠을 청하자. 엎치락 뒤치락. 서울/두바이의 11시간 보다 훨씬 지루한 두바이/라고스 9시간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라고스 공항에 도착. 아, 멀다. 우리 선교사들은 어쩌자고 이곳 지구 반대편까지 왔는고. 언더우드의 기도가 생각이 났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주여, 주께서 친히 우리 UBF 선교사님들을 이곳에 옮겨 심으셨으니 이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고 그들이 사역하는 땅이 은총의 땅이 되게 하소서...간절히 기도하였다. 도대체 나이지리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하여 비행기 창밖을 열심히 내다보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미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했으니, 박모니카 선교사가 엄청 기다렸겠구나 하는 생각에, 신사 체면을 부인하고 약간 새치기를 하여 먼저 나가 입국 심사 줄을 섰다. 아, 벌써 긴 줄.. 한 참을 기다리는데... 나는 그 줄이 아니니 저리 가라고 군인 옷을 입은 사람이 말한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데 그 줄은 나이지리아 사람들만 서는 곳이고 외국인은 저쪽 끝줄에 서야 된다는 것. 이런 쯧쯧... 사정을 해서 제일 끝에 서지는 않고 중간 정도에 비집고 들어가니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작. 찌는듯한 더위, 섭씨 35도는 될 것 같다. 에어콘은 커녕 선풍기도 없고 안에는 이렇게 어둡고 답답한지. 한 30 분을 기다려서 담당하는 관리 앞에 가니, 그 줄은 입국 도장을 찍어주는 줄이 아니라, 내가 입국 신고서를 제대로 썼는지를 체크해 주는 줄. 맙소사. 제대로 쓴 것 체크를 끝내고 다시 다른 줄로 이동하여 다시 30 분 정도 waiting. 심사관의 얼마나 있을 거냐 라는 질문에 (별로 있고 싶지 않은 나라기 때문이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일주일 후에 간다고 하니 10일간 체류 허가를 준다. 아이고, 빨리 짐을 찾아 나가자하고 짐 찾는 곳을 가보니, 아주 천천히 짐이 하나씩 나오고 있는 상태. 수백 개는 될 텐데 저렇게 늦게 나오니. 일단 트롤리라도 가져오자. 트롤리를 찾아보니 보이지를 않는다. 하나가 보여 가져가려고 하니 어떤 사람이 정색을 하고 자기 것이라고 한다. 트롤리를 가져가려면 저기에 가서 줄을 서서 돈을 내야 된다고 한다. 또 줄서는 구나. 줄을 서도 빈 트롤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니 하염이 없다. 트롤리 빌리는 것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나이라 (현지화) 로 얼마라고 하는 데 그게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고 여하튼 1불을 주니 트롤리 티켓을 주었다. 잔 돈이 있을 것 같아 기다리니 그 친구 계속 (일부러) 꾸물대고 있으면서 뭘 찾고 있는 듯... 에라 몇푼 되도 않는 것 가져라... 하고 그냥 와서 짐을 기다리는 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짐. 다른 사람들의 짐들을 보니 모두 마스킹 테이프로 둘둘 말았거나, 아니면 자물쇠로 잠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인천 공항에서 저렇게 짐을 부치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겠지. 사람들을 믿어야지 하면서.. 짐을 기다렸다. 비행기 도착 후 3시간후에 나오는 짐을 찾아 트롤리에 올려 보니 가방이 약간 홀쭉해 진듯한 느낌... 안을 열어보니 치아카 선교사가 부탁하여 사 가지고 온 모기장 3개 뭉치가 없어졌다. 사람들을 믿어야지?? 어떨 수 없지. 밖에 나가려니 세관에서 잡는다. 가방을 열어보라는 것. 스피릿인지 감정인지 발동하여 한번 마음대로 열어보라고 당당하게 말하니 한 두 개 열어보고는 가라고 한다. 와, 밖에서 나이지리아 동역자들이 엄청 기다렸겠구나. 비행기도 연착이 되었고 3시간이나 안에 있다 나왔으니. 피곤하기는 하지만 동역자들의 사기를 위해서 표정 관리를 해야지. 머리 한번 깨끗하게 빚고, 만면의 미소를 한번 연습하고는 나갔다. 밖에는 엘리사벳 자매 목자가 제일 먼저 나를 보고 맞이하였고 그를 따라 공항에 나온 분들을 만났다. 박모니카 선교사.. 이방 목자들, 윤레베카 선교사와 아이들도 나와 있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렸지요?" 그 분들이 대답하는 말 "그 정도는 보통이죠. Welcome to Nigeria!" 차를 타고 라고스 쎈타로 가는데 옆에 보이는 건물들이 우리나라 50년대, 60년대의 것처럼 보였다. "공항서 쎈타까지 얼마나 걸리죠?" 나의 질문에 모니카 선교사 하는 말 "교통이 안 막히면 20분이면 가고, 막히면 1시간이나 두 시간 걸리죠." 길거리 교통은 그야말로 먼저 가는 것이 임자. 길 어디에도 신호등이라는 것이 없다. 간혹 사거리 같은 곳에 경찰들이 나와서 교통 통제를 하는 데 아수라장이다. 오토바이들이 옆으로 쏜살 같이 지나 다닌다. 오토바이는 한결 같이 어떤 젊은 남자가 앞에 타고 뒤에는 대부분 옷을 잘 차려입은 젊은 여자들이었다. 이곳은 부부들이 저렇게 출퇴근을 하는가 보다.. 생각하였다. 차가 서면 길가나 중앙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뭔가를 판다. 땅콩, 양말, 옷, 생선, 야채, 펜, 물, 고기... 시장에서 파는 것은 뭐든지 가지고 와서 차의 창문을 두드리며 판다.. 길이 막히자 어떤 차들을 역주행을 하고, 중앙선을 넘어 간다.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파고 들어간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aggressive 한 이유가 있구나. 치열한 생존 경쟁. 양보하면 죽는다는 긴박감. 한 시간쯤 걸려 라고스 쎈타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현지 사람들이 사는 지역. 백인이나 동양인은 찾아볼 수 없는 곳. 그런 곳에 우리 쎈타가 있었다. 도착하니 마침 8시 저녁 기도 모임을 시작하는 시간. 모임에 참석하니 박베드로 선교사가 앞에 나와서 내 소개를 하라고 한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지금 잘 기억은 안 나고.. 여하튼, 그리고 나니, 엘리사벳 목자가 말하기를, 내가 왔다고 오늘 저녁은 특별히 음식을 준비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퍼서 내게 접시를 하나 주는 데.... 보니 고추장 같은 소스로 비빈 밥에, 손톱만한 딱딱한 양고기 두 조각을 올려놓았다. That's all.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 돌리자 다들 맛있게 먹는다. 나에게만 특별히 고기 두 조각을 주고 다른 사람들은 한 조각이나 또는 없었다. 아, 이것이 특별 손님 초대 만찬이구나.. 치아카 목자가 종로에 와서 5층에서 밥 먹을 때 반찬 많이 나오는 것보고 놀란 것이 생각이 났다. 여하튼 맛있게 먹(어주)고, 다른 리더들은 수양회 준비하는 동안 나는 쎈타 2층의 박베드로 선교사 집에 올라왔다. 이층의 집은 방 세개에 거실 하나. 방 하나는 박베드로 선교사 부부가 쓰고, 하나는 중2 한나가, 다른 하나는 남산 쎈타에서 온 싱글 트루만 리 선교사와 중3인 피터 주니어가 쓴다. 내가 와서, 피터 주니어는 아빠랑 방을 쓰고 한나는 엄마랑 쓰고 나는 투루만 리 선교사와 방을 쓰게 되었다. 샤워를 하러 목욕탕에 들어가니 샤워기가 고장이 나 있다. 욕조 안에는 플라스틱 바가지가 두개 놓여져 있는 것을 보니 물을 받아서 몸에 뿌리라는 것임을 눈치 채고 잽싸게 적응. 방으로 다시 와서 잠을 자려하니 옆에서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진동을 한다. 기차가 지나다니는 것 같이 괭괭괭...소리가 밤새 진동.. 아, 심하다.. 거기다가 천정에 붙은 선풍기는 "덜걱 덜걱" 하면서 돌아간다. 그나마 그 선풍기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단다.. 옆의 트루만 선교사는 벌써 깊이 잠이 들었다. 모기장은 커녕 이불도 덮지 않고 잘 잔다. 나는 준비해 간 모기장을 꺼내어 잘 치고, 행여나.. 모기 한 마리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는 들어가 잠을 청했다. 