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관악5부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635 no image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한가지 [3]
[레벨:20]손양표
87 2008-11-12
어제는 독수리 요회 모임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평소 메시지와 양식 발표와 합심기도 등으로 요회모임을 하곤 했는데 어제는 캠퍼스의 양들이 보고 싶고 또 가만히 은혜만 받기보다는 전하러 가야겠다는 마음에 요회 분대원들과 캠퍼스에 나갔습니다. 동역자와 감사자매님은 한팀으로 저는 스테디 목자님과 한팀으로 해서 기숙사 구관에서 피싱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을 거는 양들마다 반응이 차갑고 몇마디를 더 진행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복음은 전하고 싶은데 들어주는 양이 없으니 너무 답답했고, 저는 서울대 양들의 교만함을 지적하고자 스테디 목자님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다른 요회는 중국양, 몽골양들도 많은데 저는 그쪽 출신 양들은 전혀 만나본 적도 없네요" 이 말은 교만한 서울대 양들보다는 마음이 비교적 겸손한 (?) 중국양,몽골양이라도 만나면 그분들한테는 복음을 전할 수 있을텐데... 라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불과 몇분 후에 저는 한 양을 만나 말을 걸었는데 그 분은 제 말을 알아 듣지 못하고 영어로 답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몇마디 해보니 중국양이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미소로 거절을 하고 총총히 걸어가는 그분을 보며 전 순간 저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00한 양 하나 없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00한 양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은 소원없는 양이 없다고 투정하는 제게 소원있는 양도 보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만 제 문제는 저의 부정적인 생각, 마인드였습니다. 하나님은 '중국 양 하나 없네'라는 말이 끝나자 마자 '중국 양'을 만나게 하심으로 저를 무색하게 하셨습니다. 제 마음속엔 소원있는 양 하나 없네라는 투정과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가 그런 마음 갖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역사에 부정적인 생각이나 투정보다는 소망섞인 말, 영적인 비전을 품고 임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며칠전 묵상한 에스겔 33장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경계병이 칼이 오는 것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않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게 될 것이나 하나님은 그의 피를 경계병의 잘못으로 돌릴 것이다 (5절)" 하나님은 저희를 경계병으로 삼으셨습니다. 심판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파숫군, 경계병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전 양을 숫자 늘려서 수당받아먹고 사는 영업사원이 아닙니다. 전 경계병으로서 재림과 심판의 소식을 양들에게 전하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토록 돕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양들이 소원있네 없네라고 하는 것은 제게 허락된 영역이 아닙니다. 저는 마땅히 할 일을 충성되게 하면 될뿐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피싱역사를 섬기면서 소원있는 양들이 없는 것 같고 또 우리 요회가 괜히 비교되는 것 같고 제가 장사치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순간 볼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순간 제가 투정했던 그 중국양을 만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소원있는 양을 보내줄 수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학교를 내려오면서 하나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므로 비전과 소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임해야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말한마디도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들이 소원있네 없네, 난 왜 이러지라는 생각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루터기를 남겨 두셨지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시지 하나님은 이 캠퍼스를 거룩하게 쓰시기를 원하시지 하나님은 바로 저 양 한사람을 사랑하시고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시지.. 그리고 그 거룩한 땅에 내가 서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가져야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캠퍼스 구속역사를 너무나 원하신다는 것 하나님은 저같은 자를 서울대 역사에 부르셨다는 것 하나님은 저를 통해서 캠퍼스 구원역사를 흥왕하게 이룰 것이라는 것 하나님은 저희 요회를 병아리가 아니라 날개치는 독수리로 키우신다는 것 이것을 제가 믿고 도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주간 요회모임때 나름대로 열심히 메시지를 준비해서 전했고 또 요회식구들도 양식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감당하며 기도의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요회 내적 힘이 많이 배가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제 깨닫게 하신 것도 저와 요회에 주신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개인적인 생각이라서 보편성을 갖기엔 좀 무리가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제가 깨달은 것이 은혜가 크고 또 혼자 알기엔 아까워서 전할려고 자판을 두들깁니다. 그럼,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마디 1. 하나님 편에서 비전과 소망을 갖자. 부정적인 말은 뚝! 한마디 2. 묵묵히 할 일을 최선을 다하면 된다
634 no image 말씀묵상.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2]
[레벨:20]손양표
81 2009-04-09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얻은 은혜를 나누고자 잠시 글을 써봅니다. 새벽에 문자가 와서 핸드폰을 보니 "목자님 빨리 오세요 오늘 기도 안하면 위험해요"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믿음목자님이 보내준 문자였는데 "기도 안하면 위험해요"라는 말에 깜짝 놀라 문을 박차고 센터에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은혜가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면이 답답하고 불안했습니다. 무엇보다 현재의 저의 여러 영육간의 상황들을 생각할 때 기도하지 않고 잠만 쿨쿨 잘려고 했던 저 자신에 대해 절망감이 들고 정죄감이 밀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의감들이 모두 사단마귀가 제게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언제나 변함없이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케 하고 힘빠지게 만들려고 하는 사단마귀의 전략임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께 도와달라 부르짖고 저의 죄문제들을 떠올리며 고백하고 기도하니 점차 평안과 은혜가 밀려오고, 저를 복의 근원이요 캠퍼스의 목자로 부르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비전과 약속의 말씀들을 기억하며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게 하나님은 행 6:4 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이 얼마나 꾸준히 절박히 해야하는 것인가를 묵상케 하여 주셨습니다. 행 6:1-7절을 보면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적지않은 문제가 터지게 되었습니다. 내용인즉 이러합니다. 당시 교회에는 해외 이민생활을 하다 귀국하여 교회역사를 섬기던 헬라파 유대인들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이스라엘 정통 국내파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교회역사가 커지고 점차 제자들이 많이 모이게 됨에 따라 (6:1) 교회내에서도 불쌍한 무리들이 점차 생겨나게 되어 구제하는 것이 커져갔는데 해외파 유대인들이 이런 구제에 자기네들 해외에서 온 유대인 출신인 과부들에게 돌아오는 구제의 몫이 히브리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적다고 불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평을 들은 사도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감히 사도인 우리들에게 도전하는 것이냐.. 기분 나빠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다 알아서 할텐데 그깟 쌀 몇됫박 덜 받고 더 받는게 그렇게 중요하냐며 무시하였습니까? 아닙니다. 2절을 보면 사도들은 말씀역사에 전념하지 않고 구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하며 자신들을 대체할 집사 일곱을 택하게 하여 모든 구제를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구제하는 것에 신경쓰다보니 말씀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에 충실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오히려 모든 귀책을 말씀과 기도의 부족함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하였습니다. 그럴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제자들의 수가 많아진 것은 물론이요 불신의 뿌리가 가장 깊던 제사장들까지도 말씀에 복종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제가 오로지 전념해야 할 것은 기도와 말씀임을 떠올리게 하시고 기도와 말씀에 더욱 힘써야 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는 기도를 잘하지 못합니다. 저는 연약하고 여러 허물과 반복되는 연약함과 허물들이 줄줄이 달려오는 자입니다. 기도에 관해 글을 쓸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제게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시험이나 난관이 와도 "오로지 기도와 말씀역사에 전무할 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많은 양들이 드나들며 말씀의 꼴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제 자신이 먼저 '기도와 말씀'으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제가 살아야 양들이 삽니다. 오늘 믿음목자님의 문자내용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저는 위험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가 분명히 깨닫는 것은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전투라는 것입니다. 동네 한구석 동사무소 창고에 틀어박혀 사발면이나 끓여먹고 있는 방위에게는 아무도 싸움을 걸지 않습니다. 