말라리아 걸리면 큰일 나지... 발전기 소리, 선풍기 소리.. 에라, 그래도 믿음으로 잔다.. 한 시간 정도 자는 데 발전기가 퍽 하면서 꺼지는 소리가 났다. 기름이 떨어진 것이다. 선풍기가 안 돌아가니 밤 1시인데 잠을 잘 수가 없다. 온 몸에 땀이 흐른다. 안전 문제 때문에 창문을 열수도 없다. 덥고 찐다. 30 도는 족히 넘을 것이다. 도저히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일어났지만 전기가 안 들어온다. 불빛이 없다. 칠흑 같은 밤에 할 수 있는 일은 목욕탕에 가서 몸에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욕조안을 더듬어 들어가 앉아 물을 덮어쓴다. 2시에 뿌리고 3시에 뿌리고 4시에 뿌리고.. 아, 어둠 속의 원맨쇼여! 새벽이여 빨리오라. 빛이나 좀 보자. 새벽 5시가 되어 아래층에서 양식 모임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트루만 리 선교사가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둠 속에서 핸드폰 불빛으로 샤워 (?) 를 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6시에 그와 함께 가까이 있는 주유소에 석유를 사러 갔다. 사람들이 교통 혼잡을 피하고자 아침 6시부터 출근하느라 난리다. 오토바이는 사람들을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는 불법 영업 하는 사람들이었다. 석유 100 리터를 사서 쎈타에 와서 발전기에 기름을 넣니 다시 전기가 들어오고 선풍기가 돈다. Thank God! 두 아이 (피터와 한나) 는 아침 7시에 학교를 갔다. 이층의 집은 개인적인 가정의 삶이 없었다. 수시로 나이지리아 목자들, 양들이 이층을 올라온다. 무엇을 물어보러 오기도 하고, 프린터 하러도 오고.. 아이들이 자기들만 사는 가정을 그리워할 것 같다. "쎈타와 가정이 같이 산 게 얼마나 되었나요?" 나의 질문에 모니카 선교사의 대답 "한 10년 되었지요..." 아이들이 많이 투쟁이 될 것 같다. 이 가정이 따로 근처에 집을 얻어서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11/22 목요일은 하루 종일 강사들을 돕고 낮에는 잠시 라고스 대학 심방을 갔다. 이번 강사들은 2진 목자들로 그들을 훈련시키는 목적도 있었다. 대부분 직장과 학업으로 매우 바쁜 사람들이었다. 1차 및 2차 메세지 체크를 하고 필요한 사람들은 강의안 수정을 하였다. 라고스 대학은 우리나라 시골에 있는 오래된 대학 같고 참으로 낙후되어 보였다. 그래도 이곳이 이 나라 최고의 명문이라고 하니. 오후에 덥고 피곤하여 다시 목물을 하러 들어가니, 엄지 손가락 보다 큰 바퀴벌레가 욕조위에 앉아 있었다. 악! 그렇지만 잡아야지. 옆에 있는 막대기를 들고 내리쳤다. 이리 저리 빗나가기를 한 열 번. 그 바퀴 벌레가 내게 가까이 다가 오기에, 사느냐 죽느냐의 심정으로 내리쳤는데 드디어 막대기에 맞았다. 비틀거리며 피하는 놈을 필사적으로 내리쳐서 마침내 끝. 한쪽 구석에 안 보이는 곳으로 밀어버리고는 목물 시작.. 아무래도 찜찜... 아래 층에 내려가보니 치아카 목자가 수양회 팜플렛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바퀴 벌레 얘기를 하니,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얼마 전 쎈타 홀에서 리더들이 쥐들 잡은 얘기를 해 주었다. 모임을 하고 있는데 박베드로 선교사가 갑자기 창문을 다 닫으라고 리더들에게 지시를 하였다. 모든 문을 닫고 홀 안에 들어온 쥐를 잡기 시작하였다. 대 여섯 명의 리더들이 "너는 독안에 든 쥐... " 하며 막대기를 들고 달려들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쥐. 결국 생포. 즉사. 그러한 얘기를 듣고 이층에 올라 왔다. 거실에 잠시 앉아 있는데 거실 구석의 전기줄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악! 쥐. 저걸 잡아 말아... 아, 제발 없어져라.. 그 시커먼 쥐는 나를 보자마자 잽싸게 내려와 다시 나왔던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My God.. 학교에 간 한나 주니어가 생각이 났다. 수양회 떠나는 금요일 아침. 어제는 다행히 발전기가 계속 돌아서 잠을 좀 잔 편이다. 문제는 모기에게 많이 물렸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밑에서 모기들이 다리와 손을 많이 물었다. 이곳 모기들이 특이한 것은 날아 다니는 소리가 안 난다. 한국 모기보다 좀 작은 데 접근하거나 도망갈 때 아무 소리가 안 난다. 그러니 방어를 할 수가 없다. 말라리아약 먹고 왔으니 괜찮겠지.... 주여 살피소서.. 리더들과 양들을 태우기 위해 버스 3대가 아침에 온다. 우리 나라 중형버스 정도 사이즈인데 매우 낡은 것들이다. 한 리더에게 물었다. "여기서 수양관까지 얼마나 걸리죠?" 그가 말하기를 "버스로는 4시간 정도, 승용차로는 두시간 정도 걸리죠". "왜 차이가 나죠?" 물으니, "아, 버스는 차가 크니 계속 순서대로 가야 되고, 승용차는 요리 조리 피해서 갈 수 있으니 그렇죠." 아, 정답이다! 내가 왜 그 단순한 것을 물어보았는지. 수양관까지 가는 길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경부 고속도로였다. 그 길로 죽 가면 옆 나라 베닌도 가고, 그 다음 나라 토고도 간다. 그런데 그 길이 이차선인데 한쪽은 버스로 막히니 결국 1차선으로 가는 셈이다. 길 가에는 각종 사람들이 물건을 팔려고 필사적이다. 차들이 낡은 차들이다. 유럽의 각종 폐차들을 가져온 것 같다. 세상에 저런 차가 움직이다니... 한국에서 내가 타는 차가 14 년된 중고차라 치아카 목자에게 오래된 차라고 하였는데, 그때 그가 내차는 정말 새차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어떤 차를 보니 문짝이 없고, 버스는 소형 승합차인데 뒤 유리창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차장은 문에 매달려서 다니고, 가다 서는 차가 여럿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차는 한 30년쯤 된 벤즈였는데, 앞의 두 헤드라이트 부분이 푹 파져 없어져서 마치 해골이 달리는 모습이었다. 두 시간 정도 가니 드디어 수양관에 도착. 고급 공무원 연수 장소라고 하여 시설이 나은 편이었다. 방 배치를 받았다. 가보니 방은 넓은데 목욕탕은 샤워가 고장 나 있고 바께스가 하나 욕조 안에 들어 있었다.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는데 왕개미들이 화장실과 욕조에 이리 저리 다녔다. 도마뱀도 오가는 것이 보였다. 짐을 풀고는 강당으로 갔다. 이곳의 문제도 전기였다. 쎈타에서는 전기가 나가면 발전기라도 틀면 되지만, 이곳은 전기가 나가면 발전기를 자기들 스케쥴대로 조금밖에 틀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다만 기도할 뿐이었다. 자주 전기가 나가고 발전기가 안 돌아가 찜통 더위 가운데 수양회를 진행하였다. 수양회 전체 주제는 요한복음 12:24 "한 일의 밀알" 이었다. 식사는 밥이나, 또는 세모비타 (흰색), 에바 (노란색), 아말라 (갈색) 로 이들은 모두 녹말가루같은 것을 뭉쳐놓아 호빵 같이 생긴 것인데, 이런 것 하나를 생선 졸인 국물 같은 것에 찍어 먹는 것이었다. 여하튼 한 사람당 접시 하나가 다였다. 반찬이라는 개념이 없고 고픈 배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음식도 하루 세끼를 주니, 양들이 수양회에 잘 온다는 것이었다. 집에 있으면 두끼도 못 먹는 데 이곳에 오면 남이 채려주는 세끼를 먹으니 천국 같다고 한다. 나는 아프리카 음식을 먹는 데 문제는 없었다. 에바를 먹을 때는 모래가 씹혀서 좀 어려웠지만 다른 것들은 그런대로 좋았다. 문제는 이렇게 계속 먹다보면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부족하여 영양 부족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프면 금방 죽는다고 한다. 얼마 전에 온 한 선교사 가정은 음식에 적응하기 어려워 가져온 라면을 주로 끓여 먹는 것을 보았다. 수양회 마지막 날은 전기 사정이 특히 안 좋았다. 날은 찌는데 전기는 나갔고 발전기도 안 돈다. 주제 강의는 계속 늘어져셔 25 분 분량이 거의 한 시간이 지났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순서를 하니 한 시간이나 더 늦어졌다. 덥고, 찌고, 전기가 없으니 어둡고, 더우기. 마이크는 안되고.. 사회자가 하는 말 "예수님 당시에 전기 없었습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전기 썼나요?" 놀라운 사실은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도리어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한국에서 지금 이렇게 수양회를 할 수 있을까? 찬양을 하는데 온 힘을 다하여 하였다. 한참 율동을 하며 찬양을 하는 데 한 30 미터 쯤 떨어진 저 건너편 방에서도 여러 명의 사람들이 찬양하며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거기는 무슨 모임인가.. 궁금하여 가보니.. 우리 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같이 춤을 추며 찬양을 하는 것이었다. 그중 한 여자는 춤을 추며 우리 쪽으로 오더니 같이 참여하여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며 찬양을 하였다. 나이지리아 공항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포스터가 있다. "Welcome to Nigeria. We are the happiest people in the world" 라고 쓴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어려움을 감당하는 법을 알고 그 가운데 자족함과 기쁨도 있다. 냉소적이고, 차갑고, 살벌한 분위기 가운데 사는 영국 사람들보다 이들이 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정말 얼마나 잘 사는가? 그런데도 불평과 불만, 하나님께 대한 감사부족.. 앞으로 감사 부족한 사람들은 나이지리에 단기 선교를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선교사들에게는 힘든 삶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인도에서 온 라데시 목자가 박베드로 선교사에게 물었다. "예전에 강도 만난 적이 있었다면서요?" 박베드로 선교사가 말하기를.. "예, 두번 맞았는데 두번 째 것은 별거 아니었고 앞에 것이 좀 심했는데 한 몇 년 되었죠.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어둠 가운데 대문 앞에서 강도가 나타나서 칼을 들이대더군요. 그래서 "Welcome to my house" 하며 영접하고는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죠. 동역자와 아이들도 저와 함께 잡혀서 방에 묶였고. 돈을 달라고 하더군요. 돈이 있어야 주지요. 그래서 돈 없다고 하니 총을 들이대고 다 죽이겠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돈이 없으니 직접 찾아보라고 하니 우리들을 모두 화장실로 몰아넣고는 그들이 모든 방을 삿삿히 뒤졌지요. 돈이 나올 턱이 있나요? 없는데요. 나도 좀 있었으면 당장 주었을 겁니다. 나중에 모니카 선교사가 자기 여권을 주면서 이것 밖에 귀중품이 없다고 하니 그걸 가지고 가더군요." 라데시 목자가 다시 물었다. "겁나지 않았습니까?" "겁나기는 했지만 까짓것 죽으면 죽는 거죠." 나는 그 말을 옆에서 들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게 문제 되는 험한 음식, 전기, 바퀴벌레, 쥐, 말라리아... 이런 것이 아무 문제가 아니구나. 라고스 UBF 에는 세 목자 가정이 있다. 아브라함/엘리사벳, 빅터/탈매, 제임스/롱케 - 이들은 정말 UBF 목자라고 할 수 있는 믿음직하고 헌신된 사람들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이러한 성숙한 믿음의 종들이 세워졌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들은 피터박 선교사님 가정의 지난 17년간 그들의 생명을 드린 희생과 기도의 열매들이다. 그 외에는 12명 정도의 형제와 12명 정도의 자매들이 목자들로 성장하고 있다. 형제 장막에 25명 자매 장막에 14명이 공동 생활을 한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의 역사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은 역사.. 라고스 UBF 는 매우 기초가 잘 놓여졌고 소망이 넘쳤다. 라고스 대학은 나이지리아 최고 명문으로 졸업생들이 그래도 가장 직장을 잘 잡는 편이다. 목자들 중에 변호사 (Ronke) 도 있고 최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석유회사 (Charles 목자), 통신 회사 (회계사-Fato, Seun 목자) 근무하는 목자 등이 있다. 의대 졸업반 학생들도 있다. Seun 목자가 내년에 가정 교회를 이루고자 기도한다. 수양회를 마치고 수양관 근처의 노예 수출 항구를 심방하였다. 섬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서 섬을 가로질러 걸어 해안가를 가 보았다. 이곳이 바로 수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실려간 장소였다.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들의 원통함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노예들은 물건같이 취급되어 배에 실려 꼼짝 달짝하지 못하게 두세달 실려가다 보면 거의 반 이상이 죽었다. 그 길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실상 그 길의 이름은 "Route of no return" (돌아올 수 없는 길) 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기념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여 아브라함 목자가 카메라를 누르는데 .. 피식.. 밧데리가 나갔다. 안 찍힌다. 돌아올 수 없는 길임이 증명된 듯하다. 수양회를 마치고 다시 라고스에 돌아와서 11/26 월요일 하루 라고스 대학을 다시 가서 기도하고, 시내 구경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일 번화하다는 거리도 우리나라 변두리만도 못하였다. 다시 쎈타로 돌아와 쎈타 주위 지역을 치아카 목자와 한 시간 정도 걸었다. 어떤 구걸하는 사람이 보였다. 할머니. 무슨 병을 앓았는데 왼쪽 눈이 야구공처럼 튀어 나와 있었다. 불쌍하여 몇 푼 주고 .. 길은 하수 시설이 안 되어서 각종 오물이 쌓이고 악취가 났다. 길 건너 사층짜리 폐건물이 하나 보였다. 창문도 다 깨지고 일부는 지붕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였다. "치아카, 저게 무슨 건물인데 그 안에 사람이 있나요? 애들인 것 같은데..." 그의 말인 즉, "학교예요" "학교?" "예, 저기 가는 애들.. 저 학교서 공부해요. 저 정도면 아주 좋은 상태지요. 창문이 그래도 몇 개는 유리가 붙어 있잖아요." 오 주여... 생선 파는 시장에 가보니.. 아, 그 냄새.. 냉장 시설이 전혀 없는 무더운 곳에서 생선이나 고기를 판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보니 소인지 돼지인지 고기의 조각 일부를 땅에 놓고 칼로 잘라서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보였다. 월요일 저녁, 야바텍 지부를 방문하기로 하여 다섯 시 경에 윤레베카 선교사가 픽업을 왔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가는 길에 야바텍 형제 장막을 들르자고 한다. 그들에게 말을 안했는데 불시에 가보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길래 그러자고 하였다. 대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형제들이 있었다. 6명의 형제들이 작은 방 세 개에 살고 있었다. 그 방들을 보니... 참으로.. 우리나라 60년대 거지들이 사는 방 같이 느껴졌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침구나 벽, 방이 더러울 수 있을지... 주여, 주님이 태어나신 말구우가 이렇기 않았겠습니까? 마침 지붕이 무너져 내려 고치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장막이 형제들에게는 호텔과 같다고 한다. 기숙사에는 4명 들어갈 방에 10명이 자기 때문에 1인용 침대에 두명이 자고 침대밑 바닥 어디서든지 잔다고 한다. 야뱌텍 대학을 심방했다. 