총 들고 최전방에서 특전사와 같이 맹렬하게 싸우는 전투군인들에게 싸움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저희는 하루하루 세상과 직장에서 시달리고, 퇴근하면 또 센터역사와 양들 역사로 시달립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칫 저희 내면안에 본문의 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들처럼 먹는 문제로 싸움이 생기고 소란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고 혼자 제멋대로 생각하다가 판단과 미움, 무기력의 죄에 빠지다가 결국 열매없는 인생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기도와 말씀뿐임을 인정하고 그것에 전념하였습니다. 말씀역사가 없으니 원망하는 문제가 생기는 구나 인정하고 기도하지 않고 구제하는 것에 시간 뺏기니 문제가 생기는구나 인정하고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였습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이 저희를 평온케 하고 많은 제자들이 서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며 제사장들까지 돌이키는 역사의 근원임을 깨닫습니다. 절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내면에 기도와 말씀의 역사가 넘치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먹는 문제로 고민하고 사람들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말씀이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기도와 말씀역사에 전념하여 요회 역사를 일으키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예수님은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저는 죽었고 예수님이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갈 2:20) 저는 가능성이 없을 지 모르지만, 제 결심이 작심삼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제 안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므로 예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역사는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믿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드러내시는 것이므로 (살전 2:13) 제가 이를 소망합니다. 이 소망 가운데 제가 즐거워합니다. (롬 12:12)
633 no image 2009년 3,5부 체육대회 일정표 파일 [1]
[레벨:20]손양표
59 2009-05-02
632 삼겹살파티 파일 [10]
[레벨:3]신수민
126 2011-05-24
631 no image 김기현 형제님 면회를 다녀와서~ [4]
[레벨:15]신유니스
67 2007-05-13
지난 토요일(12일) 몇 달 만에 양을 본다는 설레임으로 새벽에 일어나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하여 센터로 갔습니다. 정은주 사모님과 성택 목자님과 함께 간단한 기도 후 출발~ 가는 길은 북부 간선도로와 춘천으로 접어드는 국도에서 조금 막혔을 뿐 2시간 30분 만에 가평에 있는 제 3야전 수송 교육단에 도착하였습니다.(네비게이션의 안내가 많은 도움이 되었음) 하지만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난 1시 35분쯤 도착하여 늦게 출발한 것이 많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면회절차는 순조로웠고 드디어 기현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습니다. 군복을 입은 모습이 너무나 늠름하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잠을 규칙적으로 많이 자서 그런지 얼굴이 더 좋아보였습니다. 면회 장소 한 구석에 이미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위한 best의 자리를 준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날씨가 쌀쌀한데 싸온 밥과 반찬이 차가워서 먹는 동안 내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싸온 정성을 생각하여 맛있게 먹어주는 기현 형제님이 고마웠고 사모님과 목자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사모님의 권유로 시편 23편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성경책과 읽을 책을 전해 주었습니다. 취사반에서 매일 들어가는 음식 재료를 체크하는 일을 맡아서 거의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상사 한 사람과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사의 행동과 말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을 하며 자유가 없었고 눈치를 많이 보며 주눅이 들어있는 듯 하였습니다. 면회 시간내내에도 아는 상사가 들어올까봐 계속 눈치를 보는 듯하였습니다. 워낙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하고 성실한 형제님이라서 상사에게 밉게 보이지 않게 보이기 위해 충성하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심한 기합을 받았고 이유없이 무조건 욕을 먹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차가 막힐까봐 3시 반쯤 일어나고자 하였으나 계속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형제님을 두고 그냥 올수가 없어 4시 반까지 더 있다가 왔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출발할 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이 안보여 운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터널을 통과한 후 갑자기 앞 창문에 부딪히는 비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오는 길은 곳곳에서 너무 많이 막혔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있었으나 한 군데에서 헤매기도 하여 3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하루 종일 걸려 면회를 다녀와 너무나도 몸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내면에 기쁨과 감사가 있었습니다. 기현 형제님에게 군 생활 동안 영적 소원을 주시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현재 예수님을 잘 모르고 사람들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이 한 영혼이 말씀으로 그리고 저와 목자님들의 기도로 반드시 변화될 소망과 비젼을 이 시간 바라봅니다. 두 팀의 일대일이 있음에도 저녁으로 미루시고 저와 함께 가 주신 정은주 사모님의 기도와 섬김과 동역을 감사드립니다. 피곤한 몸으로 가서 대화를 잘 이꿀어 주시고 기도해주신 든든한 성택 목자님의 섬김과 동역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폭우 가운데에서도 오고 가는 길 지켜 주시고 주님의 귀한 어린 양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630 no image 이번주 축구 공지입니다
[레벨:1]안민구
45 2007-07-05
629 no image 이번주 토요일 축구 잔디구장! [1]
[레벨:1]안민구
42 2007-08-02
628 no image 이번 주 토요일(11/29) 축구 한양대와 A-match 합니다 [1]
[레벨:1]안민구
39 2008-11-27
627 no image Team Spirit 2일 정리보고. [7]
[레벨:20]안홍렬
49 2011-08-30
새벽 4시 40분 식사당번조가 기상하여 팀스피릿 훈련 이튿날을 시작하였습니다. 영길 목자님 조는 아침을 준비하고 태용 목자님 조는 점심 주먹밥을 준비했습니다. 아침 메뉴는 부대찌개와 캐찹스팸맛살볶음이었습니다. 요한 목자님은 젊은 사람이 좋아하는 요리로 캐찹스팸맛살볶음을 메뉴로 골랐다고 하였는데 진우 목자님은 젊은 사람이 아니라 요한 목자님이 좋아하는 요리였다고 평하였습니다. 주먹밥은 태용 목자님의 레시피로 준비되었습니다. 밥과 참치, 참기름, 깨, 소금, 그리고 비장의 허브 솔트의 비공개 비율로 주먹밥이 버무려지고 11인분으로 나뉘었습니다. 아침을 서둘러 먹은 팀스피릿 훈련 팀은 주먹밥, 오이 두 개, 초콜릿, 물 한 병을 각각 몫으로 받고 한라산 관음사 야영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한라산 관음사 야영장에 도착하니 7시가 되었습니다. 등산에 앞서 기도와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한라산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선두에는 신 선생님이 스셨고 그 뒤로 저와 세웅 형제님이 섰습니다. (뒷줄 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양손에 등산지팡이를 든 세웅 형제님이 저와 신 선생님을 앞질러 성큼성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세웅 형제님은 그 뒤로 세 시간 뒤에 삼각봉 대피소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삼각봉 대피소까지는 산세가 험하지 않고 등산로 시설이 잘 되어있어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등산 코스에 계속 나무가 울창해서 경치 구경은 힘들었습니다. 신 선생님은 한라산에는 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계곡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가끔 물이 고여 있는 곳은 있었지만 정상 가까이 오르기 전까지 물 흐르는 곳이 없었습니다. 고요한 산행이 되고 경치도 보이지 않아 심심한 등반이 되었습니다. 10시가 되어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삼각봉 대피소에는 한 시간 전에 세웅 형제님이 먼저 올라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삼각봉 대피소 오르니 비로소 탁 트인 경치가 나타나고 발아래로 구름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날이 맑았다면 제주시 풍경이 보이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발아래 구름바다와 정상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구름 연기를 보면서 어서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대감이 충만해졌습니다. 모두 같은 마음이 되었는지 함께 사진을 찍고 지친 걸음에 힘을 보태어 정상으로 출발했습니다. 정상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삼각봉 대피소 이후로 경사가 가팔라져서 계단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틈틈이 드러나는 경치는 힘든 줄 모르게 했습니다. 마지막 200m를 앞두고는 모두 힘에 붙여서 몇 분 못가서 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설렘은 더욱 강해져갔습니다. 정상 근처에 오르자 바람은 시원함을 넘어서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찬바람을 그대로 맞은 피부는 서늘해졌습니다. 준비해온 긴팔을 꺼내 입고 긴팔이 없는 사람들은 우의를 꺼내 입었습니다. 12시가 되어 5시간의 등산 끝에 정상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구름이 백록담을 완전히 뒤덮지 않아서 바람이 구름을 몰아내면 백록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에서 맑을 때 백록담 사진을 찾아보니 과 비교하니 아쉬움이 큽니다) 한라산 정상의 바람은 매우 빨라서 백록담을 보여주었다가도 순식간에 감추고 드러내 보이기를 반복했습니다. 등산하기 전에 백록담 물을 마셔보고자 하는 소원을 얘기했었는데 전에 가보았던 목자님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잘 수긍되지 않았지만 직접 보니 그것이 왜 불가능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분화구 위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한참을 내려가야 백록담 물에 갈 수 있었습니다. ‘내려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울타리에서 백록담을 바라보고 있는데 울타리를 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보통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분화구 경사가 가팔라서 한번 잘못 디디면 추락할 성 싶었고 내려갔다가는 올라올 방도가 보이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그래도 평생 처음으로 백록담 까지 왔는데 그 물에 손 한번 못 담가 본 것은 지금까지도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상에서 챙겨온 주먹밥을 먹었습니다. 또 준비해온 온수를 부어 컵라면을 같이 먹었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치웠습니다. 12시 50분에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등산한 관음사 코스가 아니라 성판악 코스를 하산 길로 잡았습니다. 금철 목자님은 관음사에서 차를 가져오기 위해 먼저 하산하겠다고 하시고는 나는 듯 달려갔습니다. 요한 목자님도 같이 가자고 하시면서 금철 목자님을 쫓아갔습니다. 저 또한 따라가고자 달렸지만 5분도 못가서 불가능을 깨닫고 제 페이스대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철 목자님을 제외하고 진달래밭 휴게소에서 모두 만났습니다. 잠깐 쉬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하산은 천천히 가는 것이 힘들다고 해서 각자 속도에 맞추어 내려갔습니다. 선두는 요한 목자님과 저와 세웅 형제님이 섰습니다. 요한 목자님은 금철 목자님을 절대 따라갈 수 없었노라며 금철 목자님이 마치 무장공비처럼 산을 내려갔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번에도 세웅 형제님은 저와 요한 목자님을 제치고 달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반쯤 내려와 요한 목자님과 저에게 따라잡혔습니다. 세웅 형제님은 내려올 때마다 돌들이 발바닥을 찌른 다며 아파서 못 뛰겠다고 돌길이 나올 때마다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무 계단으로 포장된 길이 나오면 다시 속력을 내어 나는 듯이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저와 세웅 형제님은 점차 요한 목자님 뒤로 쳐졌습니다. 긴 다리에서 나오는 큰 보폭과 웬만한 돌은 조약돌처럼 딛고 가는 거침없는 걸음은 따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와 세웅 형제님은 진달래 밭 휴게소 이후로 한 번도 쉬지 않았지만 한번 요한 목자님에게 뒤쳐진 후로 마지막까지 요한 목자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산하니 3시 10분이었습니다. 금철 목자님께 전화해보니 관음사에 도착해서 차를 끌고 오시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금철 목자님을 왜 철인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차례차례 하산을 마쳐 4시 전까지 모두 하산하였습니다. 마침 금철 목자님도 차를 끌고 와서 우리는 곧장 김녕 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김녕 해수욕장은 조촐한 크기의 해수욕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흰 모래 해변과 청녹빛 물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이었습니다. 신 선생님을 빼고 모두 물로 뛰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장난과 업어치기로 서로 물을 먹여주다가 팀을 나눠서 게임을 했습니다. 기마전과 수영 릴레이 게임을 하였는데 영길 목자님 팀이 승리했습니다. 물놀이가 끝나고 모두 흠뻑 젖어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해변에 샤워장이 있긴 했지만 인당 2천원을 받아서 숙소에서 씻기로 하고 자동차 시트가 안 젖도록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깔고 앉아 돌아왔습니다. 모두 저녁을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데 신 선생님께서 매운탕을 끓여주시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제안을 승낙하고 콘도 사우나로 갔습니다. 종현 목자님은 숙소에서 씻고 신 선생님 서빙을 도와주었습니다. 갈치구이, 해물알탕, 김치고등어찌게로 자그마치 세 개나 되는 메인 메뉴가 신문지 깔린 식탁에 차려졌습니다. 그밖에 사모님들이 출발할 때 싸주신 오이무침과 깻잎으로 상은 가득 찼습니다. 모두 등산하고 온 터라 맛있는 저녁을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하산할 때는 따로 내려오기도 하고 해수욕장에서는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하기도 했지만 먹을 때만은 진정 한 스피릿이 되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서 저녁을 먹으니 스피릿뿐만 아니라 몸도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두 굉장한 식욕을 보여주었지만 승대 형제님이 그 중 제일이었습니다. 영길 목자님과 세웅 형제님은 음식사진과 오늘 찍은 사진을 카톡에 올리기에 바쁘셨습니다. 이튿날 대미를 장식한 것은 설거지를 건 사다리 타기였습니다. 모두 자기만은 피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요한 목자님의 팬을 따라 운명의 주인공이 결정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주인공들은 영길 목자님과 진우 목자님이었습니다. 진우 목자님은 마지막 남은 두 선택지에서 태용 형제님과 하나씩 골라야 하는 처지였었는데 결국 자신이 걸리자 절규하며 탄식하였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훈련이름이 팀스피릿 훈련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훈련까지 해가며 팀스피릿을 이뤄야하는 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날 까지도 그런 생각이 남아있어서 온전히 훈련에 담기지 못했습니다. 첫날도 둘째 날도 걷는 것이 대부분이라 모든 팀이 하나 되어 교제하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팀스피릿을 가져야 되는 이유조차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훈련이 그다지 팀스피릿을 이루기 위한 프로그램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어서 더 힘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차라리 말씀을 붙들고 그룹 스터디를 하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았겠는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다음날 제 마음에 변화가 생겼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팀스피릿을 같이한 목자님과 형제님들이 매우 친밀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팀스피릿 훈련 전까지 예수님과 저와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훈련 이후로 저의 시야가 조금 확장되었습니다. 팀스피릿 요절은 아니지만 로마서 말씀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저 뿐만 아니라 팀스피릿 훈련을 같이한 동료 목자님들도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찾아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다른 동료 목자님들도 찾아가 만나주셨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다른 동료 목자님들도 사랑하심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 안에서 한 지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지만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팀스피릿 훈련이 무의미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훈련을 사용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음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팀스피릿 훈련 전과 훈련 중에 서로 한 지체임을 깨닫고 한 스피릿을 이루어 주시길 간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이루셨음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 되는 것을 바라고 계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하나 되어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여기까지가 둘째 날의 훈련 기록과 팀스피릿에서 제가 느낀 바입니다. 제가 느낀 바는 저도 분명히 확신하지 못해서 중구난방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느낀바 대로 솔직하게 쓰려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626 no image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부활 [1]
[레벨:20]안홍렬
52 2018-04-08
구약에 나타난 부활에 대해 궁금하여 찾아보던 중 좋은 자료가 있어서 공유합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voicemissio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15 출처 : http://yyht.tistory.com/790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부활 연구 발표 : 정일오 목사 < 서론 >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셨다. 그러나 두 제자는 예수께서 다시 살아 자기들과 함께 걸어가신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눅24:17-24을 읽어 보자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눅24:25-27을 보라 :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본문에서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은 부활을 포함한 승천과 재림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분명히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이 구약에 이미 예고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 성경을 근거로하여 자신의 부활을 증명하셨다. 눅24:45-48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하시면서 먼저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시고 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도록 명령을 하신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는데 그 성경은 구약성경이다. 구약성경에 그리스도가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실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찾아 설명하여 주심으로써 자기의 부활을 증거하셨던 것이다. 그렇게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고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볼 때, 메시아의 고난은 구약에 자주 거론되어 있는 반면에, 메시아의 부활은 자주 거론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본 논고를 통하여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부활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 구약에 나타난 성도들의 부활을 가리키는 구절들은 사26:19과 호6:2 등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메시아의 부활은 어디에 예고되어 있는가? < 본론 > 편의상 우선 메시아의 부활이 예표론적으로 예고된 구절이나 사건들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직간접으로 메시아의 부활을 예고한 구절들을 살펴 보기로 하자. 1. 