학생 수가 25,000 명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 선교사들이 유일하게 흑인이 아닌 사람들. 레베카 선교사는 여장부처럼 캠퍼스를 활보하며 양들을 피싱하고 여러 학생들과 관계성이 있었다. 선교사로 온 첫 날 부터 1:1 을 했다니 정말 체질인 듯.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보내시는 것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캠퍼스에서 기도를 하고 야바텍 쎈타에 가기 전에 윤안드레 선교사 가정과 이이디모데 선교사 가정이 공동 생활하는 집에를 갔다. 집은 넓은데, 안은 어둡고 지저분. 이층 잠자는 곳으로 가보니 아... 벽에는 애들 낙서와 얼룩이 범벅...한 꼬마 아기가 더위 가운데 몸을 들척이여 잠을 자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 어떤 빈민집도 이런 집이 없을 듯... 아래 층에서 식사를 하는데.. 초등학교 애들이 앉는 나무 의자에 앉아 거의 바닥에 닿는 테이블에서 식사.. 이런 저런 것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식사 후 8시 기모 모임에 갔다. 전기는 나가서 캄캄. 한 30 명 정도의 리더가 모였는데 돌아가면서 성경 암송을 하였다. 윤안드레 선교사의 카리스마가 돋보였고 리더들이 특별히 준비한 특송과 율동이 인상적이었다. 120 명이 참석하도록 기도하는 중. 그 후 자리를 옮겨서 선교사들과 대화의 시간. 이 디모데 선교사가 강도를 네 번 맞은 일, 윤안드레 선교사의 강도 만났을 때 피하는 요령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차를 몰고 올 때 커브 도는 곳을 특별히 조심해야 하고, 속도를 늦추지 말고 달려야해요. 엊그제도 한 커브 도는 곳에 차가 속도를 줄이자 무장 강도들이 차를 세우고 다 털어갔잖아요. 요즘은 성탄이 다가와서 강도가 더 극성이에요. 한 몫 잡아서 돈을 챙겨 고향에 가고자 하는 거지요. 강도를 대비하는 방법은 첫째 항상 50불 정도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강도 만나면 돈을 주어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강도가 심술이 나서 무슨 일을 할지 몰라요. 아 물론, 돈을 줄 때는 올린 두 손을 절대 내리면 안 되고 엉덩이를 들면서 지갑이 있는 쪽을 가르쳐야 되요. 그러면 대충 됩니다." “안드레 선교사님 가정과 같이 살다가 오늘 다른 집을 계약했어요. 2년치 세를 미리 줘야 하길래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주고 나니 앞으로 무얼 먹고 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지만 막막합니다. 물에 빠져 점점 밑으로 들어가고 있는 심정이에요”- 이 안나 선교사의 말이었다. 쎈타 비용, 집, 형제 장막 비용...너무나 기본 물질이 많이 들어가 쎈타를 사지 않으면 모두가 다 파산되는 것이 눈에 선하였다. 1층은 쎈타, 2층은 장막으로 하는 것으로 쎈타를 사도록 기도하고 있었다. 내가 보아도 그래야 최소한의 서바이벌이 가능하게 보였다. 안드레 선교사의 말 "이번에 LG 에 자리가 났는데 꼭 좀 선교사를 보내주세요.." 내가 말하기를 "아, 그거 월급도 많이 주고 좋은 자리인데, 벌써 UBF 홈페지에 광고를 냈어요. 이번에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응모자 중에 뽑아서 보내도록 해 볼께요." “안드레 선교사가 이어어 ”아, 그런데 이 얘기는 일단 하지 마시고, 나중에 사람이 뽑히면 하면 좋겠습니다. LG 에서 원래 인도 사람이 일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집에 무장 강도가 들어와서 다 털어가고 그 인도 사람을 총 개머리판으로 때려서 부상을 입혔어요. 그래서 그가 사직을 하고 인도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사람을 뽑는 겁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스펄젼 목자 말 "없어요. 종로 2부에서 사람을 뽑아 보내려고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없어요. LG 에 응모한 사람이 하나 있기는 한데, UBF 사람 아니고요, 어느 교회 사람인데 자매님이예요. 그래서 안된다고 했지요"..... 강도 맞은 거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군. 11/27 (화) 6일간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내 고향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새벽에 기도 모임에서 라고스 리더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일찍부터 챙겨서 공항으로 갔다. 박베드로 선교사, 모니카 선교사와 작별 기도를 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시작 되는 줄, 줄.. 왜 그리 사람은 많은지.. 티켓, 출국 심사, 물품 검사... 신속히 끝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절차를 끝내고 달음질 하듯이 출발 게이트로 향했다. '쇼생크 탈출' 에 나오는 주인공이 하수구를 통해 감옥 밖으로 탈출하여 두 손을 쳐들고 자유를 외친 심정이 되었다. “아, 자유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지극히 잠시. 마음 속의 고통이 밀려왔다. "너는 가지만, 네 형제, 네 동료들은 이곳에 있다. 너는 불과 6일 있었지만 피터박 선교사는 17년을 이곳에 있었다. 이들은 이 소망 없이 보이는 나라를 사랑하고 일생을 드리고 있다. 너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겠니?" 하시는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브리서 13:3 절 말씀이 기억났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피터박도 몸을 가졌고.. 윤안드레도 몸을 가졌고... 아이들도 몸을 가졌고... 자기 몸.. 가장 중요한 자기 몸. 그들은 이곳에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 몸을 드리고 있다. 네 몸 아끼듯이 그들의 몸도 아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우리의 나이지리아 선교사님들! 참으로 이들은 우리 UBF 의 자랑스런 선교사들이다. 이 분들은 가짜가 아니다. 진짜 선교사들이다. 한 알의 썪는 밀알 되신 예수님의 생애를 그대로 본받아 현재 어둠과 절망의 땅에 하나님의 소망을 붙들고 썩고 있는 밀알들이다. 이들은 나의 자녀요, 형제요, 동지가 아닌가? 자기 만의 편안함과 안전함을 도모한 지난 6일간의 생활이 부끄럽기만 하다. 내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모니카 선교사는 지난 9년간 한국에 온 적이 없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 반발심이 생겨 위로와 사랑이 또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 교육과 선교사들 의료 도움이 필요하고 목숨 바쳐 주님을 섬기는 이들의 경제적인 고통을 우리가 덜어주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상급이 많을 것이지만, 우리의 동료 의식이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한 알의 밀알 되신 예수님의 스피릿이 나와 우리 모임에 새롭게 되기를 기도하며.
465 no image 태안기름유출 자원봉사 계획
[레벨:20]인금철