예표론적으로 예언된 메시아의 부활 1) 창세기 22장 창 22:2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시험은 역사상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험임을 시사한다. '가서'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12:1의 '가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께서 이방 땅으로부터 그를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사실 모리아산까지 나아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곳이 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자리가 아니었던가? 어쨌든 아브라함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골고다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그곳이 그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일 것이리라. 동시에 창 22:2에는 장차 오실 메시아와 이삭의 동일시가 나타나 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자(예수)를 연상케 한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사랑하는 독자였던 것처럼, 하나님에게 예수 역시 사랑하는 독자였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 22:8) 이삭의 질문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은 하나의 신앙이요, 예언이요, 기도였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이삭을 바쳤다가 도로 산채로 받았다는 것은 위의 본문에서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예표적 사건이다. 13절에서 이삭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숫양을 대신 잡아 제물로 드렸고, 이삭은 죽임을 당할 자리에서 생명을 되돌려 받아 살아나게 되었다. 모세는 이삭의 사건으로부터 장차 예수께서 어린 양으로 오셔서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구약의 제사제도를 설정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들어 죽이려고 했을 때, 이삭은 사실상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결국은 숫양이 대신 죽고 이삭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삭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하였을 때 '그의 살아남'은 '메시아의 살아남'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삭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희미하게 예고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2) 유월절기 중 초실절 출 12:1-28에 첫 유월절 지키는 방법이 나타나 있다. 14일 저녁, 즉 해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어린 양을 잡아 불에 구어 먹었고 그 밤에 유월절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유월절 그 날부터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고 하나님은 지시하고 있다. 사실 무교병은 누룩이 없는 떡으로 누룩을 넣으면 발교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급히 나와야 했으므로 발교된 떡을 먹을 여유가 없었다. 민 28:16-25에는 유월절에 제사 드리는 절차가 나타나 있다. 본문에는 14일이 유월절이고 15일부터 7일간이 무교절기로 되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즉 유월절과 무교절기를 합하여 8일간 지키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상 유월절을 포함한 모든 무교절기가 7일이다(참고. 신 16:1-8). 레 23:4-14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기 사이에 초실절이 들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가나안 입성을 내어다 보면서 목축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될 것을 계산하여 첫 이삭을 흔들어 바치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이 날(초실절)부터 오순절기의 계산이 시작된다. 레 23:10-1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유월절 다음날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쉬고, 그 다음 날은 안식 후 첫날로써 첫 이삭을 흔들어 바치는 날이다. 위의 레 23:10-12을 다시 보라. 유월절에 어린양이 죽고 그 피가 흘려져서 지성소의 법궤위에 뿌려지고, 아사셀 양은 백성들의 죄가 사라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광야로 가서 놓여진다.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다. 그것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는 대속의 죽음이다. 그 다음날은 안식일로써 쉬는 날이다(참고. 요 18:28; 19:31; 눅 23:54; 막 15:42). 그리고 그 이튿날 곧 유월절로부터 3일째 되는 날은 첫 이삭의 단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와서 흔들어 바치는 날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제 3일에 추수 이삭의 한 단을 흔들어 바치라고 하셨는가?'에 대한 대답이 분명해 진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유월절에 죽음을 당하시고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셔서 모든 부활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실 것임을 미리 증거하시기 위함이다. 첫 이삭( )은 '첫 열매'로서 '순서적으로 가장 먼저 추수된 알곡'을 의미하며, 또한 '모든 추수물의 머리(대표)'임을 의미한다. 고린도 전서 15:20,23에서 바울은 구약의 초실절에 흔들어 바친 첫 이삭의 단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 후 첫 날(마 28:1) 곧 첫 이삭을 흔들어 바치는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우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증명서요, 보증서요, sample case이며, 첫 머리이다. 그러므로 무교절 셋째날에 흔들어 바치는 첫 곡식 단은 장차 오셔서 다시 살아나실 메시아에 대한 예표이다. 이 초실절 의식은 메시아의 부활의 날을 예고하고 있으며, 그분의 부활이 대표요 첫 번째 부활로서 장차 그를 따르는 성도들이 그분처럼 부활할 것도 예견케 하고 있으며, 메시아와 성도들의 부활의 상관관계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3) 요나의 사건 (마 12:3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참고. 눅 11:29-32)(마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요나의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유사성을 가진다. 우선 양자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죽음에 넘겨졌다가 다시 살아난 점, 그리고 밤낮 사흘을 그 죽음(요나의 경우는 죽음과 같은 스올의 뱃속에 있었음)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구약의 독자들이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에 버려졌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실만을 가지고 장차 이 땅에 오실 메시아가 요나와 같은 모습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유추해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 문제이다. 요나는 장차 오실 메시아 보다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께서는 요나의 경험을 자기가 장차 받을 경험으로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먼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 개념에서 찾을 수 있겠다. 요나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면 예수는 역시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요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으시다. 예수의 고난은 그 백성들의 고난을 대신한, 즉 그 공동체의 대표로서 당한 고난이 아니었던가? 이런 점에서 요나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예표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예수께서 그 선지자(신 18:15)로 오신 사실에서 요나가 다시 살아난 사건과 메시아이신 그 선지자의 부활을 유추할 수 있겠다. 요나는 참 선지자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prophetic line선상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 선지자 메시아처럼 성령을 받은 인물이요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예언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메시아의 예표적 인물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요나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 (욘2: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스올의 뱃속'이란 hades 즉 죽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또한 2:6(히. 7절)의 구덩이( , from the Pit)는 멸망, 파멸을 의미한다. 요나는 앗수르의 니느웨 백성들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통하여 죽음으로부터 살아났다. 그는 육체가 썩어져야 할 그 장소로부터 육체가 썩어지지 않고 육신이 보호받아 결국 3일만에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인 니느웨 사람들을 멸망으로부터 건져 내었다. 이제 주님은 자신의 부활을 구약에서 죽었다가 다시 3일만에 부활한 요나와의 유사성에서 자신의 부활의 모습을 발견하시고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신 것이다. 당시의 히브리인들에게는 그 사실이 감추어져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요나의 부활이 주님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주님이 오셔서 실제로 요나를 예표로 말씀하시기까지, 그리고 실제로 부활하시기까지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에게만 알려진 비밀로 내려온 것이다. 요나의 부활이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하게 하고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였던 것처럼, 예수의 부활은 많은 불신자들,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하나님에게로 돌이키게 하였다. 2. 예언에 의해서 언급된 메시아의 부활 1) 창3:15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본문에서 미완료형 동사가 반복되고 있다. 장차 오실 여인의 후손과 뱀(사탄)과의 싸움을 묘사하고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 뱀은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싸움에는 반드시 양방이 다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꿈치는 아주 미약한 부분이고 생명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곳이다. 이 구절은 사탄이 메시아의 육신을 죽음에 넘겨줄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여인의 후손은 뱀(사탄)에게 결정적인 치명상을 입혀 줄 것이다. 하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과 사탄과의 지속적인 싸움이 아니다. 여인의 후손인 인간과 뱀(사탄)과, 여인의 그 후손(씨)과 뱀의 후손과의 지속적인 싸움을 말씀하는 것이다. (히 2:14-16)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죽음에 매여 종노릇할 인간들을 구출해 내시기 위해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여인의 아들은 반드시 인간이 되셔야 한다. 그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시기 보다는 인자(사람의 아들)로 소개를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러한 '인자'라는 칭호를 택하여 사용하신 것은 의도적인데, 이는 예수께서 자신이 장차 얼마 후에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온 인류를 마귀(뱀)의 손에서 구출하실 분으로 모든 인간들에게 인식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참고. 단7:13; 10:16) 인간이 되신 여인의 후손이 육신적인 죽음을 맛보고 부활을 하지 못한다면 그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정도로 치명상을 뱀(사탄)에게 입히지 못한다. 오히려 그분 자신이 뱀에게 치명상을 입은 결과를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심으로 뱀의 힘을 완전히 잃게 만들 것이다. 창세기 3:15은 이러한 연인의 후손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롬 16:20과 계시록 12장은 이러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 싸움은 이제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참 하나님의 양자된 성도들에게 넘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미 일어났다. 이 지속적인 싸움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끝이 날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마리아)를 '여자여!'(요2:4; 19:26)하고 부르신 것은 실로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특히 두 번째 '여자여!'라고 부르신 것이 십자가 위에서였다고 한 사실을 생각해 보라. 그분의 완전한 승리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있지 않고 부활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창세기 3:15에 예고된 그 싸움을 치르고 있음을 인식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부활의 사실과 그로 인하여 뱀(사탄)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예견하시고 모친 마리아를 '여자'라고 부르신 것이다. '다 이루었다'는 이 모든 싸움이 끝나고 자신이 승리하셨음을 밝히신 말씀이다. 2) 시편 2:1-8 (시 2: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시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2: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시2: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시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시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2: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편 2:6은 하나님과 그 세우신 왕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취하신 조치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지상에 오실 때에 일어날 일을 미리 내어다 보고 예언적 시각을 통하여 그 메시아 왕의 등극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심하게 대적하였고 그를 십자가에 못밖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분을 십자가에 못밖아 이 지상으로부터 제거해 버린다고 해서 대적들이 승리를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킴으로 만방에 그 분이 영원한 왕이라고 선포하실 것이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appointed Son of God in power." 바울에 의해서는 여기서만 사용되고 있는 는 영어 역본에서는 자주 "designated" (RSV) "declared to be"(NIV, NEB, NRSV)의 의미로 취급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것이 아니다. 다만 그의 부활이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온 세상에 공표하는 사건이었다. 이 같은 바울의 언급은, 열방의 대적에도 불구하고 즉 열방 백성들이 그분을 상하게 하고 이 지상으로부터 제거하려 하여 그를 죽음으로 넘겨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부활시켜 그분이 명실공히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아였음을 만방에 선포하는 사건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행 13:33에서도 바울은 본 시 2:7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는 구절로 언급하고 있다. 시온(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메시아 왕의 온 세상의 왕으로의 등극임과 동시에 온 세상을 은혜로 통치하시려는 하나님의 통치의 구현이었다. 3) 시편 16:8-11 내 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 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베드로와 바울은 각각 행 2:14-36과 행 13:16-41에서 예수의 부활이 시편 16:8-11의 실현임을 선언하고 있다. 시편16편은 표제에 기록된 바와 같이 다윗의 시이다. 그러므로 시 16:10에서 '나'는 다윗 자신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시 16:10은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내(다윗)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다윗)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 이니이다.' 여기서 다윗은 언약의 주체자로서 다윗 자신을 두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죽었고 땅에 묻혔으며 그의 육체는 썩음을 당했다. 그렇다면 이 시는 다윗 자신을 가리킬 수 없다. 다윗은 자기의 영혼을 두고 한 말이지만 사실상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자신의 몸에서 장차 태어날 후손들 중 하나인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말한 것이다. 다윗은 그 거룩한 자가 썩음을 당하지 않는 것을 자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다윗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후손(예수)을 탄생시킬 그 씨를 자기 속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메시아이신 자신의 후손이 죽음에 넘기우나 결코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오직 다윗만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부활은 적어도 베드로가 볼 때에는 예수의 왕으로의 즉위였던 것이다. 롬 1:3,4에서처럼 그 부활이 곧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게 하는 그것이었다(참고. 행 13:33).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다윗 언약은 성취되었다. 행 13:34에서 다윗은 '거룩하고 미쁜 은사'(holy and sure promise)를 받은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사야 55:3에서는 목마른 자들 그래서 물로 나아 오는 자들에게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를 주리라고 약속하고 있다. 사도행전 13:34은 바로 이 약속(사 55:3)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시편 110:1,4,5 (시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시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110:5)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이 구절은 대제사장이신 메시아왕의 부활승천을 예고한 구절이다. 부활이 없는 승천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메시아의 승천은 부활을 전제로 하고 있다. 5) 이사야 53 :9-12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본문은 메시아가 고난 당하는 부분(비하) 이후에 오는 승귀 부분을 다루고 있는 구절들이다. 9절 까지에서 고난 당하는 여호와의 종을 묘사했었다. 이 고난 당하는 여호와의 종은 장차 오셔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고난 당하시고 죽으실 메시아(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10-12절은 그 여호와의 종이 고난을 당하고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광스러운 지위에 오를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53장을 볼 때, 흔히 고난 당하는 여호와의 종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10-12절에서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지위에로의 올리우심(승귀)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 53장은 여호와의 종(메시아 즉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비하와 승귀)을 함께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종이 상함을 받기를 원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아픔(질고)을 당하게 하셨다. 그래서 여호와의 종은 그 기쁘신 뜻을 따라 자기를 으로 드렸다. 인류의 모든 죄는 하나님을 침해하고 공격하여 해를 끼치는 죄이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종으로 하여금 인류의 그러한 죄로 인하여 홀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살아있는 자기를 희생시키도록 하셨고 하나님은 그 일을 기뻐하셨다. Barnes는 그가 다른 사람에 의하여 상함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셨다고 하나 그것은 옳지 않다. 여호와의 종이 자신을 희생시켜 속죄제물이 되어 죽었을 때, 그분은 그 씨를 보게 될 것이다. Hengstenberg는 여호와의 종의 죽음 가운데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어서 그로 말미암아 그는 그분의 교회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접두사 은 when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씨가 있으려면 반드시 그 종의 속죄 희생이 일어나야 함을 가리키고 있다. 