59 2007-12-28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들으신 것처럼, 불의의 기름 유출 사고로 생태계의 파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활터전을 잃어버리고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지나치지 않고 돌보는 것이 진정한 이웃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UBF 본부차원에서 각 쎈타로부터 자원봉사요원을 모집하여 1월 3일 하루 봉사할 예정입니다. 청년학생회 형제 자매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랍니다. (댓글에 남겨 주시든지 제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본부에서 온 공문 내용 ---------------------------------------------------------------------- 구제부에서 알려드립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비전이 2008년 새해를 맞이하는 목자님들의 심령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구제부에서 두 가지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현장 자원봉사자 모집 약 20일 전 태안 앞 바다에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태안 해안은 물론 넓은 서해안 지역의 어장, 양식장, 해수욕장 등이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지역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함께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이에 UBF 형제자매들 가운데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현장에 가서 방제작업을 도울 1일 자원봉사자를 모집합니다. 봉사하고자 하는 날짜는 2008년 1월 3일(목)입니다. 봉사활동을 원하시는 분들은 정헌일 목자(UBF 국내구제 담당)에게 전화나 메일로 12월 31일(월)까지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연락하신 분들에게 따로 출발 시간 및 장소와 일정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정헌일 목자 연락처 - 전화 010-7269-8208 - 메일 junghl6@naver.com (주의 : ID가 숫자 16이 아니라 영어 소문자 l과 숫자 6입니다) 2. 태안 기름 유출 사고 피해 주민들을 위한 구제헌금 전국 각 센터에서 1월 6일 주일헌금을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 주민들을 위한 구제에 드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간다 구제 및 본국개척을 위한 성탄 헌금과는 별도임). 1월 6일 주일헌금은 1월 9일(수)까지 본부 사무실 이영화 목자에게 보내주시면 이를 모아서 전달하겠습니다. (사)한국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대 표 이사무엘 구 제 부 장 최 이 삭
464 no image 캠퍼스 이단에 관하여...
[레벨:20]인금철
52 2008-03-09
학원복음화협회에서 보낸 캠퍼스 이단에 관한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 캠퍼스 및 청년대상 주요 경계 이단 특별히 2008년 1학기에는 통일교와 신천지, IYF가 두드러진 활동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어 주의 및 경계 협력을 요청한다. 1)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W-CARP, 평화통일가정당 등) ○ 주요내용 문선명이 저술한 ‘원리강론’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참 성경이라고 믿는다. 문선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실패자로 간주하고 재림예수가 그 사명을 완성할 것이며 자신이 그 재림예수이자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타락한 인간은 오직 재림주와의 피가름을 통해서만 육체적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 캠퍼스 포교유형 - W-CARP(월드카프), 민통선 자원봉사 등의 활동이 주력활동이며, 화이트캠퍼스운동, 순결운동 등 문화와 관련된 운동을 하여 대외이미지 개선, 홍보를 한다. - 문화, 봉사, 학술 동아리 등으로 위장, 활동하는 경우도 있으며 가입한 학생들에게 원리강론을 가르치기도 한다. - 피스컵, 피스퀸컵 등 국제적 대회를 통해 이단에 대한 이미지를 불식시킨다. ○ 특기사항 - 최근 평화통일가정당 창당 관련 청년동원 및 지지등을 위해 대학 총학생회 및 학생정치기구(대학운영위원회, 동아리연합회, 단과대 학생회 등)에 의도적 침투 우려 ○ 관련기관 : 세계일보, 전교학신문, UPI통신, 워싱턴타임스, 데일리리뷰, 일화, 일화천마축구단, 선문대학교, 선화예고, 용평리조트, 리틀엔젤스, 유니버셜발레단, 세일여행사, 성화사(출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등 ○ 주요인물 : 문선명(창시자), 한학자(공동창시자), 문현진(W-CARP 세계회장), 문형진(본부교회 당회장) 2)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시온기독교신학원 등) ○ 주요내용 성경 외에 ‘신탄’이라는 책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암호로 기록된 책이고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있다며 자의적으로 비유를 풀이한다. 이들은 예수님의 성육신 뿐 아니라 신성까지 부인한다. 지상천국과 신천지를 주장하며 교주격인 이만희 자신이 보혜사 성령이라고 한다. ○ 캠퍼스 포교유형 - 선교단체 및 일반교회 등에 잠입하여 활동, 신자들을 미혹하여 포교활동 :포교대상을 기존신자에 맞추어 선교단체, 교회, 집회, 신학교, 기도원 등에서 일정기간 관계를 맺으며 경계심이 사라지도록 기다린 후, 성경공부를 빙자하여 무료성경신학원, 선교방 등으로 인도 - 종교분과가 아닌 일반 동아리에 위장잠입, 기독동아리에 위해를 가함 : 2001년 신천지 신앙을 갖은 대학생들에 의해 전남대 동아리연합이 장악되어 정동아리로 가입되어있던 5개 기독동아리들이 제명당하는 사태 발생 - 동아리 장악 : S대 B동아리의 경우, 봉사동아리였는데, 신천지에 의해 장악되는 사태 발생 - 위장설문조사를 통한 연락 : 유명 교회, 신학교, 단체를 사칭하여 설문조사를 하며 조사지에 기록된 연락처로 연락하여 기성교인을 미혹함 - 성경강해 테잎 증정 : 가판대 등을 설치, 계시록 성경강해 테잎을 무료로 증정 ○ 특기사항 - 신천지를 비판하는 세력에 대해 폭력행사 및 법정대응까지 하고 있으며, 신천지로 인한 피해사례가 과거 지방중 심에서 최근 서울 및 수도권지역까지 확대되어 발생하고 있음 - 지역교회 뿐 아니라 캠퍼스 선교단체 및 학과 기독인모임 등에 위장 침투 우려(07년, 몇 사례 제보됨) - PD수첩 방영 후 타격이 있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확고한 멤버십이 형성되어 활동에 대한 경계 필요 - 주요 주의가 필요한 이단 ○ 관련기관 : 예수교증거장막성전, 시온기독교신학원, 무료성경신학원, 신천지 중앙교회 등 ○ 중심인물 : 이만희(창시자) 2) IYF(International Youth Fellowship:국제청소년연합) ○ 주요내용 IYF는 세칭 구원파(박옥수계열, 권신찬계열, 이요한계열)라 불리는 집단 중 박옥수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이다. 죄사함과 거듭남, 또는 구원의 비밀을 자신들의 교회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일단 죄사함을 받으면 다시는 회개할 필요가 없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주장한다(<기쁜소식> 89년 2․3월호). 성화가 배제된 중생의 구원만을 강조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전국 10개지역에 지부를 갖고 있으며, 또한 서울지역 캠퍼스를 7개 그룹으로 나누어 관리, 활동하고 있고, 지난해 11월 서울지부 개소와 함께 신입간사들을 채용함으로 더욱 활발한 지원활동이 예상된다. ○ 캠퍼스 주요활동 - 종교분과, 문화분과, 봉사분과 등으로 동아리 등록 시도하며 IYF라는 이름 대신 다른 이름으로 가장하기도 한다. - 명절 등의 공휴일에 ‘중국인 문화축제’ 개최, 중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 - 학교 행사 뿐 아니라 지역문화행사 등에 IYF등의 이름으로 공연이나 자원봉사 참여(음성품바축제, APEC 등) - 캠퍼스 내 사진전시회, 문화공연 등 동아리홍보기간, 축제기간 등에 총학생회 등과 연계하여 자체홍보 - 영어마을, 영어말하기대회, 명사초청강연회, 세계대회, Global Camp, 영어캠프(초, 중, 고, 대) 등 ○ 특기사항 - 기독교수, 학생, 교목실에 대한 고소 및 고발등 협박행위 다수 - 제6기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600여 명 귀국. 전국적 귀국발표회 개최(2월 24일~3월 16일) - 캠퍼스 개강에 맞춰 광범위한 캠퍼스 별 귀국발표회를 개최 및 홍보할 것으로 예상 - 상반기(5월), ‘Culture2008’이라는 이름의 문화박람회 및 홍보가 예상되며, 특정 캠퍼스에서 ‘Mini Culture2008’이라는 이름의 예비행사를 가질 것으로 예상 - 미국 내에 신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자체 교단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예상 - 영어말하기대회, 명사초청강연회, 문화공연 등 IYF고유행사를 각 지방 지자체, 교육기관 등과 연계하여 개최