역으로 말해서 그가 속죄희생을 드리면 반드시 그 보상으로 씨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속죄희생이 없이는 구원받은 백성, 교회도 없다. 여호와의 종이 그 씨를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주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만일 그분이 죽어서 죽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부활하셨기 때문에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사 는 죽음이 그 여호와의 종을 붙들어 두지 못하고 놓아줌으로써 그분이 다시 살아 자기의 희생의 씨를 보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씨는 그분의 씨로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미한다. 그 날은 길 것이요는 오랫동안 산다는 뜻이다. 이는 히브리적 표현으로 종의 왕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본 구절은 여호와의 종이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 문구는 다윗과 그의 씨(후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키고 있다. Hengstenberg는 바르게 지적하기를 '하나님의 종의 생명은 그분의 씨와의 교제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하였다. 그분이 가지신 부활의 생명은 고립된 생명이 아니다.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호와의 종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희생제물로 자기를 드리는 것이 여호와의 기쁘신 뜻이었다. 그 희생제사 제도는 모세에 의하여 예표로써 세워지고 여호와의 종에 의해서 실제로 실현되었다. 이어지는 구절들(11, 12절)에서도 그분의 부활이 드러나 있다. 그가 자기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등의 문구는 그가 부활하셔서 누리실 일들을 가리킨다. 6) 이사야 55:1-3과 다윗 언약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시 16:10에서 다윗은 성령의 감동을 입어 자신의 몸에서 장차 태어날 메시아가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을 예고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여 놓은지 몇 세기 후에 이사야는 목마른 자들로 하여금 물로 나올 것을 권고하면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청종할 때, 그들의 영혼이 살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세울 영원한 언약은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예언에서 볼 때, 53장에서 구속은 성취가 되었다. 그리고 제 4종의 노래의 서론과 결론부에서 장차 이방인들이 집합체로서의 종의 무리에 속하게 될 것이 예고되었다. 그리고 그 종이 백성들을 위하여 획득한 축복들이 풍성하게 제시되고 있다(54장). 55장에 와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초청하고 있다. 55장을 이끄는 첫 단어는 (ho, 보라!)이다. 이 단어는 사람들의 시각과 청각을 집중하라는 단어이다. 본문에서 선지자는 친히 복음 전도자가 되고 있다. 고대 동양에서는 물이 물장수들에 의하여 팔렸었다. 인간은 물 없이 살 수 없다. 선지자는 여기서 물을 판매하는 사람처럼 물로 나오라고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는데 물론 그 물은 영적인 물이다. 선지자가 제공하는 물은 가격도 없다. 젖과 포도주는 영적 축복을 가리킨다. 물은 영적 소생을 주는 것이고, 포도주는 흥분과 즐거움을, 그리고 젖(milk)은 영양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값없이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값을 여호와의 종이 대신 형벌을 당하심으로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2절에서 선지자는, 아니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질문을 함으로써 거저 주시는 구원을 거절하고 헛수고를 하고 있다고 상기시키고 있다. 그들은 양식인줄 알고 그것을 사기 위하여 힘을 쓰고 있는데 사실상 그것은 속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양식은 어떤 물리적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과 만족을 얻기 위하여 지불하는 수고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다른 인간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여호와께만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3절에서 선지자는 약간 다른 어조로 앞 절의 메시지를 반복한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 그 언약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라고 묘사되고 있다.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는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가리킨다. 다윗 언약은 이스라엘의 구원소망의 기초였다 이 언약은 무조건적이요 모세 언약에 비하여 확실한 것이었다. 은혜라는 단어는 로써 '인애, 긍휼, 언약적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표적 표현이 메시아의 대속 사역인바 다윗 언약에서는 메시아의 부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적 은혜를 가리킨다. 삼하 7:1-17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것이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라. (삼하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삼하7: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삼하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다 윗의 위는 영원히 견고케 되고 그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다윗의 그 후손(메시아)을 통하여서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다윗의 후손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수 많은 다윗의 후손이 생겨날 것이다. (렘33: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라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모두 실현이 된다. 그 다윗의 후손(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다윗 왕국은 영원하지 못할 것이다. 다윗의 후손(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다윗 왕국은 견고하지도 못할 것이다. 다윗의 후손(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다윗에게 약속한 진정한 성전 건축도 불가능하다. 다윗의 후손(예수)의 부활은 다윗에게 약속한 모든 언약을 실현시킬 것이다. 이것이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다. 그래서 바울은 행 13:34에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언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 결론 > 바울은 그의 고린도 전서 서신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구약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도 구약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대로 다시 부활하셨는데 이는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 구약의 말씀을 세밀히 살펴 본다면 오실 메시아의 부활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발견될 것이다. 메시아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 구절들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에 의하여 예고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주의 성령으로 부음 받은 사람들은 구약만을 읽고도 메시아의 부활을 깨닫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에 예언되었고 주님은 그 예언대로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사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부활은 기독교의 존재의 의미를 주고,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며, 소망을 주고, 성도들의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며, 믿는 성도에게 환희를 준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보다 활발하게 연구하여 주님의 부활의 기쁨을 우리의 것으로 만듦이 필요하다. < 참고서적 > 한글 개역성경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King James Version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ew English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ew Jerusalem Bible New King James Version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Revised Standard Version B. Davidson, The Analytical Hebrew and Chaldee Lexicon, Zondervan, 1970. J. J. Owen, Analytical Key to the Old Testament(4vols), 1989 J. A. Alexander, The Prophecies of Isaiah(2), Zondervan, 1976 E. J. Young, The Book of Isaiah(3), 1974. John D. W. Watts, Isaiah 34-66(WBC), 1987. James D. G. Dunn, Romans 1-8(WBC), 1988 Gordon J. Wenham, Genesis 1-15(WBC),1987 Huge Martin, 요나의 표적에 관한 신약적 주해, 윤영탁 역편, 구약신학 논문집(5) 정일오, 선지서 연구(96년도 봄학기) 강의록 , 구약신학(97년도 봄학기) 강의록
625 no image 팀스피릿 훈련 소감 (왕Faith) [2]
[레벨:11]왕faith
62 2006-08-21
뒤늦게 글을 올립니다^^. 은혜로운 팀스피릿 훈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번 팀스피릿 훈련은 저에게 좋은 믿음의 체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팀스피릿 훈련 가기 전에, 감당하는 중에, 끝난 후에 각각 다른 체험을 주셨습니다. 1. 가기 전에… 지리산 팀스피릿 훈련의 광고를 듣고 가고 싶은 소원이 좀 생겼습니다. 그러나 학원 강의, 아르바이트가 있고 게다가 날씨도 더울 것 같아 정말 가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박경환 사모님과 장등 형제님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장등 형제가 집에 가기 전에 영적인 무장이 필요할 것 같고 그렇다면 지리산을 가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는 방향이 나왔습니다. 또한 요회의 박순선 자매님도 care 할 수 있도록 제가 가면 좋겠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정해야 했고 그리고 학원에서 휴가를 받기 위해 그 기간 저를 대신할 다른 선생님을 구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저의 내면에 있는 인본주의 문제를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사람의 편에 서서 생각하는 인본주의가 드러났습니다. 미국인 Holly wright 자매와 아르바이트는 시작한지 1주일 밖에 안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이라 Holly 자매님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두려웠습니다. 또 학원에서는 Christmas와 신정 때 학생 한 명 있더라도 강의를 할 정도로 책임감을 갖고 했었고 이번이 마지막 달인만큼 좋은 이미지로 끝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하나님에 편에 서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름수양회 때 양들한테 아르바이트를 옮기라는 말을 하기가 쉬운데 막상 자신이 똑같은 상황을 부딪히게 되자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가 받는 것과 알바를 옮기는 일은 저에게 산처럼 느꼈습니다. 원장님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불안한 자신을 보고 저의 내면에 두려움이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감사하며 기도하고 도전하는 가운데 학원에서 휴가를 받고 Holly 자매님의 과외도 순조롭게 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은 마치 자신이 인본주의와 두려움의 산에서 겨우 내려온 느낌이었습니다. 2. 지리산 산행… 앞서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2주정도 하루 4시간 정도만 잤기에 잠이 부족하였습니다. 게다가 작년자매들이 산행 중에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 속으로 나는 등반하면서 절대 울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소리도 하지 않기로 다짐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산행은 저에게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각오를 다지고 계속 기도하며 올라갔습니다. 힘들었지만 산행이워낙 빨리 진행되어 원망할 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정상을 밟고 돌아오는 승리의 은혜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산에 오르면서 평소에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영적인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지 문제가 아니라 체력 문제’ 라고 하시는 가이드 선생님의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에 체력을 다져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실제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영적인 근육과 힘도 필요합니다. 평소에 새벽기도, 양식, 소감을 꾸준히 잘 감당하고 자기 영혼의 피와 근육을 가져야겠다는 영적인 소원이 생겼습니다. 산행 중에 가이드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계산적이지 않고 어려움 앞에 자신보다 남을 챙기는 희생적인 모습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 그분들이 돈을 받고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아니었습니다. 짐이 참 무거우실텐데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지고 있던 매실 엑기스 , 홍삼, 불고기, 사탕, 과일 캔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힘들 때 잡아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목자 같은 내면에 대하여 감격했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대장 가이드 선생님께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자신이 목자로써 부족한 것을 느끼고 부끄러웠습니다. 17시간의 산행은 힘들지만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아브라함 목자님의 스피릿과 체력에도 감탄하였습니다. 목자님들, 사모님, 형제자매님들의 사랑과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리산의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3. 팀스릿 훈련에 갔다와서… 훈련이 끝나고 센터에 와서 순선 자매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 목자님과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의 내면에 목자의 심정이 부족한 것을 터치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챙기는데 바빴고 주변 목자님들과 관계성을 맺는 것에 바빴습니다. 이기적이고 양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정말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인정을 받고 자신만 챙기고 목자의 심정이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회개했을 때 순선 자매님 그리고 양들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리산 팀스리핏 훈련 통하여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전을 지켜주시고 많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팀스리핏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매일매일은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제가 팀스피릿 훈련을 통해 배운 바를 기초로 날마다 넘어야 할 산을 넘는 사람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동역자, 성요팀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을 잘 의지하고 날마다 넘어야 할 산을 잘 넘어 늘 승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624 no image 꽃이 피는 계절 [4]
[레벨:11]왕faith
63 2008-04-18
623 no image 졸업소감-왕faith [9]
[레벨:11]왕faith
121 2011-08-30
졸업소감 요절: 요한복음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시즉 아귀까지 채우니 기도: 하나님 아버지 졸업을 이루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5년간의 박사과정을 통하여 죄인의 여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모든 은혜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2장에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자급자족하던 시대라 포도주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아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없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나이다” 하시며 예수님의 거절의 말을 들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거절 앞에서도 마리아는 믿음으로 하인들을 준비시켰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그곳에 돌 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는데 하인들이 순종해서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하셨을 때에도 하인들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이 포도주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몰랐지만 하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물을 떠다 주었는데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논문을 감당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인들의 순종의 자세를 배우게 하시고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를 깊이 감사합니다. 2004년 2월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저에게 시청에 있는어학원에 직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거리가 멀고 보수가 적고 발전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사무실 전반적인 업무도 함께 하여야 하였습니다. 차 심부름도 하고 지하철역 앞에서 전단지도 돌려야 하였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밤이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곳에서 인내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훈련을 주셨습니다. 이 곳에서 2년 6개월 근무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오전시간 동안 사모님들과 자매목자님들을 동역하면서 피싱을 배웠습니다. 서울대 학생의 신분이 아니라서 겸손하게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피싱 하면서 서울대를 불쌍히 여겨 하나님께 순수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피싱 했지만 2005년 가을 학기 바이블 아카데미에 한명의 양도 초대하지 못하였습니다. 2006년 1:1목자님은 박사과정에 도전해 보도록 했고 부모님에게 물질 지원이 가능한지 물어 보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석사논문을 쓰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서 박사과정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돈도 벌고 ... 소시민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년6개월의 기간의 믿음의 투쟁을 기뻐하시고 2006년 9월에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합격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합격이 발표되던 날 목자님과 함께 감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공부하고자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간절하게 드렸습니다. 학과 행정실에서 학생증을 받아 이제 서울대 학생의 신분으로 당당하게 피싱을 나갈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학원 개강 전 지리산 팀 스피릿 훈련을 통해 저를 무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루 사이에 1900미터 넘는 천왕봉에 다녀온 것은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저에게 쉽지 않은 코스였습니다. 하지만 땀을 흘리고 끝까지 인내했을 때 정상까지 오르는 승리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공부하는 과정 중에 하나님을 의지해서 계속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불신과 싸워야 하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해야 했으므로 부족한 잠을 지하철 안에서 보충해야 하는 고된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깊이 의지하고 투쟁했을때 하나님께서는 학업의 승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올A를 두학기동안 받게 하셔서 장학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피싱를 해도 한명도 초청하지 못했었는데 대학원 공부하는 내내 양들을 계속 부쳐 주시고 1:1말씀으로 섬기게 하셨습니다. 장등, 호금령, 오금영, 탕앤나, 유아정, 윤총총, 마원중, 김습, 왕유리, 소암. 