463 no image 양들 초청해 주세요~ [3]
[레벨:20]인금철
67 2010-07-27
462 no image 소소한 즐거움의 유혹을 버리고...
[레벨:20]인금철
94 2010-07-28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한 인터뷰 기사를 보고 작은 도전이 되어서 올려 봅니다. 최근 최연소 당 대표가 된 민노당 이정희 의원이 있죠. 서울 법대를 졸업한 학교 선배이기도 한데요... 김재동씨와 인터뷰한 대사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어요. .... Q: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인권변호사로만 살아온 이 의원은 어찌보면 법조계의 ‘아이돌’ 생활을 보내온 것 같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거쳐 인권변호사로, 다시 진보정당의 대표로 그 연령대의 평범한 변호사들이 하는 일들, 일상을 즐기는 대신 무대 위에 올려진 삶, 남다른 변호사의 생활을 해 왔다. 적당히 자신의 삶도 즐기고 누리면서 일상을 즐기라는 유혹을 느끼지 않았을까? A:그런 유혹에선 벗어났어요. 한때 정치입문을 앞두고 아이들과 운동도 하고, 과자도 구우면서 소소한 행복을 만끽해 본 적이 있죠. 베토벤 교향곡 5번을 편곡한 피아노곡을 마스터하려고 악보까지 구해놨는데, 국회에 들어오면서 다 물건너갔죠. 막상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 저 혼자의삶과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더 큰 책임을 느껴요. 정말 잘 살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 적당히 자신의 삶을 즐기고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는 것에 대한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죠. 그것을 굳이 버려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거예요. (억지로 버린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우리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수많은 소소한 즐거움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대부분 불가능하겠지만...), 주말이면 누구의 touch도 받지 않고 자유를 구가하고, 휴가철이면 먼 나라로 떠날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산다고 비난하지도 않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지도 않죠. 그런데 그것을 버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사람, 자신의 삶을 넘어 다른 사람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정치인도 그렇겠지만, 목자로의 부르심이 바로 이런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삼 우리의 생각에서 늘 양들이 우선적으로 떠오르고 첫째가는 기도제목이 된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소소한 즐거움과의 지루한 싸움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헌신과 결단을 통해 우주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때, 그러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롬1:5) 소소한 즐거움을 넘어 신령한 기쁨과 감동이 있는 목자의 삶을 기대해 봅니다~
461 no image 캠퍼스 묵상 [2]
[레벨:20]인금철
55 2010-07-01
캠퍼스에서 fishing 하면서 목자들에게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제게는 대충 이런 것 : 나이도 좀 들어 보이고 복음에 관심 없어 보이는데 혼자 앉아 있는 그 앞을 지나쳐야 할 때... 혼자서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 때... 그리고 나도 혼자일 때... 왜 어려울까? 나는 분명히 그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왜? 한 사람에게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 나의 가치가 무시 당하고 사랑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기에. 그런데 동시에 경험하는 또 한가지는 뭐냐면, 한 번 거절당하고 나면 양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는 것. 더 힘들어질 것 같은데... 무슨 이유일까를 오늘 생각해 봤습니다. 예전에 '사랑은 움직이는거야?'라는 책의 내용이 기억납니다. 각자 자신의 항아리 속에서 부딪혀 깨질까봐 두려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깨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던지라고 하시죠. 나를 던지는 것은 무얼까? 거절과 무시의 두려움이 있지만 일단 말을 걸어 보는 것. 깨지는 건 뭘가? 거절과 동시에 관심 밖의 대상이 되고, 주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 그러면 속사람은 '나라는 존재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며 낙심할 때, 동시에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이것 밖에 안되는 나를 사랑하셨구나' 내가 깨지기 전까지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들을 붙들고 있엇죠. '나도 집에 가면 귀한 몸이야, 너의 선배이지...나 사실 이런 대접 받지 않아도 되는 몸이거든?' 이런 조건을 대면서 나는 충분히 누군가에게 인격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깨지고 나서야 그런 것들이 사랑의 조건이 되지 않음이 드러나고,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가치와 관계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비로소 느낍니다. 양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양들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거죠. 나의 인간적인 자존심을 지켜줄 것같은 항아리로 나를 잘 보호하고 있을 때 나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다 깨지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로 여지없이 드러났을 때 사랑하셨다는 것.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더 이상 깨지는 것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깨지고 부숴져서,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붙들고 사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캠퍼스 규장각을 지나면서 제 마음을 비추었던 생각들을 올려 봅니다.