학기당 평균 3명의 양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 귀한 영혼들을 말씀으로 섬기면서 예수님의 내면성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2007년 브루나이 선교지 심방과 2008년 미국 퍼듀 국제수양회 참석과 일본 쎈다이 심방을 다녀오게 하시므로 저의 영적 시야를 넓혀 주셨습니다. 2009년에 저의 지도교수가 바뀌면서 논문 주제도 바뀌게 되어 정식적으로 논문을 작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공에 있는 한국 학생도 학위논문을 어려워하고 시작도 못한 분들이 많아 심리적인 부담감이 커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어도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학문적인 안목이 예리하고 추진력이 있는 김진화 목자님을 통해 논문 앞에서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저를 많이 채찍질해주고 앞으로 밀어주셨습니다. 진화 목자님의 관심과 도움을 받아 저는 힘을 얻어 어려워도 조금 씩 조금 씩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은미를 안고 저를 도와주신 진화 목자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합니다. 목자님의 열정과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녀를 훈련하십니다. 2009년 여름에 논문자료 수집을 위해 상하이에 갔는데 36도의 더운 날씨에 고생도 하고 여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선약을 받지 않아 상하이 시청에 들어 갈 수 없어 이틀간 배회하다가 길거리에 주저 않으려고 했을 때 담당자로부터 만나주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믿음이 없는 제가 도전하는 것을 원하시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2010년 6월 논문의 초고가 완성되었지만 지도교수님께서는 완성도를 높여야 하므로 심사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논문을 그냥 통과 시켜주시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의 훈련을 통해 제가 성장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가을에 지도교수님과 학술지 논문을 같이 작업하면서 학술적인 논문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교수님의 요구사항과 교수님의 리듬을 따라가는 연습과 훈련이 계속 되었습니다. 2010년 11월 한,중,일 국제포럼의 통역 및 논문발표를 통해서 전공자로서의 자부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2011년 4월부터 8월 초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마치 크고 작은 터널을 지나가는 과정과 같았습니다. 고민하는 문제가 해결되면 햇빛을 좀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또 문제점이 발견되어 캄캄한 터널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저의 몸과 정신은 마치 빨래를 지어 짜듯이 계속 짜내야 하였습니다. 저에게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붙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논문이라는 항아리에 한 줄 한 줄 써서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내적인 힘, 즉 믿음과 건강과 체력과 집중력을 주셨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에스더 사모님의 헌신적인 기도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사모님은 자기 아이들의 이야기를 안 들어 줘도 저의 고민은 꼭 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풍성한 물질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논문 완성 단계에서는 전공 선생님들의 도움과 지도교수님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부족한 저를 하나님께서는 한 단계 한 단계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그 때 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 훈련은 하나님의 선한 의도가 있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부족하며 믿음이 작았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서 저를 조금씩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공부의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저와 하나님 사이에 많은 스토리를 허락해 주시고 사랑과 신뢰의 관계성을 깊이 맺게 하셨습니다. 이 논문을 시작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논문을 완성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2심 심사결과를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논문을 완성해 연회장인 심사위원들에게 논문을 갖다 줬을 때 통과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학위를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습니다. 제가 계속 영적인 깊은 투쟁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족 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계속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캠퍼스에서 형제자매님들의 생명 구원역사에 계속 저를 사용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차이나요회 박충성 목자님과 화요회 목자님들과 센타 목자님들 사모님들 그리고 형제자매목자님들의 사랑과 기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팀 목자님 이셨던 은주사모님 정훈사모님 현정사모님 선덕사모님들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함께 장막생활을 하였던 진화 사모님 미아사모님 사랑사모님 기쁨사모님 미션사모님 미선사모님 세영 사모님 그리고 명옥목자님, 지연목자님, 혜란목자님 여진목자님 감사목자님 인애목자님들의 사랑과 기도에 깊이 감사합니다. 저에게 물질적인 지원과 사랑의 수고를 해주신 부모님과 말씀으로 섬겨 주시고 기도해 주신 정아브라함 목자님 인금철 목자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은혜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한마디 :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
622 no image 에베소서3강의 메시지가 없나요? [1]
[레벨:11]왕신수
70 2004-01-20
621 no image 목자님들의 기도에 감사를 드립니다. [1]
[레벨:11]왕신수
139 2004-03-09
저번 주 금요일에 비자가 무사히 나왔습니다. 비자를 위해 기도하는 과정에 하나님 아버지께 부족한 저를 깨워 주시면서 많은 은혜 허락해 주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고 믿음을 심어주며 동역해 주신 모든 목자님, 사모님, 형제 자매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언어 표현의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마음으로 목자님한테 감사를 드립니다...^^ 관악5부에서 만난 목자님들로 인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삶에서 좋은 선생, 좋은 친구,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 2월 27일에 저의 졸업에 축하해 오신 은주 사모님, 현정 사모님, 호영 목자님, 미선 자매님에 감사를 드리고( 그날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졸업에 기도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신 아브라함 목자님, 금철 목자님, 충성 목자님,경환 사모님, 정훈 사모님, 신유니스 사모님, 진화 사모님, 미아 사모님, 사랑하는 자매 장막 연린, 하나, 혜란, 미선 자매 목자님들과 China 요회 동역자들과 요한 팀 사라 자매님과 학생회의 목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일일이 감사의 편지를 써 드리지 못해지만 여기서 한꺼번에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목자님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620 no image 중국에 잘 도착했습니다. [3]
[레벨:11]왕신수
141 2004-03-12
619 no image 요하네스 요회 홈페이지가 완성되었습니다. [1]
유두현
85 2003-07-27
618 no image Long time no see !!! from 유두현 [4]
유두현
112 2004-04-26
새 센터가 완공된 것 같은데.. 정말 궁금하네요... 저는 지금 night shift 즉 , 야근을 하고 있어요.. 오늘 밤 새네요.. 야근때문에 오늘 오후에 있는 6시 예배도 못보고... 지금은 선임들 눈치보면서 몰래 인터넷 쓰고 있으니.....음.... (지금 선임이 자고 있거든요..) 이번주부터 계속 훈련이 있어서... 아마도 8월달까지 줄기차게 훈련이 이어질 것 같은데... 지난 금요일에는 사격하러 story range라는 곳에 갔는데... 거기가 JSA라 북한방송도 들리고.. 눈 앞에서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노루 비슷한 동물들도 무리지어 다니고 그랬어요.. 훈련기간에는 주말에 나가기가 힘들 것 같아요.. 이번주에 제 밑으로 신병이 들어오는데.. 훈련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선임들에게 안 찍히게 하려면 교육을 철저하게 시켜야겠네요.... 불쌍한 신병... 하필 이런때에 오다니... 최선휘목자님이 5월 10일 훈련소에 입대하신다니.. 제가 훈련소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드릴께요..(논산 기준입니다.) 먼저 입대일에 가는 곳은 훈련소가 아니라 입소대로서 거기서 신체검사를 하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혈압때문에 정밀검사 판정을 받고 국군논산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어요.. 잘못하면 집으로 돌아갈 뻔 했지요.. 다행히 투입판정을 받아 훈련소에 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투입이 결정된 사람들은 훈련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도보로 20분 정도 걸어갑니다.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께요... 왜냐하면 훈련소 생활은 "알면 견딜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사도 모르고 맞아야지 알고 맞으면 더 아프잖아요... 그런 것처럼 알게 되면 정말 어렵습니다.... 저도 다시 논산에 가라고 하면 안 가겠어요.. 왜냐하면 논산이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세히 알려준다고 해놓고 안 알려준다고 섭섭해 하실 것 같아서 이것만 알려드릴께요. 훈련은 힘들지 않은데... 배식조와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이 훨씬 힘듭니다. 제 경우에는 100년만의 폭설덕분에 대민지원까지 나가서 삽질을 했지요.. 대민지원도 2번이나 나갔어요.. 그것도 야간행군 끝나고 바로 다음날에 말이죠... 쉬지도 못하고... 딸기 비닐하우스 들어올리고 옆에 쌓인 눈 치우고... 이렇게 눈 때문에 고생하다보니 눈이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니까요.. 5월에 훈련받으면 눈은 안 오겠네요... 부럽다... 아, 그리고 논산훈련소 수류탄투척장 6사로를 조심하세요.. 6사로에서 사람이 많이 다쳤어요... 제가 훈련받을 때도 2명이 죽었으니.... 만약 6사로에 걸리면 기도 많이 하고 가세요... 아니 기도가 저절로 될거에요.. 그럼 이만 쓰고 다음에 쓸께요.. 눈치보여 더 이상은.... from 유두현
617 no image passion of Christ [1]
유두현
110 2004-04-26
616 no image 국민대학교 가는 교통편입니다.
[레벨:13]유제임스
76 2004-10-03
Tag List