460 no image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2]
[레벨:20]인금철
49 2010-08-12
어제 평신도 Fighting Frontier 목자님들과 기도에 관한 두 번째 공부를 하면서 누가복음 18: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부분에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at all times they ought to pray and not to lose heart) 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항상 기도해야만 한다고 하시나', '그만 두면 절대로 안된다고 하시나' 생각하다가, 내가 항상 꼭 해야만 하는 일, 그러면서도 낙심하거나 멈춰서는 안되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숨쉬는 것, 밥 먹고 물 마시는 것, 잠 자는 것... 소소한 것 같지만, 정말 하루라도 안하면 큰 일나는 것들이더군요. 힘들다고 그만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구요. 주님께서 기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기도를 안하면 어떻게 되는지, 왜 힘들다고 포기해서는 안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말씀공부 하면서 제 자신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세를 산다면 분명히 불편하고 원한 맺힐 일들이 많기에 기도를 쉬면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시는 것일텐데, 그렇게 불편하지도,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도 왜 그리 약해졌는지...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꿈꾸며 밤낮 부르짖는 기도가 아련한 옛 추억으로 남아야 하는 건지... 정말 예수님의 말씀대로, 재림 때에는 기도하는 모습을 거의 상실하고 있을 것인지... 원인이 뭘까요? 어떻게 해야 기도에 대한 심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459 no image 한 마디....
[레벨:20]인금철
77 2010-09-02
458 no image [공지] UBF 50주년 기념 노랫말 공모
[레벨:20]인금철
33 2010-08-31
457 no image 가을수양회 프로그램 의견 [2]
[레벨:20]인금철
57 2010-10-04
456 no image 호킹의 이론, 어떻게 볼 것인가? [2]
[레벨:20]인금철
67 2010-11-17
어떠한 관점으로 이 시대 사상을 볼 것인가 생각하게 해 주는 글이라서 추천을 받아 올려 봅니다. -------------------------------------------------------------------------------------- 장애를 지닌 무신론 과학자 스티븐 호킹 ‘우주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 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여 매스컴과 교계의 파문을 일으킨 스티븐 호킹(1942- )과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미 캘리포니아 공과대 물리학)의 공저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가 최근 우리말로도 번역이 되어 나왔다.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은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다. 즉 관측과 실험을 요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단지 이론과 수학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호킹이 노벨상 수상자가 되지 못하고 늘 논란이 많은 것도 이런 이론물리학자의 특성이 반영된 점이 있다. 호킹은 1959년 영국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재학 중, “물리학 문제는 어떤 것이든 계산하기도 전에 풀어버렸다”고 호킹의 지도교수가 회고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뛰어난 두뇌를 가진 수재였음이 분명하다. 그의 아버지도 과학자였다. 아버지가 영국 국립의학연구소에서 열대병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였으니 과학적 재능은 일찍 타고난 듯하다. 이 모든 배경이 그의 육체적 장애와 더불어 호킹의 명성을 크게 높이는 상승 작용을 하였을 것이다. 호킹은 사실 이미 과거에도 그가 믿는 신이란 정통적 신개념이 아님을 늘 말하고 있었다. 즉 호킹이 불신자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제 와서 이렇게 온통 언론이 다시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출판사의 교묘한 홍보 전략 다름이 아니다. 10년 만에 그의 새 책이 출간되었다. 출판사의 목표란 신(神)이 존재 유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직 책이 계획만큼 많이 팔려야 한다. 출판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이슈가 될 만한 것은 끄집어내어 언론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출판사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관측과 실험이 불가능하고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물리학자의 주장은 독자들에게 관심도 덜하고 조금 신선감이 떨어진다. 우주물리학적 교양도서라는 것은 심지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수많은 대학자들의 책도 팔리지를 않는다. 호킹은 1987년 출판된 자신의 책 서문에서 스스로 누군가 자기에게 “당신이 책에서 방정식 하나 사용할 때마다 책 매상이 절반씩 줄어들 거라”고 충고했다는 에피소드는 과학 도서를 팔기 위한 치열한 고심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런 고민을 뚫고 무엇이든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호기심을 불어넣어야 한다. 호킹이 장애를 가진 의지의 과학자라는 것도 세상에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좀 더 세상을 향한 강력한 레토릭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종교와 과학의 시대이다. 탁월한 장애인 과학자가 신이 없다고 외치는 것은 영원히 리바이벌해서 써먹을 만한 주제이다. 이미 그것은 호킹과 같은 옥스퍼드 출신이고 한 살 차이인 리처드 도킨스(1941- )가 여러 번 활용하여 그 파급력을 확인한 바 있다. 필자가 볼 때 이번 일은 조금 유치하게 보인다. 호킹은 출판사 판매량 제고를 위한 슬픈 언론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신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려고 겨우 자신의 작은 머리와 이론물리학을 가지고 무신론의 틈새를 메꾸려는 노학자의 애쓰는 모습이란 얼마나 안쓰럽고 처량한가? 하지만 출판사는 지금 쾌재(快哉)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이 책은 10월 7일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단번에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호킹은 ⌜시간의 역사⌟를 쓸 때에는 자신이 믿지도 않는 신(神)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탐구하는 듯한 레토릭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신에 대한 반감과 강한 부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대단히 전투적인 무신론자이다. 그의 논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단순하지가 않다. 오랜 시간 치열하고 집요하게 무신론을 주창하여 왔다. 그에 비하면 사실 호킹은 훨씬 소박한(?) 무신론자이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무신론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다만 조금 알려진 과학자요 장애를 가진 특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좀 더 끄는 과학자일 뿐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론물리학 자체가 늘 잠정적이므로 무신론과학자로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더구나 난해해도 그 주장을 증거하거나 반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호킹도 사람이다. 스티븐 호킹의 주장- 그도 황당한 실수를 하는 사람일 뿐이다 호킹은 1985년 “우주가 수축하게 되면 시간의 화살도 반전(反轉)한다”는 아주 과감한 주장을 폈다. 물론 호킹의 실수였다. 일본을 여러 번 방문한 호킹이 첫 방문 때 교토(京都)에서 열린 ‘양자 중력과 우주론’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우주가 수축할 때에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은 반전한다”고 자신만만하게 했던 주장이었다. 시간이 정말 거꾸로 갈 수 있을까? 노인이 아이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되돌아가서 과거의 부끄러운 것들이나 아쉬운 것들을 교정하거나 수선하고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떨어진 대학, 불합격한 입사 시험, 빗나간 탈선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교통사고로 다 망가져버린 자동차가 다시 조립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리 될 수 없다. 이것은 나중 호킹 스스로 인정한 ‘큰 실수’였다. 호킹의 주장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아는 상식의 공학도나 물리학도라면 어안이 벙벙해지는 괴이한 억지 주장이었던 것이다. 호킹도 당연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실수를 할 줄 아는 한 명의 과학자일 뿐이다. 사람들과 언론은 일개 과학자의 주장에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다. 과학자도 일종의 미디어 스타가 된지 오래이다. 우리는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에서 이미 그 폐단을 확인하여 왔지 않은가! 이번에 나온 책은 무슨 대단한 논문이 아니다. 우주를 설명하는 단순한 교양 과학도서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아닌 검증되지 않고 단순히 미디어에 노출된 과학자가 주장한 책을 누가 사볼까? 이번 호킹 박사의 책도 이미 그의 10년 전 저서에서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 진전시킨 리바이벌일 뿐이다. 호킹은 철학은 죽었다고 하면서 자신은 다분히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주장을 편다. 저자 자신들은 “과학사의 전환점”에 점근했다고 자화자찬을 한다. 이제 물리이론의 목표와 조건에 대해 생각을 바꾸라고 독자들을 재촉한다. 그러나 정통 물리학과 철학과 수학을 전공한 이 책의 번역자조차 “전통과학자들이 보기에 호킹의 시도는 충분히 이단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책 판매를 위한 교묘한 전략에 너무 요란하게 반응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은 순진하다. 출판업자에게 말려든 것이다. 이 책에서 호킹은 양자이론을 가지고 우주는 하나의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역사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중우주(multiverse)"를 예측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우주는 다수의 우주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무”(無, nothing)에서 자연발생한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플라톤과 뉴턴과 아인시타인을 넘어 자연의 4가지 힘과 숱한 물리적 상수들의 값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단일한 이론의 모델로 자신의 M이론(M-theory)을 내세운다. 호킹은 M이론을 통상적 의미의 이론이 아니라 다양한 이론들의 집합 전체를 말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다분히 과학철학적 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킹은 이론물리학자 답지 않게 과학철학자들과 철학자들에 대해 반감이 많은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자신의 책에서도 호킹은 ‘철학은 이제 죽었다’고 말한다. 철학이 현대과학의 발전, 특히 물리학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격앙되어 말한다. 과학철학자들은 호킹의 이런 글을 읽으면 과연 무어라 말할까? 그냥 빙그레 웃을 것이다. 대화하기 싫은 것이다. 호킹은 참철학의 의미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호킹이 그만큼 과학철학자들의 비판에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과학철학자들의 비판에 노출되었다는 것은 호킹의 사색과 독서폭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론물리학은 사실 그 원조가 철학이다. 이오니아의 밀레투스에서 시작된 서양 철학의 출발은 자연학(physica)이었다. 학문은 정교하다. 과학철학은 수천 년 동안 정교하게 정립된 학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함부로 철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철학을 애써 외면하면서 이론물리를 전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뜻이다. 설령 철학이 죽는 다고 신이 죽지 않는다. 실은 철학도 펄펄 살아있고 하나님도 우주라는 유한(有限)의 바깥에서 웃고 계실 것이다. 유한(有限)이 어떻게 무한(無限)을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유한한 호킹은 무한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 한줌, 바람 한줌, 공기 한줌도 자신의 머리 속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호킹의 우주론은 여전히 아직 낯선 학문에 불과하다. 뉴턴과 아인시타인조차 정밀한 과학적 평가를 받은 것처럼 호킹에게도 많은 학자들의 신랄한 비판이 기다리고 있다. 실은 호킹의 주장은 이론물리학자들에게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잘 정리되지 않는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에 불과하다. 그래서 과학철학자들은 호킹을 유명론자(唯名論者)라든가, 개념 도구주의자, 실증주의자, 실재론자 등으로 각각 다르게 부르고 있다. 유명론과 실재론과 실증론은 서로 상이하거나 상반된 입장임에도 호킹이 이렇게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 불려진다는 것은 그의 학문적 입장이 얼마나 다분히 철학적이고 또한 정돈되지 않았는 가를 나타낼 뿐이다. 1962년 의사로부터 여명이 2,3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도 초인적인 활약을 해온 의지의 과학자 호킹이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탁월한 과학자 호킹이 이제 얼마 남겨두지 않은 말년의 기간 동안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조용히 내려놓고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조금 깊은 사색과 독서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호킹 못지않은 신실한 과학자들은 허다하다 28세에 실명한 천재 수학자 오일러는 눈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500여 편이 넘는 논문과 책을 썼다. 최근 스위스 역사학자들의 확인에 따르면 그가 남긴 연구 자료의 총량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어 대형 트럭 한 대 분량을 훨씬 넘는 양이었다. 그는 호킹 같은 학자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학자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칼뱅파 목사였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정규적으로 교회서 설교를 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다. 이런 경건한 과학자들은 무신론 과학자보다 훨씬 많았다(본 창조신학연구소 홈피 참조). 영국 왕립연구소장을 지낸 수전 그린필드 옥스퍼드 링컨대학 교수는 최근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과학이 (일부 학자들의) 오만에 의해 종종 시달린다”며 영국의 과학자요 신실한 교회 장로였던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를 인용,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지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대한 사람의 위대한(?) 착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상 큰 불상사를 가져올 수 있다. 시간 연구의 원조, 성 어거스틴 아인시타인과 호킹이 시간을 연구하기 이미 오래 전, 이들 두 과학자보다 더 깊은 연구와 사색과 기도로 ‘시간’의 신비를 연구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성 어거스틴이다. 호킹은 시간 연구의 권위자요 평생 시간을 붙들고 산 과학자다. 호킹도 자신의 책(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어거스틴의 시간 연구를 얼핏 다루고 있다. 이제 이 호킹이 인생의 말년에 시간 연구의 대선배 어거스틴이 찾아낸 ‘시간 밖에 존재하며 시간에 구속되지 않으시는 분’(벧후 3:8)을 꼭 만났으면 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www.kictnet.net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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